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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아래서#1~35 신이현 작가 부부의 알콩달콩 이야기 칼럼
신이현 작가
“이렇게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어. 죽을 것 같아.”
2015년 어느 날 새벽 2시,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 레돔(애칭)이 말했다. 이 한마디가 우리 가족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2003년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해 현지에서 살았던 나와 남편이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에 정착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발령받은 첫날부터 회사 일이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한 달 뒤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결국 우리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 쓰라린 경험은 레돔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오랫동안 원했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뭐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농부가 되고 싶어.”
농부라니, 그건 나중에 은퇴하고 취미로 하면 되지 않는가? 레돔은 제대로 된 농부가 되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이 마흔에 농업학교에 입학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공부를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대 전공 졸업이 의무사항이다.
어제까지 넥타이 매고 노트북 가방 들고 회사에 가던 남자가 청바지에 셔츠 입고 포도밭으로 갔다. 곱슬머리는 어찌나 길고 수북한지 시아버지는 아들을 볼 때마다 머리 좀 깎으라고 사정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 직장을 버리고 포도밭에서 가지치기를 하니 나는 걱정이 됐다. ‘저 일 해서 아들 뒷바라지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이 나이에 무슨 풍랑인지 모르겠네.’ 나는 공부하는 그의 등 뒤에서 투덜거리고 짜증을 냈다. 내심 졸업시험에 실패하기를 바랐지만 통과하고 말았다.
이제 어디에 가서 와인을 만들지? 그는 프랑스 남쪽을 돌아다녔다. 우리 이곳에서 한번 살아볼까? 그러나 내게는 너무 낯설었다. 더 이상 외국에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낯선 시골에서 조그마한 동양 여자로 늙어갈 게 슬프게 느껴졌다.
“그럼 한국은 어때?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사과 스파클링 와인)는 없잖아. 우리가 처음 만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또다시 한국으로 오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걱정했다. 어른들이야 자기 하고 싶은 걸 한다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들은 어쩔 거냐는 것이었다.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한국 학교 싫어!
“아들 고교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면 6년인데 그럼 내 나이가 몇이지? 안 돼. 얜 아직 어려. 부모와 함께라면 아이는 어디를 가든 상관없어. 괜찮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늙어가는 아비의 꿈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을 내렸다. 농부가 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친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안녕, 프랑스. 당분간은 안 그리울 거야.
<2>사돈은 맞절도 안 하고 ‘볼때기’에다 뽀뽀를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레몽 씨 안녕하세요. 한국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거를 프랑스 말로 우에 하노? 아이고, 사돈을 만나마 무슨 말을 할꼬. 할 말은 태산 같은데….”
지난해 프랑스에서 시아버님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친정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을 프랑스어 문장으로 빼곡하게 적었다. ‘금쪽같은 아들을 타국 멀리 보내놓고 얼매나 애가 타겠노. 얼매나 보고싶겠노….’ 이렇게 중얼거리며 나날이 외우고 익혔다.
“그럼 (프랑스) 알자스는 어떻게 하고? 이 집은 누가 가지고, 이 많은 가구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이 모든 것들은 너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것인데. 벼룩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는 말인가. 8월 벼룩시장 말이다.”
우리가 한국에 가서 살겠다고 했을 때 시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구와 그릇 핑계를 댔지만 사실 아버님은 알자스를 떠나 동양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알자스는 우리에게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독일과 프랑스 국경에 있는 지방이다.
알자스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풍광이 제일 아름답고, 음식이 제일 맛있고, 가장 살고 싶은 곳은 어디도 아닌 바로 알자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알자스는 프랑스에서 인구 유출이 가장 적은 지방 중의 하나이며 나의 시댁 식구들도 모두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막내아들만이 알자스를 떠나서, 그것도 멀고 먼 동양으로 가겠다니 아버님에게는 날벼락과 같았다. 우리가 한국으로 오는 날 아버님은 여기저기 아픈 곳을 나열하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고 울적하고 시니컬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한국에 오세요. 가을 날씨가 제일 좋으니 그때 맞춰 오시면 되잖아요.”
이렇게 말했지만 아버님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 비행기를 탈 수 없을 것이라고, 비행기 안의 건조한 공기와 긴 비행시간이 두렵다고 했다. 한국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도 가지 못할 것이고 바로 죽을 텐데 어떻게 가겠느냐고….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우리는 화를 내면서 알자스를 떠났다.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한국에 온 뒤 1년 만에 아버님이 아들을 보러 오겠다고 했다.
“얘야,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지금 안 가면 절대 못 갈 것 같다. 너희들이 사는 나라니 아무리 멀어도 가봐야지.”
아버님은 간호사인 큰딸을 대동하고 가방 한가득 비상약을 챙겨서 한국으로 왔다. 친정으로 가는 길에 아버님은 친정어머니 ‘끔쑤’ 씨의 안부를 물었다. “끔쑤 아니고요, 금순이라니까요.”
끔쑤 씨는 아침부터 아파트 마당에 나와서 서성거리며 눈에 보이는 꽃들을 따서 한 묶음 만들어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에서 있었던 우리 결혼식(2003년)에 어머니가 왔고, 그때 처음으로 사돈 간의 만남이 있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아버님은 친정어머니와 춤을 추었는데 그것은 두고두고 어머니 인생의 핫한 이야깃거리였다.
“우리 사돈 레몽 씨는 춤을 어찌나 잘 추는지 내 손을 잡고 빙빙 돌리는데 선수더라 선수. 거기다 그쪽 사람들은 사돈끼리 맞절도 안 하고 끌어안고 볼때기다 뽀뽀를 하더라 아이가. 아이고 프랑스 사람들 참말로 쌍놈들이재.”
70세에 처음 만나 춤을 추었던 두 사람, 85세가 되어 다시 만났다. 아버님은 친정어머니 볼에 쪽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다. 어머니는 쪽지를 펴 커닝을 한 뒤 수줍게 말했다. “봉주르 머슈 레몽. 비엥버니 꼬레 쉐 무아….(레몽 씨 안녕하세요. 한국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러고는 아파트 화단에서 갈취한 꽃다발을 내밀었다. 백발의 노신사는 길쭉한 코를 한국의 잡초 꽃에 박으며 말했다.
“메르시 보쿠 끔쑤운….”
<3>프랑스 땅값의 10배… 한국서 농사짓는다고?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곱슬머리에 키가 크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외국 남자가 사과밭 사이로 걸어가면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와서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요, 한국에서 과일 농사를 짓겠다고요? 그걸로 와인을 만들 계획이라고요? 와…. 그런데 레돔 씨, 땅은 있습니까?”
다들 이렇게 물었다.
“아뇨, 없습니다.” “그럼 돈은 있나요?” “일 년 정도 생활비는 있죠.” “으허, 큰일 났네….”
프랑스를 떠날 때도 사람들은 우리 앞날을 걱정했는데 한국에 오니 더했다. 1년 뒤 우리는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태양이 떠올랐고 좀 낙관적인 마음이 되었다. ‘그래, 망해도 좋아. 적어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지.’ 이렇게 마음을 달랬다.
초반 몇 달 동안 우리는 중고 자동차로 온 대한민국의 먼지를 휩쓸고 다녔다. 사과 연구소에도 갔고 포도 작목반에도 갔다. 과일 농사를 잘 짓는 농부들도 만났고 와인 만드는 분들도 만났다. 우리나라 산천은 엉망으로 파헤쳐진 곳도 있었지만 구불구불,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깊고 신비로운 곳도 있었다. 그런 풍경을 만나면 우리는 취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우리의 처지와 희망사항을 풀어놓기도 했다.
“이 근처에 농사지을 땅 없을까요? 집도 필요하고, 작업할 창고도 필요합니다. 일단은 땅을 빌려서 농사짓고, 집도 작업장도 모두 임차할 생각입니다만.”
어디를 가든 이렇게 말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나 자신이 현실성 없는 무모한 여자가 된 느낌이 들어 풀이 죽었다. 체계적으로 부동산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땅 없습니다. 요새 10만 원 이하 땅이 어디 있습니까?”
별로 돈 되지 않을 객이라고 생각했는지 부동산은 시큰둥했다. 레돔은 한국의 땅값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프랑스의 열 배라고 했다. 사표만 던진다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건 아니란다. 그런데 농사지을 땅이 그렇게 비싸니 거기서 황금사과를 키운다 해도 땅값 다 못 갚고 죽겠다. 남편은 한국말도 못하지, 아들 학교도 못 정했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구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싫었다. 한마디로 ‘왕짜증’이 났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내게도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이렇게 안부를 물으면서 너무 미안했다. 이 아이가 잘 지낸다면 다 괜찮은 것이다. 나는 아이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이마에 뽀뽀를 하면서 평상심을 되찾았다. 불안정하긴 했지만 지금 이대로의 인생도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다들 뭘 그리 걱정해주실까.
그나저나 미래 우리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이 고민은 지금은 이웃이 된, 그때는 초면이었던 말총머리 이재윤 도예가를 만나면서 쉽게 풀려 버렸다. 강원도를 거쳐 서울, 충주에 갔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농사와 술에 관계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찾아갔다. 한국의 과일 품종과 주류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큰 기대 없이 한마디 해보았다.
“지금 우리는 와인 만들 작업장을 구하는 중이랍니다.”
“그런가요? 저기 우리 옆집 도자기 공방이 비었는데 한번 보실래요?”
이렇게 우연히, 그토록 고대하던 작업장이 구해졌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충주, 물이 많은 도시라고 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지만 이사도 하기 전에 이 도시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4>와인 한 잔은 나무, 바람, 햇빛을 느끼는 것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술을 만들려고 하면서 농사는 왜 지으려는 거지? 과일은 구입하면 훨씬 경제적이야.”
어렵게 작업장을 구하고 났더니 레돔은 이제 과일밭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농사짓기는 좀 늦추자는 나의 권유에 그는 어깨만 으쓱했다. 싫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농사에 대한 계획이 다 서 있었다. 좋은 술은 농부의 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술 한 잔은 그냥 술 한 잔이 아니야.”
그때 우리는 레돔이 일했던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와이너리에서 가져온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형제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와인을 만드는 작은 와이너리의 술이었다. 겨울 한 달 동안 가지치기를 했고 봄이 오면 풀을 베고 여름이면 포도를 수확해서 착즙을 했다. 즙은 겨울 내내 천천히 발효돼 갔고 그동안 포도밭은 누렇게 물든 잎을 떨어뜨리고 휴식을 취했다. 이렇게 밭에서부터 술이 될 때까지 모두 농부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사이클로 돌아갔다. 농부는 자신의 땅과 포도나무는 물론이고 그곳에 불어닥치는 비와 바람, 태양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어떤 맛의 와인으로 탄생될지 농사를 지으면서 벌써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한 잔은 농부의 자식과 같다고 할 수 있어.”
레돔은 한국에서도 알자스 농부의 방식대로 일하기를 원했다. 그곳 양조장들은 대부분 농부가 직접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든다. 대량 생산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와인은 그곳 농부의 와인 창고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 파리의 슈퍼마켓에 파는 알자스 와인은 대부분 대형 양조장에서 매입한 포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좋은 술들은 그 지역에서 다 소비돼 버린다.
“좋은 와인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질문은 어떤 여자가 젤 예쁜 여자냐는 질문과 같아. 맛있는 와인이란 없어. 한 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그 과일이 자란 땅과 나무, 바람과 햇빛을 느끼고 즐긴다는 것이야. 좀 거칠거나 심플해서 별 맛이 없다 해도 그것은 그 술이 온 땅에 대한 솔직한 설명이야.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향이나 맛을 첨가하지 않은 술이라면 그 자체로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해.”
편하게 가기 위해 늘 짱구를 굴리지만 나는 또 설득돼서 과일밭을 찾기 시작했다.
“사과밭이든 포도밭이든, 우리는 둘 다 좋아요. 집 근처면 좋지만 좀 멀어도 괜찮아요.”
어느 날 보일러 수리하러 오신 동네 할아버지께 이렇게 부탁했다. 뒷마감이 서툰 할아버지는 난로가에 앉아 충북 충주시 엄정면 일대 보일러와 수도는 자기가 다 고친다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겨 하셨다.
“농사는 뭐 할라고 지을라캐? 밭에 함 나가봐라. 얼굴 시커멓게 되고 허리 꼬부라들고 폭싹 늙는다. 시작하면 그만둘 수도 없어. 죽도록 고생만 한다고. 하지 마라.”
이렇게 충고하며 술 한 잔 드신 뒤 가버렸다. 하긴 나에게도 파리의 미술관들을 순례하고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지나가는 개들을 구경하던 파리지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농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밭으로 가야 한다. 어떻게 하나 내 인생, 야단났다.
그냥 과일 사서 술 만들자, 이렇게 레돔을 회유해볼까 하는데 보일러 할아버지가 사과밭을 구했다고 연락이 왔다. 당장 하겠다고 했더니 밭주인이 다음 날 임대료를 배로 올려 버렸다. 너무 화가 나서 펄펄 뛰는 사이에 할아버지가 또 다른 밭을 구해주셨다. 임대료도 없었다. 우리는 신이 났다. 그러나 공짜 밭 2000평이 우리에게 떨어졌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5>“한국 학교는 왜 머리카락을 간섭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그런데 엄마, 무신정변의 전개… 전개가 뭐야? 소수림왕 내물왕, 이건 왕 이름이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강감…찬? 침입이 뭐야? 돌덧…널무덤이 뭐야? 왕족 계루부 고씨…고주몽은 또 뭐야? 신라와 수의 연합, 연합이 뭐야?”
13세, 평생 프랑스 학교에서 공부했던 아이가 한국 중학교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연필심을 꼭꼭 깨물면서 ‘뭐야 뭐야’ 질문을 퍼부었다. 뒤죽박죽 실타래 속을 허우적대는 표정이었다. 아들의 한국어 실력은 초등 2학년에도 못 미치는 정도였다. 한 집안의 가장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 가족 모두의 대모험이 시작된다. 특히 아들은 언어가 바뀌고 교과서가 바뀌는 대혼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무신정변이란 건 말이다… 음… 소수림이나 내물왕은 왕은 왕인데 말이다… 강감찬은 위대한 장군이지. 그런데… 계루부? 이건 또 뭐야? 가만 있어봐 엄마가 찾아줄게. 여기 다 나온단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인터넷을 마구마구 뒤지고 그것을 프린트 하면서 내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위대한 엄마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나는 매번 낑낑거리다 부르르 화를 내는 것으로 끝을 냈다. 이 나이에 주경야독이라니. 노안으로 눈도 잘 안 보이는데…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엄마. 한국 학교는 왜 머리카락을 간섭해? 머리랑 공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교복은 왜 입어야 해? 난 이 교복 저고리 느낌이 너무 싫어. 불편해. 왜 2학년 애들한테 안녕하세요,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해? 나보다 키도 더 작은데… 학교 점심 메뉴는 왜 매일 밥 국, 밥 국이야? 제일 이상한 건 교무실 청소를 왜 우리가 해야 하는 거지? 선생님이 우리 교실을 청소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교무실은 따뜻하고 우리 교실은 너무 추워. 선생님이 왜 우리보다 더 좋은 교실을 가지는 거야?”
‘뭐야 뭐야?’가 지나가면 ‘왜 왜?’가 시작되었다.
“음, 그건 말이다… 머리가 길면 잡생각이 많이 난단다… 삼손도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면 힘을 잃어버리잖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공부에나 집중하라는 뜻이 있겠지… 교복이 없으면 너희들이 학교가 패션쇼장인 줄 알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거란다. 2학년한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건 말이다… 한국에서는 윗사람을 공경해야 한다는 장유유서… 그리고 한국 사람은 매일 밥이랑 국, 이거 안 먹으면 쓰러진다. 그리고 제일 나쁜 건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버릇이다. 하여간에 넌 질문이 너무 많아. 그게 문제야….”
나의 중얼중얼 영혼 없는 대답에 레돔은 콧방귀와 함께 웃어댔다. 늘 그렇듯이 나의 걱정은 깊고 조용한 밤, 이불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 왔다. 아들을 한국에 데리고 온 것은 잘못된 결정 아닐까? 한국말도 프랑스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한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여기서도 외톨이 저기서도 외톨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한국 애도 프랑스 애도 아닌, 정체성 불명의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아닐까 걱정이 끝없이 이어졌다.
“소똥을 구해야 해. 유기농 풀을 먹은 소가 눈 신선한 소똥.”
어미는 아들이 살아갈 멀고 먼 인생길을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는데 아비는 소똥 생각만 하고 있었다. 사과농장을 가지게 된 그 순간부터 레돔은 소똥 노래를 불렀다. 소똥도 신선한 게 있나? 저 건너 농장의 소들이 소똥 잔뜩 싸놓았던데…. 그건 싫다 하고 신선한 소똥 타령만 했다. 나는 끙 소리를 냈다. 차라리 내가 소라면 좋으련만. 일단 오늘은 잠 좀 자고 신선한 소똥에 대해서는 내일 생각해 보자꾸나.
<6>소똥 구하기 대작전… 소 궁둥이를 따르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사전에서 농부는 ‘농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농부(農夫)의 한자를 풀이하면 ‘별(辰)을 노래하는(曲)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별을 노래하는 사람이 농부라니 아름다운 풀이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농부는 땅속의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하늘의 신호까지도 알아내는 사람이다. 그냥 괭이 들고 나가서 땅 파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동네 어르신 사과밭이 넘어온 날은 겨울이었다. 잎이 없어 땅과 나무의 상태를 살피기에 좋았다. 늙거나 어린 나무, 병들거나 비틀린 나무, 죽어가거나 죽어버린 나무….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땅도 사막화돼 가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것이 있다면 햇빛이었다.
“소똥 두 양동이가 꼭 필요해.”
농부 레돔은 가장 먼저 소똥 증폭제가 필요하다고 처방을 내렸다. 나 어린 시절에는 골목길에 소똥이 수두룩했다. 소들은 아침에 나갈 때 똥을 쌌고 종일 꼴을 뜯은 뒤 저녁에 돌아올 때도 똥을 쌌다. 그 많던 소똥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런데 사람 똥이나 개똥, 닭똥, 돼지똥, 이 많은 똥 중에 왜 꼭 소똥이어야 하는 걸까?
“사람은 섭취한 음식을 거의 다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똥으로 나왔을 때 별로 써먹을 양분이 없어. 닭이나 돼지의 똥은 질소가 너무 많이 함유돼 있어 토양을 오염시켜. 소똥이 좋은 건 풀만 먹기 때문이지. 무엇보다 되새김질을 통해 음식물이 길고긴 소의 장을 통과하는 동안 건강한 미생물들이 생성된단 말이야. 균형 잡힌 최고의 영양 똥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농부의 말에 감복돼 소똥 찾아 삼만 리를 시작했다. “혹시 소똥 구할 데 있을까요? 아니, 그냥 소똥은 안 되고 유기농 풀을 먹고 자란 소의 똥이 필요해요.” “소똥은 어데 쓰려고?” “증폭제 만드는 데 쓰려고요.” “증폭제는 또 뭐꼬?” “생명역동농법에서 땅의 기운을 살리는 데 필요한 약재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야가 무슨 씨나락 까묵는 소리를 해쌌노.” 소똥 구하기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평화나무 농장을 알게 되면서 해결되었다. 놀랍게도 그곳의 두 분은 우리와 같은 농업 방식인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계셨다.
“그런데 소똥 얻는 거 그렇게 쉬운 일 아니에요. 소들이 똥을 누면 밟고 다녀 바닥에 깔린 짚이랑 섞여 버리거든요. 우리 남편이 양동이를 들고 소 궁둥이를 따라다녀야 해요. 똥을 누면 잽싸게 양동이에 퍼 담아야 하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웬 여자가 소똥 달라고 매달리니 농장 안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좀 주세요! 이렇게 해서 평화농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는데도 동지가 필요하다. 생명역동농법 하면 사람들은 ‘생… 뭐, 뭐라고?’ 하는 표정이 된다.
우주의 수많은 별이 우르르 쏟아지지 않고 조화롭게 돌아가는 것은 서로가 강하게 밀고 당기는 힘 때문이라고 한다. 달을 따라 바닷물이 움직이고 해를 따라 꽃이 움직인다. 인간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식물은 인간보다 더 예민하게 우주 행성의 움직임에 반응한다고 한다. 이렇게 별의 움직임에 따라 각기 식물들이 다르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만든 별자리 달력에 따라 농사를 짓는 것이 생명역동농법이다.
“이 농법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가 농작물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도 키운다는 것이지.”
어찌 되었거나 밤하늘의 별을 봐서 나쁠 건 없다. 소똥도 구했으니 이제 하늘의 별이나 헤야겠다. 별 하나에 지렁이, 별 하나에 사과, 별 하나에 포도, 별 하나에 소똥….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 부르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이는 시인뿐만 아니라 농부도 있다.
[포도나무 아래서]<7>효모들이여, 즐거움의 액체를 만들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우리가 한국에서 담근 최초의 술은 캠벨 타크라는 사라진 품종으로 만든 로제였다. 자칭 게으른 농부라 하지만 실제로는 솔직하게 땅과 마주하는 신휘 시인이 농사지은 포도였다. 포도를 딴 뒤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레돔은 바로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갓 딴 포도의 신선함을 1초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착즙하고 싶은 것이었다. 새벽부터 포도 따느라 녹초가 되었을 텐데도 몹시 설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수확한 시인의 포도가 어떤 액체가 될지 너무 궁금해.”
레돔을 처음 만난 것은 프랑스 파리의 한 친구 집들이에서였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많이 마셨고, 두 번째도 마셨고, 세 번째도 마셨다. 카페에서 만나도 커피나 차를 마신 적이 없었다. 와인이나 코냑, 맥주, 샴페인, 시드르, 칼바도스…, 끝나지 않는 술의 향연이었다. 그렇지만 술 만드는 일을 생애 마지막 직업으로 가지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여기 술 한잔 주세요’, 이 한마디면 술이 내 코앞으로 왔다. 그러나 술을 만들고자 하니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첫 번째 프롤로그가 농업이다.
농업의 꽃은 술이다. 이 말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만 명언이다. 농부가 비바람 뙤약볕에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다. 한 톨의 쌀과 밀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경건함이 있다. 그러나 농업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태초, 인간이 배를 채운 뒤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 기분이 어땠을까, 상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얼마나 설레고 즐거웠을까. 술은 그런 것이다. 생존이 아닌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액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학이란 것도 그렇다. 둘 다 생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살기 위한 것이 아닌 가외의 즐거움이다. 술을 빚거나 소설을 쓰는 행위는 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인생에 꼭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짓을 엄청 진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글도 있고 내 삶을 개척하고 인격을 함양시키거나 지적 수준을 높여주는 등의 실용적인 글들도 있지만 사실 문학의 순수한 존재가치는 나만의 조용한 기쁨을 위한 봉사자다. 침대맡에 앉아 두꺼운 소설책을 읽으며 밤새 인물들을 따라가는 것은 생존과 관계없다. 쓸데없이 즐거운 짓이다. 술을 마시는 것도 그렇다.
“이 색깔 좀 봐. 로제 와인으로는 더없이 적합한 포도야.”
점심을 먹은 뒤 가 보니 착즙기에서 내린 포도즙이 발효 탱크 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온 작업실에 갓 딴 포도를 짓이기는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는 유리잔에 액체를 담아 밖으로 나왔다. 붉은 액체가 출렁이는 잔을 들어 햇빛에 비춰 보았다. 맑고 고운 로제 색이었다. 그 첫 향기를 맡은 뒤 한 모금을 마셔 보았다. 염화미소,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았다.
“자 이제는 효모들에게 일을 맡겨야겠군.”
포도즙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각양각색의 효모들이 바글거리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포도에 붙어 있던 자연 그대로의 야생 효모들이었다. 이제부터 이놈들은 액체 속을 헤엄쳐 다니며 어떤 소설 속 인물보다 흥미롭게 자기 역할을 할 것이다. 아주 힘센 놈들이란 것은 며칠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불을 땐 것처럼 포도즙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 모금 마셔볼까 그럼, 레돔이 발효 탱크에서 즙을 빼내 색깔을 보고 향을 맡았다. 포도즙이 와인으로 변해가는 순간, 악당 효모가 나타나면 와인을 모두 썩어버리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작가도 그들을 따라가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겨울 내내 우리는 효모들이 하는 짓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매일 공짜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8〉말 안 통하는 고집쟁이 두 남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그럼, 마음대로 해도 돼. 밭 주고 난 뒤에 주인이 와서 뭐라 하면 안 되지. 우리는 절대 그런 것 간섭하는 사람 아니야.”
사과밭을 임대해줄 때 어르신이 이렇게 약조를 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어르신 집이 사과밭 코앞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섭하고 싶지 않아도 오다가다 보면 우리가 사과밭에 무슨 짓을 하는지 다 보인다.
“그런데 내가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나무에 달린 저것들은 다 뭐지?”
어느 날 어르신이 사과나무에 달린 새집과 마른 지푸라기로 채운 통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과밭을 얻은 뒤 레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과나무에 새집 다는 일이었다. 나무를 자르고 구멍을 뚫고, 직접 만든 새집이었다. 어르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과수원 하면서 지금까지 그는 새들을 쫓느라 별짓을 다 했다. 그런데 사과밭에 새를 부르는 미친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지푸라기로 꽉 채운 저 통은 대체 무엇인지….
“박새 집이래요. 박새는 하루에 해충을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 치운대요. 물론 사과도 좀 먹겠지만…. 저 지푸라기 통들은 벌레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진드기 같은 걸 잡아먹고 다시 바닥까지 내려오지 말고 그냥 저 통에 들어가 쉬라고 달아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벌레들을 위한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죠.”
레돔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설명하자 어르신은 으흠, 기침을 했다. ‘살다보니 별 괴상한 소리도 다 듣는군. 내 사과밭 30년 했지만 이런 짓은 평생 처음 본다.’ 그런 표정이었다. 며칠 후에는 동네의 다른 어르신이 올라왔다. 레돔이 사과나무 둥치에 아르질(argile) 반죽 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가만히 보고 있더니 천천히 다가와서 한마디 했다.
“아니, 이 하얀 뺑끼는 뭔가. 나무에 이걸 왜 칠하는데?” “뺑끼 아니고 백토인데요. 병든 나무에 칠을 하면 병이 깊어지지 않고, 해충이나 나쁜 것들이 상처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한대요. 자연치유제예요.”
자, 자연 뭐? 어르신은 흠흠, 표정 관리를 했다. 더벅머리 외국 남자가 매일 사과밭에 와서 무슨 일을 하기는 하는데, 아주 열심인 것은 분명한데, 약도 안 치고 퇴비도 안 하니, 이러면 사과는 한 알도 못 건질 게 분명한데 대체 어쩔 심산인지…. 동네 어르신들은 걱정이 많았다. 말이 안 통하니 멀찍이서 보고만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홀연히 다가와서 벼르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면 레돔은 나에게 동네 어르신들이 자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호기심을 뿜으며 물었다. 자기를 괴짜 프랑스 놈으로 본다고 말하면 화가 나서 펄쩍 뛰겠지.
“그런데 사과밭에 난 이 풀들은 다 어쩌려고 해? 아이쿠, 동네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서 말이지…. 내가 쓰다 남은 제초제가 있는데 가져와서 좀 쳐봐봐. 싹 죽어버려.”
수북한 풀을 보니 나도 부끄러워져서 레돔에게 당장 베라고 했더니 그는 폰을 열어 일기예보를 체크했다. 가뭄이 계속될 때 풀은 더디게 베는 게 좋다, 싹 베어 버리면 벌레들이 갈 곳이 없다, 등등의 이유로 아직은 풀을 벨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 어르신은 당장에라도 제초제를 가지고 와 뿌려줄 태세를 하고 내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초제라는 말이 나오면 레돔은 벌컥 화를 낼 것이고, 어르신도 자신의 깊은 뜻이 묵살되었음을 아는 순간 농사라고는 모르는 프랑스 놈에게 분개할 것이다. 고집쟁이 같은 두 남자가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 순간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먹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나는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에 주섬주섬 먹을 것을 꺼내며 한마디 했다.
“어르신, 더운데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드실래요?”
〈9〉거름더미에서 ‘어린왕자 소행성’을 발견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음, 오늘은 좋군. 수박 껍질, 옥수숫대, 커피 찌꺼기…. 아주 좋아.”
레돔이 플라스틱 양동이 안에 든 음식물 찌꺼기들을 살펴보며 만족해했다. 아침이면 그는 가장 먼저 마당 한편에 있는 거름더미에 전날의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토닥거리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음식물 찌꺼기가 나오면 그냥 버리지 말고 그 위에 마른 나뭇잎이나 짚을 꼭 덮어줘. 젖은 음식물만 버리면 엉겨 붙어서 썩어 버리니까 사이사이 마른 풀을 얹어야 공기가 잘 통해서 좋은 미생물이 살 수 있거든.”
그는 늘 이런 부탁을 했지만 나는 새겨듣지 않았다. 사실 그쪽은 근처도 가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음식물 찌꺼기를 버려야 할 일이 꼭 생기고 만다. 엄마야, 이것들이 다 뭐야! 거름더미에 얄궂은 벌레들이 어찌나 와글거리는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아이쿠, 장화를 신었기에 망정이지. 나뭇잎과 흙을 꼭 덮으라고 했던가….”
나는 갈고리를 들어 후다닥 주변의 흙과 짚들을 끌어 모았다. 순간 뱀처럼 퉁퉁한 지렁이가 꿈틀대며 나왔다. 뒤이어 작은 벌레들이 도망가고 굼벵이 같은 벌레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놈들이 고기를 먹어치운다는 바로 그 굼벵이들이군. 그저께 버린 닭 뼈가 하나도 없는 걸 보니 이놈들이 다 먹었나 보다. 멀리서 봤을 때는 지저분한 똥 더미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꽤 흥미로웠다. 이 똥 마을, 생각보다 재미있는걸!
“글쎄, 이 거름더미 입주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삶의 하모니를 이루고 살지. 이 벌레가 생기면 저 벌레가 오고, 저 벌레를 따라 또 다른 놈이 오고…. 서로 잡아먹고 먹히면서 똥을 싸고, 수억 마리의 박테리아가 거기에 붙어서 번식을 하면서 결국엔 미네랄이 넘치는 기름진 동네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이들이지.”
그는 거름더미를 어린 왕자의 소행성 612처럼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밤이면 나는 그 별의 입주자들이 궁금해졌다. 와싹와싹 뽀작뽀작, 그런 소리를 내면서 음식물을 먹고 붕붕 방귀를 뀌어 댈 것이다. 그때마다 소행성이 폭발음을 내며 흔들릴 것이고, 지렁이는 1초에 1cm씩 키가 크고 새들이 날아와 지렁이와 굼벵이를 잡아채 하늘 멀리 날아갈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인구 유입이 나날이 10%대로 늘어나는 소행성.
“이런 고기나 빵, 인스턴트 음식물 찌꺼기는 별로 좋지 않아. 어, 이것 봐라. 곰팡이 고깔 꽃이 피었네. 선균들이 실처럼 이어져 있을 때 이런 곰팡이 꽃이 피는데, 지금 딱딱한 나무들을 분해하는 중이라는 뜻이야.”
그는 내가 버리는 음식물 찌꺼기를 사감처럼 검사하고 잔소리를 한다. 질소와 탄소의 비율이 어쩌고 이해 못할 소리도 쏟아붓는다. 그래봤자 똥 더미인데 뭘 그리 까다롭게 구느냐고 화를 내지만 나는 장화를 신고 갈고리로 잎을 쓸어 모아 덮는 일이 점점 더 흥미로워져만 갔다. 벌레인지 박테리아인지 너희들 참 잘도 먹는구나.
이렇게 마른 잎을 덮어 주니 시원하고 좋지? 자, 먹고 미네랄이 듬뿍 든 거름을 만들어줘, 알았지? 벌레들이 내 말을 듣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그들의 사장님이 된 것처럼 뿌듯해진다. 마당이 있는 사람이라면 음식물 찌꺼기 소행성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나 고양이의 귀여움보다 훨씬 즐거운 것이 분명한데 문제는 거름더미 속 벌레 키우는 재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10〉뒤뚱거리며 꿀벌들이 돌아왔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꿀벌을 구해야겠다고 레돔이 말했다. 그가 뭔가를 ‘구해야겠는데’ 하고 말하면 나는 괜히 심장이 벌렁거린다. 꿀도 아니고 벌이라니, 그놈들을 어디 가서 구해 오란 말일까. 햄스터나 물고기를 파는 가게는 봤지만 벌을 파는 곳은 보지 못했다. 벌은 몇 마리씩 사야 하지? 1000마리? 3kg? 어떻게 들고 오지? 어디 벌 좀 살 데가 없을까요? 아니, 꿀 아니고 벌을 사려고요. 키우려고 해요…. 나는 이렇게 수소문을 시작했다.
“벌을 아무 데서나 사면 100% 병들거나 너무 약한 것들을 팔아먹는단 말이야. 데리고 와서 한두 달 뒤면 싹 죽어버려. 믿을 만한 곳에서 사야 돼. 내 친구 양봉쟁이가 있는데 지금 지리산에 들어가서 한 달 뒤에나 나온다 하니 기다려 봐.”
수소문 끝에 들은 답을 농부에게 일렀더니 그는 당장 구해야 한다고 했다. 곧 아카시아 꽃이 필 것인데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벌 안 키우면 안 될까? 그 위험한 벌레가 꼭 필요해? 쏘이기라도 하면 어쩔래.”
솔직히 나는 그가 필요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일에 좀 지쳤다. 와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들뿐만 아니라 농사에도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다. 더구나 일반 농기구상이나 농약상에도 없는 것들만 찾아내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상한 단어가 쓰인 종이를 쥐고 이글이글 타는 사막을 걸어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유기농 소똥이나 붉은 해초 가루, 현무암 가루…. 그런 것들에 비하면 사실 벌은 그렇게 어려운 미션도 아니었다.
“벌은 정말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쏘지 않아. 침을 쓰는 순간 자기도 죽는데 그렇게 함부로 쏘겠어. 농장의 하모니를 위해 농사짓는 사람에게 벌은 기본인데.”
수소문의 여왕은 이윽고 친구의 삼촌이 벌을 판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트럭을 타고 그곳으로 갔다. 레돔은 벌들이 모두 벌통으로 귀가할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렸다. 마지막 한 마리의 벌이 벌통에 다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꿀을 잔뜩 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도 동료도 새끼도 모두 사라지고 저 혼자 남게 되는 벌이 생기면 큰일이라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 프랑스 남자분 보통이 아니네. 야물다 야물어.”
친구의 삼촌은 레돔의 꼼꼼함과 인내심에 혀를 내두르며 알뜰하다고 감탄했다.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우리는 캄캄한 도로를 달려 사과밭으로 갔다. 그는 벌통을 안고 조심조심 점지해둔 늙은 사과나무를 향해 갔다. 시간은 밤 11시였고 사과밭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팔랐다. 벌통을 안고 엎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벌들 또한 이 수상쩍은 움직임을 느끼는지 붕붕 소리도 없이 잠잠했다. 인간들아, 우리를 대체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 어쩔 심산이냐. 가만두지 않을 테다. 몽땅 도망가 버릴 테다. 꿀은 바라지도 마라. 이런 말들을 속삭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레돔은 미리 준비해둔 벽돌 위에 벌통을 놓고 벌들이 마실 깨끗한 물도 떠놓았다.
“여기도 괜찮단다. 이제 아카시아가 지천으로 피고 토끼풀 꽃도 잔뜩 핀단다. 오늘 밤 잘 쉬고 내일 천천히 나오렴. 물도 마시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사 온 걸 환영해 꿀벌들아.”
농부는 벌통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벌들이 프랑스 말을 알아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이국만리에 와서 벌들에게 모국어를 쓰는 것을 보니 왠지 울컥해졌다. 나는 알자스 시댁에 갈 때마다 프랑스어 멀미를 했다. 일주일이 지나면 한국어를 쓰는 영혼은 유체이탈해서 로봇이 되어 돌아다니는 내 몸뚱이 위를 떠다니는 지경이 되곤 했다.
벌들의 이사는 성공적이었다. 아침이면 팽팽 소리 내며 날아가 뒤뚱거리도록 꿀을 품고서 돌아왔다. 여왕벌은 엄청난 속도로 새끼를 쳤다. 농부는 손등에 벌이라도 앉으면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너 참 귀엽구나 하면서 긴 모국어 토킹을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서 그는 별일 없는 것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매번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다.
〈11〉소가 웃었다… “땅 한 평에 만 원만 하자고?”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얼마면 돼? 만 원?”
남의 땅에 농사를 계속할 수 없으니 이제 내 땅을 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의 땅값이 무지 비싸다고 했더니 레돔이 호기롭게 평당 1만 원을 내겠다고 했다. 정착지를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말 그대로 후덜덜해졌다. 우리가 생각한 땅값의 열 배, 스무 배는 더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싸고 괜찮은 땅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농부가 내놓은 눈먼 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깊은 산골 쪽으로 다녀보았다. 차가 뒤집어질 것처럼 가파른 산모퉁이에 농사를 짓고 있는 어르신들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여기 내 사과가 대한민국에서 제일이야. 서울에 높은 분들이 다 우리 사과를 대먹지. 유명해. 여기 사과 팔아서 아들 셋 대학 보내고 장가 다 보냈어. 그런데 이제는 정말 힘들다. 못해 먹겠어. 우리 마누라 좀 봐.”
할아버지가 옆에 서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농사일에 삭아 내린 작은 몸의 할머니가 두려운 듯한 눈길로 우리를 보았다. ‘나는 시집와서 이곳에서 죽도록 일했답니다. 절대 아프면 안 될 무릎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요. 올해 이 사과밭을 못 팔면 나는 또 일해야 해요. 이제는 농사일이 무서워요. 제발 우리 밭 좀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 뒤쪽으로는 몇 년째 버려 놓은 밭도 있었다. 밀림처럼 우거져 있었다.
“이 사과밭을 보면 내 가슴이 아파. 남부끄러워. 자식 중 한 놈이라도 물려받겠다면 좋겠지만… 잘해낼 수 있겠나. 그렇게 쉽게 덤빌 일이 아니야.”
아버지의 영광과 고난의 가업을 이어갈 자식은 모두 도시에 있고 그들은 땅이 아닌 돈을 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식 대신 어르신의 노동을 넘겨받을 준비가 되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집을 나설 때면 늘 설레는 기분으로 간다.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햇빛으로 물든 넓적한 돌 위에 앉아 먼 산을 볼 수 있는 곳,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벌들의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러나 현실은 늘 반대다. 너무 조잡하거나, 북향이거나, 고속도로 밑이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너무 이상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대체로 우리는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끌면서 에잇 뭐야, 땅 구하기 이렇게 어려워서 어떻게 정착하겠어. 땅을 보고 온 날이면 미래의 방향점이 흔들린다. 과연 우리 땅에 우리 뜻대로 농사를 지을 날이 올 것인지 모르겠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젊은 청년들이 사표 내고 농촌에서 미래를 봤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 있잖아. 그래서 몇 년 만에 몇 억 원을 올리며 성공했다는 그런 애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지? 온통 유모차 밀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밖에 없던데. 그런 이야기 진짜일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레돔은 벌컥 화를 낸다. 도시에서 잘나가는 놈은 농촌에서도 잘나가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는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밭을 얻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편의점 알바비 정도도 못 버는 것이 현실이야. 노동비는커녕 농약비도 못 건질 걸. 그런데 농지마저 이렇게 비싸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농사가 이미 힘든 노동인데 돈까지 싸 짊어지고 와서 밭을 산다면, 그 놈은 정말 미친놈이지…. 어, 그러면 우리도 미친놈에 속하는 건가? 여하튼 간에 한국 농촌을 살리는 길을 내게 묻는다면 ‘한 평 1만 원 이하’ 이것밖에 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건 나도 모르겠군.”
한 평 1만 원 이하이라니, 전국의 땅 주인들이 뀌는 요란한 콧방귀 소리에 오늘 밤엔 잠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 같다.
〈12〉위층 한국 라디오, 아래층 프랑스 라디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사셨다고요? 그런데 사투리를 굉장히 쓰시네요.”
한국에 정착한 뒤 곧잘 듣게 되는 말이다. 프랑스에 살다 오면 다들 프랑스 배우처럼 입고 표준어를 쓰는 세련된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파리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오래 산 사람들일수록 그들 고향 말을 많이 쓴다. 한국어를 들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개인의 언어는 한국 표준어가 아닌 태초의 언어로 돌아간다. 패션 감각 또한 고국을 떠날 때 가장 유행하던 차림을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외국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촌스러운 경향이 있다. 특히 온갖 나라 사람이 다 모인 파리는 한물간 옷을 입고 각자의 고향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국제적으로 촌놈들이 모여 그것이 개성이 된 도시다.
“넌 한국말 할 때는 딴 사람 같아. 프랑스어를 할 때와는 너무 달라. 프랑스어를 할 때는 목소리가 낮고 차분하면서 부드러워. 그런데 한국어를 시작하면 톤이 높고 빨라지면서 엄청 시끄러워. 같은 사람 같지가 않단 말이야.”
레돔은 내가 한국말을 할 때마다 신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어는 낯선 언어이기 때문에 말할 때 늘 조심스럽다. ‘아, 이 프랑스어는 정말 엉터리인데.’ 말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지막하고 조신한 게 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말을 할 때는 말 그대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특히 고향 친구를 만나면 하늘이라도 찌를 듯 등등해진다.
의사를 전달하는 것만이 언어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냥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프랑스어로는 내 맘대로 까불 수가 없으니 물고기는 늘 헐떡거리며 목이 말랐다. 프랑스가 아무리 좋다 해도 한국이 아무리 살기 힘들다 해도 이곳에 돌아오고 싶었던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모국어를 다시 찾아 그 강에서 헤엄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레돔이었다. 한국에 온 뒤 그와 나는 반대의 처지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충주 땅에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은 몇 명일까? 어딘가 두 명쯤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있잖아. 어제 꿈속에서 100km를 걸어갔어. 왜 걷는지도 모르겠고 계속 걷다가 누구를 만났는데 뭘 했는지 알아? 프랑스어를 했어. 실컷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해가 떴어.”
“이런, 나랑 하면 되잖아. 꿈속에서 프랑스어라니 너무 가엾다.”
나의 대답에 그는 으쓱하며 요즘 내 프랑스어가 너무 엉망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대화 문장도 반 토막에서 끝내버린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요즘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문장을 말할 때는 머리를 써야 하는 프랑스어 말하기가 귀찮아져 버렸다. 그는 사랑이 식어버려서 그렇다 하고, 나는 늙어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은 둘 다인 것 같다.
고독한 레돔을 위해 텔레비전에 프랑스 채널 케이블을 깔았다. 그는 아주 행복해했다. 매일 저녁 프랑스 채널만 본다. 그 때문에 나는 8시 뉴스를 볼 수가 없다. 채널권을 너만 가지냐고 따질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요즘 핫하다는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도 모른다. 매일 저녁 프랑스 텔레비전을 보면서 프랑스 뉴스를 듣고 프랑스 영화를 본다. 반쯤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거실에 나와서 한국 라디오를 켜고 아침 준비를 한다. 뒤늦게 나오는 그는 프랑스 라디오를 들으며 거실로 나온다. 둘 중의 하나는 꺼야 한다. 한국 라디오를 끈다. 밭에서도 그는 프랑스 라디오를 듣는다. 나는 내 라디오를 듣는다. 가까이서 일할 때는 둘 중 하나를 꺼야 한다. 내 라디오를 끈다. 작업실에서도 우리는 라디오를 듣는다. 위층에서는 한국 라디오, 아래층에서는 프랑스 라디오, 둘이 만나면 내 라디오를 끈다. 여긴 한국이니까. 아무 불만 없다. 그가 100km를 걸어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꿈을 꾸지 않는다면.
〈13〉소쩍새 한 맺힌 응원이 결실 맺어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올해 우리 집 사과농사는 망했다. 견딘 놈들도 있지만 일찌감치 반 이상이 날아갔고 남아있는 것들도 쓸 만한 것들이 없다. 말 그대로 폭망이다. 그런데도 레돔은 사과밭으로 갔다.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것이다. 참 고집도 대단하다. 이역만리 와서 짓는 농사니 풍년이 들어 덩실덩실 춤을 춰야 할 텐데, 그날이 언제일지 참 멀기만 하다.
“사람들이 유기농 사과농사 절대 안 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봐. 그동안 들인 그 정성이 참 허무하다. 쐐기풀, 민들레, 은행잎…. 온갖 것들 달여 먹였는데 이 사과 좀 봐….”
참아야 하는데 내 입에서는 자동적으로 잔소리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흘러나왔다. 레돔은 예초기를 메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 멈춰 서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나무둥치를 쓸거나 나뭇가지와 잎들을 들여다보았다. 사과농사 2년째, 금지옥엽으로 돌봤으나 우리들의 사과는 여전히 병들거나 썩거나 벌레 먹거나 찌든 것들뿐이었다. 병든 사과를 들여다보는 그의 눈길이 어찌나 슬퍼 보이는지 나는 뚝 잔소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아플 때 뜨거운 머리에 손을 대면서 내가 짓던 걱정스러운 표정 그대로였다.
“농사 이래 지마 안 된다니까. 영양제를 듬뿍 줘야 힘을 받아서 사과가 열리지.”
이렇게 말한 사람은 어디선가 나타난 동네 어르신이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또 다른 ‘어르신 2’가 나타나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이고 이제 사과나무 다 죽게 생겼다….” 그러자 또 다른 어르신 3이 나타났다. “내가 발로 지어도 이보다는 낫겠다.” 한마디 하니 또 다른 어르신 4와 5가 나타나서 그동안 근질근질했던 입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람 참 고집이 세네. 왜 약을 안 치나. 아이고 이제 이 나무들 다 죽게 생겼다.”
어르신 1부터 5까지 돌아가며 와글와글 한숨과 곡소리를 내자 레돔은 사과밭 구석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예초기 시동을 걸어 풀을 베기 시작했다. 이제 좀 가주세요, 라는 뜻이었으나 어르신들은 후렴까지 다 불렀다.
지금이라도 영양제 좀 치고, 바닥에 반사필름 깔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 이미 늦었어. 그래봤자 얼마나 건지겠어. 팔 건 하나도 없어. 팔 게 아니고 와인 만들 거라잖아, 그러니 괜찮아. 아이고, 우리 사과나무 어쩌나…. 원래 이 나무들 시원찮았으면서. 뭐? 우리 사과나무가 얼마나 생생했는데…. 삼십 년 전이 좋았지. 그래 사과 꽃 필 때. 나도 장가를 그때 갔다니까. 마누라 고생 많이 했지. 어르신들 사과밭 수다는 오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사과는 여타의 다른 여름 과일에 비해 늦가을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길게 견뎌야 하는 것이 사과의 운명이다. 한 알의 사과를 먹는다는 것은 일 년의 햇빛과 바람과 병고와 해충을 견딘 시간의 결정체를 삼키는 것과 같다.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우는 것은 푸른 사과 꽃이 새빨간 사과까지 달려가라는 피맺힌 응원과 같다. 그만큼 긴 시간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을 견딘 것들만이 온전한 사과가 된다. 사과 한 알을 먹을 때 다들 인사를 해야 한다. ‘안녕, 사과야. 누가 너를 키웠니. 참 고맙구나.’ 이렇게.
“앗 이것 봐. 지렁이다! 지렁이가 왔어!”
레돔은 풀을 베다 말고 예초기를 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들은 그가 무슨 보물이라도 찾았나 싶어서 우르르 달려갔다. 레돔이 통통한 지렁이를 손바닥에 올려 모두 앞에 내보이며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땅이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여기 있어요.”
“무슨 소리야. 우리 땅은 죽은 적 한 번도 없었어. 그럼!”
레돔의 말에 어르신이 대꾸했다. 네네, 감사합니다. 메르시. 메르시 보쿠. 레돔은 행복한 농부가 되어 다시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일은 고된 일이다. 그런데 농부와 결혼한 여자의 인생은 고생길이 활짝 열린 것은 분명한 것 같다.
〈14〉술 취한 반죽, 술주정하는 빵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지금 막 한국에서 최고 맛있는 빵이 탄생했음을 알립니다. 솔직한 평가가 필요해.”
오븐에서 빵을 꺼낸 뒤 식기 전에 얼른 레돔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 말은 빵 구울 때마다 하는 소리인 것 같은데…. 그런 표정으로 레돔은 빵을 들고 살짝 외모를 살핀 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다음엔 귀에 대고 빵을 누르며 소리를 들어본 뒤 천천히 뜯어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하는 것이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빵을 씹는 것 같다.
“음….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눌렀을 때 노래를 해야 해.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데 껍질을 조금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군. 오븐에서 나온 빵 껍질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싹해서 눌리면 음악소리가 나야 해. 이건 좀 물렁거리는 편이다.”
소비자의 솔직한 평가가 가정용 베이커리 여자를 불같이 화나게 만들었다.
“빵이 무슨 아코디언이냐. 누르면 음악소리가 나게. 나 이제 빵 안 굽는다. 쳇.”
한국의 주부는 매일 밥을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주부는 매일 빵을 구울까? 답은 아니다. 프랑스 가정에서 빵을 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디저트 파이나 쿠키는 많이 굽지만 빵을 굽지는 않는다. 나 또한 프랑스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빵을 구워본 적이 없다. 집 앞에 빵집이 수두룩한 데다 그 빵집 빵이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이다. 비용 또한 집에서 반죽을 하고 오븐을 켜서 한 덩이 굽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다.
나의 빵 굽기는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딱딱한 돌덩이가 되어 나왔다. 오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갈 때보다 더 쪼그라들고 단단해져 버렸다. 나의 빵 마루타 레돔은 돌빵을 씹으며 추억의 빵 맛이라는 눈물겨운 평가를 해주었다. 그에게 딱딱한 빵은 한국인에게 찬밥처럼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오래되어 굳어버린 빵을 사과껍질 까듯이 벗겨주면 그것을 받아 먹었다고 한다. 시부모님도 딱딱한 빵을 참 좋아한다. 밥으로 치면 찬밥을 좋아하는 머슴 식성이다.
시부모님이 어렸던 시절엔 동네에 빵집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빵집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만 빵을 구웠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1m가 넘는 커다란 빵을 사서 일주일 내내 먹었다. 마지막엔 빵이 돌덩이처럼 굳어 버린다. 별미는 그 딱딱한 돌덩이를 뜨끈한 수프에 담가서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건져 먹는 것이라고 한다. 시아버지는 지금도 갓 구운 빵보다 구운 지 며칠 지난 빵을 더 좋아한다. 우리가 쌀을 버리면 벌 받는다고 하는 것처럼 그들도 절대 빵은 버리지 않는다.
“엄마, 이런 거 말고 딴 빵 좀 먹자. 진짜 빵.”
아들이 엄마의 밥, 아니 엄마의 빵을 거부했다. 귀하게 키웠더니 할아버지와 달리 왕자님 식성이다. 아들은 겉은 바싹하게 노래하고 속은 촉촉한 파리지엔의 바게트를 제일 좋아한다. 엄마의 빵은 거칠어도 건강에 좋다는 등의 말을 하면 콧방귀만 요란하게 뀔 뿐이다. 그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을 위해 최고의 빵을 만드는 거야. 여자 김탁구는 노래하는 바게트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며 틈만 나면 밀가루 반죽을 해댔다.
결과물은 설익은 빵, 타버린 빵, 말라비틀어진 빵, 부풀다 만 빵…. 이상한 빵들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깊은 시름에 잠긴 나에게 레돔이 발효 중인 사과와인 찌꺼기 맛을 보라고 내밀었다. 레돔의 와인 마루타인 나는 그것을 마시는 대신 버리듯 빵 반죽에 넣어 버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반죽이 뽕뽕 딸꾹질 소리를 내며 춤을 추듯이 부풀어 올랐다. 오븐에 넣는 순간에도 빵틀을 넘어서며 흘러내렸다. 완전히 취해 버린 반죽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나의 빵, 술 취한 빵을 들고 레돔에게 내밀며 한국의 제빵왕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탁구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15〉제발 내 사랑을 가만히 놔두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어, 얜 누구냐. 우리 집 깡패잖아. 그런데 왜 이러고 있지?”
레돔이 발견한 것은 말벌이었다. 늦가을 추위에 비틀거리며 엎어져 있었다. 지난여름 동안 우리 집 작은 마당을 전쟁터로 만들었던 그 용맹함은 어디로 갔는지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말벌이 새끼를 까면서 전쟁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새끼들은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고 맹렬한 기세로 꿈틀거렸고 전사들은 사냥을 나섰다. 숲에서부터 몇 킬로미터를 날아와 그들이 발견한 것은 평화로운 우리 집 꿀벌 마을이었다.
“오, 저기에 귀여운 꿀벌들이 있군. 모두 세 통, 상황 파악을 했으니 오늘은 여기서 철수.”
벌통을 발견한 말벌 선발대는 결전의 날을 잡아 다시 왔다. 꿀벌들은 날갯짓을 하며 개망초 꽃 속에 온몸을 던져 꿀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유전인자 속에 새겨진 것은 이 햇살이 사라지기 전에, 이 꽃들이 시들기 전에 벌집 가득 황금 꿀을 채워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말벌에게도 새끼가 있듯이 꿀벌에게도 부화될 알들이 벌집 가득 차 있었다.
꿀벌들은 새끼들에게 먹일 꽃가루를 뭉쳐서 양 옆구리에 터지도록 끼어 안고 벌통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말벌 전사가 나타나서 가볍게 꿀벌을 낚아채갔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것은 꿀을 가득 안은 채, 어떤 것은 양 옆구리에 화분을 뭉쳐 안은 채 말벌에게 잡혀갔다. 벌통에 비상벨이 울리고 꿀벌들은 필사의 방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입구를 봉쇄했다. 서로 온몸을 붙여서 거대한 꿀벌 장막으로 대항했다. 말벌은 탱크처럼 튼튼한 다리로 작고 귀여운 꿀벌들을 후려쳤다. 바닥에는 순식간에 꿀벌들의 사체가 수북이 쌓였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개미들이 죽은 꿀벌들을 끌고 가느라 분주했다. 이렇게 끌려간 꿀벌들은 머리와 꼬리가 잘린 몸통으로 어린 말벌의 먹잇감이 되었다.
‘앗, 인간이다. 철수!’
농부 레돔이 나타나자 말벌들이 즉시 전쟁을 중단하고 하늘 높이 사라졌다. 농부는 처참한 광경 앞에 분노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잠자리채를 들고 벌꿀 통을 엄호했다. 동네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다 그 꼴을 보고 다가와 바닥에 등을 비비며 관심을 보였다. 농부는 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마당에 나타나기만 하면 쫓아버렸다. 그런데도 고양이는 매일 왔다.
문제는 이 고양이의 취미가 새 사냥이라는 것이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귀신처럼 낚아챘다. 새를 쥐 잡듯이 요리조리 가지고 놀다가 겨우 숨만 붙은 것을 문 앞에 다소곳이 놓고 사라졌다. ‘프랑스 농부 아저씨, 내 솜씨 어때요?’ 하고 자랑하는 전리품이라고 한다.
이 선물을 받을 때마다 농부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세상에서 그가 제일 사랑하는 것이 새였다. 새를 부르기 위해 나무에 과일을 매달고 해바라기씨 먹이를 주었다. 새소리가 들리면 애인이라도 온 듯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새들은 나무에 붙은 벌레들을 잡아먹는데, 특히 뚱뚱한 말벌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얼쩡거리면서부터 새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새들이 사라지자 말벌들이 더 극성이고, 그러니 저 고양이가 문제라고 했다. 농부에게 고양이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미워했다.
여름 내내 농부의 애간장을 태웠던 말벌들은 이제 죽을 준비에 들어갔다. 상추를 뜯어 먹던 메뚜기도 진딧물도 다 사라지고 봄이 올 때까지 긴 휴전이 시작됐다. 이제 마당에 마주한 것은 농부와 고양이, 둘뿐이다. 낮 동안 고양이는 돌바닥에 등이나 비비대다가 밤이면 슬슬 사냥을 나갔다. 사냥에 성공한 날이면 전리품을 현관문 앞에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들쥐나 새였다. 농부 아저씨,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요. 문을 열고 나오는 레돔의 반응을 멀찍이서 살피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농부의 입에서 폭탄과 같은 욕이 터져 나왔다. 여름 전쟁이 끝나고 바야흐로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포고였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신이현 작가
“이 나무 좀 봐.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네. 이제부터 이 나무 이름은 노엘이다. 노엘.”
레돔이 마당의 어느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밤새 내린 첫눈을 폭 뒤집어쓴 작은 나무가 예뻤다. 지금까지 그 나무를 잘 지켜온 보호자로서의 뿌듯함이 느껴졌지만 이 나무를 둘러싸고 봄부터 우리는 참으로 많이 다투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잡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뽑아서 거름통에 던져 버렸다.
“저, 저, 저기에 있던 풀이 어디에 갔지?”
그가 얼굴을 뻘겋게 하고 말까지 더듬으면서 물었다.
“아, 그 잡초. 내가 뽑아 버렸지. 잡초는 어릴 때 뽑아내야 해.”
“뭐, 그것을 뽑아 버렸다고?”
그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이 놀라며 거름통에 던져 버린 시든 풀을 찾아내 다시 그 자리에 심었다. 싹이 날 때부터 보고 있던 나무였다면서 왜 자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뽑았냐며 격렬하게 분개했다.
“이건 잡초가 아니야!”
그는 모욕이라도 당한 듯 다시 잡초를 심고 물을 주고 사랑이 깃든 손길로 흙을 토닥거렸다. 아직은 무슨 풀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예쁜 꽃이 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벌들이 꿀을 딸 것이며 또 언젠가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마당의 너무 많은 풀들의 미래가 궁금해서 뽑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신 프랑스 사람 맞아? 프랑스식 정원으로 좀 꾸며 봐.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처럼.”
그는 프랑스식 정원은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정원이라고 했다.
“마당에 난 풀은 왜 다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다른 작물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그냥 두는 것이 좋아. 이 풀이 여기에 난다는 것은 땅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야. 처음엔 한해살이풀이 나다가 다음엔 여러해살이풀, 그 다음엔 나무, 이렇게 해서 모든 풀들은 다음 풀을 위해 땅을 건강한 땅으로 만들고 사라지고 또 태어나는 거야.”
그는 대체로 조용한 남자지만 땅이나 나무에 대해서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내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마당의 잡초를 볼 때마다 뽑고 정리하고 싶었다.
“이거 뽑아도 돼?”
그는 혹시라도 내가 뽑아 버릴까, 옮겨 버릴까 안절부절 내 주변을 서성거린다. 풀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 난 모른다. 이 정도면 전설의 고향 귀신이 오겠다. 저기 뱀들이 나와서 기어 다니네. 피리라도 갖다줄까.”
거름통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풀은 무럭무럭 자랐다. 다른 풀들이 꽃들을 피우는 여름에도 묵묵히 자라기만 했다. 위로 크고 옆으로 쭉쭉 뻗어갔다.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보며 ‘풀이 아니라 나무가 아닐까. 멋진 꽃을 피우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큰 나무에 꽃이 피면 벌들이 딸 꿀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가을이 되어도 꽃도 열매도 없이 하염없이 자라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거짓말처럼 꽃이 피었다. 아주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고 색깔도 거무스름해서 꽃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꿀도 없는지 벌마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허우대만 멀쩡한 이상한 나무였다.
“나 참 못생겼죠?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주신 분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우린 자라기도 전에 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커 보긴 제가 처음일 거예요. 당신, 참 좋은 분이에요.”
순전히 내 생각이었지만 못생긴 나무가 레돔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첫눈이 긴 구박의 설움을 달래듯 예쁜 이름을 주었지만 앞으로 노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별 쓸모없는 잡초 스토리는 내년이 되어 봐야 알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왠지 그 땅을 잊을 수가 없어.”
레돔이 이렇게 말했을 때 얼굴에 깊은 상실감이 느껴졌다. 실패한 첫사랑을 다시 소환하여 추억을 되씹는 표정 그대로였다. 첫사랑을 가슴에 끌어안고 사는 것처럼 이제는 그 땅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은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2년 정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농사는 남의 땅에서 계속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뒤 우리는 참 많은 땅을 보러 다녔다. 너무 산꼭대기라 서 있으면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 같은 땅들이 가장 많았다. 비가 오면 물이 고여 호수가 되는 곳, 전망은 좋으나 깊이 응달진 곳, 빛은 좋으나 고속도로 아래거나 축사 옆, 모든 것을 다 갖췄으나 양조장을 지을 수 없는 지목 등…. 그 옛날 선을 백 번 이상 보았던 친구가 생각났다. 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원천리 달려가며 ‘아, 이번에는…’ 하고 가지만 대체로 실망만 안고 돌아온다. 선을 본 사람의 리스트는 점점 늘어가지만 결혼의 날은 더욱 멀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높이를 낮춰야지. 그러다 혼자 늙어 죽는다.”
백 번 선 본 친구에게 했던 그 말이 땅을 찾는 데도 통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원하는 땅은 심플했다. 뒤로는 작은 산에 감싸인 야트막한 언덕, 앞으로는 확 트여 빛이 잘 들고 바람 길이 막히지 않아 비가 온 뒤 습기가 남아있지 않고,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조용한 그런 곳…. 우리의 염원에 다들 그런 완벽한 인연은 절대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한번은 꼭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났다. 모든 조건에 부합했다. 이상형. 말 그대로 첫눈에 반했다. 두근거리고 흥분되었다. 이 남자를 놓치면 난 죽어 버릴 거야. 누군가 그 남자를 채어가 버리진 않을까 불안해서 빠르게 결혼 날짜를 잡고 일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암초가 있었다. 결혼을 반대하는 시부모의 세력이라고 해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징크스에 걸린 것이다.
그 땅은 임대 중이었고 내년 말까지 계약된 작약이 심겨 있었다. 땅을 사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일단 땅을 매입하고 1년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들 작약 농부에게 계약 기간 만료 시 작약을 뽑는다는 확약서를 받아두라고 권했다. 내 땅이라도 남이 심은 농작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법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작약 농부는 확약서에 사인하기를 거부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갈 것인데,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느냐고 화를 냈다.
“그 땅 사면 앞으로 고생길이 쭉 뻗었다.”
모두가 말리는 결혼을 앞둔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그 땅이 눈에 아른거렸다. 한번 마음을 주면 쉽게 돌아서지 못하는 레돔은 가슴앓이를 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끝까지 가보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더 좋다 싶은 땅을 대령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 작약 땅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당신 참 바보 같은 남자네. 잊을 건 잊어야지 쓸데없이 미련이 너무 길어.”
나는 벌컥 짜증을 냈다. 시작한 김에 꼬챙이를 들고 그를 쑤셔대기 시작했다.
“그 옛날 거시기, 그 여자 이름이 뭐였지? 세실리아 땅콩인가 뭔가, 아직도 사진 가지고 있는 거 다 알아. 그 여자랑 결혼하지. 왜 나랑 해서 이 고생을 시키는 거야? 그 땅콩 사진 다시 찾으면 다 찢어 버릴 거야.”
내가 이렇게 나오면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과연 우리는 땅을 찾을 수나 있을지, 그날이 언제일지, 그 인연은 어디에 꼭꼭 숨어서 이렇게 애를 태우는 것일까. 빨리 나오너라, 오버.
〈18〉시아버님의 ‘호주머니’를 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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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현 작가
“며느리에게. 이번 노엘에 너희가 우리와 함께 못 하는 것이 너무 아쉽구나. 이번 노엘 식사는 실비네 집에서 하기로 했다. 멧돼지 요리를 한다네. 노엘 저녁에 멧돼지는 처음이다. 너를 위한 노엘 선물 100유로, 12월 네 생일 선물 100유로, 이 금액을 네 계좌로 이체했다. 원하는 선물을 사기를 바란다. 메리 크리스마스. 시아버지로부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알자스 시아버지께서 세 개의 카드를 보내왔다. 나와 레돔, 그리고 손자에게. 세 사람에게 세 개의 카드를 보냈지만 내용은 전부 비슷했다. 함께 못 해서 아쉽고 선물 대신 계좌로 얼마를 송금했으니 원하는 선물을 사라는 것이었다. 손자에게는 매달 10유로씩 넣는 것까지 합해서 320유로가 들어갔다는 계좌 명세서까지 함께 보냈다.
“아버님은 참 대단하시다. 작년에 보낸 카드와 내용이 하나도 안 달라. 적어도 선물의 가격이 5퍼센트는 올라야 되는 거 아니야? 벌써 10년째 100유로에 동결되었어. 유로가 하락해서 사실은 선물값이 삭감된 거나 마찬가지야.”
시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돈을 쓰는 데 아주 정확했다. 모든 자식과 손자들에게 주는 선물의 가격이 동일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엔 깨끗이 결산해서 대차대조표까지 내어서 모두에게 발표를 했다. 가족선물로 돈을 주는 것은 성의가 없다며 좋아하지 않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계산하기가 힘들다며 현금 지불을 선호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과외의 물건이라도 보내면 그 비용이 얼마냐고 꼭 물었다.
“그냥 선물이니 받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열 번은 이렇게 묻고 대답해야만 그냥 받았다.
“프랑스는 사회주의라는데, 그건 많이 번 사람이 적게 번 사람들이랑 나눠 쓰는 것을 기본으로 하잖아. 그러니까 아버님은 우리한테 돈 좀 더 써도 되는 거 아니야? 어려운 자식한테는 좀 더 주고 넉넉한 자식한테는 좀 덜 주고,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어야지 너무 빡빡하셔. 꽉 막혔어 진짜.”
나는 시아버지의 금전적 철두철미함에 곧잘 불평했다. 가난한 자식에게 더 주는 것은 부모의 권리라는 주장을 폈다. 시아버지는 어깨만 으쓱했다. 가족들뿐 아니라 친구들과 신년 파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순이 가까운 마을 친구들이 모두가 비슷한 금액으로 나누어 파티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갔다.
“이번 신년 파티엔 또 한 명이 줄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살아서 아페리티프를 준비해 오겠다고 했는데 신년을 못 보고 갔어. 아이고, 가슴이야…. 다음번은 내 차례겠지. 여자들만 남고 이제 남자는 나밖에 없다. 과부들만 일곱이다…. 나보고는 와인만 들고 오라고 하네. 음식은 과부들이 준비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죽은 친구가 가져오기로 한 아페리티프는 내가 준비하겠다고.”
신년을 앞두고 시아버지는 아들과 길게 통화를 했다. 올해만 해도 동네 친구들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왜 남자들의 평균수명은 이토록 짧은지, 여자들은 다들 저렇게 건강한데 왜 시어머니 루시는 먼저 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슬퍼했다.
“신이 주는 이 불공평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이겠지.”
시아버지가 우울한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그가 신이라면 인간의 수명도 공정한 절차를 거친 뒤 정확하게 계산해서 평등하게 주었을 것이다. 이럴 때 좀 친절히 다독여 주면 좋으련만 며느리는 참 얄밉게 새해 인사를 한다.
“그렇게 매사 공정하기만 하다면 사는 재미가 있나요. 인생이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것이 신의 선물이겠죠. 아버님 해피 뉴 이어! 올해도 건강하시고 내년 노엘에는 선물값 제발 좀 올려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이제야 발효를 시작했군.”
레돔이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지난달 착즙해서 발효탱크 안에 들어간 사과즙이 ‘꿈틀’하더니 이윽고 콧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착즙한 지 꼭 3주 만이다. 지난해 우리는 세 번의 사과 착즙을 했다. 홍옥이 나오는 여름 착즙, 새로운 품종을 시험해보라고 가져온 속 빨간 가을 사과, 그리고 부사가 나오는 겨울 착즙.
부사를 착즙하는 날엔 한파가 불었다. 젊은 친구들 셋이 와 일을 도왔다. 사과를 씻는 동안 바닥으로 흐른 물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들은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언 손을 녹였다. 한창 젊은 그들은 일하는 중에도 쉬지 않고 웃고 떠들고 장난쳤다. 차가운 물에 동동 떠다니며 때를 벗는 사과도 “호호 깔깔” 웃으며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올해 시드르(사과즙으로 만든 술)는 청춘의 맛이 날 것 같아.”
레돔이 말했다. 그는 대체로 혼자 일했지만 사과를 수확하거나 착즙할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사과 궤짝을 들어 물속에 쏟아붓고 씻어서 건져낸 뒤 분쇄하고 착즙해 발효탱크에 넣는 일은 혼자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고독한 작업이었다.
“이렇게 힘든 노동 뒤에 한잔의 와인이 나온다는 걸 몰랐어요.”
코끝이 빨갛게 변해도 그들은 안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 피워놓은 장작불 앞에 서서 갓 착즙한 즙과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발효탱크 한가득 사과즙을 채운 뒤 떠났다. 겨우내 작업장 문을 열 때마다 콕 쏘는 사과 냄새와 청춘들이 남기고 간 웃음소리가 미묘하게 살랑거렸다.
“그냥 사과즙일 뿐인데 이대로 두면 술이 된다니 정말 신기해.”
과일의 당이 알코올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그것이 신기했다.
“사과에는 원래 야생효모가 잔뜩 붙어있어. 우리 인간들의 성질이 다양하듯 사과에 붙은 효모도 각자 생명을 가지고 성격도 다 달라. 과일을 착즙하면 효모들은 차가운 즙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조용히 삶의 순간을 모색하지. 긴 한파에 천천히 적응하고 정신이 들면 사과 속의 당을 먹기 시작해. 먹고 나면 방귀를 뀌고 알코올을 내뱉어. 수많은 효모들의 성향들이 다른 만큼 뱉어내는 가스의 향과 맛도 달라지지.”
그는 사과즙 속에 헤엄치는 보이지 않는 효모를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대한다. 겨울에는 얼어 죽지 않도록 난로를 피우고, 여름엔 더워 기절하지 않도록 냉방기를 돌렸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단꿈에 젖은 효모들이 놀라지 않도록 작업장 문을 조심스레 열고 닫았다.
“효모들은 각기 자기 삶을 살아. 인간은 그냥 효모가 하는 대로 따라가며 탱크갈이나 할 뿐이지. 언제 발효를 끝낼지, 당을 얼마나 남길지, 알코올 도수는 몇 도가 될지. 이건 모두 효모 마음이야. 그러니까 올해 와인 알코올 도수가 몇 도일지 내게 묻지 말라니까.”
레돔은 뭔가 불만인 듯 말했다. 한국에서는 와인 제조 허가를 받을 때 알코올 도수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 설탕이나 효모를 첨가하고 살균을 하는 등 인간이 컨트롤하는 제조 방식에서는 도수를 인위적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방식으로 발효를 할 경우에는 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술을 병에 담은 후에도 발효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허가받을 때 정한 알코올 도수와 다르면 불법이 된다.
“콕 쏘긴 하지만 아직은 사과 주스다. 아직 한참 더 가야 되겠는데.”
갓 발효를 시작한 사과즙을 맛보는 것은 양조장의 특권이다.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고 이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같은 맛이 아니다. 그는 매일 아침 살며시 발효실 문을 열고 즙을 받아와 나에게 내민다. 올 겨우내 나는 한파에 청춘들이 착즙했던 사과즙이 술이 되어가는 순간을 맛볼 수 있다. 애주가들이 탐내는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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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인 내 아들은 유튜브에 기타리스트 우상이 있다. 무엇이든 그를 따라 한다. 그와 같은 상표의 기타를 가지고 같은 머리띠를 매고 그와 똑같은 포즈, 고개를 갸웃이 하고 날마다 핑거스타일(손끝으로 현을 뽑아서 치는 방식) 기타를 친다.
“엄마, 이 티셔츠랑 바지 어때? 이거 정말 가지고 싶다.”
그 우상이 입고 있는 옷가지였다. 주문과 동시에 제작되는 것이었고 지구 위에 꼭 1000장만 한정으로 만든다고 했다. 당장 주문하지 않으면 금방 바닥날 것이라며 안절부절못했다.
“꼭 사고 싶으면 한국에서 사. 더 좋은 걸 더 싸게 살 수 있어.”
아빠 레돔의 말이었다. 그의 단호함에 아들과 나는 강하게 반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이며 그것은 비싸다, 싸다 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건 취향 이야기가 아니야. 당신은 그 셔츠가 정말 미국에서 온다고 생각해? 아마 목화는 카자흐스탄에서 농사지은 것일 테고, 그 솜은 베트남으로 가서 천이 되었겠지. 그 천은 다시 방글라데시 제조 공장에 가서 미성년자들이 돌리는 미싱 아래서 옷이 되었겠지. 거기서 끝이냐? 이 옷은 이제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겠지. 여기서 끝이냐? 이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야겠지…. 한 장의 셔츠를 주문하는 순간 각 나라를 옮겨 다닐 때마다 드는 비용과 발생되는 공해들을 생각해 봤어? 꼭 필요하면 한국에서 사.”
그는 그런 멍청한 짓을 꼭 해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렇지만 상표가 다르잖아. 난 유일무이한 그 상표를 원해.”
아들의 표정은 간절했지만 레돔은 들은 척도 않고 독서삼매경으로 들어갔다. ‘자급자족의 방법’이란 책이었다. 우리가 한국으로 올 때 시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아무것도 구할 수 없을 때 이 책을 보고 궁리해 보라고 준 것 같았다. 거기에는 자급자족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아궁이를 만들어 빵을 굽는 법, 훈제실을 만들어 소시지를 만드는 법, 염소젖으로 치즈를 만드는 법, 흐르는 물에 물고기를 키워서 훈제하는 법, 발효되는 건초 더미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난방과 더운 물을 만드는 법…. 무인도에 가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
“아빠는 왜 농부가 되었어. 그냥 엔지니어일 때가 더 좋았어.”
아들이 자급자족의 방법을 뺏어 버렸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겨울 포도밭에서 가지치기 할 때야. 땅을 밟고 포도나무를 만지는 그 순간은 말할 수 없이 편안해. 하루 종일 밭에 있어도 피곤한 줄을 몰라. 그런데 이게 뭐야…. 요즘엔 숨을 쉴 수 없으니 밖에서 일할 수가 없어. 죽을 것 같다고. 그런데도 필요도 없는 셔츠 만들기를 계속해야겠어? 정말이지….”
먼지 때문에 바깥에서 일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자 농부는 절망했다.
“최소한의 것만 만들어야 한다고. 지구는 지금 개발이라는 암에 걸렸어. 여기서 더 나아가면 해결할 수 없는 재앙이 올 거야. 최소한 지역의 농산물을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그러면 적어도 이동할 때 생기는 자동차 공해는 막을 수 있잖아. 누가 만든 것인지 아니까 농부는 신경 써서 농사를 지을 거야. 그러면 땅도 살아나고 물도 맑아지고….”
환경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아들은 관심도 없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셔츠 노래만 부른다. 결국 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넘어가 후다닥 ‘결제 완료키’를 ‘탁’ 쳐버리고 만다. 어디선가 트럭 가득 실린 목화솜이 붕붕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지구를 오염시키고 아들의 미래에 재앙이 되는 짓을 한 것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한지 모르는 레돔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창밖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밭에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벌들이 무사한지도 궁금하고….”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시드르가 없다고? 그렇다면 칼바도스도 없겠구나. 그러니까 사과술들 말이야. 사과 케이크나 파이도 없다는 거야? 사과를 졸여서 먹는 콩포트는? 이건 정말 맛있는데 왜 없지?”
레돔이 한국에 와서 처음 사과를 먹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가 먹은 것은 홍옥이었고 그 새콤한 맛에 반했다. 당연히 맛있는 시드르도 있겠지? 했는데 그것이 술인 줄도 모르는 나를 보고 좀 놀라워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생으로 먹을 사과도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
사과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였다. 어른들은 우리 동네 여자아이들은 사과를 많이 먹어서 다들 예쁘다, 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감을 많이 먹었다. 감꽃, 소금물에 삭힌 풋감, 홍시, 얼어붙은 겨울 감, 사계절 내내 어찌나 감을 먹었던지 변을 보지 못해 엉엉 우는 아이들도 많았다.
감을 언제 처음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과를 처음 먹어본 날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따라 왠지 사과밭 쪽이 궁금해서 갔더니 바닥에 떨어진 사과 한 알이 보였다. 얼른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강까지 걸어가서 깨끗이 씻은 뒤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갔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빛을 보며 사과를 한입 깨물었다. 흘러내리는 새콤달콤한 즙이 내 입안을 흥건하게 적시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뭐라고 할까, 아삭아삭 소리와 함께 넘어가는 그 맛은 혓바닥뿐 아니라 나의 뇌 속 오만가지의 감각을 다 일깨워 주는 느낌이 들었다. 씨앗과 꼭지까지도 다 먹어버렸다. 그런데 그 사과의 품종이 뭔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노르망디에 가볼 필요가 있어. 거기엔 백 가지가 넘는 사과가 있으니 그때 먹은 그 사과 맛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물론 시드르도 마셔야지.”
파리의 슈퍼마켓에서도 시드르를 살 수 있지만 그것들은 공장에서 만든 싸구려이기 십상이다. 진짜 시드르를 마시려면 프랑스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지방으로 가야 한다. 이곳 농부들은 사과로 최고의 술을 만들어 그 기술을 자자손손 전해주었다. 시드르뿐 아니라 메밀 크레프도 만들었다. 사람들은 시드르와 메밀 크레프를 먹기 위해 그곳에 간다. 까칠한 메밀 크레프에 사과주 특유의 시큼하게 콕 쏘는 시드르를 마셨을 때 묘하게 어울리는 그 맛에 순간적으로 뇌에 반짝 전기가 들어왔다. 그때 무엇인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당신 나라엔 백 가지 맛이 다른 사과가 있어 백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우리의 혀는 온갖 종류의 맛을 느끼고 그 풍성한 느낌이 뇌로 가서 상상력이라는 꽃으로 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크고 달콤하고 저장성이 좋은 과일만 선호한다. 사과든 수박이든 복숭아든 모든 과일이 크고 달콤한 것 위주로 남아있다. 소수의 입맛을 위한 것은 사라져 버렸다. 떨떠름하거나 시큼하거나 민숭민숭하거나 쓴, 납득할 수 없는 맛의 사과는 없다. 지금 시장에 가면 똑같은 사과밖에 없다. 혀도 점점 둔감해지고 뇌도 단순화된다.
“똑같은 맛의 사과를 먹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그러다 보니 좀 이상하다 싶은 남은 이해를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노벨 문학상도 나오고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괴짜 과학자도 나와 줘야 하는데 큰일 났네.”
이상야릇한 맛의 과일을 먹고, 이상야릇한 생각을 하고, 이상야릇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맛있기만 한 과일밖에 없다고 푸념하니 레돔은 노벨 문학상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고 한다.
“진짜 심각한 것은 미래에 닥칠 기후변화에 대비할 품종이 없다는 거야. 한국 기후에 병들지 않고 잘 자랄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를 구하고 싶어. 어떻게 하면 사라진 한국의 옛 과일 품종들을 찾아서 온갖 잡풀 속에서도 잘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그는 언제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만 낸다. 일단 사과주부터 한잔 마시고 생각해 봐야겠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22〉내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
신이현 작가
‘그러니까 지금 행복합니까?’ ‘가장 행복했던 때 혹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죠.’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레돔은 여자 하나 믿고 한국에 왔다. 작은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지금 그가 행복한지 어떤지 알고 싶어 한다. 정작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오늘 하루 코앞에 떨어진 일을 하고 저녁이면 야채수프를 먹고 잠자리에 든다. 코를 골면서 자는 걸 보니 그의 인생에는 별걱정이 없어 보인다.
정작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해외에서 물건들을 구입할 때다. 대서양을 건널 때 배가 뒤집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 아니다. 문제는 늘 우리나라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코르크 뚜껑이나 뮈즐레(병마개 철사) 같은 작은 것부터 발효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샴페인 유리병이나 작고 큰 기계들까지 모두 수입해야 했다.
“유리병과 코르크에 대한 BL(선하증권), 인보이스(송장)와 패킹리스트, COA(장기운송계약), 재질분석표와 제품설명서를 주세요. FTA(자유무역협정) 세율 적용입니까? 지금 검역에 들어가야 하는데 수입식품 등에 관한 영업등록증부터 보내 주세요.”
사과밭 모퉁이에 양조용 포도나무를 심느라 구덩이를 파고 있을 때였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공장에서는 재질분석표 같은 것을 주지도 않았으며 코르크는 그냥 100% 나무인데 무슨 재질검사표가 있을까. 그리고 영업등록증은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지금 당장은 없다고 했다. 담당자는 대체로 냉정한 편이었다.
“수입자 이름의 영업등록증 없이는 통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리병을 파쇄하거나 다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 비용은 수입한 사람이 댑니다. 제품의 부피가 있기 때문에 수화물 보관료가 많이 나가는데 폐기 시 보관료도 함께 납부하셔야 합니다.”
나는 사과밭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와 집으로 달려갔다. 수입식품 관련 영업등록증부터 만들어야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위생수업을 이수해야 하는 첫 단계가 있었다. 회원 가입 후 흙 묻은 손을 씻을 사이도 없이 한참 수업을 듣다 보니 수입에 관한 것이 아닌 제조에 관한 위생수업을 듣고 있었다! 나의 멍청함을 탓할 사이도 없이 다시 수업료를 내고 수입업 수업을 다 듣고 나니 시청에 가서 등록면허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부랴부랴 시청으로 달려가 면허세를 내고 나니 또 다른 사이트에 가입해야 했다. 공인인증을 받아놓지 않아 은행까지 달려갔더니 오후 4시가 넘어 다음 날 해결해야 했다. 또 식품특별법 관련 신청을 해야 했고 수수료를 낸 뒤 영업등록증을 받았다.
“사흘 만에 만든 아이디만 해도 공책 한 권이 되겠다. 비밀번호는 또 어찌나 어렵게 만들라 하는지 조합하는 순간 다 잊어버렸어.”
우여곡절 끝에 유리병과 코르크를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영업등록증도 있는 ‘프로 수입업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각기가 들어올 때 또다시 ‘외계인’과의 통화가 시작됐다.
“이것은 정격전압입니까, 조정전압입니까? HS(국제상품분류) 부호명이 뭐죠? 품목식별부호는요? 자세한 것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국립전파연구원에 전화해서 제품에 대한 문의를 해보세요. 전기용품으로서의 안정성에 대한 검사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파쇄하시거나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는 대체로 무심한 편이고 나는 가슴이 팔딱팔딱 뛴다. ‘구, 국립전파… 뭐, 뭐라고요?’ 이 긴 수입 스토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나는 매번 신음소리를 내고 유체이탈 순간이 오지만 해피엔딩 결말을 끌어내야만 한다. 쿨쿨 잠든 레돔 옆에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외계인의 메시지를 기다린다.
“수입 처리 완료되었습니다. 내일 물품 받을 수 있도록 배차해 두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단잠을 이룰 수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련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이윽고 땅을 샀다. 우리는 비로소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땅속에 53도의 뜨거운 물이 흐르는 충주 수안보면 한 모퉁이, 그동안 수없이 이곳을 다녔지만 그때는 남의 땅이었다. 모가 심긴 푸른 들에 바람이 불어 잔물결이 일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나비 제비가 깝쳐도 맨드라미 들마꽃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봄이 와도 우리에겐 봄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의 땅,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띠며 이상화 시인의 시를 노래하며 봄 신령에 잡힌 듯 어깨춤을 추며 걸어간다. 착한 도랑을 따라 난 밭고랑에 앉아 호미질 하는 할머니를 정겹게 보며 말을 붙인다.
“할머니 무엇을 심고 계신 거죠? 아, 양파로군요. 감자도 심을 것이라고요? 이건 언제 먹을 수 있죠? 우리는 저 언덕에 포도나무를 심을 거예요. 땅이 척박하고 빛이 종일 들어오니 포도나무에 꼭 좋은 땅이에요. 맨 먼저 우물부터 팔 거예요. 그래야 갓 심은 나무들에게 물을 흠뻑 줄 수 있으니까요. 나무는 첫 3년 동안 제일 목마르잖아요.”
열일곱 고운 나이에 시집 와서 평생 이곳에서 호미질 하다 보니 온 얼굴에 밭고랑과 같은 주름이 잡힌 할머니는 우리가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신다. 아직 젊으니까 무엇을 해도 된다고, 마을에 젊은이가 와서 좋다고 웃으신다. 우리는 둘 다 중년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젊은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우리도 이곳에서 늙어가겠지.
“집을 지을 때는 지붕의 물을 받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돼. 마당엔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를 만들 생각이야. 날아가던 새들이 와서 쉬면서 물을 마시고 벌들도 와서 물을 마실 거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웅덩이에 두꺼비와 개구리가 살도록 해야 해. 그래야 모기와 날아다니는 잡벌레들을 다 잡아먹을 테니까.”
작은 땅이 생기자 그는 벌과 나비가 윙윙대고 새들이 지저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만들 꿈으로 부풀었다. 양조장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밤이 깊도록 책을 본다. 그동안 양조와 농업에 관해 독파했던 모든 책들을 쌓아놓고 필요한 부분들을 체크한다. 어떻게 하면 작은 땅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어떻게 하면 가장 건강한 땅을 만들지, 어떻게 하면 자연 에너지를 잘 활용한 건축법일지…. 레돔의 머리카락이 언제 저렇게 희끗해졌을까. 그는 청년의 기백으로 공부를 하는데 내 눈에는 자꾸 그의 흰 머리카락이 보인다.
“뭔가 하나를 하면 두 개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가장 좋아. 그러니까 포도밭에 닭을 푼다고 생각해 봐. 첫째는 닭이 잡초를 뜯어 먹지. 둘째는 벌레를 잡아먹지. 셋째는 알을 낳아주지. 넷째는 흙을 쪼아주지. 다섯째는 닭똥이라는 거름을 주지. 여섯째는 고기를 먹게 해주지. 닭이라는 1로 인해 여섯 개의 효과가 나오는 거야. 이 땅에다 무엇인가를 할 때는 항상 그런 효과를 생각하면서 해야 될 거야.”
사람들은 레돔이 말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막을 수가 없다. 닭이 똥을 싸며 꼬꼬댁거리고 개구리와 두꺼비가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모기를 잡아먹는 풍경을 생각하니 이건 집이 아니고 작은 밀림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바로 그거야. 숲 정원을 만드는 거야. 산에 가면 작은 나무부터 큰 나무까지 하모니를 이루어 잘 자라고 있잖아. 우리 정원도 그렇게 해야 해. 큰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에 중간 크기의 나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넝쿨 식물들, 맨 아래에는 작은 열매들이 열리는 나무, 바닥에는 딸기 같은 것들, 허브와 같은 한해살이풀과 꽃들을 심는 거지. 그러면 정원도 숲처럼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가지게 되거든.”
그러면서 나의 꿈도 묻는다. 사실 나는 앞으로 해야 할 태산 같은 일이 걱정이다. 거기에 들어갈 돈은 어디서 구할지도 걱정이다. 진짜 내 꿈을 말하자면, 누군가 부지런히 일궈놓은 농장과 와이너리를 구경하며 그 집 술을 얻어 마시며 즐기는 것인데… 다 글렀다. 이제 이 땅은 우리의 땀을 받아먹고 나날이 푸르름이 더해갈 것이다. 그 보답으로는 우리에게 흰 머리카락과 깊은 주름을 돌려줄 것이다. 땅은 그런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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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브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전부 아홉 그루야. 올해는 제대로 자랄 것 같아. 올여름엔 파이를 해먹을 수 있을 거야! 바질이랑 타임, 세이지도 올라온다. 아티초크는 아직 안 올라오네. 아티초크를 올린 피자가 먹고 싶다!”
레돔이 봄의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올라오는 모든 것들을 보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준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씨앗들이 틔운 싹들이었다. 새로운 싹이 올라올 때마다 그는 멀리서 온 누이를 부르듯 감동적이고도 다정하게 이름을 부른다. 첫해에 우리는 모두 실패했다. 아티초크는 봄 가뭄에 말라버렸고 루바브는 여름 장맛비에 폭삭 썩어버렸고 세이지는 두더지가 들썩여 뿌리가 시들어버렸다. 그는 애통해했다. 다행히 지난해에 다시 심었던 루바브와 아티초크는 죽지 않았고 봄이 되자 뿌리에서 싹이 올라왔다.
“두더지를 보면 당장 신고해줘. 잡풀도 잎이 네 개 될 때까지는 뽑으면 안 돼.”
레돔은 나에게 그 텃밭의 잡풀 하나도 함부로 뽑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소중한 풀들을 잡초라 여기며 마음대로 뽑아버린다고 생각한다. 짚으로 덮어주고 토닥이며 바람 불면 넘어질까 비 오면 다칠까…. 그 모습은 내가 처음 프랑스 갔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집착한 것은 깻잎이었다. 처음엔 들깨 씨를 작은 화분에다 심고 창가에 내걸어 빛을 받게 했다. 이웃 아파트 창에 화분을 건 여자와 매일 아침 눈을 마주치며 우리는 물을 주었다. 그녀의 화분에 제라늄 꽃이 피고 지는 동안 나의 깻잎은 점점 커져갔다. 어느 날 제라늄을 키우던 여자가 나에게 와서 은밀하게 물었다. 이것이 혹시 대마 잎이나 뭐 그런 종류냐고.
그 다음부터는 숲에 가서 들깨 씨를 뿌렸다. 나무들 사이에 싹이 나면 나만 알 터이니 누가 뭐라고 하는 일도 없겠지. 들깨 다섯 포기면 여름 내내 친구와 나눠 먹을 정도는 될 것이다. 깻잎 씨를 한 바가지 뿌렸는데 싹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엔 거리의 화단에 깻잎 씨를 뿌려보았다. 이윽고 싹이 올라왔다. 귀여운 싹을 애지중지 좀 더 햇빛이 잘 드는 데로 옮기고 있는데 이를 본 약국 여자가 와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음… 그러니까 동양에서 가지고 온 난을 심고 있어. 여름에 하얀 꽃이 피지.”
쌀쌀맞게 생긴 금발의 약국 여자가 ‘오우’ 하면서 감탄했다. 왠지 기분 나빠서 더 이상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하얀 깨꽃을 보고 약국 여자가 어떤 얼굴을 했을지 모르겠다. 다음 해엔 한국 친구가 정원 있는 집에 세를 얻게 되었다. 우리는 마당 한쪽의 잔디를 뽑고 거기에 깻잎을 심었지만 싹이 나오기 바쁘게 수백 마리의 달팽이들이 와서 뿌리까지 다 먹어버렸다. 결국 깻잎을 포기한 것은 달팽이 때문이 아니라 매일 정원의 꽃을 가꾸는 이웃이 우리에게 와서 무슨 꽃을 심느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깻잎을 완전히 포기한 뒤부터는 숲에 가서 쑥이나 냉이 같은 것이 있을까 찾아보기 시작했다. 5년쯤 지났을 때 마침내 쑥을 발견했다. 이것으로 국도 끓이고 떡도 해먹는다고 했더니 레돔과 시부모님이 그것은 잡풀이며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강력하게 말렸다. ‘이, 이것이 얼마나 귀한 약재 나물인데!’ 나는 그들이 내 부모님을 모욕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란 듯이 뜯어온 쑥을 말려서 차를 만들어 마셨지만 프랑스 쑥은 참 맛이 없었다. 그 뒤 시부모님은 이상한 잡풀만 보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내게 묻곤 했다.
“이것 한 번 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레돔이 어찌나 다급하게 부르는지 큰일이 난 줄 알았다. 가보니 나무 아래 엄지손가락만 한 모리버섯이 소복하게 여기저기서 돋아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주로 나는 종으로 말리면 향이 더욱 진해지는 꽤 비싼 버섯이다. 이 작은 버섯의 포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누구의 등에 얹혀 와서 발아를 한 것일까. 레돔은 코를 버섯에 박고 깊이 그 향을 맡는다. 그가 외롭지 말라고, 아버지와 누이들이 그리움을 듬뿍 담아 봄 편지를 보냈나보다.
[포도나무 아래서]〈25〉남편의 이게 필요해, 저게 필요해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우리에겐 한 그루의 포도나무도 없었다. 길 가다 남의 집 담장이나 마당에 심어진 포도만 봐도 멈춰 서서 품종이 무엇인지 가지는 어떻게 뻗어갔는지 땅은 어떤지 ‘두릿두릿’ 살피며 긴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남의 집 포도밭과 포도나무가 참 부러웠다.
“이 포도나무 가지치기해서 삽목하면 될 텐데, 좀 구할 수 없을까?”
레돔은 늘 이렇게 이거 필요하다, 저거 필요하다 말한다. 나는 불만이었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없는 능력을 총동원해서 이런저런 품종의 나뭇가지들을 구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낯선 집에 들어가서 저 담장의 포도 나뭇가지를 좀 얻어갈 수 없느냐는 부탁도 여러 번 했다. 이 모든 것에 우리의 생계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발등에 불 끄듯 일을 하게 됐다. 다행히 레돔은 얻어온 가지들을 알뜰히 잘라 젖은 흙에 꽂아 뿌리가 나게 했다. 4월이 돼서 우리는 그것을 밭에다 심을 준비를 했다.
“아, 이것 봐. 마늘 싹이 잘 나고 있네."
먼저 심었던 포도나무 발치에서 마늘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버린 마늘이었다. 한 망태기의 마늘을 제대로 먹지 않아 싹이 올라와 거름통에 버렸더니 어느새 주워와 마당 곳곳은 물론이고 포도나무 아래에 하나씩 심었던 것이 귀엽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무 발치에 마늘을 심으면 해충들이 덜 온다고 했다. 매사 나는 버리고, 그는 주워 쓰임새를 찾아냈다.
“나무 심기 전에 먼저 땅을 만들어야 해. 음, 좋은 냄새가 나는군.”
그는 자신의 보물인 거름 냄새를 맡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1년 동안의 음식물 찌꺼기와 사과 착즙 찌꺼기, 길 가다 주운 들깨나무와 낙엽 보따리들에 술지게미가 들어가서 푹 삭은 퇴비였다. 거름을 뿌려 땅을 만든 뒤에는 정확한 간격으로 구덩이를 팠다. 그 다음에는 말린 쐐기풀 우린 물에 석회가루와 발효한 쇠똥을 섞어 걸쭉한 반죽을 만들었다. 거기에 연약한 뿌리를 푹 적신 뒤 구덩이에 심었다. 그렇게 해야 어린뿌리가 땅속 병충해에 강하게 자란다고 했다. 혹시 모를 4월의 이상기온으로 냉해를 입지 않도록 마른 짚과 콩깍지를 이불처럼 수북하게 덮어주는 것으로 포도나무 심기는 끝이 난 듯했다.
“이제 250cm 정도의 나무 막대기가 필요한데 어디서 살 수 있지?”
포도나무 넝쿨이 올라갈 철사 줄을 지지해줄 양쪽 버팀 막대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쉽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제는 대부분 쇠막대기를 쓴다고 했다. 그는 땅에다 쇠를 박기 싫다고 했다. 마침 집 뒷산에 아카시아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있었다. 왜 나무를 베어낼까. 저 아카시아 꽃에서 우리 집 벌이 꿀을 참 많이도 땄는데 꽃이 점점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 베어낸 아카시아 나무들 몇을 얻어왔다. 이틀에 걸쳐서 나무껍질을 벗기고 다듬더니 이윽고 끝이 뾰족한 막대기가 만들어져 땅에다 박고 긴 철사 줄을 엮었다. 이제 포도나무는 거기에 넝쿨을 뻗어 주렁주렁 포도송이를 달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저번에 부탁한 토끼풀 씨앗은 어떻게 됐어?” 나는 부랴부랴 씨앗을 주문했다. 그는 꼼꼼하게 일기예보를 체크한 뒤 비 오기 전날에 맞춰 씨앗을 뿌렸다. 토끼풀은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빨아 당겨 땅에 영양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개화기가 길어 벌들이 꿀과 화분(花粉)을 실컷 딸 수 있다. 길게 뻗어나가 다른 잡풀이 자라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베면 그대로 거름이 되고 또 올라오기 때문에 포도밭에는 필수라고 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네. 일기예보가 이렇게 맞지 않다니 어쩌란 말인지.”
토끼풀 씨를 뿌린 뒤 비가 오지 않자 그는 하늘을 보며 애간장을 태운다. 그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해내지만 그것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예보한 날보다 사흘 늦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촉촉하게. 그는 포도나무 밭에 서서 비를 맞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가 오니 됐다. 이제 들어가서 난로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차나 한잔 마시자.”
[포도나무 아래서]<26>그의 휘파람에 새들이 말을 걸었다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작은 새 몇 마리가 날아간다. 포롱포롱 날면서 뭐라뭐라 지저귄다. 사실은 새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먹이를 많이 먹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새의 기상 시간이 정확히 몇 시인지, 실컷 벌레를 잡아먹은 뒤의 스케줄이나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과밭에 가서 지렁이 사냥을 하는지, 삶의 목표는 있는지, 노래하는 의미를 알고 지저귀는지, 음치 새도 있는지, 대화의 주제는 무엇인지, 학교 가는 길에 옆길로 빠져 복숭아나무 아래 숨어서 연필 따먹기 같은 것을 하는지…. 새들에게도 인생이 있겠지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점심을 먹고 마당에 나와 한참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레돔이 어딘가를 향해 이렇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쉿, 하고 귀 기울여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삐이이 삐이이, 나무에서 이런 소리가 날아왔다. 새들이 내는 소리였다. 이번엔 오른쪽 끝 나무를 향해 휘파람을 부니 거기서도 찌찌비 찌찌비, 이런 종류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새랑 대화를 한 거야? 뭐라고 물었더니 뭐라고 대답하는 거야?” 나는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밖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사이 혼자 이곳에 앉아 새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니 그의 고독감이 안쓰럽기도 했다. “쟤들이 무슨 소리 하는지는 나도 몰라. 그냥 휘파람을 부니까 저렇게 화답을 하네. 쉿, 저기 새집 봐. 새가 나온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새들이야. 이름이 뭘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레돔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새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작은 새가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뚫린 집부터 중간 크기 구멍, 아주 큰 구멍이 있는 새집 등 10여 개의 새집을 달았다. 그러나 새들은 새집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레돔은 과일과 해바라기 씨들을 놓아주며 ‘세입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한국에는 새집 만들어 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새들이 새집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새집 만드느라 들인 비용과 시간이 아까우며 그의 새 사랑은 무용지물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곰곰이 나를 설득할 말을 찾는다.
“새집을 만들어 달면 새가 날아와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 나뭇가지에 붙은 해충을 잡아먹지. 바닥에 똥을 싸면 나무에게 그대로 거름이 되고 똥 속에 든 씨앗이 새로운 풀을 싹트게 하지. 새집 하나에 적어도 네 개의 득이 돌아오잖아.”
그러나 새들은 씨만 먹고 날아가 버렸다. 간혹 빈 새집에 깃털이 있었지만 살림을 차리지는 않았다. 지난해 봄에는 박새가 그 많은 새집을 두고 우체통에다 알을 까고 새끼를 부화시켰다. 그 박새 가족이 우리 집 터줏대감이 되어 호록거리며 날아다니자 다른 새들이 기웃거리며 빈 새집에 둥지를 하나둘 틀기 시작했다. 새집을 단 지 2년 만에 대여섯 종류의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왔다. 작은 새는 작은 구멍이 있는 둥지, 좀 더 큰 새는 좀 더 큰 구멍이 있는 둥지에 쏙 들어갔다 쏙 나왔다. 해바라기 씨를 한두 알 집어 먹더니 쫑긋쫑긋 둘러본 뒤 나뭇가지에 붙은 뭔가를 톡톡톡 쪼아 먹었다. 그리고 삐리리 삐리리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아 참 귀엽기도 하네. 너희는 언제 나랑 듀엣으로 노래할 거니?”
나는 멀리서 애타는 심정으로 날개 달린 작은 짐승을 탐한다. 고양이처럼 살며시 다가가서 휘파람을 불어본다. 신기하게도 새들은 나만 보면 달아나 버린다. 낙엽이 하늘로 거꾸로 떨어지듯이 포르르 무정하게 날아가 버린다. 그런데 레돔이 앉아있으면 여기저기서 새들이 날아온다. 휘파람을 불면 예쁘게 화답을 해준다.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일까. 나는 꼬리가 긴 노란색 줄이 새겨진 새가 한창 알을 품고 있는 새집 주위를 기웃거린다. 레돔은 내가 새를 놀라게 해서 알 품기를 포기하고 달아나 버릴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나는 심통 난 아이처럼 이렇게 말한다.
“새끼가 나오면 가장 먼저 만져볼 테야.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새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포도나무 아래서]〈27〉동네 양조장에서 술 익는 향기가 퍼질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깊은 숲속 나무 위에 나만의 작은 집을 짓고 싶어요. 인생이 공격수와 같은 거라면 그 집은 타임아웃 같은 것이죠. 작은 발코니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침실에 누워서도 하늘을 볼 수 있는 창을 내어 주셔요. 작은 건식 사우나가 있고 샤워는 숲의 바람을 느끼며 바깥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바로 내려가는 미끄럼틀도 하나 만들어 주세요. 숲에서 노는 아이가 되고 싶어요.”
요즘 디스커버리 채널 ‘이거 어떻게 만들래요?’라는 숲속 집짓기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을 말하면 건축가가 그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숲속에 가서 나무를 보고 건축 구상을 한 뒤 최적화된 기술자를 부른다. 뚝딱뚝딱, 스윽스윽, 드르릉. 이런 소리들이 울려 퍼지는가 하면 어느새 나무 위에 마법처럼 작고 아름다운 집이 완성되어버린다. 건축주와 시공사 간의 분쟁이나 갈등은 없다.
“집 짓고 나면 다들 10년 늙는대. 암 걸려 죽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어. 시공사들이 돈 다 빼먹고 날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돈도 생각보다 몇 배는 더 들고, 다 지어놓고 보면 처음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집이 나온대. 너 이제 진짜 큰일 났다. 우짤래?”
도대체 언제 땅은 살 거냐고 묻던 친구들이 이제는 언제 어떻게 집을 지을 거냐고, 그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한다. 나는 양조장 지어놓고 죽는 건 아닐까 뒤척이지만 레돔은 무심하다. 프랑스 와이너리 건축에 관한 책을 쌓아놓고 흥미진진하게 탐독하기 시작했다.
“한 마을에 양조장이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거야. 따뜻한 불씨를 가진 것과 같아. 한 잔의 술은 그냥 포도주가 아닌 거야. 그 마을 언덕땅의 성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포도가 자랐던 날들의 햇빛과 바람, 농부의 땀과 손길, 그에게 건넨 마을 사람들의 인사와 개 짖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들어 있어. 신기한 것은 와인이 익어갈수록 포도가 익어가던 때의 특징들이 더 깊어간다는 거지. 갑자기 조셉의 와이너리 냄새가 느껴진다. 가보고 싶다.”
조셉은 큰누나네 동네에 와이너리를 가진 레돔의 친구다. 지금쯤 마을을 둘러싼 포도밭은 구불구불한 연둣빛 선으로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이곳은 포도와 함께 세월이 가는 와인 마을이다. 포도밭 언덕은 사계절 다른 색깔로 물들고 사계절 다른 냄새가 난다. 여름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포도를 딴다. 우리의 품앗이와 같다. 갓 딴 포도를 트랙터에 싣고 가 발효탱크에 붓고 맨발로 짓이기는 날들이 몇 날이나 계속된다.
가을이면 포도밭 언덕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달리는 사람들은 발효탱크에서 은근하게 흘러나오는 술 익는 냄새에 코를 찡긋찡긋거린다. 조셉은 하루에도 몇 번씩 와인을 맛보느라 코가 빨갛게 되어 있다. 포도밭에 눈이 덮이는 겨울이면 발효 탱크 속 와인은 안정기에 접어들고 모두에게 가장 편안할 때다. 압력솥에 훈제 돼지 넓적다리를 푹 삶아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는 계절이다. 부드러운 훈제 돼지고기를 입에 넣은 뒤 알자스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 그 향기로움에 취해 겨울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포도밭에 눈이 녹으면 사람들은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한다. 새로운 포도가 열릴 것이고 전년과는 또 다른 맛의 와인 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레돔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가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라고 한다. 양털 귀마개를 하고 두꺼운 양말에 보온 장화를 신고 포도밭에 가면 종일 일해도 지겨운 줄 모른다. 싹둑싹둑 소리를 들으며, 이른 봄의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인생의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는 한때이다.
“바닥은 돌을 깔고 벽은 짚으로 가득 채워 보온을 하면 좋겠지. 지붕을 흙으로 덮으면 열 노출을 막고 저절로 온도 조절이 될 거야. 동굴과 같은 효과를 보는 거지. 포도나무는 양조장 뒤쪽 언덕을 따라 심으면 종일 해가 비치니 걱정 없어.”
우리는 이제 막 땅과 함께 꿈꾸기 시작했다. 이 두근거리는 예고편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스릴러 영화의 마지막 편처럼 궁금하다.
[포도나무 아래서]〈28〉늙은 여왕벌이 대군을 이끌고 왔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여기 좀 와 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어!”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레돔인데 무슨 일인가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벌통에 벌들이 떼를 지어 이사를 오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 가득 날면서 붕붕 소리를 냈고 벌통 입구에는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와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굉장히 흥분된 것처럼 윙윙대는 소리가 태풍 같았다. ‘야, 이리 와. 인간이 보고 있잖아. 빨리빨리 안으로 들어가. 이러다 오늘 밤 밖에서 자야겠어.’ 이런 소리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벌들이 왜 여기로 이사를 하는 거지? 살던 데서 전쟁이라도 난 건가? 어떻게 이 빈 벌통을 발견했을까? 한 동네가 몽땅 오는 걸까? 벌들의 이삿짐은 뭐지?”
벌, 한 번도 내 인생에 인연이 되었던 적이 없는 벌레들이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꿀을 먹었잖아. 그동안 얼마나 많은 꿀을 냠냠 먹었던가. 저 작은 벌레가 대체 몇 천 번을 꽃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날랐으며, 대체 몇천 마리의 벌들이 동원되어 생과 사를 달리 했을까.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 생산자에게 감사하고 옥수수를 먹을 때는 옥수수 생산자에게 감사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꿀을 먹을 때는 양봉인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벌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좀 더 생각하니 나는 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5월은 벌들이 분가를 하는 때야. 살고 있는 벌통에 벌이 너무 많으면 늙은 여왕벌이 새 여왕벌이 태어나기 전에 반 정도의 무리를 이끌고 나와. 무리가 여왕벌을 감싸고 보호하는 동안 일부는 새로운 거처를 물색하지. 그중에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해서 이사를 하는 거야.”
야호, 우리 집 벌통이 벌들이 살고 싶은 집으로 선정됐다. 원래 레돔은 세 개의 벌통을 가지고 있었다. 한 차례 황금 꿀을 수확했지만 차례로 낭패를 당했다. 한 통은 한여름 말벌의 습격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다른 한 통은 농약 든 꿀을 물고 와서 데굴데굴 하더니 모두 죽었다. 구사일생으로 건진 마지막 통은 지난겨울 한파에 동사했다. 봄이 되어 뒷산에 아카시아 꽃이 피기 시작하자 그는 몹시 우울해했다. 꽃이 꿀을 품은 채 시들고 있으니 새로운 벌을 구해 달라고 졸랐다. 나는 거절했다. 벌들 살 돈으로 꿀을 사면 1년 먹고도 남으며, 벌들이 오면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쩌면 분가한 벌들이 날아올지도 몰라.”
그는 벌통을 깨끗이 닦고 청소하여 나무 그늘 아래 놓아두었다. 떠난 연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엾은 남자처럼 빈 통 앞을 서성였다. 벌들이 알아서 들어오길 기다리다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늙은 여왕벌이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이다.
“새 여왕벌이 태어나면 아직 부화되지 않은 여왕벌 알은 모두 죽여. 한 벌통에 여왕벌은 오직 하나만 있어야 하거든. 새 여왕벌은 밖으로 나가서 수벌을 만나는데, 그 한 번의 외출에서 여러 마리의 수벌을 만나 평생 낳을 알의 정액을 다 받아서 돌아와. 그러곤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아. 재미있는 건 수벌의 인생이지. 여왕벌이 정액을 받는 여름 동안 수벌은 이 벌통 저 벌통 아무데나 날아다니면서 일도 하지 않고 꿀을 먹을 수 있어. 그러나 여왕벌이 1년 낳을 알의 정액이 장전된 9월이 되면 어떤 벌통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되고 결국 굶어 죽게 된단 말이야.”
그는 금빛 날개를 비비며 꽃 속에 들어가 꿀을 빠는 벌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겨운 줄도 모르고 벌의 라이프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 곧 말벌이 어린 벌들을 공격하는 여름이 올 것이고 그는 철통 보초를 설 것이다. 어딘가에서 농약이라도 치면 노심초사 벌들의 반경에 대해 걱정할 것이다. 새 아이를 맞이한 것처럼 염려와 축복이 넘친다.
“마당에서 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평화로워.”
그가 뭐라고 하든 나는 그저 벌 떼가 제 발로 날아온 것이 흐뭇하다. 언제쯤 저 꿀을 먹을 수 있으려나 침만 삼키고 있다. 참 무정한 인간이다.
[포도나무 아래서]〈29〉‘프랑스 곱슬머리’에서 청국장 냄새가 나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버섯이랑 신선한 크림을 잔뜩 넣어서 조린 송아지 갈빗살, 이건 큰누나가 제일 잘해. 훈제한 돼지 넓적다리 푹 삶은 것에 여름감자튀김, 포도나무에 구운 어린 양고기에 해콩 삶은 것도 괜찮지. 작은누나가 한 쿠스쿠스는 또 어떻고. 모로코 사람보다 매운 소스를 더 잘해. 디저트는 슈납스 독주를 넣어 반죽한 케이크, 한가운데 생크림이랑 산딸기가 가득 있으면 좋겠어. 살구파이, 체리파이도 너무 먹고 싶다! 중요한 건 슈납스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여름 과일 케이크는 엄마가 제일 잘했어. 여름 내내 엄마 손에는 풀즙, 과일즙이 잔뜩 배고 슈납스 냄새가 은은하게 났었는데….”
프랑스에 가면 제일 먼저 뭐가 먹고 싶으냐고 하나만 말해 보라고 했더니 줄줄이 메뉴가 흘러나온다. 아, 그만! 결국 내가 그의 입을 막고 만다. 레돔은 음식 투정을 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에 살면서 아침은 프랑스식으로 간단히 먹는다. 점심은 양조장 주변 식당에서 먹는다. 순댓국밥, 곤드레밥, 청국장, 황태해장국, 동태찌개, 보리밥, 수제비 이런 종류의 것들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는 무엇이든지 먹는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순댓국밥에 밥을 말아 먹는다. 깍두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간혹 젓가락에서 빠져나온 깍두기가 떨어지면서 옷에 붉은 물이 튄다. 고춧물이 든 셔츠를 보면 괜히 안쓰럽다. 부드러운 곱슬머리에서 청국장 냄새가 솔솔 나면 왠지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막내아들을 얼마나 금지옥엽 키웠던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구만리 떨어진 곳에서 뚝배기 청국장으로 배를 채운 뒤 밭으로 가는 것을 본다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녁은 되도록 프랑스 요리를 한다. 다진 돼지고기를 삶은 양배추로 감아 토마토를 다져 넣어서 푹 찌는 종류의 무쇠 솥 요리를 주로 한다. 밥 대신 프랑스 면을 삶아서 곁들여 준다.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왼손으로 포크를 쥘 때 그의 표정은 젓가락으로 밥 먹을 때와는 다르다. 음식 먹는 속도가 빠르고 활기차다.
나도 프랑스에 사는 동안 그랬다. 고기를 칼로 자르면서 포크로 찍어 먹어야 하는 양손 사용이 어색했다. 먹는 것에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젓가락을 쥐었을 때만이 미각이 살아났고 자유롭고 먹는 것이 행복했다. 스테이크도 내 몫은 먼저 자른 뒤 느긋하게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베란다 작은 화분에 고추와 깻잎을 심어놓고 애지중지 바라보며 끼니마다 한 잎씩 따서 먹었다.
이제는 반대가 됐다. 레돔은 텃밭에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 나라 식물들을 잔뜩 심었다. 수제비 점심을 먹고 온 뒤 커피를 한 잔 들고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 이것저것을 보고 만지고 다독인다. ‘이거 잡초다. 당장 뽑아버려야 해.’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는 얼굴을 붉히며 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화를 낸다.
“올해는 뤼바르브가 너무 잘되었어. 나 어릴 땐 이걸 생으로 많이 먹었어. 껍질을 벗겨 설탕에 찍어서 먹었는데 정말 특이한 맛이야. 식물 줄기를 먹는데 레몬과 오렌지를 먹는 기분이 든다니까. 자, 이거 한 번 먹어 봐.”
그가 뤼바르브를 꺾어 껍질 벗긴 줄기를 내민다. 한 입 먹으니 내 얼굴이 묘하게 찌푸려진다. 새콤하면서도 쓰고 떫은 이 맛은 시어머니의 여름 부엌을 떠올리게 한다. 뤼바르브를 한 아름 꺾어 부엌 식탁에 부려놓은 뒤 껍질을 벗기면 온 집안에 뤼바르브의 새콤하고 쌉싸름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오늘 저녁엔 뤼바르브 파이를 먹을 수 있겠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면 시어머니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그렇지만 나는 파이보다는 잼 쪽을 더 선호한다.
“파이는 한 판 구우면 하루 만에 다 먹어버리잖아. 우리는 잼을 만들어 오래오래 먹자.”
이렇게 말하고 나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어머니는 아들 앞에 한없이 감성적이었는데 그 아내란 여자는 매사 너무 실용적이다. 두 번째 뤼바르브 수확 때는 파이를 해야겠다. 이 여름 동안만이라도 어머니의 맛,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다.
[포도나무 아래서]〈30〉‘땅나라 국무장관’이 피곤한 이유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이웃 밭에서 땅갈이를 하고 있다. 뭔가를 심을 모양이다. 제초제를 뿌려 잡초를 말린 다음 땅을 갈아엎고 있다. 기계로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니 노란 흙이 드러나고 안방처럼 깨끗해졌다. 뒤이어 다른 기계가 빠르게 골을 파고 검정 비닐을 덮는다. 이제 비닐에 구멍을 뚫어 씨앗을 넣으면 된다. 그 옆에 있는 우리 포도밭과 참 대조적이다. 포도나무가 반이고 잡초가 반인 레돔의 밭. 사람들이 지나가다 무성한 잡초에 놀라서 발걸음을 멈춘다.
“한번 맞혀 봐. 세상에 살아있는 존재 중에 가장 큰 것은 뭘까?”
밭을 저렇게 세 번이나 갈아엎어버리면 미생물과 지렁이가 다 죽을 텐데 어쩔 거냐고, 비닐은 찢어져 흙 속에서 몇백 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모두 내 탓처럼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무고개를 낸다. “세상에서 제일 큰 존재?…코끼리?”라고 대답하니 식물이라고 한다. 유칼리나무?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나무 이름을 대니 그는 버섯이라고 답한다.
“한 개의 버섯은 100km까지 뿌리가 뻗어. 살아있는 존재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개체지.”
한 개의 몸이 100km까지 간다니 충주 우리 양조장에서 동해 바닷가까지 뻗어간다는 뜻이다. 한쪽 발은 산골에, 다른 쪽 발은 바다에 담근 거대한 식물이 있다면 저 너머 소식을 이쪽으로 전해 줄 수도 있겠다. 이 시간 동쪽 지방 날씨는 버섯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뭔가 공격이 들어올 것 같은 조짐에 내가 먼저 살짝 비웃자 그는 으쓱한다.
“버섯은 스스로 광합성 작용을 못하기 때문에 나무가 만든 당을 얻어먹어. 그 대신에 멀리까지 뿌리를 뻗어 미네랄과 물을 얻어 와서 나무한테 주지.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지. 밭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버섯은 나무와 나무를 연결시켜주는 메신저와 같아. 밭에 깔린 연결망이라고나 할까. 버섯이 있다는 건 땅속의 미생물과 풀과 나무들이 서로 잘 연결돼 소통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아, 알겠다. 하늘에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돼 세계가 연결되는 것처럼 땅에는 버섯이라는 그물이 와이파이처럼 깔려 있다는 거네. 그러니까 나무와 풀과 미생물들이 버섯이라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돼 뭔가를 교환하고 대화하고 그런다는 거잖아.”
나의 비유가 너무나 총명했던지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레돔은 한국 농토에서 겪는 이러저러한 것들에 대해 질문이 많다. 그러면 나는 그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고 대답해야 하는 땅나라 국무장관이 된다. ‘왜 겨울 동안 땅을 벌거숭이로 비워두지?’ ‘비닐을 씌워야만 한다면 좀 더 두꺼운 것으로 해서 몇 년이라도 재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밭은 안방처럼 깨끗이 잡초를 없애면서 밭 주변은 농약 통이며 비닐이며 플라스틱들을 잔뜩 버려 놓는 건 뭐지?’ 등등. 나는 화만 내고 시원찮은 대답을 내놓는 무능력한 장관이다.
“땅에 제일 치명적인 것은 뜨거운 태양이야. 땅도 인간처럼 시원하고 쾌적한 걸 좋아하는 살아서 숨쉬는 존재라고. 저렇게 깨끗하게 갈아엎어서 잡풀이 하나도 없으면 지렁인 뭘 먹고 미생물들은 어디서 살지? 버섯은 꿈도 꿀 수 없어. 잡초가 있어야 그 그늘에서 버섯도 자라고 지렁이도 먹고살면서 퇴비를 만들잖아. 인간이 먹을 열매만 키울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우는 것이 농부가 할 일이라고. 정말이지 이미 너무 늦었어!”
결국 그는 버럭 화를 내고 만다. 그러면 나도 화를 내고 우리는 남의 밭에 씨 뿌리는 것을 보면서 싸우게 된다. 허리가 휜 늙은 농부님들께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여름이 깊어가고 풀과의 전쟁은 더욱 극성일 것이다. 낫과 호미, 예초기, 제초제, 온갖 무기가 다 나오겠지만 풀을 이길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사람과 땅이 다 잘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땅나라 국무장관의 시름이 깊어간다. 이웃과 우리 사이에 이심전심 와이파이 버섯이 있어 한마디 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밭에 잡풀 많다고 너무 나무라진 마세요. 게으름뱅이라 야단치지 마세요. 잡초 씨앗 날아와 온 동네 밭 다 버린다고 욕하지는 마세요. 우리 밭에서 간 건 아닐 거예요.”
[포도나무 아래서]〈31〉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할 비법이 있을까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저는 이제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됐습니다. 이때를 ‘마의 3년’이라고 한다던데 생각해보니 저도 3년 차 죽음의 계곡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힘듭니다. 선생님도 사업하는 중에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 적이 있는지,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농업 스타트업 페스티벌에서 한 연사에게 내가 던진 질문이다. 연사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눈길로 나를 보며 ‘컬컬’ 웃었다.
“죽음의 계곡은 사업 초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업 10년, 20년 차에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합니다. 계곡을 넘어 무덤에 들어가기도 하죠. 특히 자금이 쪼들릴 때는 직원 모두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연구자이든 개발자이든 모두 함께 마케팅에 발 벗고 나서야죠. 고민을 직원과 함께 나눠서 극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대답은 훌륭했지만 문제는 나에겐 고민을 나눌 직원이 없다는 것이다. 직원을 한 명 뽑아야겠다고 하니 레돔 왈, 그 직원에게 월급을 주려면 와인 3000병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도 농사와 와인 만들기로 눈코 뜰 새 없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지? 페스티벌에서 만난 다른 기업들은 다들 직원도 서넛은 되고 매출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나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니, 이것은 내가 사업엔 꽝이라는 뜻인가. 할수록 더 못한다는 자괴감이 든다.
나는 생전 사업을 해본 적도 없지만 직장도 길게 다녀본 적이 없다. 그냥 남편이 벌어다주는 월급으로 살았다. 그때는 미래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압박감 같은 것에 시달린다. “대박 나세요!” “성공하세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대박 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실패한 게 되는가. 성공하지 않으면 내가 불행해지는 건가. 나는 오래오래 평안하게 살고 싶은데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어두워진다. ‘그냥 굶어죽지 않을 정도만 돼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수업을 들었다. 세무와 회계의 모든 것, 사업화 전략 수립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 공감마케팅, 성공적인 피칭 전략 키워드, 브랜드 메이킹, 고객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즈니스, 수출역량 강화…. 제일 앞줄에 앉아 공책을 꼭꼭 눌러쓰며 공부하는 의지의 중년 여성, 이제 곧 놀라운 여자 최고경영자(CEO)로 탄생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업을 들을수록 깨닫는 것은 도무지 역량 강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안으로 글자도 잘 보이지 않고 머리도 팽팽 잘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으니 이 모든 것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결론을 내린 뒤 포도밭으로 가 풀이나 열심히 뽑기로 했다. 밭에서 땀을 흠뻑 흘린 뒤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다. 저녁을 먹은 뒤 편히 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그러나 이 평화의 순간도 오래가지 못한다.
새로 나올 제품의 원가 계산도 해야 하고 상표 디자인도 들어가야 한다. 세금 계산서도 발행해야 하고 매출 실적도 들여다봐야 한다. 세무서에 시험 분석을 위한 술도 가져가야 하고 열 가지가 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서류들도 다 끝내야 한다. 그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새 양조장 건축 설계와 토목공사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양조장 건축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찾아야 한다. 텔레비전 앞에서 축 늘어진 여자 CEO의 머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여기 이쪽 와인 창고 뒤쪽 벽을 빗물 저장고로 만들 생각이야. 그러면 여름에 이쪽 벽이 시원해서 냉각기를 따로 돌릴 필요가 없지. 그리고 가뭄에는 밭에 물을 주는 용도로도 쓸 수 있잖아. 어때?”
레돔은 매일 저녁 에너지 자립 생태건축 양조장을 설계하느라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밖에서 에너지를 끌어오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 태양열과 빗물, 지열, 벽의 위치와 지붕의 경사도 등을 유심히 연구한다. 아무래도 그를 위해 역량강화 수업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나는 죽음의 계곡에서 헤매고 있다. 여기서 나갈 비법을 좀 알려주세요.
[포도나무 아래서] 3년 만에 찾은 프랑스 알자스 시댁〈32〉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프랑스 알자스 시댁에 왔다. 한국에 산 지 거의 3년 만이다. 그동안 집에 가서 식구들 보고 오라고 말했지만 레돔은 거절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고향 음식이 먹고 싶지 않느냐고, 프랑스어로 수다 떨고 싶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 좀 이상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원래 한국 충주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묵묵히 일만 한다. 어떻게 향수병이 생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하고 돌아온 뒤 프랑스 텔레비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하나 더 바란다면 아침만 프랑스식으로 나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농사 때문에 멀리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어놓은 나무가 말라죽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발효 탱크에 들어간 시드르(사과즙을 원료로 한 발효주)에 악당 효모가 나타나 망칠까 봐 잠시도 자리를 비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제 평생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이 나무들 때문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악당 효모들 때문에. 그냥 직장을 다니지 왜 일을 벌여 나까지 이 고생을 시키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런 것이 산다는 것인가?”
이것은 지난 3년 동안 레돔을 따라다니며 내가 불렀던 똑같은 레퍼토리다. 그는 죄인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가 봤자 충주 땅에서 어딜 가겠는가, 친구도 식구도 없는데. 갈 곳이라고는 밭뿐이고, 간 김에 나무를 보고 풀을 맸다. 날아다니는 딱정벌레와 지렁이를 보곤 기분이 좋아져서 사진을 찍고 하느라 슬픔은 싹 잊어버리고 돌아왔다.
“이것 봐. 우리 땅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그는 내가 좀 전에 무서운 레퍼토리를 쏘아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아이처럼 자신의 밭을 자랑한다. 나는 내일 아침에는 그를 위해 맛있는 빵을 구워야겠다고 다짐하고 반성한다. 뭐, 이런 것이 인생인가 보다.
“프랑스에 가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가 물었다. 일전에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에게 기자들이 물었던 말이다. 그는 충무김밥과 자신의 애견을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무심결에 나오는 이런 말을 들으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무리 거대한 인간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이렇게 사소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다 필요 없다, 지금 나는 집에 가서 사랑하는 개와 뒹굴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인간에게는 이런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파리 서역에서 브레첼을 사먹고 아빠에게 샤를로트 케이크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 레돔의 대답은 이랬다. ‘그만 진정하고 나한테 브레첼을 하나 줘.’ 이것은 알자스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공항에서 파리 서역에 도착하자 그는 당장 ‘브레첼부터 먹어야지!’ 하는 설레는 얼굴로 빵집을 향해 사라졌다. 알자스행 기차를 타는 서역은 예전엔 알자스 식당이 굉장히 많았는데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고향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린 왕자가 여우와의 약속 한 시간 전부터 행복해진다는 것과 같은 것일까.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되겠지. 이제 돌아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르잖아.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폐가 말이다. 난 이제 다 쓴 기계다….” 이것은 시아버님이 우리를 만났을 때 하는 똑같은 레퍼토리다. 만난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별 이야기를 하신다. 레돔은 샤를로트 케이크를 만드느라 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정신이 없다. 작고 붉은 열매들을 짓이겨 즙을 만들고 초콜릿을 녹이고 계란 흰자 거품을 낸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는지 반죽이 엉망이 됐다. 3년 만에 만드는 케이크를 망치자 그는 아버지에게 버럭 화를 낸다. ‘그런 똑같은 레퍼토리는 제발 좀 그만하세요!’ 이제 그는 고향 집에 돌아온 평범한 아들이 되었다. 충주로 가기 전까지 잘 충전하세요, 사장님.
‘노르망디 와인’ 만들기… 쉽지 않네〈33〉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레돔의 친구 에두아르 이야기다. 레돔의 나이는 마흔, 에두아르는 마흔다섯, 두 사람은 늦은 나이에 농업학교에서 만났다. 원래 그는 아프리카에 와인 수출하는 일을 했는데 뒤늦게 농부가 됐다. 노르망디가 고향인 그는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고 노르망디 지역의 이름을 건 와인 만들기를 꿈꿨다. 현대의 노르망디는 밀과 목축, 사과가 주요 농사지만 중세 때만 해도 많은 포도밭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라져버린 고향의 포도밭을 다시 살리고 잃어버린 옛 조상의 와인 맛을 재현해 낼 생각이었다.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포도나무에 적합한 땅을 발견했다. 파리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센강이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종일 언덕을 되비추는 숲이었다. 땅주인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는 빌려서 그곳을 개간했다. 포도나무를 심을 때는 노르망디 곳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레돔도 보름 동안 그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일했다. 지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심은 포도나무 밭이었다.
“노르망디에 포도밭이라니, 이런 시도는 너무 멋져요. 우리 지역 조상님들이 만들었던 그 와인 맛이 정말 궁금해요. 보세요, 여기 포도나무 한 그루에 우리 가족 이름표를 달았어요. 역사적인 순간이에요!”
지난해 3년 차에 첫 수확이 있었고 그것으로 와인을 담갔다. 올해 뚜껑을 열었을 때 와인은 실패였다고 했다. 나는 실패한 와인이라도 맛을 보고 싶었지만 레돔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 또한 첫해에는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장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사이에 과일즙은 제멋대로의 맛으로 가버린 것이다. 노르망디는 프랑스이긴 하지만 포도 와인을 만드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장비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프랑스의 작은 와이너리들은 병입이라든가 찌꺼기 뽑아내기, 코르크 막기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공동으로 쓰는, 최적화된 기계들이 대신해준다.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기계들이 노르망디까지 오지는 않는다. 와인 생산 지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에두아르는 자신의 작업장과 기계를 다 갖춰야 한다.
“올해는 포도가 햇빛에 심하게 화상을 입었어. 그렇지만 썩 나쁘지는 않아. 지금까지 발전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 문제는 와인을 만들 작업장이 아직 없다는 거야. 최소한의 장비는 갖추어야 하는데 말이야.”
에두아르의 농법은 숲의 생태계를 가능한 한 그대로 유지하는 포도밭을 일구는 것이다. 잡초를 베는 정도의 최소한으로 나무를 돌본다. 생태학자들이 와서 그의 포도밭에 몇 종류의 자연 벌레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었다. 숲에 사는 벌레종들이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곳은 숲이라는 생태계에 자리한 야생 포도밭이 될 것이다. 수확을 보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업 초반의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중인 듯했다.
“걱정은 접어두고 네가 만든 시드르를 한번 마셔 볼까.”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이국만리로 간 친구가 만들어온 와인, 그는 ‘레돔 시드르’를 두 손에 들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각자 첫 번째 와인을 함께 맛보는 것이 목표였지만 인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와인이다. “아, 정말 흥미롭다 한국 사과!” 레돔 시드르를 마신 그의 첫마디였다. 사과라는 같은 과일이지만 나라를 달리하니 땅과 빛이 달라지고, 완전히 다른 맛의 술이 나온 것에 놀라고 즐거워했다.
“나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렇지만 내년엔 내 와인도 함께 마실 수 있을 거야. 우리 바다로 수영이나 하러 갈까? 노르망디 물이 정말 좋아. 풍경도 끝내 줘.”
아직 넘어야 할 산과 갈 길이 먼 두 농부는 바다에 도착하자 해맑은 얼굴이 되었다. 한마디 말도 필요 없이 훌훌 벗어던지더니 넘실대는 파도를 향해 달려갔다.
농부의 계절, 잡초의 계절〈34〉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농부가 여름에 한 달 밭을 비우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온 들판이 전설의 고향 세트장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가 여름에 프랑스 시댁으로 간 것은 와인 병입을 모두 끝냈기 때문이었다. 포도가 익기 전인 7월 한 달만이 유일하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레돔은 가장 먼저 포도밭으로 달려갔다. 삽목을 하고 옮겨 심었던 포도들은 잘 자라는지, 병충해는 덮치지 않았는지, 포도나무 골 사이에 심은 해바라기와 옥수수는 씨가 제대로 여물었는지, 그 모든 것의 안부가 궁금했다. 다들 무사하겠지!
“우와, 이건 완전히 점령된 숲, 잡초왕국이네.”
지구 저쪽은 비가 안 와 뜨거운 태양에 식물들이 노랗게 말라비틀어졌는데 이쪽은 장맛비에 잡초들이 얽히고설키어 승승장구 올라가고 있었다. 포도는 잎사귀만 겨우 보이고 옥수수는 잡초들에 포위당해 비실거리고 있었다. 이래서 농사를 짓는 것은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하는구나. 이 전쟁에서 인간이 질 수는 없잖아. 생존을 위해 우리의 곡식과 과일을 지켜야지. 나는 승리의 의지를 불태우며 얄미운 잡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안 돼. 그렇게 뿌리째 뽑으면 땅속의 좋은 박테리아들이 빛에 노출돼 다 죽어. 이렇게 베어서 눕히는 게 가장 좋아. 백 번은 이야기한 것 같은데!”
레돔이 땅과 박테리아, 식물들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서 깐깐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머리 위에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목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려 일사병으로 죽을 것 같은데 그런 소리를 하다니 바보 같다. 나는 잡초를 팽개치고 혼자 잘해 보라고 한 뒤 돌아왔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고집쟁이 남자를 욕하다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단잠에서 깨어나니 여전히 폭염이다. 잔에 얼음물을 채워 나가 보니 그새 잡초를 많이 베어 누여 놓았다.
“저기도 좀 베는 게 어때.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잖아.”
길목에 높이 자란 풀들을 가리키니 그가 한참 그것을 들여다본다.
“그냥 두는 것이 좋겠어. 밭 한편에 야생 상태의 풀이 그대로 자라는 것도 괜찮아. 관리를 할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잡초야. 잡초 씨는 땅이 깨끗할수록 더 빨리 싹을 틔워.”
‘싸우는 식물’이라는 책에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투쟁하고 생존 전략을 세우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 잡초였다. 질긴 것이 잡초라 생각하지만 사실 잡초는 약한 식물군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식물들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숲에는 잡초군락이 생길 수 없으며 인간이 김을 매는 논이나 밭, 길가 같은 부드러운 땅이 생존적지라고 했다. 땅속에 숨은 잡초 씨앗들은 인간이 풀을 뽑을 때 햇빛에 드러나며 발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 매주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잡초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의 승자는 결국 잡초가 아닌지 모르겠다. 매면 맬수록 더 잘 올라오는 잡초.
“잡초와 인간,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식물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영리해. 저것 봐. 해바라기와 옥수수 콩이 정말 잘 어울려 자라지?”
온몸이 땀에 젖은 고집쟁이가 자신이 일군 밭을 사랑스레 바라본다. 포도밭에 콩이랑 옥수수, 해바라기, 이런 여러 씨를 심을 땐 싫었는데 지금은 참 보기 좋다. 콩 줄기가 옥수수와 해바라기의 긴 몸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걱정 마. 너무 세게 감아서 죽이지는 않을 거야. 난 조금만 도움을 받으려는 것뿐이야.’ 콩이 이렇게 말하면 해바라기는 빙긋 웃는다. ‘네가 이렇게 감아주니 내 큰 키가 바람에 휘청대지 않잖아. 지난 장마도 네 덕에 견뎠어. 무엇보다 너의 푸른 콩잎 냄새가 좋아. 콩 익어갈 때 냄새는 더 좋지. 농부가 풀을 뽑아버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 풀을 깨끗이 뽑아버렸다면 땅이 너무 뜨거워서 이런 더위에 내 뿌리가 다 말라버렸을 거야. 우린 주인을 잘 만났어. 아, 바람이 부네. 우리 흔들리지 않게 좀 더 껴안자.’ 해바라기와 콩이 알콩달콩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포도밭. 바야흐로 농부의 계절, 잡초의 계절이다.
최고로 행복한 복숭아나무<35>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이웃이 복숭아를 몇 박스 들고 왔다. 멍들었거나 깨알 같은 작은 점이 찍혔거나 나무에 긁히거나 눌린 것들, 상품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지난겨울 가지치기부터 시작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복숭아나무에 매달려 꽃을 따내고, 열매와 잎을 솎아내고, 한 가지에 오직 한 개의 복숭아만 달아 그 누구도 흠집 내지 못하도록 봉지까지 씌워 애지중지 키웠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복숭아가 제일 예뻐 보일 때는 이른 아침이거든요. 이 두 손으로 이슬을 머금은 탐스러운 복숭아를 툭툭 따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무슨 권리로 이 나무에 달린 복숭아를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따는가, 하는 생각요. 그러니까 도둑놈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복숭아나무에게 이 복숭아는 내 것이라고 당연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
문득 복숭아에 대한 권리가 그 나무인지 인간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그는 귀농 2년 차, 올해 첫 복숭아를 수확했다.
“그런데 복숭아나무는 왜 달콤한 열매를 매달아 인간이 먹도록 유혹하는지 모르겠네.”
인간이 함부로 확확 따먹는 것이 싫었다면 복숭아나무는 그 열매를 이토록 달콤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많은 복숭아를 어떻게 처리한담. 알자스 시댁에서도 포도밭 한가운데 속이 새빨간 복숭아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포도밭에 자라는 복숭아를 최고로 쳤다. 시어머니는 병조림을 만들어 창고 선반에 가득 저장해 겨울 내내 먹었다. 카스텔라를 구워 먹을 땐 늘 복숭아 조림을 곁들여 빵을 촉촉하게 해서 먹었다.
“복숭아가 달콤한 것은 그 나무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래. 달콤한 꿀로 곤충을 불러 꽃가루를 옮기는 것처럼 그 열매를 새나 동물이 먹어 멀리까지 씨를 옮겨주기를 원했던 거지. 식물과 동물의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요즘엔 공생관계라기보다 인간이 식물을 이용하기만 하는 식물 착취에 가깝다고 생각해.”
레돔이 이렇게 말하자 젊은 농부는 얼굴을 붉힌다.
“겨울부터 지금까지 죽도록 복숭아밭에서 일했는데 식물 착취라니 너무해요.”
“꽃을 따내고 적과하고 농약 치고 영양제에 비료 뿌리고…. 이건 복숭아나무를 위한 것이 아니잖아. 인간의 이익을 위한 착취지. 그러니까 복숭아나무에게서 얻은 것에 대한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다른 것이 필요한 것 같은데. 가령 땅을 살려주는 일 같은 것….”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뀐다. 지난번 뿌리 깊은 잡초는 뽑지 말고 베어서 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다. 참 잘났다, 배가 부르니 그런 소리를 한다, 너나 그렇게 키워라 등등. 사실 내가 레돔에게 늘 하는 말이다. ‘뭘 그렇게 까다롭게 농사를 짓느냐, 남들 농사짓는 것까지 참견할 필요 없다.’ 그러면 그는 늘 똑같은 말을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도 늦었다. 이 상태로 가면 10년 후엔 돌이킬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솔직히 나도 내 농법을 바꾸고 싶어요.”
젊은 농부는 레돔의 땅 살리기 농법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겁이 난다. 복숭아가 하나도 열리지 않으면 어쩌나. 한철 농사가 망하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온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복숭아나무도 지구 위에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면 돼.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제 좀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땅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뜨끈한 거름으로 몸을 데워줘 봐. 깊은 곳까지 햇살이 들게 하고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도록 해주면 복숭아나무는 잎을 팔락팔락 흔들면서 좋아하겠지.”
젊은 농부는 벌떡 일어난다. 자신의 복숭아나무를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나무로 만들어줄 태세다. ‘무엇보다 숲 냄새가 나는 유기질 듬뿍 든 검은 흙을 만들어야 해!’ 레돔이 그의 등에다 소리친다. 나는 복숭아 조림을 만들어 여름을 병 속에 봉한다. 안녕,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