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행랑치다
행랑行廊은 지체 높은 사람들의 집, 대문 양쪽으로 지어 놓은 방을 가리킨다. 행랑으로 된 집채를 행랑채라 하고, 그 방을 행랑방이라 하였다. 이 행랑은 지난날, 하인들이 문지기 겸 거처하던 곳이다. 이 행랑살이를 하던 하인을 일컬어 행랑것이라 낮추어 불렀다.
그런데 하인이 많은 집은 이 행랑이 여럿 있어야 하므로, 대문 좌우에 죽 이어 행랑을 지어야 했는데, 이것을 줄행랑이라 한다. 장랑長廊이라고도 한다. ‘줄행랑치다’라는 말은 이 줄행랑에 ‘치다’라는 말이 결합된 말인데, ‘치다’란 말은 ‘줄을 가로로 늘이거나 매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금줄을 치다./ 담을 치다./천막을 치다” 할 때의 그 ‘치다’로서 ‘설치하다’의 뜻이다. 그러니까 ‘줄행랑치다’는 행랑이 줄을 지어 죽 늘어서 있다는 뜻이 되겠다.
그런데 지금 줄행랑친다고 하면, 어떤 낌새를 알아채고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거나, 쫓겨 달아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말이 이렇게 쓰이게 된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행랑채가 줄지어 서 있다는 ‘줄행랑치다’란 본래의 말과 달아난다는 뜻을 가진 ‘줄달음치다’란 말의 형태적인 유사성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줄달음치다’라는 말은 단숨에 내쳐 달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줄행랑치다’의 행行 자도 ‘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이 두 말이 쉽게 뒤섞여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행랑채가 죽 늘어서 있다는 뜻인 ‘줄행랑치다’의 ‘줄’과 도망치다의 뜻인 ‘줄행랑치다’의 ‘줄’도 사실은 그 뜻에 차이가 있는 말이다. 전자의 ‘줄’은 ‘벌여 선 행렬’을 가리키지만, 후자의 ‘줄’은 ‘끊어지거나 그치지 않고 잇달아’의 뜻인 ‘줄곧’의 뜻이다.
이렇게 속뜻을 서로 달리 하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줄행랑치다’와 ‘줄달음치다’란 두 말의 꼴이 비슷해서, ‘줄행랑치다’가 도망치다의 뜻으로 바뀌어 쓰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