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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한쪽이 다른 쪽을 먹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자체가 변화합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는 관계
→ 서로를 해치는 관계
→ 메시아의 통치 아래 화해하는 관계
라는 그림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11장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보다 훨씬 깊습니다. 힘으로 상대를 지배해야 한다는 질서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2. 특히 "어린아이"가 반복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6절에서는 어린아이가 송아지와 어린 사자를 이끌고,
8절에서는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습니다.
왜 하필 어린아이일까요?
어린아이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린아이가 맹수와 독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즉 메시아의 나라에서는 가장 약한 자도 더 이상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4절의 말씀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약자를 보호하는 공의 → 약자가 두려워하지 않는 평화
라는 구조입니다.
3. 그래서 인간 사회의 갈등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에서
강자 → 약자
부자 → 가난한 자
권력자 → 무권력자
가해자 → 피해자
민족 → 다른 민족
국가 → 다른 국가
와 같은 관계가 약육강식의 구조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통치는 이것을 뒤집습니다.
지배 → 섬김
경쟁 → 협력
복수 → 용서
착취 → 보호
두려움 → 평화
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메시아적 질서와 연결됩니다.
4. 그러나 한 가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11장의 동물들이 실제로 사냥하지 않게 되는 것을 상징으로만 해석해야 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야는 인간 사회의 평화를 말하면서 창조세계의 변화까지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층위가 동시에 있습니다.
① 인간 사회의 회복
→ 적대와 억압이 사라짐
② 창조세계의 회복
→ 동물 사이의 적대적 관계까지 변화됨
이것이 재림과 연결되는 이유입니다.
현재의 교회와 성도에게는 메시아의 평화가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이사야 11:6~9의 완전한 모습은 재림과 새 창조에서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결국 이사야 11장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세상"에서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로의 전환을 동물들의 관계를 통해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지서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과 동물의 질서를 통해 인간의 영적·사회적 질서를 설명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회복하실 창조세계까지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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