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면서
한국 관객에게 인기 없던 영화 <블랙 스완>이 소생했다.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덕택이었다. 평일 6만 내외, 주말 10만 정도의 관객을 모은 <블랙 스완>은 아카데미 시상식 다음날인 지난 1일 13만 관객을 모았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작년에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빛나는 <하트 로커>는 고작 17만 한국관객을 동원했다.
이라크 참전 미군병사를 소재로 한 <하트 로커>는 바그다드에서 폭발물 제거를 전담하는 병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폭풍 속으로>의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전쟁에 중독된 인간의 실체를 제임스를 통해 보여준다. 이라크 전쟁 배후에 있는 조지 부시와 딕 체니 같은 희대의 전쟁광과 그들의 뒤를 봐주는 미제국의 추악한 군산복합체를 고발한다.
<하트 로커>의 분위기는 무겁고 신랄하다. 반면에 <블랙 스완>은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발레 <백조의 호수>와 배우 나탈리 포트만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고 있다. <레옹>에서 마틸다로 데뷔한 포트만은 <클로저>와 <천일의 스캔들> 등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얼굴이다. <블랙 스완>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에리카와 니나: 착한 딸의 틀을 부숴라
발레리나로 4년을 살아온 니나는 평범하고 선량한 인물이다. 매사에 순응적이고 맑고 투명한 하나의 맨얼굴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꿈은 있다. 세계적인 발레 작품에서 주역을 연기하고 싶은 아찔한 꿈. 니나 뒤에는 엄마 에리카가 있다. 전직 발레리나였던 에리카는 니나를 임신하자 발레를 그만둔 전력이 있다. 스물여덟 나이에.
우리에게는 에리카의 인생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 결혼은 했었는지, 미혼모였는지, 이혼을 했는지,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하지만 에리카가 니나에게 쏟는 혼신의 배려와 헤아리기 어려운 기대치는 이내 알 수 있다. 에리카에게 니나는 그녀가 존재하는 의미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들 모녀의 유대는 지나칠 만큼 견고하다.
나날이 성장하여 이제는 성숙한 여인이 된 니나. 하지만 에리카에게 니나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니나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한다. 한편으로는 절대적으로 기대고 싶은 엄마 에리카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꼭 벗어나고 싶은 귀찮고 지겨운 엄마 에리카가 있다. <블랙 스완>은 모순되는 엄마의 실체와 대결하는 어린 딸 니나의 갈등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니나의 방과 침대에는 수많은 인형이 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엄마는 자동인형이 돌아가는 음악을 들려준다. 어느 날 니나가 인형들을 쓰레기장에 버린다. 어린 소녀가 아니라, 성숙한 인격을 가진 여인으로 태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니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착한 딸이 아니다. 풍부한 의미와 상징을 내포한 잘 만들어진 장면이다.
베스와 니나 그리고 릴리와 니나
발레단의 예술 감독 토마스가 ‘공주 my little princess’라 부르는 여인이 있다. 베스다. 토마스와 연인관계를 맺어오면서 발레단의 얼굴이었던 베스. 이제 그녀는 작별의 시각을 맞는다. 모든 시작과 더불어 공존하는 끝이 다가온 것이다. 니나의 시작은 베스의 끝과 함께 한다. 언젠가 윤동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작이든 순탄치 않다. 모든 시작은 어렵고, 그래서 옛사람들은 ‘시작이 절반’이라고 말하곤 했다. 시작을 어렵게 하는 것은 니나의 순진무구다. 나이만큼 성숙하지 못한 자아와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는 바람, 치열한 사회관계에서 비켜나있는 니나. <블랙 스완>에서 사건의 중심은 그래서 니나의 일면성이 양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 맞춰진다.
니나와 경쟁관계이자 친구로 등장하는 릴리. 릴리의 삶은 니나와 확연히 대비된다. 소소한 규율을 어기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유분방한 섹스와 일상화된 마약복용, 알코올에 대한 탐닉. 니나에게는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를 파멸로 몰고 가는 흑조배역이 잘 어울린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니나의 흑조와 릴리의 백조가 서로 취약하다는 사실.
흑조를 연기하는 릴리를 질투하고, 릴리보다 완벽한 흑조를 연기하려는 니나의 거대한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다. 대형화재 현장에서 일어나는 시커먼 연기처럼. 니나의 욕망 앞에 기존의 세상과 인간관계는 그야말로 파탄 직전이다. 니나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다. 착하고 여렸던 니나에게 폭풍처럼 몰아닥친 강렬한 욕망 덩어리.
토마스와 니나: 예술 감독과 남녀관계
세간에 여자를 밝히는 인물이자 동시에 유능한 예술 감독으로 칭송받는 토마스. 그에게는 베스를 대신하여 발레단의 미래를 이어나갈 새얼굴이 필요하다. 그는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 배역을 연기할 발레리나를 공모하기에 이른다. 그가 보기에 니나는 나무랄 데 없이 백조를 연기한다. 니니가 백조와 상극인 흑조를 연기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성공과 명성, 시끌벅적하고 은성한 파티와 세상의 부러움을 온몸으로 즐기는 토마스. 니나의 연기를 보면서 그는 언제나 부족한 무엇을 본다. 그가 니나를 향해 던지는 말은 사태의 핵심을 찌른다.
“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야. 이제 그걸 보내줘야 할 때야.”
성공에 도취한 인간이든, 색마든, 무정한 예술 감독이든 토마스는 니나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찌른 것이다. 순수하되 미성숙하고, 욕망하되 주저하면서 나약하고 여린 자신의 세계에 오래 갇혀있던 니나를 일깨운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니나에게 잠들어있던 ‘여성성’ 혹은 섹스를 향한 욕망을 뒤흔들어 놓는다. 마치 흑조의 내면이 그러한 것처럼.
니나라고 육체적인 욕망이 없겠는가. 물에 떠있는 백조의 보이지 않는 발처럼 니나에게도 욕망은 잠재하고 있었다. 영화는 곳곳에서 그런 욕망의 폭발적인 분출을 보여준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니나의 실체가 저토록 잔인하고 선정적이며 공격적이었는가, 하고 혀를 찰 만큼. 이제 니나는 백조와 흑조, 선과 악, 순수와 비순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흑과 백, 그 영원한 모순과 대결
영화제목 <블랙 스완>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와 모순적이다. 기실 흑과 백은 태곳적부터 상호대립하고 충돌하면서 지금껏 존재해왔다. 가장 단순하고 위험한 논리를 우리는 흑백논리라 부른다. 등소평은 ‘흑묘백묘론’을 내세워 현대 중국경제의 초석을 놓았다. 바둑에서 두 진영은 흑과 백으로 갈린다. 순수와 비순수의 정점에 백과 흑은 서있다.
<레슬러>로 호평을 받았던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블랙 스완>에서 흑과 백의 대결뿐 아니라, 양자의 조화를 강조한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불충분한 인간세계와 예술의 본질을 제시한다. 세상은 순진무구로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격렬한 욕망과 치열한 의지 또한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생과 역사의 모순이자 통일의 변증법적 자장이다.
<블랙 스완>에서 호프만의 연기가 좋은 평가를 받은 까닭도 거기 있다. 여리고 순수한 영혼과 청초한 육신의 소유자 니나가 그것과 대립되는 세계로 다가서는 양상을 촘촘하고 사실적으로 연기하여 객석의 동의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본래적인 자아와 전혀 상반되는 모습의 또 다른 자아를 손에 잡힐 듯 그려냄은 재능 이상의 것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백조의 호수>에서 관객은 아름다운 동화 이상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아로노프스키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발레의 고전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와 친숙한 음악, 속도감 있는 연출로 새로이 선보인다. 그리고 인간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상호모순과 대립의 양상을 흑과 백의 대결과 통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글을 마치면서
<블랙 스완>에서 발레리나들은 ‘완벽’에 다가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베스가 그러하고, 니나 또한 그러하다. ‘완벽’을 추구함은 모든 예술가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벽은 불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그것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예술가들의 모습은 처연할 만큼 아름답고 숭고하다. 영화에서 니나의 최종목표도 완벽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완벽한 연기를 하고자 니나가 겪어야 했던 숱한 난관들은 니나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부숴라. 부수고 또 부수어라. 그리하면 완벽해질 것이니.”
<블랙 스완>은 낯선 형식의 스릴러다. 스릴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발레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앳되고 여린 발레리나가 강인하고 성숙한 발레리나로 커가는 성장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정신착란과 성적인 도착까지 경험하면서 마침내 완벽한 세계에 도달하는 예술가의 탄생을 그려낸 스릴러 영화가 <블랙 스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