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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답사
오늘은 집안시내를 하루 종일 답사하는 날이다. 어제 가이드로부터 외국인은 집안박물관을 볼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답사 출발전부터 집안박물관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었다. 집안박물관에 최근 환도산성에서 발견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많이 아쉬웠다. 박물관 2층에 오회분4호묘 복원전시물을 비롯해 다양한 고분벽화 모사도 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중국은 그들이 발견한 유물을 자기논리로 해석이 완전히 되지 않으면 공개하기를 꺼린다. 발해 3대 문왕은 부인인 효의왕후와, 9대 간왕의 부인인 순목왕후의 묘지명이 길림성 화룡시 용두산 고분군에서 2004년에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지금까지 묘지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집안시에서도 그와 같은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박물관을 가지 못하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오전에 환도산성과 산성하고분군을 충분히 보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했다. 그런데 예전의 홍콩홀리데인 호텔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호텔인력이 부족해진 상태인 모양이다. 호텔의 음식질이 너무 떨어졌다. 기대와 너무 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8시에 환도산성에 갔다. 목소리가 큰 중국인 안내원이 우리를 쫓아왔다. 하지만 가이드가 설명하지 못하게 할 뿐, 내가 설명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환도산성 안으로 들어가 음마지, 점장대, 수졸거주지, 왕궁터 등을 돌아보았다. 수졸거주지는 지키는 군사들의 거주지라기 보다는 장군들이 지휘소나 숙소일 가능성이 높다. 왕궁터는 예전에는 발굴된 결과와 지도를 안내판에 게시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어졌다. 발굴한 후에는 유적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주춧돌 정도로 발굴지 상황을 살펴야 한다. 이런 점이 아쉽다. 환도산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보다는 소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반면 환도산성 성벽은 예전에 비해 더 많이 재현해 놓았다. 다만 어설프게 재현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복원, 복구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궁전지까지 본 후, 남문쪽으로 내려와서, 환도산성 남벽 동쪽으로 올라갔다. 중간까지 가다가 올라가지 못하게 안내원이 소리를 쳤다. 2018년에는 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산성하 고분군을 조망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못 미치는 곳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성 아래로 산성하 고분군을 내려다 보는 조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동벽에서 다시 남문쪽으로 내려와, 환도산성 남서벽 쪽 앞에 우물을 보았다. 성문 앞에 우물이라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고구려 우물은 일반적으로 8각형인데, 이 우물도 8각형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고구려시대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의문점이 많다. 그리고 전에 보지 못했던 환도산성 남서벽을 성벽 가까이까지 가서 약 50m 거리를 걸으며 볼 수 있었다. 남서문까지 가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환도산성 답사의 아쉬움은 산성하고분군에서 풀었다.
대대적인 재현 공사를 해서 인지, 볼 것들이 많았다. 산성하고분군 끝까지 다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인총이 수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산성하고분군 가장 동쪽 고분들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소개해둔 점이 흥미로웠다. 작은 호석으로 에워싼 SM672호분은 매우 신기했다. 호석이 산성하고분군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글쎄 저렇게 작은 돌들이 무덤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겼다. 호석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SM675분도 특이했다. 무덤 앞면과 뒷면의 중간 부분이 뛰어나온 모양인데, 이런 모양의 무덤은 처음이다. 기단적석총을 일부 재현했는데, 누가보더라도 어색한 재현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엉성했다. 몇가지 흠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산성하 고분군을 정비한 것은 어쨌든 잘한 일이다.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몇 점 소개되기는 했는데, 실물을 박물관에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성하고분군 답사에서 가장 기억남은 것은 무덤 사이를 걷는 것이다. 이전에는 형무덤, 제무덤, 절천정묘, 귀갑총 사이를 걷는 길만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보다 동쪽에 위치한 중간크기 이하 고분 사이를 걸었다.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 내가 전에 했던 말이 딱 들어맞는 체험이었다.
3시간 넘게 환도산성과 산성하고분군을 너무 오래 걸었다. 일행 모두가 지쳐보였다.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지만, 다른 곳을 답사하지 않고 곧장 압록강 변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2017년에 한번 갔던 식당이다. 이곳에서 같이 갔던 일행의 생일잔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저녁 식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점심 식사였다. 이날 음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얇은 두부 요리였고, 나머지는 그럭저럭.
식사를 마치고 압록강변을 잠시 걸었다. 가이드가 북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1시 15분쯤 압록강 유람선을 탔다. 모터보트가 더 재미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짧다. 유람선은 시간은 길지만 재미는 별로 없다. 잠시 휴식한다는 느낌으로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북한 땅은 2017년과 2018년에 왔을 때보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은 것이 눈에 띄였다. 집안시에서 북한 땅을 자주 봐서 그런지 감정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조금은 냉정한 마음으로 북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며 유람선에서 시간을 보냈다.
유람선을 탄 후, 버스를 타고 집안시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칠성산 211호분 앞에 내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천추총을 통과해 서대총으로 향했다. 서대총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보다 가까이에서 찍기가 어려웠다. 서대총 옆면만을 보고, 간략히 해설한 후에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길에 천추총을 보았다. 길가에서 천추총을 사진을 찍고, 천추총 릉역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서 사진을 더 찍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서대총은 자세히 직고, 천추총은 제대로 사진을 못 찍었는데, 이번에는 천추총 사진을 더 많이 찍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북한 남포에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중국에 고게 되었는지, 북한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천추총을 본 후, 다시 차를 타고 우산하 3119호분을 향해 갔다. 우산 공원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걸어서, 우산하 3119호분을 만났다. 이 무덤에 온 것은 고분 앞쪽에 있는 석인상과 그 가슴팍에 새겨진 윷놀이판을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여기도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입장할 수 없게 막아놓았다. 그래서 원경만 찍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분들이 능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석인상과 가장 가까운 곳을 향해 풀숲을 헤치고 가기 시작했다. 나도 결국 그분들과 함께 석인상이 있는 바위를 찍었다. 물론 예전에 찍은 좋은 사진만을 못했다.
석인상을 본 후에, 버스를 타고 우산하 2110호분으로 향해갔다. 전에는 오회분 5호묘 관람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무덤 개방 자체를 금지시켰다. 무덤 내부에 벽화가 사람들의 출입으로 인한 습기로 심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전부터 5호묘에 들어가는 것이 늘 마음에 꺼렸는데, 이번에 아예 막아버렸으니 잘 한 일이다. 중국에서 무덤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고 벽화를 잘 관리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오회분 3, 4, 5호묘, 통구사신총, 우산하 2111호분이 있는 벽화 전시관 앞까지는 가지 않고, 이들 무덤과 가까이에 있는 왕릉급 무덤인 우산하 2110호분 앞에 버스를 정차시켰다. 무덤 위에 탑이 있는 우산하 2110호분의 사진을 찍고, 멀리서 오회분 5호묘 방면을 찍은 후, 오회분 2호묘 앞으로 가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 무덤은 발굴하면 분명 벽화가 나올만한 왕릉급 무덤이다. 4호묘, 5호묘보다 더 규모가 큰 2호묘는 발굴하지 발고 먼 훗날 후손들을 위해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이제 민주유적과 석주(돌기둥) 2개를 보러갈 차례다. 그런데 집안시 동쪽 일대가 개발되면서 민주유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위치는 짐작이 가는데 일대가 개발지에 포함된 듯하다. 석주라도 제대로 이전했으면 좋겠다. 본래는 새벽시장 구경과 함께 국내성을 돌아보려는 계획이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유명한 답사지인 태왕릉과 광개토태왕릉비, 장군총은 내일로 답사를 미뤄두었기에, 내일도 바쁘다. 아직 오후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국내성을 오늘 보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국내성 답사는 남동쪽 모서리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 바로 앞이다. 이곳에서부터 남벽을 보고, 다시 서벽, 북벽, 그리고 동벽을 따라 내려오다가, 국내성 중앙에 있는 고구려유지공원까지 답사하고, 어제 저녁을 먹었던 조선불고기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국내성 성벽은 2018년에 답사했을 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성문터와 치, 각루와 서쪽 성벽에 있는 배수구 등을 설명하면서 천천히 답사를 했다. 성벽을 오래 봐서 인가 내 눈길은 서쪽 성벽 바깥에 새롭게 조성된 시민공원에 쏠렸다. 국내성 서벽을 보호한다고 꽤 넓은 면적을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통로와 성벽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야외 탁구대, 게이트볼장, 앉을 수 있는 의자 등을 많이 설치해두었다. 탁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가이드의 말로는 중국에서 축구는 하는 사람이 적지만, 탁구는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중국이 괜히 탁구 세계 최강국이 아님을 집안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약 1시간 이상을 걷다 보니 일행분들이 모두 지쳤다. 한 분은 내가 조금만 더 걷게 했으면 포기하려 했다고 말씀도 하셨다. 아침에 환도산성과 산성하고분군을 답사하느라 지쳤고, 오후에 우산을 올라가 석인상을 보려고 시도했으니 그 또한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오늘 약 18,000보를 걸었다고 한 분이 이야기해주셨다. 고구려 유지 공원에서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식당으로 갔다. 저녁은 삼겹살이었다. 어제와 같은 조선불고기 식당이지만 메뉴는 달랐다.
오늘 집안박물관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호텔 내 방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여주겠다고 내가 약속을 했다. 여러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데, 나는 술을 자제해야 했다. 대신 저녁 밤 모임에서 먹을 맥주 10명, 콜라 8병, 과자 4개, 과일절임 2개를 모두 121위안에 구입했다. 콜라가 3위안, 한국돈으로 555원 정도다. 맥주도 3위안에서 4위안이다. 가격이 붙어있는 가게에서 구입하면 대단히 저렴하다. 식당에서 비싼 돈 내고 먹을 필요가 없다.
호텔에 돌아와 아내에게 전화한 후 몸을 씻고, 강의 준비를 했다. 가이드가 왔다가 종이컵을 사주고 갔다. 8시에 내 방에 모든 분들이 모였다. 먼저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답사를 가면 대개는 첫날 버스 안에서 답사팀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 소개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버스 안은 시끄럽고,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또 첫날 자기 소개를 하면 아직 어색해서 자기 소개가 대충 이름이나 직업, 참여 동기 정도로 그치고 만다. 그래서 이번에는 답사 2일째에 호텔방에서 자기 소개 시간을 갖기로 했던 것이다. 에스페란토어를 하시는 분이 2분이나 계셨고, 숲 해설사, 고등학교 역사선생님. 웹툰작가, 작곡가, 사업가, 학생, 종묘 해설사, 은퇴자, 직장인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계셨다. 1시간 가까이 자기 소개시간을 가진 후, 준비한 라면, 맥주, 콜라, 과자 등을 먹으며 조금 쉰 후, 9시 10분부터 10시 20분 정도까지 내가 고분벽화 강의를 했다. 집안박물관에서 보지 못한 고구려 문화의 정수인 고분벽화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흥미 진진하게 고분벽화 강의를 들어주었다. 오늘의 일정은 그것으로 끝. 하루가 길었지만, 내게는 이번 답사 가운데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특히 산성하고분군을 돌아다닌 시간은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방을 정리하고, 답사일기를 쓰고, 몇 가지 일을 마치고 나니 현지시간 01시. 몸은 피곤한데,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고구려에 대한 온갖 가설들이 떠올라 그걸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호렐 바깥에서 새벽시장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