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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즈음하면
꼭 한번 떠나보리라고
마음에 묵혀뒀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꺼내
때가 훨씬 지난
오늘을 날 잡아,
인류의 재앙을
예고라도 할 것처럼
끈질기고 지속적인
코로나19의
대 발병 위협으로 인한
인류 대 격변의
회오리바람 속으로부터
예기치 못했던
허용의 시각을 찾아서
삶의 일상과 위협에서 탈출,
집 나서는 순간부터
개고생이라는 진리를
잠시 접어둔 채,
홀가분히 그리고
작은 설렘과 기대를 안고
큰맘 먹고 집 나서
성큼성큼 길 떠나본다.
D-day(3월 9일/화)
이순의 삶을 회고해 보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속속들이
얽히고 기억된 추억을 더듬어
삶의 미로에서 숨은그림을 찾아
퍼즐을 맞추듯이
그 시절 그 인연들을 추억함과 더불어,
여건이 허락된다면 그 벗님들을 청해 만나
서로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세월 동안
치열하게 일구고 가꿔온 각자의 삶으로부터
그동안 겪고 쌓인 회포를 풀고 나누며,
공유한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난 이후의 삶과 현재의 삶을 꿰어맞춘
한 인간의 인생 완결판을 서로 마주해보는
교감과 공감의 시간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와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는 위안의 시간을
의도함과 더불어 먼저 가신 님들과
벗들을 함께 추억하고 추모하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고 변함없이 줄곧
오늘의 삶에 동반자로 곁을 지켜준
아내의 사랑과 노고에 미약하나마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시간을 계획하고,
어제 문구점을 찾아서 지도를 구매한 후,
등산복매장을 검색하여 멀리 도봉산 인근까지
전철로 이동 나름 한가로이 쇼핑을 즐기며
유쾌히 여행 감흥을 살린 후,
여행 이동수단 선택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끝내 SRT로 결정하고 좌석 예매를
해 놓았던 터라,
오늘 이른 이 아침 룰루랄라 아내를 앞세워
여행 가방을 가뿐히 멘 채
수서역을 향하여 벅찬 걸음을 재촉한다.
1
2
마침내 레일을 살며시 미끄러져 나가는
열차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만감이 교차함을 억누르지 못한 채,
밝은 아내의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며
저릿한 행복감을 경험한다.
열차가 이내 제 속도를 회복하자
뒷걸음질 치는 차창 밖 풍경이
더없이 평온하고 여유로히
생이 움트는 봄의 생동감으로
눈 안에 가득 차 가슴이 뻐근함을 느낀다.
좌석 예매 시 안쪽 선택 부주의로
창 측을 내주고 통로를 낀
안쪽에 서로 나뉘어 앉게 되었음이
못내 불편하였지만,
대전을 지나자 곧바로
나의 옆 창 측이 빈자리가 되어
아내가 자리 이동을 함으로써
함께 자리해 앉음이
또 하나의 작고 짧은 반가움이 되고,
그마저도 잠시
수서를 출발한 지 2시간 반여 만에
부산역 플랫폼에 사뿐히 도착을 알리며
스르르 멈추어 선다.
느긋하게 개찰구를 빠져나와
부산역 앞을 성큼성큼 차도 변 가까이 걸어 나와
뒤돌아 부산역 건물을 정면하고 마주 바라보자
수 세월이 금방 눈앞에 아스라이 펼쳐지며 문득
그때 그 이름 손형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르며,
불현듯이 가슴이 울컥 눈시울이 시큰거림을
주체하지 못한다.
여기던가 저기런가? 꿈속같이 아련한
쌍팔년도 전, 후 시절,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우연찮은 인연에
귀신에 홀린 것처럼 가까워져
서로를 한 몸같이 의지하며
밧줄에 매달려 삶을 지탱하고
서로에게 목숨을 맡겨둔 채
로프 타기를 주저하지 않았었으며.
86아시안게임 및 88올림픽 홍보 육교현판을
제작, 화공, 설치를 비롯하여
서울, 인천 등 백화점 대형 현수막을 거래처
옥상을 빌려 화공한 후 직접 설치한 추억을 포함하여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연말연시 프로젝트사업이었던
건물 외벽 논네온 설치와 내외부 갤럭시 조명
설치 공사를 연 4년간을 둘이서 도맡아
시공 전담하기도 하였고,
서울을 시작으로 대전, 대구, 구미를 거쳐
부산, 진주 순천에 이르기까지
옥상 빌보드 화공과 경남은행 셔터 로고 작업을
버스와 택시에 의존 현장 이동하며
여인숙을 전전하고 빌딩 옥상을 삶의 터전 삼아
한 달 보름여 동안씩 객지를 떠돌던
그 절박하고 소박했던 시절 어느 한때,
이른 새벽 서울역에서 통일호 급행열차를 타고 출발
부산역에 내려서 현장을 찾아가기 위한
택시를 기다리던 중
바로 여기 어딘가에서 잠시 폼 잡고 나란히
기념촬영을 했던 기억과 함께,
3(손형)
무엇이 그리도 바빠 좋은 시절 한번
즐겨보지도 못하고 인생의 멋과 맛을
실감하지도 못했을 환갑도 전에
맘껏 곡해줄 상주도 없는 채로
그렇게 허망하고 가련하게 이 세상을 떠야만 했는지?
그저 가슴이 쓰리고 먹먹함을 감추지 못한다.
문득 이따금 부득이한 로프 작업을 필요로 하는
현장작업 시 손형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에
마음이 허전하고 가슴이 뭉클함을 어쩌지 못해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형!!~
잘 있는거여!!?”
“거기에선 몸 편하고
맘 또한 편하신가?”
“설마 거기서도
옥상을 전전하며
밧줄 타는 노릇을 하는 건
아니시것제?”
혼자서 중얼대며
쓴웃음을 짓곤 하는 사람,
내 삶의 애환 속에 한 자락을 차지하여
죽어서도 여태 떠나보내지 못하는
내 인생의 동업자
손형!!~
그대는 비록 왜소한 체격에
잘나고 멋져 보이진 않았을지라도
나의 삶에 있어 한동안
가장 크고 소중한 나의 벗이자
삶의 동반자였다는 사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음을
손형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 동안 식당을 찾아 헤맨 끝
어느 2층 한식 전문집 창 측 가까운 식탁에 앉아
생선구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서빙하시는 사장님(?)께 근처 볼거리를 추천받아
느긋하게 아점을 마친 후,
14시에 열린다는 영도다리 도개장면을 보기로 하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주변 인근의 부산항을
휘돌아보는 중,
문득 기억도 아스라한 1996년 어느 세월 모퉁이
11월에서 12월쯤 였으리라
새 차(화물차)를 구입한 지 채 석 달도 되지
않았을 무렵, 축협 현금지급기 간판을
제작해 싣고 다대포지점을 찾아가는 길에
어찌나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비바람까지
휘몰아치던지 장시간 운전과 함께
초행길 잔뜩 긴장으로 예상시간을 훨씬 지나
어둠까지 짙어진 상황에서 잠깐 길을 잃고
아차 하는 순간에 제1항 부두 인근 세관 앞
신호를 기다리고 정차 중인 대형 트레일러
뒷부분을 브레이크도 밟아보지 못한 채
정면으로 들이받고 멈추자
앞 유리는 깨져서 파편 나기 일보 직전이고,
운전석 문은 찌그러져 열리지도 않았으며
가슴에 부딪힌 핸들은 휘어진 채,
동작 불능인 상태에서 다행히 옆 동석한
임형(수진아빠)과 나의 무릎 직전까지
충격이 미쳤으나 가슴 부위에 미미한 통증 외에
직접적인 신체적 충격은 미미한듯하여
조수석 문을 겨우 열고 간신이 빠져나와
어렵게 어렵게 사태를 수습한 후,
차량을 겨우겨우 밀어내 인도 가까이 세워두고
천만다행으로 매제를 통해 부산 현지에 사셨던
일곤 형(사둔)의 도움을 받아
간판을 옮겨 싣고 다대포 축협 현장 인근으로
이동하여 숙소를 정하고 안정을 취한 후,
다음 날 아침 다대포 축협(신축) 현장을 찾아서
시공 및 외부 유리 이미지 싸인 작업을 모두
완료하고 나서 다시 사고현장을 찾은 다음,
처참히 일그러진 트럭을 오가는 지게차를 섭외하여
미리 대기 중이던 더 큰 트럭에 내 트럭을
번쩍 들어 올려 겨우 싣고 묶은 후에,
차바퀴 흔적만을 제외한 눈 어름 빙판 고속도로를
엉금엉금 헤치며 올라와
겨우겨우 매제의 이천 공장으로 입고를
시키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 당시 매제(종주아빠)와
일곤 형(사돈)과 임형의 도움으로
아찔했던 위기의 순간을 아슬아슬 넘을 수 있었던
그 감사를 다시 떠올려 기억하며
그들의 은혜에 다시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아내한테도 그 당시 기억을 상기시키며
그 당시 거기가 바로 여기 어디 근처일 것이라
공사 중으로 가림막이 설치된 부산항 제일부두(세관 인근)
근처를 서성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로 인한 부산의 불편한 기억이
SRT를 선택하게 한 중요 이유가 되기도 하였지만,
2시가 가까워짐에 따라 영도대교를 찾아가는 길에,
티맵 길 찾기 착각으로 잠시 길을 놓친 바람에
계획 밖의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까지 엉겁결에 헤매다,
4자갈치시장
겨우 목적한 방향을 찾아 바쁜 걸음을 재촉한 끝에
간신이 도개 시간을 살짝 지나 영도대교 앞에 무사 도착,
장관을 연출하는 영도대교의 열림에 이리저리
방향을 옮겨가며 그 장엄한 순간을 빠짐없이
포착하기 위해 폰 카메라를 눌러대다가
동영상까지 담는다. 아내도 뒤따라 오며
굳이 뭘 보려느냐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이더니
막상 그 장엄함 앞에선 놀라 기가 죽은 듯
꼼짝을 못 하고 멈춰 서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지켜본다.
5,6영도대교
최고 정점까지 들어 올려졌다가 다시 닫히는 중간에
잠시 티맵의 지역 검색으로 인근을 살펴보니
영도다리를 건너 먼 끝에 태종대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
대중교통 편을 검색하고 영도대교가 정상화 되기 바삐
버스를 골라 타고 태종대를 향해 간다.
나의 형님께서 부산의 어느 양복점에 입문,
양복 기술을 배우시겠다는 열망으로
잠시 객지 생활에 열중하고 계심을 기회로
군대 가기 전 구경삼아 한번 다녀가라시는
말씀을 거부치 못하여 부산에 왔었는데,
그 당시 햇빛 곱고 철쭉꽃 예쁜 어느 봄날,
태종대 입구 어느 언덕 화단 앞에서 형과 둘이서
사진을 찍었던 그 기억이 문득 떠올라
태종대를 가보고 싶은 생각이 더 불쑥 마음을
이끌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수 세월을 거슬러
그 아련한 추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동안,
40~50분 달려간 버스노선의 끝 그 종점에 이르러
저만치 세월 묵은 태종대의 표지석을 발견하고
비로소 여기가 태종대임을 미뤄 짐작할 뿐,
7형(태종대)
7
예전의 형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그 장소는
도무지 낯설어 짐작도 불가할 정도의 생면 함과
날씨마저 싸늘하고 바람까지 거센 데다 1년여 동안
코로나19까지 똬리를 틀고 눌어붙어 있었을 터이니,
무슨 재주로 그 당시를 회상하고 무슨 수로
그때 그 자리를 기억해 낼 수 있겠으며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던 그 태종대의 명성은
또 어디에서 찾으랴?
당시의 추억과 기억을 돌이켜보기에
다소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애써 기억을 더듬으며 여기 어디쯤이었겠지?
아니 저긴가? 안간힘을 써 그때를 기억해내며
아내를 그 어디쯤 세워 멋스럽게 뽐내게 하여
폰 사진을 몇 컷 하고 매표소를 찾아 올라가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우리 형 참 든든하고
멋지셨는데~~, 울 아부지 같으신 위엄에 정 많으시고
의리 강하시며 아버지 안 계신 우리 집 우리 어머니의
가장 큰 믿음, 가장 확고한 희망이자 나의 가장 든든한
빽이셨으며, 우리 황씨가문 종갓집의 장손이자
기둥이셨으니 그 당시는 물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신 삶이 얼마나 무겁고 고단하셨을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셨을지?
그 어린 나이에 장자로서 느껴야 할 몫이 얼마나
막중하고 고독한 길이셨을지?
그나마 적잖은 혜택을 누리며 아동기와 청년기를 살아온
나로서는 짐작도 하기 어려울 형님의 삶에
그저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 당시 부산에서 형과 함께한 그 시간을 통해
형님의 존재감에 큰 위안과 믿음을 얻어
수색대 군생활을 무탈히 마칠 수 있었음이
많은 감사 중 또 하나의 감사함으로 가슴 깊이
자리해 있음을 다시 일깨우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신 울 형님을 나 또한 변함없이
여전히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
새로히 간직하며,
잔뜩 움츠린 아내께
차마 전망대까지 도보하자는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을 처진데,
화장실을 잠시 다녀오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일정 구간을 순회하는
다누비열차가 대기 중임을 알고
아내가 먼저 승차권을 구입해야 한다며
매표소를 가리키는 바람에,
흔쾌히 승락하고 재빨리 승차권(성인 1인3천원)을
구입하여 잠시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가
8다누비
빈자리가 많은 채 여유롭게 출발하는
열차에 훌쩍 올라타 느릿느릿 이동하는
속도에 맞춰 전망대에 이를 때까지
태종대의 구간여행을 맘껏 즐기다
목적지에서 하차한 후,
9전망대
태종대 포토존마다 조망을 눈에 담으며
저 멀리 오륙도까지 가슴과 폰카메라에 담고 나서야
근처의 이 곳 저 곳에 꽃잎을 벌린
목련꽃을 쫓아 한참을 걸어 봄의 정취를 만끽하다가
10목련
멀지 않은 곳에 태종사가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발견한 아내가 손짓하며 저기까지 가보자는 아내의
청을 받들어 거센 바람을 마주한 채 태종사를 찾아가
합장하고 머리 숙여 부처님 전에 예 올린 후
물러나,
11태종사
다시 다누비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을 피해 등지며 잔뜩 움츠린 채
오늘 부산 투어는 여기서 마치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뜻에 따라
재빨리 버스 노선을 검색하고
일단 종점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승차
이동하며 환승을 거쳐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부산비치호텔에 무사 체크인하다.
12호텔
입실을 마치고 안정을 회복한 후
아내께 다 말하지 못한 오늘 밤의 계획,
부산에서 삶을 일군 벗님 성만, 주영
영만군의 세 벗님 상봉 계획을
조심스레 꺼내 이야기하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이 어려운 시국에 굳이 그들을 불러내
불편과 부담을 자초하려고 하느냐 난색을 표하는
아내께 차마 더 이상은 고집을 부려볼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계획을 완전 축소하여
사촌 형제인 영만아우와 제수씨께만
연락을 취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사정하고 어렵게 이해를 구한 끝에,
영만아우의 영업시간을 고려
조심스럽게 통화를 시도한다.
금방 알아보는 반가운 음성과
무슨 일이냐며 반색하는 아우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제수씨랑 함께 시간이 괜찮으면 그쪽으로 갈테니
주소를 좀 알려줬음 좋겠다고 말하자
무슨 소리냐며 코로나시국이라 영업 마칠 시간도 임박했고,
길이 익숙치 않을테니 아우께서 금방 찾아오겠다며
오히려 내 현위치를 묻는다.
그러면서 아우와 제수씨는 영업시간 상 저녁 식사를 했으니
먼저 식사부터 하라는 당부와 금방 가겠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전화를 뚝 끊는다.
딱히 이찌해 볼 수 없는 형편이라
아내와 함께 주변 산책에 나서며 음식점을 찾아보는데,
호 메뉴로는 영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는 아내의
취향을 받잡고 한정식 전문점을 찾아 나서 보지만
영 여의치가 않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불켜진 곳 만을 기웃거리며
윈도 안을 살펴보지만 시국도 시국이려니와
워낙 외지고 인적 드문 곳인 데다
우리 입맛에 음식을 넣어줄 식당을 찾기란
밤을 새기 전 어려울 듯 싶은데,
선뜻 눈에 들어오는 중화요리 집
간판을 발견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아내가 팔을 이끌며 먼저 성큼성큼 다가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 영업 중임을 확인한 후,
내부를 둘러보며 메뉴를 살펴서
주문을 마치고 벽면에 붙은 광고물을
이리저리 유심히 살피다 보니
그나마 유명 맛집은 아니지만
나름 역사와 전통을 고집하는
뼈대 있는 중화요리 집 이라는 사실을
인지함과 함께 곧 식탁위에 차려지는
메뉴 요리에서 그 맛을 실감하며,
아내와 행복한 미소로 다행임을 공감
그동안 소비한 시간에 보상받은 셈 치며
즐겁고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유쾌한 기분이 되어 차이나 레스토랑을 나온다.
몇 번의 위치 확인 전화 통화 끝에
영만아우와 제수씨의 반가운 상봉을
시작으로 곧장 아우께서 잘 아는
어느 식당으로 예약을 할 것이라며
어서 가자는 아우의 이끔을 어렵게 만류하고,
코로나 시국과 늦은 시간을 고려하여
아까운 시간도 절감할 겸 숙소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든가 아님 호텔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자 아우께서도
금방 상황을 이해하고 두리번거리더니
호텔 바로 옆 2층 구이 전문점으로 성큼 들어가
영업시간을 확인함과 동시 다시 아래층
횟집으로 내려가 횟감 안주를 주문 배달 요청하고
다시 2층으로 올라와 주방 쪽에 메뉴를 물어
일사천리로 구이 안주에 술까지 주문을 마치고
원탁으로 다가와 앉는 아우의 유쾌한 표정을 바라보며,
덩달아 유쾌해진 기분으로 그동안 가족과 주변의
안부를 서로 묻고 나누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
술잔에 술과 음료수를 채워 반가움과 기쁨에 공감하며
건배를 올려 이 순간을 자축하고,
먼저
이렇게 달려와 준 아우와 제수씨께
감사한 우리 마음을 전하며
이렇게 연락을 하게 된 이유와 함께
우리의 여행 계획을 설명하고
나의 소회를 이야기함과 함께
가능하다면 아우의 차이나레스토랑에
아내와 함께 1일 도우미를 자청해
체험해 보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과
내가 살아온 삶과 아우께서 살아온 삶을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격려하는 시간을 통하여
그동안 쉽지 않았을 세월에
서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싶었음을 밝히며,
특히
우리의 먼 추억 속 그 어린 나이에
돈을 벌겠다는 의지로 생면부지의 땅
부산으로 진출하여 공장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객지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견뎌내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터전을 마련하여 자신의 삶과 영역을 개척해
차이나레스토랑을 창업함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지역 체육회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근간엔
제수씨까지 함께 나서 음식 나눔 행사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는 선행으로 이웃과 사회간에
모범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한 강단 있고 의리 있는
훌륭한 아우,
우리 가문의 선산에 벌초하는 날이면
영업을 전폐하고 온갖 해산물을
바리바리 챙겨와 형제간의 우애를
북돋는데 조금도 아낌이 없는 아우와
제수씨였기에,
이 기회 이 시간을 통해
감사하고 칭찬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집사람(형수)의 극구 만류함을 겨우 이해시켜
아우와 제수씨께만 연락을 하게 되었다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이자 오히려 손사래를 치며
그 감사한 마음을 우리에게 되돌리려는
겸손함에 더해 만약 소리소문 없이
살짝 왔다가 갔다는 소문을 이후 듣게 된다면
크게 서운하고 배신감까지 느꼈을 것이라며
천만 다행이라는 듯, 얼마나 기쁘고 반갑고
기분 좋은 만남이냐며 거듭 잔을 부딪쳐
건배를 올리며 함께 공히 감사와
상호 존중하는 마음으로 충만된 채
시간 깊은 줄 모른다.
장어구이집 사장님의 영업시간 초과를
알리며 사정을 해 오실 때까지
우린 그렇게 서로 위하고 서로 감사하며
형제애 동기간 사랑에 흠뻑 취해
밤새는 줄 몰랐다.
대리기사님의 수고를 빌러
돌아가는 아우 내외를 배웅하고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며
성만친구와 주영친구도 이 부산 어딘가에
함께 있음을 기억하며 그들과 공유한 추억을
되살리며 하루를 접는다.
D+1(3월 10일/수)
침대에 누워 일출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며,
13일출
아내께 오늘 일정을 설명하고
느긋하게 첵크아웃을 마치고 나와(08:30)
버스를 타고 이동, 자갈치시장에서 하차,
조반 타임이 다소 좀 이른 시각이라
영업 중인 식당이 드물 거란 판단으로
멀지 않은 곳에 용두산공원이 있음을 파악
시간도 좀 벌 겸, 용두산 공원을 투어하고
내려와 조반을 하자는 의견 일치로
티맵 안내를 쫓다가 막히면 행인을 붙들고
방향을 물어가며 용두산 공원 후문 쪽을 공략,
어렵게 어렵게 찾아 들어간 방향이
곧바로 부산타워 전망대 입구에 당도하였으나
14용두산공원
곳곳에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중단임을
알리는 현수막 들만 너절하게 나붙은 채
그야말로 인적 하나 없는 유령공원처럼
힘들어 꾸역꾸역 올라온 수고가
아까울 만큼 그 자태마저 을씨년스럽고
이 시국에 관광에 나선 우리가 오히려
민폐가 된 듯한 뻘쭘함에 서둘러 내려오며
다시 국제시장 방향의 깡통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여 어렵잖게
목표지점에 입성, 어묵거리를 활보하며
아내 왈, 부산하면 어묵, 어묵이라면
범표어묵이라고 딸아이가 이야기했다며
굳이 그곳을 찾아 구입, 포장 택배 발송하고,
유명 맛집을 자랑하며 호객하는 이끌림에
슬며시 팔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
차림표를 살며시 아내께 맡기고 눈길을 보내자
밀면과 튀김, 떡볶이를 주문하며 다시 내미는
차림표에 김밥과 어묵을 더 얹어 주문을 마친 후,
음식이 나오는 동안, 오늘 투어 계획을
잠시 아내께 설명하며 컨디션을 살핀다.
15어묵
어젠 날씨가 쌀쌀하여 투어에 다소 좀
활기가 덜 했지만,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서
훨씬 다니기 좋다며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러한 아내를 바라보며 익숙지 않은 길을
끌고 다니며 때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불편과 짜증스러움을 내색하지 않고
그저 믿고 고분고분 따라와 주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가운데,
음식이 제법 많은 양이었지만 남김없이
맛있고 푸짐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자갈치시장 역에서 1시간 10여 분 거리 종착역
부산의 서쪽 끝단 다대포해수욕장 역을
목적하고 자갈치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어제오늘의 부산 투어에 있어서
대중교통 이동수단의 편리함과
특히 서울에서 사용하는 교통카드로
부산의 버스나 지하철을 자유자재로
승차할 수 있음을 매우 만족해하며
아내와 부산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동안,
잠시 후 바람을 밀치며 달려와
스르르 멈추고 문이 열리는 지하철에
훌쩍 올라 서울의 전철보다는 폭이
약간 좁아 마주 앉은 정면의 승객과
눈 맞춤이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
부산 시민의 조금은 낯선 지하철
정서에 적응해보려고 애를 쓰며
다대포해수욕장 역을 향해 몸을 맡긴다.
다대포에서 투어를 마치고,
거제로 가려면 다시 반대편 끝 지점
노포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지하철 이동 시간만 무려 2시간 반,
광안리와 해운대를 투어 하자면
오늘도 또한 부산에서 숙박해야만
시간이 여유로울 것 같아 고민하며
검색을 거듭하는 동안,
어느덧 전철은 다대포해수욕장을
한 정거장 남겨두고 다대포 역에 이르러
거의 모든 승객이 일어나 하차를 서둔다.
우리 또한 이 시기에 굳이 해수욕장을
가봐야만 할 이유가 없으므로
아내를 눈짓해 밖으로 나와 지하철역을
빠져나온다.
살며시 아내의 손을 잡아 이끌며
마주치는 행인께 항으로 가는 길을 물어
다대포항에 도착하자
평소 우리가 봐왔던 배와는
그 규모부터가 다른 엄청난 크기의
고깃배로부터 하역작업을 하는
많은 사람의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고등어가 담긴 하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가
그 수를 어림할 수조차 없이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고 실려 나가기도 하며
분주한 현장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16,
16-2
발걸음 가는 대로 걷다 보니 항을 뒤로하고
올망졸망 천막형 임시 건물 사이에 통로를 둔 채
양쪽으로 수산물 시장이 즐비한 거리에
활어 및 해산물이 그야말로 없는 것 빼놓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살아서 팔딱거리는
싱싱함의 그 자체를 유지한 채
오가는 손님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거의 1m가 넘어 보이는 갈치 한 마리가
5만 원이라니 대여섯 명이 조려 먹고 구워 먹고
찜을 먹는다 해도 족히 남을 만큼
어마어마함을 자랑하며,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골목 끝까지 활어쇼핑을 마치고
다시 지하철역을 찾아서 가며
습관처럼 티맵을 검색하는 중에,
가까이 신평역 근처에 신평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음을 발견 거기서 거제 장승포까지
한 시간 정도 거리면 족하고
버스도 한 시간 간격임을 확인,
아내께 급히 설명하며 그럴 경우
광안리와 해운대 투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전하자 아내는 언젠가
예식장에 왔다가 광안리 해수욕장을
가본 적이 있다며 매우 잘 됐다는 듯이
곧바로 거제행을 찬성함에 따라
황급히 지하철역으로 복귀
신평역으로 향한다.
다섯 정거장째 신평역에서 하차,
티맵 상에서는 바로 근처임이 확실한데
신평 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아가는 길이
순조롭지 않을뿐더러 행인들게 여쭤도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찾아낸 곳은
전혀 시외버스 터미널 같잖은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버스표를
구매할 수 있는 간이 버스 정거장이었던 것,
16-3버스표
30여 분 후쯤 도착 예정이라는
버스 승차권을 구입,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거제행 버스에 오른다.
(11일 13시 45분)
부산이여~ 안녕!!~
또 다른 기대와 설렘 속에
봄바람을 가르며 엔진소리를 드높이는
버스의 차창 밖을 바라보며
미지의 거제에 있을(확실치는 않지만)
고향 어릴적 아우이자
처가 촌수로는 형님 벌이신 강주님을 떠올린다.
아직은 영혼이 맑고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초등학교 시절였으리라.
유난히 배구를 잘해서 당시
체육 특기 선생님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아 체육 특기생으로 육성되는
과정의 시기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인기와
기대를 갖게했던 아우,
서예에 소질이 있었던 나와 두 살 연하이지만
친구처럼 서로의 재능과 취미를 자랑하며,
먼 미래에 최고가 되고자 한 꿈으로
나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 친분을 이어가다
여러 아우들과 함께 읍내 학교 졸업장까지 찾아와
졸업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고
홀연히 사라진 그 이후,
서로의 넉넉잖은 가정 형편에 따라
군대 및 객지 등지로 제각각
삶의 길을 찾아 떠나며 소원해진 이래,
가끔 경조사에서 잠시 만나거나
설 명절 마을 공동세배에 참석 시
그저 잠시 만나는 시간으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눴을 뿐,
주변에 전하여진 소식에 의해
공기업에 취업하여 경남권역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며 마을 어르신들
여행길을 매 번 찾아 정성껏 대접하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는 훈훈한 소식과,
볼 때면 늘 꼭 한번 시간 내서 내려와
함께 회포를 풀어보자는 속마음을
비춰주곤 하던 강주님을
이 기회에 꼭 만나 그 청에 답하고,
끊겼던 이후의 삶과 이전의 추억을
되살려 이야기 나누며
공감과 공유의 시간을 통한
퍼즐 맞추기를 즐겨보리라는
기대감으로 설레는 마음을
한껏 부풀려 가는데 어느덧 버스는
옥포항 인근에서 잠시 멈춰 승객 몇몇을 내린 후,
꼬불꼬불 종착지를 달려가는 창 넘어로
가늠할 수 조차도 없을 만큼 거대한
배들이 빼곡이 귀를 맞대고
바다 수면을 온통 뱃몸으로 가린 채 건조 중인 듯,
거제 옥포조선소의 위용을 여지 없이 드러내 보이며
가히 독보적인 최 선진 조선 축조 국임을 족히
뽐내고도 남을 만큼 버스 행로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15분여를 달린 끝에 최종 종착지 장승포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그 시동을 멈춘다.
낯선 땅 낯선거리 부산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가용이 아니면 무조건 걷거나
택시 교통수단을 이용치 않고서는
이동이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에 놓였음에
당혹해 하며 일단 물어물어 장승포항을 찾아간다.
십수분 후 장승포항에 이르러
제주도의 유채꽃만큼은 아닐지라도
동백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동경의 섬여행을 꿈꾸며
여객선 시간표를 살피는 중,
17장승포항
장승포에서 지심도 가는 시간대에
임박해 있음을 파악 매표소에 문의하자
들어가는 배편이 막 배여서 나오는 배가
없다는 안내와 함께 지심도에서 숙박하고
내일 나와야 한다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코로나 시국이라 지심도에 숙박 여건이
괜찮을 것이라는 귀띔까지 해주시는 친절에
잠시 판단을 보류한 채 아내께 설명하고
지심도에 숙박지 검색을 급히 하며
몇 곳에 숙박 비용을 문의하였으나
상상외로 만만찮음에 난감해 하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일단 여기 인근 전망 좋은 비치호텔에
예약을 했던 터라 시간이 허용된다면
입실을 먼저 하여 여행 소지품을 두고
잠시 쉬었다 일정에 맞추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 호텔에 문의 체크인 후,
시설은 좀 누추하지만 빼어난 전망을 대신해
만족하며 짐 정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온다.
거제에 가면 바람의 언덕을 꼭 보고 오랬다는
아들 녀석의 추천이 있었다며 그곳에 가면
핫바 맛이 끝내준다며 그 맛을 꼭
보고 오라며 용돈까지 주더라는 말에 급히 호응하며
바람의 언덕을 검색하자 근처 인근 버스정류장을
거쳐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 어디쯤에서
환승을 하면 가 볼 수 있는 거리여서
빠르게 버스 정류소로 이동한 후,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좀처럼 버스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정황상 하는 수 없이
바람의 언덕 행을 포기하고
내일 아침 첫 목적지로 미뤄둔 채
일찍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변경 후,
아내께 땡기는 메뉴를 말해보라는데
정류소 저만치 갈비 전문점을 가리키며
고기가 먹고 싶다는 듯 눈길을 보낸다.
꽤 규모가 크고 갈비 전문점으로서의
역사와 품격을 가늠할 수 있어 보이는
외관에 끌려 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가
대번 감이 잡히는 실내 분위기에 만족하며
안내하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마치고
여유 있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연달아 차려지는 차림 상과
기대 이상의 서비스 등에 적잖게 만족하며
풍미를 만끽하고 넉넉하고 여유롭게 밖으로 나오니
잔뜩 흐린 날씨가 비를 부를 것처럼 불투명하다.
우린 개의치 않으며 포만감을 해소코자
천천히 걸어서 호텔 정문을 지나 오솔길 예쁜
산책로를 따라 시야가 확 트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차도 변 팔각 전망대에서 멈춰
어둠이 내리는 장승포항을 내려다보며
여행의 기쁨과 거제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18장승포전경
D+2(3월 11일/목)
07:30
밤새 빗소리를 들으며
너무 많이 내리지 않기만을 바랐었는데
숙소를 나오자 우산 없이는 도저히 밖으로 나서지
못할 정도의 비가 금방 그치지도 않을 상으로
우리 앞을 떡 가로막는다.
앞서나가던 아내는 비상용으로 챙겼던
접이 용 우산을 미리서 꺼내 나가고,
둘이 함께 쓰기엔 너무 우산이 작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호텔 내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우산이 세워져 있음을 발견하고
식당 안을 살펴보지만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전혀 인기척이 없다.
다시 우산을 들고 계산대로 올라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
우산을 펴서 든 채 밖으로 나와
주택가 슈퍼까지 걸어 나온 후 우산을
하나 더 구입하고 나서, 호텔엔 자초지종과
죄송함 그리고 계좌를 주시면 우산 대금을
지급(송금)하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우산을 받쳐 든 채 영업 중인 음식점을 찾아 나선다.
한참을 헤맨 끝에
24시간 영업 중인 해장국 전문점을 발견
선택의 여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뼈 해장국으로 주문을 넣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오늘의 일정에 관해 아내께 설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들려져 나오는 메뉴에
든든히 곡기를 채우고 어제의 버스정류장을
찾아가는 동안 역시나 차가 없는 불편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또한
한참을 기다렸으나 역시 어제처럼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는 아예
올 생각조차도 없는 분위기가 길게 감지되고,
하는 수 없어 오가는 택시에 눈길을 보내며
아내께 싸인을 보내자 아내도 지쳤는지
마지못한 표정으로 수긍하는 눈짓에
곧바로 지나는 택시를 세워 올라타고
바람의 언덕이라 행선지를 급히 말하며
소요시간을 묻자 대략 30~40분이라는
대답과 함께 여행 중이냐 되물으시고는
기사님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간다.
차츰 빗방울은 굵어지고
몰아치는 바람까지 만만치가 않으니
가는 길은 더디고 시간은 점점 길게만 느껴진다.
그나마 30여 분을 이동하는 동안 마치
섬여행의 가이드처럼 친절하고 자상히
거제의 추천 여행지 및 섬여행 출발항에 대한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사이
마침내 도착한 바람의 언덕을 올라가기 위한
정착지 도장포 항에 도착하자 그야말로
인적이라곤 느껴볼 수조차도 없는
비바람 몰아치는 항구에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걱정스럽다는 듯 지켜보시며
우리가 내리는 것을 기다려,
바람의 언덕을 갔다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샛길까지 친절히 알려주시면서 그 정류장에서
고현 터미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라는 유용한 정보까지 알려주시고
유유히 빗속으로 사라져 가시고,
우린 그야말로 인적 하나 없는
도장포 주차장에 둘만 덩그러니
몰아치는 비바람을 우산으로 겨우 막아내며
바람의 언덕을 향해 청승스러운 산행을 시작한다.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아내를 미안스레 손 내밀어 이끌고
10여 분 언덕을 올라서 보니 비바람 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뽐내듯 우뚝 선 거대한 풍차가 을씨년스러울 만큼
외롭게 고독히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 수면엔 파도가
흰 거품을 문 채 달려오다 사라지고
다시 일어나 달려오다 또 사라지는
바람에 몸살을 앓듯 혼란스러운 바다에
씁쓰레한 눈길을 보내는 아내를
손짓해 풍차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 동안 언덕 위로부터
계단을 내려오는 일행과 마주치며
서로 반갑다는 듯이 사진을 번갈아 찍고,
그 일행이 다녀온다는 전망대를 향해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결국은 또
등산 아닌 등산이 되고 만다.
19
인적 하나 없는 산에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아내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더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가까운 저만치 팔각정이 있음을 발견하고
저기서 잠깐 비도 갤 겸 쉬었다
그냥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아내를 달래 이끌며 팔각정에서 잠시 올랐다
선 채 그냥 내려와 급히 도장포 항으로
다시 돌아오니 더 거세진 폭풍성 비바람이
항을 휩쓸어갈 듯한 공포로 다가오며
핫바는 언감생심 내 몸 하나 가누기
버거울 정도의 위기감에 한시바삐
항으로부터 대피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
와중에도 택시 기사님께서 일러주신
버스정류장 가는 길을 용케 기억하고
비탈진 오솔길을 숨 가삐 오르고 또 오른 끝에
겨우 민가와 편의점이 있는
마을 앞에 도착하여 편의점으로 들어가
버스 통행 여부를 확인하고,
통행 버스도 드물뿐더러 날씨가 이러하니
확실히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밖을 가르치며 저기가 버스 타는 타는 곳이라
조금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
하는 수 없어 밖으로 나와 버스 타는 곳으로 이동
젖은 몸을 추스르며 차가 오가는 도로에
시선을 붙박이 한 채 시간이 죽기만을
기다려보는데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비가 안에까지 들이치는 간이정거장에서
언제 올 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 둘의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고 짜증스러움에
노독이 가중되는 시간과 싸움에서
몸살을 앓는다.
다시 한번 차를 갖고 오지 않았음에 대한
뼈저린 대가를 혹독히 치르며,
얼마를 그야말로 추위에 몸을 벌벌 떨다
마을 분인 듯한 아주머니의 출현으로
버스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한 시간 반여 동안을 기다린 끝에
천만다행으로 고현까지 운행하는
버스에 승차하고 나서야
(12:40)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기다림과 비에 젖어 핼쓱해 진
아내를 바라보며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숨기지 못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한 시간여 동안
비가 내리는 연초록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추위와 기다림으로부터 생겨난
꿉꿉한 마음을 조금씩 털어내는 동안
비로소 고현 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한다.
서둘러 터미널을 빠져나오며
충무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카메라에 담고
늦은 점심을 해결할 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음식점을 찾아보지만
너무 때를 놓쳐서인지 입맛을 당기는
메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는 나와 달리 무척 허기가 졌기 때문인지
우산을 펼쳐 든 채
무작정 앞으로 성큼성큼 걷다가 저만치
칼국수 집을 발견하고는 내게 되려
날씨도 궂고 하니 칼국수가 어떻겠냐 묻고
머뭇거리는 내게 어서 가자 성화다.
망설일 여가 없이 안으로 들어가
칼국수 2인분을 주문하고,
거제에서 가 볼 만한 곳을 검색하는 중
가까운 위치에 포로수용소가 있음을 확인,
사장님께 대략 위치를 물은 후
식사를 마치고 나와 방향을 추적
포로수용소로 향한다.
포만감에 소화도 촉진할 겸
빗속을 그냥 걷다 보니 버스 타기도 낯설고
택시를 잡기엔 또한 애매하기도 하여
걷기로 작정하고 물어물어 가는데
갈수록 택시를 타지 못하였음이
후회막급하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관람 시간도 촉박하고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져 가는 상황,
그냥 돌아가기엔 걸어서 여기까지 온
품이 아깝기도 하여,
관람하다 시간에 쫓겨 그냥 도중하차 하고
나오더라도 일단을 입장권을 구매
관람을 결정하고 관람로를 따라서
이동하는데 우리 앞 또는 뒤로도
관람객 한 사람 보이지가 않는
약간은 두렵기까지 한 분위기 속에
조명이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수용소라는 이미지와 내부 설치물까지
괴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아내는 그냥 갔으면 좋겠다며
영 마뜩잖은 표정이다.
6, 25 전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부터
빚어진 전쟁 포로들을 이곳에 한데 모아
수용소를 짓고 구금 감금했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당시의
상황과 배경을 재현한 장소라는 점을
이해하며 자세한 상황설명을 눈여겨
보지도 못한 채 군데군데 사진으로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아서
급히 출구를 빠져나온다.
20포로수용소
그동안 잠시 비는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시간이 넉넉지 않음을 예상하고
고현 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검색하여
버스에 승차하고 수 분 후,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출발하는
충무행 버스표를 구매하여 바삐
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제 또 언제 다시 이 거제를 찾아와
기대하고 만나고자 했던 강주 님과의
못다 한 회포를 풀어 볼 날 있을까?
살아있는 한 기회는 언제든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거제여 안녕!!~
강주님이여~~~ 굿 바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아내의 표정을
살피고 살며시 눈길을 창밖으로 돌리며
또 어느 먼 세월 속 희미한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입대를 전후한 꿈결 같은 시절
그 어느 날,
외가의 사촌 형제라시는 삼촌 한 분께서
충무로부터 나의 외가에 볼 일 목적으로 오셨다가
외가의 제일 맏이셨던 내 어머님의
소식과 안부를 물으셨다가 우리 집의 소재를 파악
일부러 찾아오셔 인사를 나눈 후,
조카인 나와의 연차가 세 살 위라는 점과
서로 마음이 통할 만한 조카가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시고 한편 기뻐하시며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형님과는 동갑내기 삼촌과 조카 사이가
되다 보니 다소 좀 거리감이 있어 하셨지만
나에겐 조카 아닌 동생 어떨 땐 친구처럼
나에게 큰 사랑과 정을 그야말로
쏟아부어 주셨던 충무 성기삼춘!!~
쉬는 날이시면 거의 빠짐 없이
충무로부터 날라오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시다 다시 충무로
돌아가시곤 하시며
어떨 땐 회사에 결근까지 마다하지
않으시고 함께 고향 인근 사찰 및
가 볼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마치
의좋은 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직장까지 소홀하시며 틈만 나면 찾아오신
삼촌을 어머니나 누님 형께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그저 나와 함께라면 그러한 눈치는
개의치 않으신 듯 전혀 변함이 없으셨다.
그러다 내가 입대 영장을 받고 나자
삼촌께서 당신의 고향 충무를
나에게 보여주시겠다며 시간을 내달라고
안달이시더니 어느 날은 아예 당장
충무로 가자시며 고집을 피우심에
바로 그날로 옷가지만 챙겨 가방에 넣고
삼촌을 따라서 진주를 경유 충무로의
여행을 떠났었다.
여행을 시작하며 충무에 살고 계신다는
삼촌의 가족, 즉 나에겐 할머니와 또 다른
두 삼촌께서 한 집에,
그리고 삼촌의 부인(외숙모님)과
아들(동생)이 또 다른 집에 살고 계신다는
말씀과 할머니와 두 삼촌 간의 불화로
가정이 온전치 못하다는 점과
그로 인한 불행으로 삼촌께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과 그럴 때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 훌쩍 충무를 떠나
나를 찾곤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울컥했던 때를 기억한다.
처음 뵙고 인사를 올리는
할머니의 초췌한 모습에 무척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삼촌을 뵙자마자 인사드릴 짬도 없이
두 삼촌께서 다투시는 모습을 보며
몸 둘 바를 몰라했던 기억 등,
삼촌의 아들(5살 정도/동생)이 신을만한
부츠를 선물로 사서 들고 갔었는데
신발을 받자마자 힘들게 꿰어 신고는
얼마나 좋아 방방 뛰던지~~,
나를 소개하시며 조카가 왔다는 삼촌의 말씀에
병석에서 부스스 일어나셔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던 숙모님의 모습 등등,
그러거니 말 거니 산동네로부터
도망치듯 나를 끄집고 밖으로 나오셔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 분식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것이 그 유명한
충무김밥이라시며 통오징어 속에 싸인
김밥 맛을 뵈 주시고는
마치 뭔가에 쫓기듯이 시내 곳곳을
이리저리 돌아 해저터널을 보여주신 후,
통영 여객터미널에서 배편으로
거제 장승포 어느 바닷가에 살고 계시던
삼촌의 누님(이모님)댁 2곳을 찾아가
당신들께서 모르고 있었던 구례 큰 누님의
아들 즉 당신들의 조카라 자랑스레
인사를 시키시고는 어서 빨리
밥상을 차려 내시라 생억지를 부리시다
해초가 이끼처럼 푸르른 바닷가로
나를 데려다가 바위에 붙은 굴을
돌멩이로 깨트려 굴 살을 꺼내셔서
내 입에 쏙 넣어주시며 맛을 묻곤 하셨던
내겐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하기만 하셨던
나의 삼촌,
21삼춘
입대 후 대구 군의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첫 면회가 허락되던
당시에도 삼촌께서 형님과 함께 면회를
와주셨던 그 다정다감하셨던 삼촌께서
점점 연락이 멀어지시더니
제대 후 외사촌 혼사 장에서 뵙기를 끝으로
영영 소식이 끊기게 되는 시점에
외숙부님을 통해서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병고 끝에 끝내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라고 죄스럽고 황망했었는지,
삼촌께서 잠시 내게 베풀고 가신 그 사랑과
시간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보답해 드릴 여유와 기회도 없이
그렇게 허망이 가셨다는 사실을
차마 다는 믿을 수 없어 지금까지도 행여
옛날처럼 그 부드럽고 다정한 음성으로
명하야 라고 부르실 것만 같아 기다리며
보내드리지 못한 나의 성기삼춘,
그 삼촌의 흔적이나 사실을 확인할만한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때가 언제고 그곳이 어디라고
어느 누구를 만나 나의 이 슬픈 마음을
달래볼 수 있으랴?
충무를 향해 질주하는 버스의
드높은 엔진소리가 마치 내 마음속에서
삼촌을 소리쳐 부르며 달려가는 것처럼
나의 성기삼촌이 참으로 그립고
애타게 보고 싶다.
이렇게 내가 삼촌을 그리워하며
삼촌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아신다면
얼마나 반가워하고 기뻐하실까!!?
통영 종합터미널에 도착을 알리는 차내방송에
꿈에서 깨어나듯 대합실을 빠져나오며
힘들고 고단했던 오늘의 일정과
시간마저 매우 어중간함을 고려
일단 숙소로 가자는 아내 제안에
쿨하게 콜하고,
미리 검색하여 점찍어 두었던
한산호텔에 입실 승낙을 확인한 후
일찌감치 체크인을 마치고
21호텔
여장을 푼 후 아내의 말인즉
지난번 딸과 함께 충무 여행을 왔을 때
웬만한 볼거리는 거의 다 돌아봤으니
힘 빼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혜영이랑 둘이서 중앙전통시장에서
많은 먹거리를 쇼핑하며 김밥에 횟감을
맛있게 먹었었노라며 그곳으로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으니 데려다주기를
희망함에 따라 우린 호텔을 빠져나와
멀지 않은 곳에 중앙전통시장이 있음을
위치 확인하고 여유 있게 산책에 나선다.
20여 분 도보 끝에 도착한 중앙시장을
아내는 몰라보리만큼 변했다며
그전의 붐비고 화려했던 거기가
전혀 아닌 것 같다고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다녀 보지만 충무 김밥 골목 및
활어 골목을 비롯한 모든 먹거리 상가가
너무 초라히 변해버렸다고 아쉬워함에
역시나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지역과 장소를 불문하고 우리의 삶에 막대한
피해와 폐해를 안겨주고 있음을 실감하며
골목을 벗어나 저 먼발치 불빛이
제법 화려한 대형 음식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으며
오늘은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켰으니
고급스러운 음식점으로 가서
우아하고 부티 나게 저녁 만찬을
즐겨보자고 아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이끌어 앞장세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걷던 아내가
그전에 여기 어디쯤 굴 요리를
맛있게 먹었었는데 잘 몰라보겠다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 아내를 뒤로하고
근처를 돌아보다 근사한 건물에
상호까지 근사한 대풍관 간판을 발견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주차장을 지나 널찍한 홀에
드문드문 가족처럼 보이는 손님들과
멀찍이 거리감을 두고
안내 해주시는 탁자에 다소곳이 앉아
메뉴판을 펼쳐 아내와 상의 후
굴 요리 코스 B를 선택 주문하고
내부 인테리어와 넉넉한 분위기에
만족하며 음식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잠시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역시 기대 이상의 고품격 차림 상에
매우 흡족해하며 맛있게 잘 먹어주는
아내의 이쁜 모습에 흐뭇한 마음으로
고생스러웠던 순간들을 모두
툴툴 털어내 버린다.
그리고
아내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치 첫사랑 고백을 할 때처럼
벌써 37년여 기나긴 세월 동안을
한결같이 부족한 남편 하나 믿고 바라보며
오늘을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알뜰살뜰히
잘 견디고 버티며 아이들 바르게 성장시켜
안정된 삶과 가정을 꾸려온 것에 대한 고마움과
성격이 무뚝뚝하여 다정스러운 사랑을
듬뿍 쏟아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용서 등,
당신이 여행을 좋아함을 잘 알기에
지난 환갑에 당신과 둘이서만
꼭 한번 이러한 여행을 해보고 싶었었지만
아이들이 베트남 여행을 선물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었던 점을 털어놓으며
이러한 나의 뜻과 노력이 당신께
작은 위로와 보상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 더 자상하고 큰 사랑을 해주리라는
약속과 함께 나의 진정한 사랑을 전하자
아내 또한 감동한 표정으로 나의 고백에
답하며, 서로 깊이 교감하는 시간을
한동안 나누고 누리다가 두 손을 다정히
맞잡고 행복에 겨운 채,
우린 굴 요릿집을 느긋하게 빠져나와
왔던 길을 다시 찾아 걸으며 그 행복을
오래도록 기억하자 약속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D+3(3월 12일/금)
여행하기 딱 좋은 햇빛 쨍하고
바람까지 포근한 유쾌 상쾌한 아침,
서둘러 체크 아웃하고 통영 여객터미널로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여 섬여행 배편을 살핀다.
역시 코로나 19의 여파로 여객선 운용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임을 확인하고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
낯선 전화에 망설이다 혹시 몰라 받고 보니
숙소에 안경을 놓고 갔노라고 언제든
로비에 오면 찾을 수 있다는 친절한
호텔 측 배려에 곧장 다시 호텔로 찾아가
안경을 찾은 후,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식후경하자하고
즐비한 충무김밥집 중 일번지를 골라
아침을 마치고 다시 통영 여객터미널에서
배편을 알아보지만 대부분 섬 코스가
(연화,우도,욕지,장사도,사량도 등)
왕복 네 시간 소요에 머무는 시간을 고려하면
최소한 6시간 정도 예상이 되는
난감한 상황 즉, 섬 어디든 여행을 하자면
하루 정도를 충무에서 더 머물러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혹시나 하고 아까부터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계시는 사진 서비스를
하는 듯한 분께 다가가 양해를 먼저 구하고
혹시 사량도로 가는 제일 빠른 배편을 여쭙자
조금과 망설이지 않으시고
가오치항으로 가면 사량도만 오가는
사량도여객선터미널이 있는데
한 시간 간격으로 있다며 친절히
안내를 해주심에, 우린 꾸뻑 감사 인사를 올리며
곧장 통영 여객터미널을 빠져나와
택시를 세워 가오치항으로 가면 사량도를
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자
갈 수는 있지만 제법 먼 거리인데
괜찮겠냐 잘 생각을 해보라시며
뜸을 들이신다.
우린 생각하고 말 여유가 없던 터라
일단 승차 후 빨리 가주실 것을 부탁하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놓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돌고 돌아서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느낌이
자꾸만 짙어지며 뭔가 잘못 판단을 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어, 기사님께
혹시 가는 길이 맞느냐 말씀하신 예정시간보다
너무 오래가지 않느냐고 따지듯이 묻자
처음부터 멀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시며
핀잔을 먹인다.
서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상황 속에서
40분여를 달린 끝에 택시요금 2만8천 원을
계산하고 비로소 사량도 여객터미널
가오치항에 도착, 신속히 배표를(1인 왕복 7,000원)
구입하고 나서 다시 통영항으로 돌아갈
버스 편까지 확인 후, 비로소 안심하며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22
22-2
얼마 후 입항하는 그랜드페리호에 승선하여
마침내 목표했던 사량도를 향해 출항
새파란 바다 위에 물거품을 일으켜
여객선 꽁무니에 하얀 파도의 흔적을 남기며
유유히 바다를 가르는 페리호를 쫓아서
갈매기가 날아들어 한껏 흥을 돋우니
더없이 부푼 가슴으로 선상의 기분을
맘껏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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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톤에 520명이 정원이라는 그랜드페리호에
50~60명 정도 승객을 태우고 운항 중이라니
선박 회사야 운영상 어려움이 크겠지만
우리로서는 더없는 호사를 누림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뱃멀미할 만큼 긴 시간 동안
배를 한번 타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나마 상쾌한 선상 기분과 만족할만한 시간에
흡족해하는 마음을 읽은 듯 아내 또한
매우 밝은 표정으로 함께 선상을 오가며
먼바다를 바라보기도 배 뒤꽁무니에
하얀 거품의 흔적을 신기한 듯 유심히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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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객이 내민 손 끝에 쥐어진 새우깡을
순식간에 나꿔채가는 갈매기들의 날렵함에
짜릿한 흥분을 대리만족하는 사이
마침내 다다른 사량도
사량도 종주 산행을 계획했다던 산사람들은
서둘러 바삐 바삐 길 찾아가고
선착장 앞에 우리 둘만 우두커니 남겨져
안내도만 살피고 있자니 기대하고 동경했던
섬의 환상이 일시에 무너진다.
제주도의 드넓은 유채꽃 평원은 아니더라도
둘이서 조용히 감성에 젖어 다정히
걸을만한 해변 또한 아닐지라도
어디 조용히 앉아 쉴만한 한곳이 없으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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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도를 살피다가 배 들어올 시간에 맞춰
가장 가깝고 짧은 산행 2시간 코스를
선택하여 아내께 설명하고 대략 위치 파악 후
산행을 나서는데 그야말로 이른 봄
햇볕은 쨍쨍 모래알이 반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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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산을 돌아 사량대교를 경유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에 불과하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데다 우리 둘 이외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사람 구경하기 힘든
산책로, 따분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밀고 달래고 끌면서 섬여행의 환상을
조금씩 덜어낸다.
27진달래
그나마 남녘의 이른 봄이라선지
군데군데 만개한 진달래가 반갑다는 듯
배시시 웃음을 흘리고 연초록 나뭇잎 사이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드넓은 파란 바다 전망에
끈끈한 등줄기 땀을 잠시 식혀가며
아내의 불편한 기색을 애써 외면한 채,
오르막 구간을 오르고 보니 고동산 표지목과 함께
정상 전망대 마루에 텐트를 친 산행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습은 보이지 않고
두, 세명의 이야기 소리만 두런두런하여
살며시 아내를 손짓해 표지목 앞에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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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따르던 아내가 계단에 털썩 주저앉으며
언제 챙겼는지 손가방을 뒤적여 과자봉지를
꺼내놓고 좀 쉬었다 가기를 청한다.
홀수 시간에 출발하는 배를 타야만
가오치항에서 통영 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대기 중이라고 하였으니
시간을 여유 있게 셈하며 우리 둘만의
한적한 등산로 나무계단에 걸터앉아
과자부스러기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잠깐 넉넉하고 한가로운 여유와
마음의 여백을 즐긴다.
그나마 멀리 내려다보이는 섬과 바다가
예쁜 조화를 이루며 간간이 오가는 배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하기도 하고
남녘의 이른 봄을 새삼 확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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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했던 섬에 대한 기대를 애써 덜고는
사량대교까지의 구간에 별 의미가 없음에
서로 공감하고 마을로 내려가는 중간 샛길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며 파릇파릇 풀밭 오솔길을
지나쳐 향긋한 봄 내음에 행여
봄나물이라도 있으려나 두리번대는 중에,
앞서가던 아내가
“우~와 저거 갓 아니요!!~” 소리치며
잰걸음으로 저만치 급히 다가가 쪼그려 앉더니
어서 보란 듯이 움켜잡는다.
밭두렁 빈터 여기저기에 갓이 불쑥불쑥 솟아
꽃대를 세우고 꽃이 피기 직전의 상태,
밭으로부터 씨가 번져 야생에서 자연 번식한
식용 가능한 채소 임이 분명,
언젠가 고향 성묫길에서 이러한 갓을 채취해다
김치를 담가서 맛있게 봄맛을 만끽했던 기억이
있던 터라 우린 이 야생 채소의 매콤한 갓 맛을
이맘때 최고의 봄채소 라는 점을 너무 잘 알기에
뜻밖의 이 횡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눈을 번뜩여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갓 보물찾기에
짜릿한 즐거움을 맛 본다.
이번 여행 이후 가장 즐겁고 신나는 아내의 밝은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며 여행 동안 거의 고생의
연속이었던 시간으로부터 조금은 마음이 편함을
다행으로 여기며 한참 동안을 그 재미에 빠져
즐기는 사이 나의 백 팩과 아내의 가방에 거의
갓으로 채워질 만큼 꽉꽉 눌러서 지퍼를 채워 메고
횡재한 기분으로 그야말로 룰루랄라
마을을 빠져나와 돌아갈 배를 기다린다.
아내의 한결 밝고 명랑한 표정을 마주하며
사량도 여객터미널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이렇게나마 섬여행을 경험했다는 사실에
나름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직하여
한적하고 편안한 승객 휴게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아내와 나란히 자리에 누워 피곤을 달랜다.
여객터미널 선착장에 도착하여 한참을 기다려
통영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승차한 후에 안심하며
택시 기사의 불친절하고도 엉터리 정보
즉 다시 택시를 타야 만이 터미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며 다시 여행모드로 돌아간다.
이렇게나마 거제 통영을 돌아봤으니
이제 광주 동곡동 꽃게장 거리 흥신아우와
이소순여사의 빛고을 차림 상을 목표로 가는 길에
고흥을 거쳐 갈 계획으로 티맵 검색에
열 올리며,
어느덧 버스는 통영 버스터미널에 도착,
늦은 점심시간을 일깨우듯 허기를 부른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주변 근처를 돌아보며
깔끔한 백반집이나 혹은 간판이 이쁜 집을
찾아 주변을 배회하다 한적한 어느
한식 전문점에서 안을 살피다 혹시
시간이 늦어 영업이 가능한지를 물으려
슬그머니 문을 열자 손님으로 뵈는 한분이
막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중,
얼른 안에다 대고
“식사 됩니까?” 라고 묻자
영업은 끝났지만 오시는 손님이라
그냥 모시겠다며 상냥하고 친절히
들어오라 인사를 해오신다.
그 친절에 감사하며 안내하시는 자리에
앉아 내부와 메뉴를 살피는데,
가정식 백반이 먹을만 하고
어머니께서 자체 개발한 각종 한식 반찬과
생선구이가 반찬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주문을 안내하심에 더 물을 여지 없이
유쾌하게 주문에 승낙하고,
“혹시 실례지만 주방 사장님과 모녀 지간이세요?”
라고 묻자 살폿한 웃음을 지으시며
“아~ 모녀 사이 같은 고부 사이입니다” 라시는 답변에
아내와 난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몹시 놀라는 표정으로 참 보기 드문 좋은 두분의
모습에 감동한다며 칭찮을 아끼지 않는다.
방 안으로터 소꿉놀이를 하는듯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드르륵 방문이 열리며
남매 인 듯 두아이가 스케치북을 펴들며
식당 홀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아이 엄마가
입에 손가락을 대시며 쉬잇~ 하고 주의를 주자
다소곳이 뒤돌아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얌전한 두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아이들의 바른 행동에 칭찬을 덤하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예쁘게만 봐주시니
고마울따름이라며 인사를 빼놓지 않고
주방과 홀을 바삐 오가며 식탁을 빼곡이 채워놓는다.
초면부터 서로 좋은 모습만을 보았으니
음식 맛인들 오죽하겠는가?
시장끼에 풍미까지 더해진 차림상에
빈접시가 날때마다 지켜보듯이 리필을 해주시니
그야말로 최고의 성찬이 아닐 수 없다.
웬만큼 식사가 끝이나자 곧장 커피까지
대접을 마치고 나서 급한 볼일 때문에 먼저
나가야한다며 아이들을 불러 주방 시어머께
인사를 올리고 가게 문을 쪼르를 나가시는
며느님 칭찬에 주방 사장님도 흐뭇해하시고,
우린 커피를 홀짝거리며 이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도 흥신아우와 이소순여사의 관계를
익히 잘아는 터라 설명하며
거기를 찾아가는 길에 고흥을 거쳐서 가고자 하는
계획을 말하자 아주 난색 하며,
차 없이 다니는 것도 매우 불편하고
모르는 길 찾아다니기 또한 너무 힘들다며
한편으론 휘녀석 손주도 보고싶어
어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으니,
다음에 다시 시간을 내어 어디든 또 한번
데리고가주면 어떻겠는냐 되려 사정하듯
서울로 가줄 것을 부탁한다.
이렇게까지 사정하는데 무슨 내 계획인들 중할까!!?
더 망서릴 여지없이 훌쩍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그럼 곧장 서울로 가자고? 다짐을 받듯이
재차 묻고는 끄떡 없음을 다시 확인하는 마음이
퍽이나 아쉽고 씁쓸함을 못내 감추지 못하며
터미널 방향으로 지체없이 걷는다.
이따금씩 페북을 통해 안부를 묻곤 하는 흥신아우
이 나이 돼도록 수도 없는 인연이 오갔지만
화령이라는 화사에서의 직장생활 인연은
어쩌면 전생에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의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손형의 인연이 이상무님과 의 인연을 만들고
이상무님을 통한 인연이 고실장님과의 인연을 낳아
고실장님을 위시한 인연이 ㈜화령이라는 회사와 인연하여
유리공예품 및 단단계 유통이 주력이었던 화령을
㈜화령 인테리어회사로 탈바꿈하여 구 인력과
신 인력이 어려움을 감수하며 무엇인가 이뤄보고자 했던
그나마 젊음과 패기가 살아 있었던 어느 먼 시절,
역삼 테헤란로 변 호박, 콩밭을 임대 가건물을 짓고
구.신 인력 거의 20명 가까이서 각각 나름의
꿈을 키우고자 하였지만 나날이 화령의 사정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2년을 버티지 못한 채
뿔뿔이 떠나고 이승을 등지기도, 마침내 ㈜화령 자체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겪으며 끝까지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하며 마지막까지 그 인연을 이어
부부의 인연으로까지 승화시킨 흥신아우와
이소순양, 결혼하여 고향(빛고을)으로
내려가 음식점을 개업한 후 주변 거리를
꽃게장백반 테마거리로 조성하며 관내
요식업계에 괄목할 만한 큰 발전을
이끌어가는 의리가 강하고 결단력을 갖춘 아우,
그 오랜세월, 그 세월이 얼만데,
잊고 살만도 하건만 여직 변함없이
형이 되어주기를, 한번 쯤
빛고을에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장거리를 마다않고 꼭꼭 경조사를 챙기곤하는
친구같은 아우, 고향 친척같은 아우,
이번 여행을 기회삼아 빛고을 차림상을 마주하고
함께 회포를 풀어내며 긴 인연을
간직해 가는데에 대한
감사와 칭찬과 위로와
격려를 함께 나누고 싶었건만~~~~~,
버스터미널을 찾아가는 동안
통영에 오면 꿀빵을 맛봐야한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내를 바라보며 근처를
돌아보자 바로 저만치 앞에 우리의 이런 모습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제과점이
떡하니 우리를 어서오라 버티고 있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가격 문의 끝에
아내의 욕구 충족에 부족함이 없도록
꿀빵 포장을 묶음 해 들고 밖으로 나와
이젠 더 이상 시간 지체할 이유가 없으므로
서둘러 성큼성큼 터미널로 들어서
서울행 버스를 확인하여 표를 구입한 후,
잠깐의 기다림을 끝으로
우리를 서울로 데려다줄 버스를 맞아
승차 후 좌석을 확인하고
털썩 주저앉다시피 자리에 앉아
깊은상념속으로 빠져든다.
4일 동안의 긴장된 일정으로부터
막상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할 일이 일시에 사라져버린 듯한,
일시에 모든 긴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된 듯한 홀가분함과
한편은 또 다른 아쉬움에 가슴이 먹먹함을
못내 감추지 못하며 넌지시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아내는 그러한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과 카톡을 주고 받으며
손주녀석의 귀여운 동영상 모습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고,
가슴 저 먼 밑창으로부터
짜릿한 전율이 밀려온다.
어쩌다
이 세상과 인연하여
예순넷 인생을
살아내는 동안,
하고많은 인연 중
어쩌다 그 연 만을
저버리지 못한 채,
벼르고 별러서
아득히 먼 세월
아련한 추억속으로
홀연히 떠나고자했던
3박4일의 여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겼으며
누구를 위하고
누구를 위로하였는가?
시답잖은 환갑타령에
잔뜩 헛배만 불리고
어쭙잖은 환갑놀음에
마눌까지 끌고 다니며
웬 개고생을 발벗고
사서 하였을까 만,
홀연히 이 세상에
별똥별처럼 왔다가
죽을 나이 가깝도록
이따금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설렘이고
가슴 뜨거운 행복인지!!?
얼마나 소중한 기쁨이며
가슴 뭉클한 감사인가!!?
이렇게나마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했다는 사실에
내 삶에 작은 의미 하나를 추가하는
뿌듯한 가슴으로,
불이나케 스쳐지나가는 버스 차창에
나른한 시선을 고정한 채
남은 삶에 상큼한 설렘이 될
또 하나의 음모를 꿈꾼다.
2021년 3월 11일
때늦은 환갑놀음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