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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신비한 노인 그 사람은 다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도대체 누가 이런 독수를 써서 한 사람의 목숨도 남겨 두지 않았을까. ..] 박마천은 냉랭히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노부가 쓴 독수다. 어쨌다는 건가?] 그는 그 구멍으로 걸어 들어갔다.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늙은이가 여덟 구의 쌓여 있는 시체 옆에 서서 몸을 구부리 고 죽은 사람들의 상흔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늙은이는 박마천의 말을 듣자 천천히 고개를 쳐들고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 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째서 이런 짓을 했지?] 박마천은 그 늙은이의 눈썹이 무쇠로 만들어진 빗자루처럼 몽땅하고 머리는 말대 만큼 큰데 반해 조그만 입술 위에 혹같은 커다란 코가 달렸을 뿐 아니라 커다란 귀에 염소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 보기에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몸에 황색의 하찮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베로 만든 띠로서 허리를 둘렀는데 허리띠에는 술병이 달려 있었고 등에도 또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졌을 뿐 만 아니라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은 우산을 들고 있어서 보기에 가소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박마천은 웃지 않았다. 그는 강호를 두루 돌아 다녔고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기 때문에 강호에는 각가지의 괴상한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래서 이 시골뜨기 같은 늙은이를 보고도 웃지를 않았다. 그는 오히려 속으로 그 늙은이의 표정이나 태도가 침착한데 퍽 놀라고 의아한 생 각을 금하지 못하면서도 그 두 알의 어둠침침한 그 눈동자에서 고수는 아니라는 사실을 읽어 낼 수가 있었다. (이 녀석은 저 차림으로 보아 멀리 출타했다가 막 돌아온 모양이구나. 혹시 고을 로 들어가 매일 같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책임지고 구입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구 나...)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냉랭히 늙은이를 한 번 훑어보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박마천이라고 하는데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는가?] 늙은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없네...] 그 역시 박마천을 한 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박마천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이 노부의 안전을 해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을 모조리 죽였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그는 그의 대답에 퍽 놀라워하면서도 상대가 일부러 침착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가졌다. 노인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물론 잘못된 것이지. 그들은 이 산신묘에서 이년 남짓 살아왔으나 한 번도 밖에 나가 어떤 소란을 피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자네의 안전을 해치려고 했단 말 인가? 그들이 모두 이곳에서 죽고 다른 곳에서 죽지 않은 것을 보면 자네가 이곳 으로 와서 그들을 모조리 죽인 것이고 결코 자네 집으로 가서 자네를 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말하는 사투리의 억양은 무척 심했고 또한 말이 빠른 편이라 박마천은 반드 시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여야만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박마천은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말이 옳아. 내가 이곳에 와서 그를 죽인 것이라네.] 늙은이는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자네에게 이렇게 할 권리가 어디 있는가?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있어 개 미도 삶을 탐하거늘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있는가? 자네가 단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자기가 옳다는 듯이 뻔뻔하게 나오는데 설마하니 자네는 양심 의 가책도 받지 않는가?] 박마천은 입술을 삐쭉하더니 별안간 소리내어웃었다. [양심이라니 무슨 양심. 노부가 따지는 것은 심히 다 내가 힘이 있고 눈에 거슬리 면 자연히 그들을 죽일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인데 무슨 양심을 찾는다는 것인 가?] 그는 두 눈에 음냉하고 흉폭한 빛을 내 쏟으며 냉랭히 입을 열었다. [이제 나는 당신이 눈에 거슬려서 당신마저도 죽이고 싶다.] [나를 죽이겠다고?] 노인의 얼굴에 한 가닥 분노의 빛이 서렸다. [자네가 이토록 막무가내로 날뛴다면 자네보다 더욱 더 힘이 있는 사람이 자네를 죽이게 된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은가? 아! 자네가 그와 같이 큰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혹시 자네는 칠대 고수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닌가?] 박마천은 속으로 이 시골뜨기 같은 늙은이가 무공을 모르는 것 같은데 자기 말을 들은 후에 칠대고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자기가 바로 영남 유객이라는 것을 모른 다는데 퍽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사실 이 시골뜨기 같은 늙은이에게 어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듯한 느 낌이 들기도 했다. 본래는 즉시 손을 쓰려고 했으나 그의 침착한 태도에 호기심을 느낀 나머지 자세히 그 늙은이의 내력을 알아보기로 작정했다. 그는 그 늙은이를 아래위로 몇 번 훑어본 이후 넌지시 물었다. [당신도 천하의 칠대고수를 아는가? 혹시 당신은 그들 가운데 어느 분을 아는가?] 늙은이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 하! 하! 천하의 칠대고수가 아니라 중원의 칠대고수이다. 그들은 중원 사람 들에 의해 고수라 칭해지는 것이지, 천하의 고수라고는 할 수 없다.] 그 한마디의 말에 박마천은 흥미를 느꼈다. [그건 어째서인가?]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사해팔황(四海八荒) 곳곳에는 이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절대 고수들이 많이 있 네. 그들은 어쩌면 중원으로 한 번도 와 본 일이 없으며 어쩌면 속인들과 이름을 다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네. 그러나 그들의 수위 는 그들 일곱 사람들 보다 더 뛰어나다네. 그래서 자네는 그들을 중원의 칠대고수 라 칭해야지 천하의 칠대고수라 칭할 수는 없는 것일세.] 박마천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입을 열었다. [노부는 천하에 발자취를 남기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절대 고인을 만난 적이 없으 며 서장의 단주활불을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고수라고 할 만 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천하 칠대고수 이름이 무척 근거 있 는 것이라고...] 그 늙은이는 비웃음에 찬 어조로 그 말을 가로챘다. [이것을 보고 대롱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물 안의 개구리의 견해라는 것이다. 자네는 동해(東海) 하위성(霞圍省) 밀륵지(密勒池)의 세 분 장로, 그리고 묘강(苗 疆) 구면박다(九面朴多) 서방의 마교(魔敎) 교주 채패(債覇)를 만나 본 적이 있는 가?] 박마천의 얼굴에 놀람과 의아한 빛을 띄우고 노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조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골뜨기도 혹시 절대 고인이란 말인가.)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노인이 들먹인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남아 있는 인상이 없었다. 그는 속으로 무척 경악하며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어느 덧 진기를 끌어올려 온 몸에 퍼뜨렸다. 그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자네는 싸움을 벌리려는 황소 같은 자세를 하고 그곳에서 흙만 걷어차지 말게나. 나는 십여 년 간 남과 손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자네와도 손을 쓰고 싶지 않아. 자네와 같이 천성이 잔인한 사람은 자네보다 더욱 더 악랄한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적에 자연히 보답이 있을 것이고 내가 그 쓸데없는 일에 상관할 필요가 없 는 것이지.] 박마천은 그만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말았다. 속으로는 약간 희롱당한 느낌이라 고 할까. 그 어떤 꼬집을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천하에 아마도 감히 노부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은 몇 사람되지 않는데 당 신은 그 몇 사람의 이름을 들먹인다 해서 노부를 겁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가?] 늙은이는 담담히 웃었다. [자네는 어째서 자네와 같은 나이에 내 앞에서 노부라 자처하는가? 허! 사실에 있 어서 그 고인들은 모두 다 사십년 남짓한 세월에 걸쳐 속세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 으니 자네도 들어보지 못했겠지. 나 역시 자네를 겁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 위에 사람 있고 하늘밖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의 성취를 이루었다 고 해서 막무가내로 날뛰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 뿐일세.] 박마천은 노고를 터뜨렸다.. [노부와 같은 나이에도 가르침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버르장머리 없군.] 그리고 그는 왼손을 세우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흰소리만 하는 것이 아닌지 시험해 봐야겠다. 당신이 절대 고수라면 노부와 몇 수를 겨루어 보자!] 노인은 물끄러미 박마천을 바라보았는데 침침한 그의 눈동자에 갑자기 별빛과 같 이 찬연한 불빛이 번쩍이면서 매섭고도 예리한 기운이 뻗쳐 왔다. 그러나 순식간 에 그 기이한 빛은 사라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박마천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노인의 눈에 갑자기 강렬한 광채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절세의 고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눈빛 을 갈무리하는 재간을 지니려면 반드시 천지지교(天地之交)를 뚫게 되고 삼화취정 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했다. 그가 아는 바로 그가 만나 본 천하의 칠대고수 가운데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불가와 도가를 막론하고 내공이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수련했다면 언제라도 탈각비승(脫殼飛升)의 때가 되는 것이 었다... (이 시골뜨기 늙은이는 누구일까?) 그는 아연해져서는 머리를 굴렸다. (그토록 깊은 조예와 성취를 가지고 있었는데 왜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까?) 이와 같은 생각이 미치게 되자 그는 조금도 생각을 늦추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고 진기를 끌어올려 독문의 금루강기(金樓鋼氣)를 온몸에 골고루 퍼뜨렸다. 그리고 즉시 그의 몸은 한 겹의 엷은 금빛 광채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그 늙은이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거나 의아한 빛이 없이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장래에 자네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어서 자네를 상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 았는가? 그런데 자네는 또 그렇게 대적을 만난 것처럼 하고 나를 바라보는가?] 그는 손을 뻗쳐서 박마천의 오른쪽 소맷자락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소맷자락이 남에게 한 토막 찢겨져 나간 것을 보니 얼마 전에 남과 손을 쓴 결과인 것 같은데 자네는 그렇게 싸우기를 좋아해서야 되겠는가?] 박마천은 약간 골이 났다. [그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법이지. 노부가 일시 경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후배 녀석에게 소맷자락을 잘렸지만 그 결과 역시 그를 죽이고 말았다네.] 그 늙은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일찍이 한 번도 자네처럼 사람을 죽이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 네. 만약 이십년 전이었다면 나는 결코 자네를 놓아주지 않았겠지만 이미 내가 손을 씻은 지 이십년이 되고 또 이번에 동해에서 막 돌아와 기분이 좋아서 자네 때문에 살기를 벌리고 싶지 않네...] 그는 그 가는 눈길로 박마천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 [가 보게. 나는 이 시체들을 묻어 주어야겠네.] 박마천은 왼쪽 발을 한 걸음 내 디뎠다. [당신은 노부를 욕되게 하는 말을 했는데도 그대로 덮어두자는 것인가? 그렇게 수 월한 일은 없을 걸...]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최소한 당신도 한 수를 보여 주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노부가 어떻게 승복할 수 있겠는가?]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네가 조금 전에 손을 쓰면서 옷자락도 찢겨져 나갔는데 이제 또 다시 나와 손 을 쓰겠다고?] 박마천은 그 말을 가로챘다. [노부는 조금 전 일시적 실수로 그랬다고 말을 했는데...] 노인의 음성이 매서워졌다. [고수들 사이의 싸움이라는 것은 완전히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인데 어떻게 자네 가 실수할 것을 용납할 수가 있겠는가?] 그의 말은 무척 엄하고 매서워서 마치 웃어른이 아래 제자를 훈계하는 듯 했다. 박마천은 자부심이 지극히 강한 사람인데 어째 그런 태도에 반발하지 않겠는가? 그는 눈앞에 시골뜨기 같은 늙은이가 절대 고수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목숨을 떼어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늙은이, 당신은 큰 소리 칠 필요가 없네. 재간이 있다면 나의 몇 대 주먹을 한 번 시험해 보실까?]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잇따라 세대의 주먹을 내어 질렀다. 삽시간에 주먹이 파도 처럼 중첩되어 허공으로 뻗쳐 나는 것 같았고 세찬 기운이 소용돌이치면서 대전 안은 은은한 파공성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이번에 그는 전력으로 다해서 세대의 주먹을 내 질렀으므로 기세는 무겁고 맹렬 했을 뿐만 아니라 힘차기 이를 데 없어 흐릿한 주먹 그림자가 어느덧 늙은이의 몸 밖의 빈틈을 모조리 봉쇄해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세대의 주먹이 뻗쳐 나게 되었을 적에 분명히 그곳에 서 있던 늙은이는 소 용돌이치는 검풍 속에서 사라졌다. 본래 그곳에 있었던 것은 유령이 아니었나 할 정도였다. 박마천은 세대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게 되자 속으로 의아한 마음이 엄청났다. 그는 왼쪽 주먹을 거두어 드려 가슴을 바로 한 채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모아서는 송곳 모양을 하고 눈썹이 있는 곳까지 들어 올렸고 왼발 뒤꿈치를 축을 삼아 오른 발을 들어서는 그 자리에서 재빨리 한바퀴 돌았다. 몸을 돌리게 되고 눈길이 가는 곳에 늙은이는 언제쯤 몸을 날려 피했는지 바로 신상 옆에서 자기를 멍하니 바라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이는 박마천이 몸을 돌리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네는 이럴 필요가 있는가?] 박마천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성을 대갈하며 잇따라 세 걸음 내딛고 오른손 을 재빨리 뻗쳐 냈다. 한줄기 비정하고 날카로운 송곳처럼 쏘아져 나가 대전 안은{쉭!} {쉭!} 기이한 휘파람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 파뢰추의 기공은 아니나 다를까 패도적이어서 그와 같은 기세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부셔 버리고 모든 적을 제압하는 위력이 서려 있었다. 박마천이 무림에 있을 때 고수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며 이와 같은 무공은 확실히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랄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 었다. 그러나 그의 몸이 막 움직이게 되고 송곳 모양의 기주(氣柱)가 막 뻗쳐 나게 되 었을 적에 공탁 앞에 서 있던 노인이 갑자기 한 가닥 가벼운 연기처럼 허공 속으 로 바로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뾰족하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파뢰추가 급격하게 쏘아져서 그 공탁에 맞닥뜨리게 되자 즉시 그 공탁을 망가뜨리게 되었으며 곧이어 신감 앞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서 만든 향안에 부딪치게 되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두께가 다섯 치나 되고 높이가 두자 정도의 바위로 된 향안 이 가운데서부터 부러져서는 땅바닥에 떨어지게 되었고 곧 이어서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열 몇 조각의 잔돌로 부서지고 말았다. 알 만한 사람은 첫 눈에그 향안이 이미 파뢰추의 힘이 닿는 곳에 망가지게 되고 쪼개진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조리 땅바닥에 떨어져서는 그렇게 박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네는 굳이 그 향안에 화풀이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박마천이 파뢰추를 뻗쳐 낸 이후 눈앞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게 되자 그만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서 있었으며 자기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 하고 있는데 어느덧 그 늙은이의 음성이 들려 왔다. 그는 그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노인은 어느덧 그와 이장쯤 떨어 진 대문의 문지방 옆에 서서 그를 향해 미미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었는데 그 표정 은 퍽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박마천은 가슴속이 서늘해졌으며 하마터면 투지를 깡그리 상실할 뻔했다. 그는 한평생 한 번도 이 노인처럼 고명한 경신법을 본 적이 없었다. 더 더욱 어떻게 피 한 것인지도 똑똑히 보지를 못한 것이었다. (아니다, 이것은 경신법이 아니다.) 그는 속으로 거듭 궁리를 했다. (아무리 유능한 경신법이라 해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지만, 저 늙은이는 유 령처럼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고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아연해진 나머지 소리쳐 물었다. [당신... 당신은 사람이요 귀신이요?] 노인은 픽 웃었다. [자네와 같은 고수가 그런 가소로운 문제를 묻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박마천은 가슴속에 노여움이 끓어올랐고 그와 같은 감정이 놀란 마음을 뒤덮게 되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경신법이 설사 천가지라 할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노부의 파뢰추의 일식을 받아 내지 못하면서 거기서 무슨 큰 소리만 치고 있는 것이요.] 노인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파뢰추라고? 그렇다면 자네는 박남선(朴南先)의 제자이겠군. 아! 자네가 박마천 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혹시 자네가 그의 아들이 아닌가?] 박마천은 더욱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신이 우리 선친을 아신단 말이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지. 그것도 삽십여년 전의 일일 세. 만약에 자네가 들먹이지 않았다면 나는 떠올리지 못했을 걸...]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과거에 자네처럼 그렇게 흉폭하고 잔인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자네는 어째서 이 모양이 됐지?] 박마천은 삽십년 전에 그 늙은이가 부친의 얼굴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일대고수라 즉시 심신을 가다듬고 느릿 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귀하가 선친을 아신다면 불초가 실례를 저질렀군요. 하지만 여전히 귀하의 대명 이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 보아야 겠소이다.] 그는 무림 일대 고수 가운데 한 사람이고 명성이나 덕망이 무척 높은 편이었다. 그는 말을 듣고는 여전히 상대방을 선배님이라고 칭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 을 노부로 일컬었던 것을 불초로 바꾼 것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의 이름은 칠십년 전에 이미 잊어버린 것이고 이에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군. 그러니까 자네는 나를 시골 늙은이라고 부르게.] 박마천은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가 상대방에게 희 롱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어 성이 나서 입을 열었다. [귀하가 대명을 가르쳐 주지 않겠다면 다시 한 번 더 불초의 파뢰추를 받아 보시 구려.] 노인은 말했다. [자네는 굳이 나를 닦달해서 손을 쓸 필요가 뭐 있는가? 영존께서는 과거 나에게 파뢰추의 위력이 엄청나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다고 했는데 나의 이 늙은 뼈다귀로 서는 어떻게 감히 감당해 낼 수가 있겠는가?] 박마천은 그 말을 가로채듯 말했다. [너무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아직까지 여전히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섭게 몸을 날리며 맹렬히 내경사락(內經絲落)이라는 일식을 펼쳐 다섯 손가락을 송곳처럼 해서는 노인을 공격했다. 노인은 한숨을 내 쉬었다. [내가 자네의 송곳 한대만은 막아 주기로 하지.]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박마천이 몸을 날려 달려드는 것을 보 고서도 전혀 느낌이 없는 것 같았다. {쉭!} 하는 뾰족한 음향이 퍼지게 되고 박마천의 몸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 그가 뻗쳐 낸 일식의 파뢰추가 예리하고도 뾰족한 경을 싣고 그의 노인의 몸으로 쏘아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그 노인과 다섯 치도 안되는 곳이라 똑똑히 볼 수가 있었는데 상대방은 이 번에 이처럼 몸을 날려 피하지도 않았지만 손을 써서 막지도 않았다. 마치 너무나 깜짝 놀란 나머지 우뚝하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섬뜩해지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만약에 손에 송곳 같은 세찬 기운이 그 노인의 몸에 적중하게 되었는 지라 놀람과 의혹은 아직도 떨쳐 버리기 전에 갑 자기 자기의 그 혈수 일축이 뻗쳐 나기는 했으나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쏘아진 듯 기운이 끊임없이 앞으로 뻗쳐 갈 뿐 어디 닿는 듯한 반응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대뜸 그의 마음은 엄청난 번개에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게 되었고 한평생 일 찍이 느껴 보지 못했던 공포와 경악을 느꼈다. 그는 정말 이 세상에 그 누가 뻣뻣이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파뢰추 일격을 받은 이후에도 죽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구나. 그러나 생생히 내 눈앞에 비쳐졌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저 늙은이는 바로 저렇게 서서 나의 파뢰추 일식을 받아 내지 않 았는가 말이다.) 삽시간에 박마천은 그 늙은이의 조그만 체구가 천신(천신)처럼 우람해 보였고 자 기는 그토록 조그마하게 변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발끝이 땅바닥에 닿는 순간 맹렬히 호통 소리를 내 질렀다. [나의 일검을 받아라!] 호통 소리와 더불어 그는 오른손을 이미 품속에서 한차례 단검을 뽑아 들고서는 급히 휘둘렀다... 이 때 그는 그 노인과 불과 다섯 치의 간격을 두고 있었는데 단검을 한 번 뻗치 게 되자 싸늘한 광채가 세차게 쏘아지게 되고 잔인한 빛이 급하게 번뜩이는 가운 데 검 끝의 예리한 광채가 번쩍 하는 순간에 그 늙은이의 온몸을 뒤덮듯 해버렸 다. 그 늙은이는 박마천이 가증스럽게 검을 뽑아서 이렇게 독날한 초식을 펼쳐 오리 라고는 생각 못한 듯 두 가닥의 눈썹을 꿈틀했고 침침한 두 눈에서 잔인한 광채를 폭사하면서 호통을 내 질렀다. [죽어 마땅한 녀석 같으니라고.] 호통과 더불어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그 한 자루의 전체가 새까만 우산을 쳐들었 고 위에서 상반신을 뒤로 젖히면서 그 우산을 펼쳐 냈다. 새까만 빛이 번쩍 하자 즉시 그의 온몸은 그 우산 속에 숨겨지고 말았다. 박마천이 일검을 꺼내게 되었을 적에 검의 광채는 번갯불처럼 번쩍여서 이와 같 은 가까운 간격에서는 그 늙은이가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도망치지 못하리 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순간적으로 새까만 빛이 마치 기둥처럼 솟아오르더니 그 늙은이 의 빈틈을 완전히 뒤덮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박마천은 깜짝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단검으로 이미 그 늙은이가 활짝 핀 우산을 후려쳤다. 이 한 자루의 검은 절세의 기물(奇物)이었다. 바로 춘추전국시에 만들어진 어장 검이라 예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야말로 쇠를 자르고 검을 동강 내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의 웅후한 내력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설사 상대방이 한 자루의 보검을 들고 있다 하더라도 그 보검을 두 토막으로 낼 수가 있었다. 헌데 그 늙은이의 우산은 무슨 물건으로 만들었는지 박마천이 일검을 들어 그 우 산을 후려치게되자 날카롭고도 뾰족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잇따라 새까만 우산 위에서 몇 무더기의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어장검과 우산의 살대가 뾰족하게 맞 부딪치면서 일어난 불꽃이었다... 눈부신 불꽃이 번쩍하고 사라지게 되었으며 박마천은 그 찰나에 뇌리에서 갑자기 한가지 상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는 이 노인이 누구라는 것을 떠올린 것일까... 마음의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번쩍하고 사라지는 불꽃보다도 더 빠른 법이었다. 그가 그 노인의 내력을 떠올리게 되고 미쳐 입을 열어 말하기 전에 눈앞에 활짝 펼쳐졌던 무쇠의 우산이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순간 거꾸로 뻗쳐 나는 세찬 기운이 그 무쇠로 만들어진 우산 쪽에서 몰 려드는 것을 느꼈고 단검이 펼쳐 놓은 검의 그물을 뚫고서 그의 온몸으로 핍박해 오는 것을 느꼈다. 대뜸 그는 마치 자기의 몸이 세차게 퍼붓는 폭우 속에서 번갯불이 번쩍 하는 일 격을 맞는 것 같았다. 전류가 온 몸을 통하게 되고 그의 몸은 얼얼해져 장검을 쥐었던 손에 아무리 힘 을 주려고 해도 힘을 줄 수가 없어 단검은 그만 손에서 떨어져 달아나게 되었고 급히 맴도는 무쇠의 우산에 충격이 더 쏘아져 날아가더니 {탁!}하는 소리와 함께 대들보에 꽂히고 말았다. 박마천은 혼비백산하고 말았고 다시는 어장검을 돌볼 여지없이 상반신을 제치면 서 거꾸로 쏘아져 나아갔다. 그리고는 벼락같이 허공에서 네 번이나 재주를 넘고 서 이장 남짓한 곳까지 쏘아져 나아가고서야 가까스로 어젯밤 고검남에 의해 뻥 뚫린 벽 옆에 내려서서는 자세를 가다듬을 수가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경악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 눈으로 그는 그 노인을 바라 보고 있는데 일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제 그의 얼굴은 마음속의 감정까지 도 모조리 숨김없이 드러내게 되었다. 그 늙은이는 우산 뒤쪽에서 머리를 내밀고 박마천이 이미 이장 남짓한 벽 에 서 있는 것을 보고서야 가까스로 우산을 오므렸다. 그는 노여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박마천을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비스듬히 치 켜올렸던 짙은 눈썹을 내리면서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의 그 일검은 정말 흉독하군. 만약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 도 자네가 살아남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네. 훗날 자네의 생명은 그 일검 아래 마무리짓게 될 걸세.] 박마천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 명호에서 선배 외에는 이 필살지검(必殺之劍)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다 시 찾아볼 수 없을 것이외다.] 그 늙은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제 내가 자네의 그 필살지검을 깨뜨릴 수 있었는데 훗날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으리라고 할 수는 없을 걸? 그 사람은 나와 같이 자비를 품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네의 한평생 미명은 바로 그 일검 아래서 상실되고 말 것일세.]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검도 독하고 사람도 독하여 전혀 사정을 두지 않으니 결코 훌륭한 초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네. 자네는 분명히 그 점을 명심하게.] 박마천은 잠시 말이 없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의 가르치심에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행동이 있는 것이며 그 일검 아래에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옹기 그릇은 아궁이 아래쪽에서 깨어지게 되고 장군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하는 고로 무림에서 칼과 검으로 명성을 떨쳤다가 만약에 검 아래 죽는다면 한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선배님이 들먹이신 몇 분의 위인들 외에 지금 무림에 있는 사람들 이 불초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노인은 한동안 박마천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 선친과 한 번 만나 본 인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권고를 한 것인데 듣고 안 듣고는 자네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일세.] [선배님의 호의에 삼가 감사드립니다.] 박마천은 포권으로 예의를 했다. [선친께서 살아 생전에 종종 대막을 지나가게 되는 어느 날 밤에 이리떼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행히 한 손에 철산을 든 사람이 함께 이리떼를 막아 주게 되고 하룻밤 사이에 일 천여 마리나 되는 이리떼들을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선친께서 위험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삽십년 전의 일은 들먹일 필요가 없네. 사람이 늙으면 기억도 그렇게 좋은 편은 못되는 바라 나는 이미 그런 옛일은 잊어버린지 오래 일세.] 박마천은 약간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선친께서는 자세히 선배님의 옷차림이나 명호를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후배 가 갑자기 선배님을 대하게 되어 여러모로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철산을 펴 시는 것을 보고서야 선배님이 선친께서 말씀하시던 분임을 가까스로 알아차리게 된 것이지요.] 늙은이는 삼십년 전에 박남선과 함께 이리떼들을 상대로 싸운 일을 떠올리게 된 듯 빙그레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영존께서는 이미 중년이 지나셨는데 무공이 기이하도록 높았고 손을 쓸 때마다 몇 마리의 청낭이 죽어 갔다네. 만약에 이리떼들이 조수처럼 수천 수만 마리가 함 께 달려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결코 위험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네... 그래 나는 밀륵지에서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을 도와서 고향으로 달려가느라고 길 을 재촉하고 있다가 대막 깊숙한 곳에서 비참하게 울부짖는 이리떼들의 소리가 들 리는 것을 듣고 틀림없이 대막속에 사람이 갇혔구나 하고 달려가 살펴보게 되었 네. 그 때 영존께서는 온몸이 피로 목욕을 하듯이 하고 있었고 천막의 사방의 모 래 바닥도 새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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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