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산계곡과 진불암
송하 전명수
오늘이 가을의 문턱인 입추이며 말복이다. 유난히 무덥고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만큼 열대야가 연일 지속 되는 바람에 더위 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시절이다. 여름 내내 진땀을 흘리면서 휴가나 피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형편에 놓인 이웃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몸을 식힐 시원한 곳을 찾아 함께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더더욱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오늘도 L, P친구랑 시원한 계곡을 찾아 가기로 하였다. 아침 일찌감치 9시에 시내에서 만나 한티재를 넘어 군위군 효령면을 거쳐서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에 위치한 치산계곡으로 향하였다. 동명 삼거리까지는 도로가 한산하더니 한티재를 향하여 산길을 오르는 초입에 이르니 흙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가파르고 S자형 도로가 연속으로 이어지니 추월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도리 없이 천천히 뒤따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조금 무리하게 겨우 추월하여 고개 마루를 넘어 조금 내려가니 또 다른 덤프트럭이 짐을 가득 싣고 느림보 운행을 하고 있었다. 대율리에서 트럭은 골목으로 사라지고 효령면 소재지를 지나 신령 쪽으로 달린다. 논들에는 모가 푸른빛을 발하며 탐스럽게 잘 자라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밭작물은 생육에 지장이 많아 수확이 줄어들 것이라 하니 농민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걱정되는 마음이다. 신령면 부산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치산계곡으로 오른다. 팔공산은 도립공원인데 공원직원이 아닌 동네 청년들이 주차요금을 징수하고 있는데 대당 2,000원씩이라고 한다. 차량은 수도사 주차장에 세워두고 각자 배낭을 걸머메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오늘 나들이의 테마는 산행이 아니고 시원한 계곡에서 피서하는 것이므로 동봉까지 오르지 아니하고 진불암(眞佛庵)까지만 올랐다가 내려오기로 하였다.
수도사에서 동봉까지는 5.5km이고 진불암까지는 3km이다. 산길은 평지 길과 비교 한다면 그 소요시간을 두 배는 잡아야 할 것 같다. 오르는 길은 나무숲이 우거져있어 거의 그늘을 이루고 있으며 계곡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그늘에 들어서니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데 이곳으로 피서 온 게 참으로 잘 생각한 것 같다. 조금 오르니 넓고 깊은 소(沼)에는 일찍이 도착한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은 옷 그대로 물속에 들어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보기만 하여도 더위가 한꺼번에 달아나는 기분이다. 아이들은 그저 좋아 깔깔 대며 물장구를 치고 있다. 이곳에서 콘크리트 다리가 아닌 튼튼한 원목으로 놓여 진 구름다리를 건넌다. 하늘 높이 치솟은 숲을 바라보니 참나무, 소나무, 물푸레나무들인데 특히 소나무 군락지에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듯 서로 높이 올라가고자 경쟁을 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나무 둥치가 굵기는커녕 가늘고 키만 크게 자라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옆에서 자라는 동료들 보다 자람이 뒤처지면 햇볕을 받지 못하여 결국 말라죽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하여 위로 위로만 올라가는 듯하다.
공산폭포에 닿았다. 이곳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워낙 가문 탓에 수량이 풍부하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피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폭포요, 소(沼)를 이루고 있다. 공산폭포는 수도사에서 약1,5km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을 치산폭포라고도 한다. 폭포의 총연장은 60여m로 3단으로 떨어지며 그 폭은 약20여m이다. 팔공산을 에워싸고 있는 깊고 넓은 원시림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이 폭포는 수많은 팔공산 폭포 중에 가장 낙차가 크고 주변 풍광이 멋스러운 폭포이다. 온몸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온다. 한참을 오르니 철제 와이어, 철판으로 제작한 현수교 즉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푸른 숲속에 빨강색 다리가 인상에 깊이 남을 듯하다. 시드니 도시의 지붕은 온통 빨강색인데 그 이유는 푸른 숲속의 도시라 빨강집이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새롭게 다가온다. 여기서부터 좀 기파를 것 같았으나 한고비 오르고 나니 평지와 같은 길이 이어지고 또 다시 그와 같은 길이 반복된다. 길 아래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매미소리, 새소리가 산의 정적을 깨트리며 자연의 교향곡으로 들려온다. 육산의 흙길이 이어지더니 바위길, 돌길, 너덜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두 아름도 넘을 듯한 떡갈나무를 앞뒤에 두고 조사님들의 부도가 보여 그 앞에 앉아 쉬면서 언제 어느 분의 부도인지 알 수 없지만 팔공산 명당에 자리하고 있으니 편안하게 영면하시기를 기원하였다.
바쁠 것도 없는 상황인지라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올랐더니 드디어 목적지 진불암에 닿았다. 텃밭이 나타나고 법당과 요사채, 삼성각이 전부다. 법당은 약100년 전에 지은 것이고 6칸의 팔작지붕에 주심포 양식의 단층건물이다. 3년 전에 지었다는 요사채 기둥 주련의 글귀가 마음에 다가 온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태어남이란 한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조각의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스님이 법당에 앉아 참선을 하더니 금방 밖으로 나오기에 합장하고 인사를 건네니 더우신데 찬물이라도 마시라며 우물을 가리킨다. 시원한 우물물 한바가지를 들이키고 나무그늘아래 널따란 반석탁자 앞의 의자에 앉아 있는데 스님이 다가오더니 쿠키랑 풋고추와 쌈장을 내어 놓으며 먹어 보라고 권하였다. 12시가 되었으니 꼭 점심시간인데 배가 출출하기도 하였지만 생전 처음으로 먹어보는 쿠키와 풋고추가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 좀처럼 생각할 수조차 없는 쿠키와 풋고추의 생소한 짝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공해 고추라 그런지 몰라도 그 맛이 일품이다. 맵지도 아니하고 달작 지근하여 열 개도 더 먹은 듯하다. 풋고추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지 손수 풋고추를 한 봉지 따주며 가져가라 한다. 그리고는 아직 제대로 익지도 않은 옥수수를 쪄서 먹으라고 권하였다.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스님이다. 통성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전에 이곳에 올라와 혼자 정진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혜경(慧鏡)스님이라고 직접 사인해 주었다. 진불암에 대하여 역사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였더니 간단히 이야기 하겠다며 들려주었다. 진불암은 신라 진평왕 32년(611년)에 창건하였다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지만 고려말기에 혼수(混修/1320-1392)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관세음 보살님이 현신한 도량이라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창건 초기에 옆 계곡에 가불암이라는 암자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밤 아리다운 처녀가 가불암에 나타나 하룻밤을 묵어가기를 청하였으나 그곳 스님은 허락하지 아니 하였다. 그래서 다시 진불암으로 찾아와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는데 이곳 스님은 하락하였고 그 처녀는 목욕물을 준비해 달라고 하여 스님은 그렇게 해 주었는데 처녀가 목욕을 하고 난 뒤의 목욕물은 금빛을 띄고 있었는데 스님도 그 물에 목욕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처녀는 온데간데없고 스님은 도를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불암은 없어지고 진불암은 지금까지 건재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그때 그 처녀는 다름 아닌 관세음보살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진불암은 명산인 팔공산 중에서도 좌측으로 지혜의 제일 문수봉, 우측으로 실행제일 보현봉, 전면에는 대자대비 관음봉, 뒤에는 청정법신 비로봉이 감싸고 있으며 그 중앙에 석가세존이 증명하여 진불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혜경 스님은 소통과 막힘에 관하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옛날의 주택과 살림용기들은 모두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그 수명을 다하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주택은 나무, 흙, 풀로 되어 있고 용기란 질그릇, 나뭇가지나 볏짚, 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통이 잘 이루어 졌다고 설명한다. 요즘은 유리, 플라스틱, 화학 소재로 만든 건축자재. 생활용기 때문에 소통도 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수명을 다하여도 좀 체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공해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는 소재와 주변 환경에 둘러싸인 현대 사람들은 서로가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한 설명으로 인간과 환경에 대하여 온 인류가 깨달아야 할 문제라 여겨진다. 언제 시간을 내어 이곳에 올라와 하루 밤 지내고 가면 좋겠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 분위기이고 스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인간적인 만남을 아쉬워하며 스님과 작별하고 아래로 내려온다.
어디 만큼 내려 왔을까. 길 아래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오가는 사람도 없다. 더위를 식히자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풍덩 물속으로 뛰어든다. 시원하기 그지없다. 온몸이 속속들이 시원해진다. 식힌 몸으로 둘러앉아 마시는 불로막걸리 한잔의 맛도 일품이다. 팔공산에는 수태 골, 동화사 계곡, 폭포 골 등 계곡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곳 치산계곡이 가장 깨끗하고 수량도 풍부한 듯하다. 말복 날이자 입추 날에 멋진 계곡에서 운동을 겸한 피서를 제대로 한 것 같고 나들이의 의미와 보람도 있는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이다.
첫댓글 치산계곡 공산폭포를 지나 진불암가지 다녀오셨네요 십여일전 저도 치산계곡 공산폭포에 다녀왔읍니다
수도사 아래쪽개울과 윗쪽개울의 느낌이 좀다른것 같았읍니다 진불암 스님과 좋은 만남 즐거웠겠읍니다
더위에 건강 잘챙기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