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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차 백두대간 산행
2013.07.28
설악산 구간
한계령-서북능 삼거리-끝청-중청-희운각-천불동-소공원
시간:10시간
거리:18.5km
한계령-2.33-서북능 삼거리-4.05-끝청-1.75-대청봉-1.9-희운각-0.2-무너미(10.23km) 무너미-소공원 8.3km 소공원-c1 주차장 : 택시로 이동 5000원
천상의 낙원은 오직 낙원을 경험한 자 만이 확신할 수 있다. 믿음에 뿌리를 둔 종교와 같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다만 낙원을 꿈꿀 뿐.
02.46
한계령 휴게소
밤새 바다를 기어나와 마침내 말라죽은 불가사리처럼, 혹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오늘 하루 저 오만한 고통의 산을 기어이 올라 비처럼 흩어지는 詩의 꽃잎이 되었으면.
04:31
한계령에서 서북능 삼거리에 이르는 두시간여의 오르막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사감 선생처럼 오로지 냉혹하기만한 된비알이었다.
설악산에 오르는 통과의례처럼 가혹했다. 다행히 이번 산행에는 대청봉에 오르기 위해 따라온 일일 회원들이 있어 꼴찌에서 쫓아가야하는 부담은 없었다.
보이는것이라고는 오직 빛이 닿지않은 검은 수풀 뿐. 쓴 웃음같은 야생화만이 게토의 거리에서 살아남은 자처럼 힘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05:16
언제부터인가 설악산 서북능을 한번 타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오늘같은 비오는 새벽이라니... 설국 열차에 나오는 송광호의 얼굴처럼 감질나는 예고편쯤으로 여겨야겟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산이 내어준 얼굴에 대해 군시렁거려서는 안되는 법이니까.
난데없는 너들 길이 발걸음을 불편하게 했다. 황철봉이나 저항령 구간의 너들에 비하면 별것아니었지만 어제 밤 출발지에서 먹은 할시온(입면 유도제)의 효과가 그 때까지 남아 걸음을 괴롭혔다. 나는 여전히 너무 나른했고 의식은 길바닥에 쳐박혀 허물거렸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연신 얼음물을 마셨다.
여름의 중심에 걸린 음험한 새벽이다. 달도 해도없는 빈 하늘에 설명할수 없는 설레임이 배꼽처럼 걸려있다. 오늘은 새도 울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의 습기를 닮은 더운 비가 몸을 눅눅히 감쌌다. 옷 안쪽에 가려진 희미한 육체를 상상하듯 그림자 너머에 필경 감추어져있을 바위의 관능을 상상했다. 범상치 않는 풍경이었다. 가려진것은 가려진 채 아름다웠다.
모시대
산은 언어의 母胎다. 하지만 힘을 소모할 뿐 언어를 찾으려하지 않는다.
詩를 쓴다는것은 순결하고 절대적인 세상을 향해 희망을 가진다는거다.
그래서 나는 좀 모자라게 살더라도 詩처럼 살고 싶다.
더 정제되고 더 예리한 칼이되어 나를 찌르고 싶다.
함초롬이 비에 젖은 모시대
06:55
마침내 끝청에 도착했다. 대청 중청 소청을 거쳐 희운각 무너미쪽으로 하산하면 이번 대간길은 끝이다. 벌써 산행을 마감한듯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불어난 강물처럼 온통 진흙빛이다. 대청봉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좀비가 나오는 영화처럼 떠오른다.
갑자기 비오는 대청봉에 올라 무어하겠느냐는 자기 기만의 생각이 들었다. 산행을 위한 산행, 바보같은 발걸음은 한발자국도 옮겨놓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소신이 되어 나를 강하게 부추긴다.
"그래 대청봉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아." 희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나니 산을 기어이 오르고 싶은 열망도 없었다.
동자꽃
카르멘의 입술을 닮은 동자꽃
송이풀 혹은 흰송이풀
나는 만주 송이풀과 흰송이풀을 감별할 줄 아는 감식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균질의 작고 메마른 소리들이 들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그 의미없이 흩어지는 소리조차 진솔하고 강했다.
정신은 깨어났지만 육체는 여전히 불편한 상태였다. 마치 꿈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춘 현실같았다.
뽀얀 상상력이 만든 길을 나는 익명의 침묵으로 걸었다. 내 육체가 갈망하는 언어들을 나는 제때에 만들지 못했다.
물레나물
늘 후줄그레한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물레나물 찍기를 꺼려한다. 모처럼 찍었는데 역시나 촛점이 맞지 않았다. 매번 물레 나물에게 미안하다.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주변의 소음들은 어느듯 디미뉴엔도로 사라지고 옆사람의 작은 속삭임만 겨우 남았다. 빛이 차단된 바다 속을 유영하는 돌고래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주파수로 대화하는듯했다.
의미를 모를 소리들이 물흐르듯 흘렀다. 그것이 대화라는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간혹 즐겁기까지했다.
상상하라 산은 간혹 이른 모습이다. 삼년 전 대청봉에서 바라 본 운해.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산 꼭대기에서 일시에 내지르는 와! 하는 함성이 아직 귓가에 멤도는듯 하다. 마치 지리한 축구시합 끝에 우리편이 마침내 득점한 순간의 함성처럼 그날의 함성은 짧지만 강렬했다.
산과 하늘이 힘을 모아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그날 이후 설악의 모든 풍경들은 심드렁해졌다.
용아장성
서북능쪽 풍경
설악 공룡 풍경
07:27
일행을 대청봉 쪽으로 보내고 나 홀로 희운각을 향해 내려간다. 세상은 온통 안개다. 굵은 수적이 연신 몸을 적셨지만 더위를 피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라 위안했다.
세상이 속네를 드러내기를 거부할 때는 나는 그 뜻에 따르면 그만이다. 그런게 산행이니까.
산은 쓸쓸함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았고 그 삽상한 기운이 너무 좋아 나는 아무곳에라도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고독을 찬으로 아침을 먹었다. 찬 물을 미숫가루에 부어 마셨다. 금새 허기가 사라졌다. 다 찌그러진 팥빵을 함께 먹었다. 달콤한 팥향이 입에 가득 돌도록 천천히 씹었다.
몸이 차가와졌다. 계단 구석에 앉아 아침을 해결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연신 인사를 한다. '그래 나는 잘 있다.'
남양씨로 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금새 대청봉을 찍고 중청으로 내려온 것이다. 나도 서둘러 배낭을 챙겨 하산했다.
07:39
왜 저들은 혼자일까. 고독한 시간에 더 고독한 여행자를 만난다. 세상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분이다.
산오이풀
길은 거대한 뱀처럼 한무더기의 사람들을 삼키고 또 토해냈다.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늘 뱀의 아가리 앞에 놓인것처럼 조급했다. 멀어지는 길의 불가사의한 동물성을 상상하며 내가 나를 조련했다.
길은 지극히 냉담했고 그 싸늘한 현실의 반복성이 나를 강하게 했다.
희운각 내려가다 11기 회원들을 만났다. 씩씩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푸른 바다에서 한 떼의 무리로 헤엄치는 물고기같았다. 개개의 사람보다는 하나로 묶어진 일체감이 돋보였다. 산길을 걷는 공통의 속도에 서로 익숙한듯했다. 그들을 좇아가자니 마음만 공연히 분주해졌다. 곧 설악이 모습을 보여 줄 모양인지 구름이 산을 훑으며 지나간다. 익숙한 자태의 산줄기가 드러났다.
탄성과 더불어 드러난 천불동 방향의 설악산 모습
세상은 더 풍요해졌지만 사랑은 더 곤궁하다.
물질이 세상을 덮어 사랑을 더럽혔다.
덜 관조적이고 더 관능적이 되었다.
덜 고요하고 더 피상적인것이 되었다.
산을 알현하였지만 이번에는 또 사진기가 말썽이다. 습기가 차서 렌즈가 백내장 환자의 수정체 꼴이 되어버린것이다. 사진기를 말려야 하지만 방도가 없었다. 렌즈를 벗기고 대충 습기를 닦았지만 사진이 볼품없기는 마찬가지다. 선뜻 사진 찍어 주겠노라고 나서기도 좀 뭣하다. 사진기를 말리며 일행들을 기다렸다.
08:38
산이란 창조적 자아의 세계다. 감성과 육체가 서로를 소비하며 선순환한다. 산과 자아의 무한 순환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체력의 절대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편쟁이처럼 또 산을 오른다.
마침내 일행이 속속 도착했다. 겨우 렌즈를 수습해 사진을 찍었다. 비도 그칠 모양이었다. 구름이 화장기 없는 산을 데려놓았다.
감격까지는 아니지만 감동스러운 풍경이다. 아이 하나가 바위를 오르며 '그림이다,그림이야'란 말을 반복한다. 아이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까. 그야말로 한푹의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림이라하기에는 사람의 감성이라고는 조금도 스며들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풍경 그 자체의 풍경이었다.
08:44
어떤 때는 내가 쓴글의 의미들을 나조차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모른다고하여 내 관념의 창작물이 아닌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몰랐던 의미들을 어른이 되어 비로소 알게되듯 비록 지금은 알송달송한 글이지만 사실은 훨씬 정제되고 결정화된 단어들이기에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힘들 뿐이다. 언어의 예지력과 같은것이다.
이런 언어들은 머리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므로 처음에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알고리즘을 알 수 없어 당황하지만 천천히 곱씹어 보면 그 단어야 말로 정수인것이다. 꼭 마법에 걸린것 같다. 아마 무의식의 발로일것이다. 암흑의 세상으로부터 불현듯 툭 튀어나온 암호문자. 詩의 종자다.
09:00
멀리 희운각이 보인다. 대간 산행은 끝이 나고 이제 남은 길은 접속구간이다. 나는 천불동을 통과해 설악산 소공원에 이르는 6km가 넘는 이 길을 무척 싫어 한다. 처음 부터 싫어 한것은 아니지만 몇번을 단지 접속구간으로 산행하다보니 산행 말미에 밀려오는 다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생긴 일종의 권태감이다.
희운각 위로 출입이 금지된 화채 능선이 보이고.
희운각 대피소
희운각 대치소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설악의 중앙역. 저마다 비개인 하늘에 안도하며 새로운 여정을 준비한다. 오늘은 모처럼 금쪽같은 시간의 여유가 주어진 날. 후미는 저만치 멀리 있고 시간은 두 다리 아래에서 팔을 괴고 노닥거린다. 우리도 하릴없이 앉아 설악을 추억하며 시간을 보냈다.
범상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일요일 아침이다. 1000m가 넘는 산정이라는 기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낮은 구름은 하늘을 가리웠고 햇살은 반쯤 식은 국처럼 미지근했다.
마치 정신을 가다듬으려는듯 똑 바로 산을 쳐다보았다.
아무른 함축도 없는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기다려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것 같은 지독한 현실이 앞을 가로막았다. 스테레오타입이었다. 머리 안 쪽에서 물리칠 수 없는 망상이 나를 괴롭혔다.
겸재 예찬
윤명로
겸재 예찬은 진경 산수화로 풍경에 조선의 얼을 입힌 겸재 정선을 예찬한 윤명로의 그림 시리즈다.
우리 집 거실의 벽면을 장식할 만큼(위 그림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희운각을 지나 환자 이송용 가설대에서 바라 본 설악의 풍경은 눈에 익은 겸재의 작품을 보는듯 감동적이었다. 아니 겸재의 작품을 재해석한 윤명로의 느낌이 더 강했다. 그림이 풍경을 압도하는듯한 느낌. 혹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그림 우위의 표현이 잘 들어맞는 그런 풍경이었다.
죽음의 계곡 쪽 능선
공룡 능선의 초입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설악 공룡을 타고 싶어 안달한적이 있었다. 그 때는 희운각에서 공룡 능선을 바라만 봐도 티라노 사우르스의 거대한 힘 앞에 주눅들어 내 형편없는 자의식을 한없이 한탄했다.
공룡을 두어번 타고 난 지금 공룡을 바라보는 내 눈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세상 이치가 다 이렇다. 관용은 강한자의 것이다. 너그러움이나 이해도 마찬가지다. 가진자,힘있는 자가 관대해야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두번 다시 타고 싶은 맘은 없다. 이제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해야할 차례다.
혼자 먹는 간식같은 깨알같은 재미가 남아있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맑고 깊은 길은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쇼팽처럼 흠잡을데 없는 고요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아프고 고단하고 배가 고팠다.
참을 수 없는 기분이란 이런것이다. 왜 하필 지금일까. 생각해보면 고통과 즐거움은 얼굴만 다른 순수한 육체의 요구가 아닌가. 그 요구를 차등해야만 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나는 아마 탐미에대해 강박증이 걸려버린 모양이다.
겸재 혹은 윤명로를 떠 올리는 풍경
구상인가,추상인가 아니면 구상인 동시에 추상인가?
구상과 추상의 간극에서 스며 나온 묘한 떨림같은것이 온 산의 풍경을 지배한다. 동시에 선과 색들이 바위라는 구체적인 형태를 원시의 선과 면으로 흐트러 놓는다. 그런가 하면 그 흐트러진 철화의 추상이 어느듯 익숙한 형태로 재구성되며 혼란한 내 인상의 근저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는다.
내가 일찌기 알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의 반열에 내 스스로 다가섰다는 묘한 성장의 쾌감이 물고기 비늘처럼 빛났다.
커다란 파도를 걱정없이 즐기는 윈드 서퍼같았다.
잘 걷는것과 빠르게 걷는것은 차이가 있다. 잘 걷는다는것은 천부적인 능력으로 잘 걸을 수 있는것이고 빨리 걷는다는것은 일부러 속력을 내어 걷는것이다.
속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폭주족들이 골병이 들어 속도의 노예가되듯 결국 경쟁의 골병을 앓게된다.
무엇이 그들을 골병들게했을까 빠름 빠름 빠름. 이 속도에 매몰된 피로 사회. 그 피로 사회를 벗어나 한적한 산에 와서도 결국 그들은 속도의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문도 사유 없는 만성 피로형 인간이 되고만다.
09:37
짙은 초록의 여름 숲 위로 깨끗하고 맑은 하늘이 간혹 빛났지만 보통의 풍경 속에서 낯선 언어를 발견한다는것은 쉽지 않다.
머리는 물에 풀어진 빵처럼 힘이 없었다. 익숙한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라는 브레히트의 충고를 떠올린다.
이미 익숙해진 숲. 낯선 말이 그립다.
산을 오를 때는 보다 섬세한 감각이 요구된다. 잘 발달된 대퇴근이 아니라 세상을 묘사할 세련된 언어가 더 필요하다.
사소한것 익숙한것일수록 오히려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인 경우가 많다. 영리하고 섬세한 여행자의 눈으로 산을 타야한다. 대상포진을 앓고 난 후의 아리한 통증처럼 깊은 응시의 상흔이 뚜렷이 남아야한다. .
이미 지나버린 시간들이 능선을 질주하며 여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나간 시간들의 유령들이 그들의 천국을 이루며 모여있는듯했다. 산행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 과거와 현실의 시간들이 뒤섞여 감성의 함수들을 복잡하게 뒤섞어 놓았다. 조그만 방에 가득찬 뿌연 연기처럼 색깔이 없는 시간들. 산행은 그 색깔이 없는 시간의 기억들에 조금씩 색채를 입히는 작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9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두다리를 뻗고 물가에서 쉬었다. 산행 중의 꿀같은 휴식.
마치 조용한 커피숍에서 들리는 음악처럼 마음이 안정되었다. 누군가 고통의 플러그를 뽑아버렸는지 그토록 줄기차게 따라왔던 두 다리의 고통들이 뜬금없이 사라져버렸다.
싱싱한 물기를 머금은 야채처럼 비비드한 신록의 힘이 강열하게 퍼졌다. 모처럼의 건강한 기분이 들었다.
천당폭포
아무리 봐도 찍고 또 찍어도 시원한 풍경. 너무 시원해 갈증이 되어버린 풍경.
길이 토해내는 희망의 속삭임들이 누에가 뽑아낸 비단처럼 빛난다.
세상에 처음 나와 햇빛에 날개를 말리는 나비처럼 나는 길 위에서 내 삶의 공약들을 더듬는다.
쪼그라던 상상의 형액을 풀어내며 마음을 한없이 해방시킨다. 안거가 해제된 스님같다.
둥근 이질풀
오련폭포
11:27
비선대
11:53
산을 내려 오다말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큰 돌부처와 같은 산이 여전히 서 있었다. 거대한 침묵의 소금 기둥과도 같았다. 순간 내 몸을 돌고 있던 혈관과 신경들이 바이올린 줄을 조이듯 팽팽해짐을 느꼈다. 내 몸을 이룬 살들이 낱낱이 쪼개어 지며 훨씬 세분화되고 전문화 된 부속으로 바뀌어 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큰 일을 이룬 뒤에 느끼느 모처럼의 성장같은것이었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난 뒤의 느낌이었다.
- 후 기 -
산을 산이라 부르는것도 물을 물이라 부르는것도 이미 오래된 비유, 모든 비유는 스스로 낡아간다.
오늘을 말없이 건너는 동안 尺으로 길어진 내 두다리. 그 두다리에 걸친 내 오랜 통증들도 비로소 낡아간다.
Vivaldi Motet "Nulla in mundo pax sinc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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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이 나를 불러 좋은 사람들과 좋은산을 오르고.멋진 풍경과 맑은공기..평화를 맘껏 누린 들뜬 기분이 채 식기도 전에
이렇게 지나온곳을 다시 볼수 있어 행복 합니다.
다시보니 이렇게 좋은곳을 내가 지나왔을까..다시금 생각케 합니다.
항상 서로를 의지하며 백두를 정복하는 강철의 후미조 파이팅 입니다.
오늘따라 문경공파님의 따뜻한 답글을 읽으니 눈가가 촉촉해 집니다.
제가 걸어 온 길 다 우리 강철의 후미조 덕입니다.
즐풍목우의 하루,여유있고 재미있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문경공파님...
대간길 이제는 완전히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나는 군요...
늘 수고하시고 완주 때까지 화이팅!!!
모처럼의 여유있는 강철의 후미조 조장이신 폴님 ㅋㅋ ! 산을 즐감 할줄아는 오리지널 강철 후미조 님들!! 님들은 후미조가 아니라 정녕 선두그룹 이라고 명하고 싶네요 단합된 강철조가 부워러울 따릅니다
저희들의 시선은 항상 11기 선배님들을 향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제 잠깐 밖에 함께 못했지만 즐거움을 함께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두다리로 하는 산행이 아니라 마음이 함께 하는 산행,그런 산행을 교범삼아 선배님들의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로 모처름 느껴보는 여유로운 산행!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
갈수록 산행의 묘미에 빠져드는것 같습니다 .마약에 중독된것 처럼...
다음 산행이 자꾸 기다려지네요.
멋진 글과 사진 즐감하고 갑니다.^^
정말 모처럼 여유가 생겨 그런가 봅니다.
저 역시 쫓긴다는 부담이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산행을 편하게 할 줄 몰랐네요.
남은 구간 스스로 여유를 찾아가며 이번처럼 즐거운 산행을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폴님의 카메라가 요술을 부린듯...
자연의 모습그대로인지 믿기지 않을만큼
설약의 비경은 정비석작가님의 "산정무한"
책속의 글귀들을 다 쏟아부어도 될정도로
어쩜 이렇게도 아름다울까요 ?
사진으로 보고 있어도 가슴이 벙벙거리는
벅찬감동인데...그 곳에 있었던분들은
가희상상이 가네요
폴님의 사진과 글속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으며
오랫동안 음미하고 갑니다.
아!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읽고 자란 세대군요.
학창 시절 글 배우는 재미에 꽤나 빠져들게한 명문중의 명문이었죠.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아직 암연도 愁愁도 모른 채 산을 타고 있지만 저도 꼭 그 경지를 느끼고 싶습니다.
보잘것 없는 후기 글을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폴 원장님!!!
비에 젖은 설악산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 같네요...
설악 서북능선 길 쉽지는 않은데...
특히 우중이라 길도 미끄러웠을 것이고...
늘 안전한 대간길 되길 바라고...
산행기는 즐감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촉촉한 설악산, 방금 목욕을 마친 여인의 뒤태와 같은....^^*
늘 깊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8월 마지막 산행 때 뵙겠습니다.
폴 원장님!
무릉도원의 설악풍경 수십년 세월이 흘러가도
변함이 없는데 우리는 세월속에 주름만 늘어 갑니다.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더분여름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 백두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