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739]蘇軾(소식)-題西林壁(제서림벽)
題西林壁(제서림벽), 蘇軾(소식)
서림사 벽에 쓰다, 소동파
橫看成嶺側成峰, 횡강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마루 같고, 세로로 보면 봉우리로다.
멀고 가까운 곳 높고 낮은 곳, 보는 모습이 서로 다르구나.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몸이 산속에 있어서라네.
廬:오두막집 려
山:메 산
眞:참 진
面:얼굴 면
目:눈 목
소식(蘇軾, 1037~1101) 호는 동파東坡.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여산은 중국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기(奇) · 수(秀) · 험(險) · 웅(雄)’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아름답고 신비한 산이자,
불교와 도교의 성지로서 1996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일찍이 송(宋)나라의 문인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은
이 산을 유람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매혹되어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제목의 시 한 수를 남겼다.
가로 보면 뻗어 간 고개요 옆으로 보면 솟은 봉우리
멀리서 가까이서, 높고 낮은 곳에서 각각 다르구나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것은
이 몸이 산 가운데 있기 때문이겠지
橫着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 광속(匡俗)이라는 도사가
이 산 깊숙한 곳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지어 은거하면서
도를 닦고 있었다. 무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찾아 벼슬을 시키려고 했으나 그가 거처하던
오두막집만 찾아냈을 뿐, 광속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람들은 광속이 살던 오두막집이란 뜻으로
산 이름을 광려산(匡廬山)이라고 불렀는데,
후에 여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여산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데다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좀처럼 본모습을 볼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하여
무릇 사물의 정체를 알아채기 힘들거나 어떤 사람의 태도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를 가리켜
‘불식여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여산진면목’이 나왔다.
소식은 호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 하여, 소동파(蘇東坡)라고도 부른다.
여산(루산)을 유람하면서 모두 7수의 시를 지었는데,
《제서림벽》도 그 가운데 한 수이다.
《제서림벽》이라는 제목은 '서림사(西林寺) 담장에 쓴 제시(題詩)'라는 뜻이다.
동진(東晉) 시대에 세워진 서림사는 여산의 북서쪽 기슭에 있는 유명한 고찰이다.
《제서림벽》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 보면 산줄기 옆에서 보면 봉우리(橫看成嶺側成峰),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그 모습 제각각일세(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不識廬山眞面目),
단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只緣身在此山中)."
간결한 7언절구로 쓰여진 이 시는 송나라 때 유행한 설리시(說理詩)에 속한다.
곧, 삼면이 물로 싸여 있고 만학천암(萬壑千巖)이 안개에 휩싸여
그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여산의 모습을 통하여
도(道)나 진리의 전모(全貌)를 체득하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여기서 유래하여 여산진면목은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산진면목 [廬山眞面目]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