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 예배자의 삶, 약(藥)이 되는 말과 독(毒)이 되는 말(미 6:6-8)
2023.4.16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14억이 넘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간디는 젊은 시절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예수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이러한 간디의 지적이 단지 인도에서만 적용되는 것일까? 우리는 자유로울까?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신자들의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 이전에 주님의 먼저 실망하신다. 그래서 19세기 중반 덴마크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였던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는 "예수 그리스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그런데 교회는 그보다 더 엄청난 일을 했다. 예수님이 만드신 그 포도주를 다시 물로 바꾸었다."라고 말하면서 그 당시 유럽교회들을 비판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는 이 말에 덧붙여서 "한국교회 신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포도주를 담았던 항아리마저 깨버렸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기독교인들의 삶에 관계 된 지적들이다.
사순절에서 오순절에 이르는 기간 동안 “회복”이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말씀을 시리즈처럼 나누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배자의 삶에 대한 부분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고자 한다. 특별히 예배(Worship)가 아니고, 예배자(Worshiper)라고 말한 것을 주목하기 바란다. 요한복음 4장 23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참된 예배자의 모습을 갖자(또는 회복하자)고 하니까, 어떤 분은 “목사님이 지금 예배시간에 성도들의 태도들을 언급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물론 넓게 보면 이런 것들도 포함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모습이 아니고, 교회 밖에서 성도들의 삶이다.
목회하다 보면, 의외로 꾀나 많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그 본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영성’이나 ‘경건’에 대한 것이다. 흔히 영성이나 경건을 교회 안에서의 거룩한 모습으로 오해한다(거룩해 보이는 몸짓, 기도할 때의 목소리 크기, 목소리의 톤, 성경통독 횟수, 높아지는 직분과 신앙연륜, 거룩한 건물 등). 그러다 보면 자칫하면 외식적이고, 율법적이며, 기복적인 신앙으로 흐르기 쉽다. 또 실제로 그런 경향들을 많이 보여 왔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영성이나 경건의 본래 의미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여주동행)”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이 매일 계속되는 나의 생활 속(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새 계명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복종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은 단지 예배시간이나 교회 안에서만 국한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교회 밖에서 생활 속에서 몸으로 주님을 시인하는 것이 진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몇 곳의 성경 구절들을 보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구약성경에도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라온 사람들의 삶을 강조한 말씀들이 수없이 많다. 그 말씀들 중에 한 곳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미가 6장 6-8절이다. 다 같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읽자.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6-7)
이 말씀을 보면, 미가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착각 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제사를 드리러 성전에 오는 사람이 그 손에 좋은 것들(일 년 된 송아지, 천천의 숫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 내 몸의 열매 등)을 들고 오면 올수록, 하나님이 더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들도 자칫하면 이런 종류의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손에 들린 것보다, 내 마음에 담긴 것에 더 큰 관심을 두신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시 한 번 8절 말씀을 믿음으로 함께 읽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이 말씀에서처럼,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은 모든 예배자들에게 정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을 원하신다. 이 중에서도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to walk humbly with your God)”이라는 부분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진짜 영성이고, 진짜 경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들에 비춰 볼 때, 나의 생활 속에서,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예배자의 모습 중에서 가장 먼저 회복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본 설교자는, 그것은 “선한 말”이라고 확신한다(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말에는 약(藥)이 되는 말이 있고, 독(毒)이 되는 말이 있다. 배려하는 말이 있고, 배설하는 말도 있다. 성도들은 독이 되는 말을 마치 배설하듯이 내뱉으면 안된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독이 든 말을 “악성 종양(암)”이라고까지 표현했다(딤후2:16-17).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딤후 2:16-17)
예전에 MBC에서 한글날 특집으로 “말의 힘”이라는 주제로 아나운서들과 일반직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던 적이 있다. 쌀밥을 두 병에 담고, 각각 “고맙습니다”와 “짜증나!!”라는 글씨를 붙였다. 그리고 이 병들을 아나운서들에게 나눠주고 한 달 동안 수시로 겉에 쓰인 말들을 하게했다. 그랬더니 한 달 후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좋은 말을 들려준 병속 있는 밥은 하얗고 뽀얀 곰팡이들이 약간 생겼을 뿐이지만, 나쁜 말을 들려준 병에서는 악취가 나는 시커먼 곰팡이들이 많이 생겼다. 만약 이런 말들을 쏟아낸 대상이 병속에 있었던 밥풀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라면 어땠을까? 행복은 고사하고, 그 마음에 악취 나는 곰팡이들로 인해 병들어 죽어갈 것이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MBC 말의 힘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CRauTIZdRu0
그런데 돌이켜 보면, 놀랍게도 이런 악성종양과 같은 험한 말들을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또는 성도들이나 이웃들에게 얼마나 많이 퍼붓고 있는가? 독한 말을 계속하거나 듣는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자기 자신의 영혼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악성종양을 전염시키는 행동이다. 만약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물론 그를 위해서도 기도는 해야겠지만, 너무 힘들 때는 일정기간 그 사람에 대해 신경을 끄는 것이 내 영혼의 건강을 위해 좋은 방편이 될 수 있다. 영혼의 독을 매일 듣고,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성경적인 참된 영성과 경건은 삶의 현장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단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삶에 현장(가정, 동네, 학교, 직장 등)에서 참된 예배자의 모습을 회복하자. 그 중에서도 특히 영혼의 약이 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말”을 회복하는 일에 힘쓰자.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악성종양(암)과 같은 더러운 말은 미련 없이 버리자. 이것이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우리가 회복해야할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