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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언저리 돌기
2012년 4월1일 (일) 날씨 맑고 바람 강함
절뚝거리는 몸으로 홀로 화엄사 돌고 노으리와 함께
▽ 구례 외곽에서 바라본 종석대에서 차일봉을 거쳐서 원사봉으로 향하는 능선
지난 2월 초순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도하고 하여튼 근 50일 가량 병원생활 후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주지 받으며 퇴원을 하게 되며 다시 환자가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온다
사실 아프지 말아야 당연한 거지만 어차피 아프고 또 입원 수술과정을 거치는 병원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잃은 것이 많지만 반면에 여유를 가지고 살아온 세월을 뒤 돌돌아보며 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는 병원생활을 하며, 아니면 퇴원하고 이사람 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불혹의 나이가 되고 그런 상황에 처한 남자들 다 그런 과정을 겪는 모양이다
뭐 대단히 철학적 해석이라든지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대한민국 결혼한 남자들 중 무뚝뚝한 성격을 가지고 그동안 결코 가족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온 이기적인 성격을 가미한 대다수의 남자들이라면 살아온 삶을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또 앞으로 어떤 처신을 해야할 것인가도 생각하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뭐 그것도 답답한 병원생활을 벗어나면 각자 어떻게 행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 역시 대단히 건강하고 강철 같은 사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고 건강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즐겨하는 술 때문에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라는 것인데 무식한(?)나로서는 술 때문이라면 당연히 肝이라든지 하여튼 뱃속의 장기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산길 걷기가 취미고 전문이고 생활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걷는 문제가 걸린 것이 술 때문에 뼈에 이상이 오고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이 나이에 처음 알았으니 사람은 평생 죽을 때까지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고 일단 퇴원은 했지만 병원에서 설명한대로 지키자면 언제 몸이 좋아 질 것이며 먹고사는 문제는 어쩌란 말인가!
적당히 몸을 조심히 움직이며 근무를 하는 것까지야 누구나 인정하고 당연하다고도 맞장을 쳐 주겠지만 이놈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山을 찾는 것이야 당연히 몸이 어느 정도 정상 괘도에 들어서야함은 당연한 것이다
평지를 조금 걷는 것도 무리하답시고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데 하물며 山이라니!
3월 하순 퇴원하고 몇 일 후 찾아온 일요일은 상당히 추웠다
걷는 것도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어디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큰일이다
그러니 山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그런데 산이 보고픈 걸 어떡하나!
의정부역 인근 지인의 결혼식장에 간다는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사실 그 즈음 차를 탈 때도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서 차문을 닫는 모양새 이상한 탑승행위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차량 안에서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사패산까지 제대로 보고 사진도 찍고,
아니 사진은 찍지 않았어도 의정부 저 북쪽으로 보이는 멋진 산을 바라보며 어! 불곡산이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도로에서 좌측으로 바라보며 한다는 소리
「에이! 수락산 불암산은 사진을 찍으려도 온통 전신주 줄이나 건물들 때문에 틀렸어」궁시렁 궁시렁
▽ 퇴원하고 3일인가 4일인가 지난 일요일 도봉산과 사패산을 올려보고도 좋아했었다
자! 그런 상태니 이제 일주일 후 정식으로 어디를 가야하나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 지리산 성삼재까지 차타고 올라가서 노고단 정도야 쉬엄쉬엄 걸어 올라가서 장쾌한 지리의 주능선을 바라보며 오르가즘을 느끼자」
지리산에 미쳐서 고향인 제주도를 버리고 지리산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노으리에게 전화를 해본다
「성삼재 까지 버스 올라 다니냐?」
「무사 수술 받고 걷지도 못 함다서 지리산 올라고 함써? 버스는 4월 중순이라야 운행한다니 택시타고 올라가던지 지리산 골짜기 돌아보려면 제가 차로 모셔다 드릴게요」
그랴 4월1일이면 이 아래쪽은 몰라도 노고단 오르면 무지 추울거야!
다음에 올라가고 남부 지리산 골짜기에는 철 이른 벚꽃이 피었을지도 모르니 그냥 남부 지리산 골자기 사찰탐방 겸 여행을 다녀오자
남부터미널 인터넷 예약은 뭐가 그리 복잡한지!!! 그래 금요일 입원했던 병원에 갈일이 있어 볼일보고 남부터미널 들려서 예매된 일요일 구례가는 첫 버스를 타기위해서 04시30분 기상하는데 마음이 설레어서 그런지 기상할 때의 평소 느끼던 다리의 뻐근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얼마나 고대했던 나들이 었던지 우리 집 인근 지하철역 첫 열차 시간까지 알고 05시20분 집을 출발한다
그냥 맨 몸으로 나가는 것은 나로서는 아무래도 이상해서 금발머리 멋쟁이 그녀(?) 그레고리 배낭에 여분의 옷들과 디카만 넣고도 기술적으로 가득찬 배낭처럼 빵빵하게 보이게 하고 메고는 첫 지하철로 약수역 도착하니 좀 늦은 걸음걸이라도 거기서도 첫 지하철 환승을 하고 남부터미널 도착이다
강풍에 상당히 추운 아침인데 첫 버스 출발 시간대라 그런지 터미널 내 먹을 곳은 개장을 하지 않았고 바깥을 내다보니 문을 연 곳은 터미널 바로 건너 롯데리아 인데 ..... 젠장! 나로서는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런 선고가 아니라면 햄버거 종류 못 먹는다
아니 안 먹는다 그저 후루룩 마시는 국물이 따른 밥이나 면발이 좋다
▽ 너무 허전하다 지리산 의신골 어느 산 봉우리 하나 쳐다보자
표를 구입할 때 우등고속의 홀로 좌석을 예매했기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거의 눕는 자세로 출발하자말자 잠에 빠지고,
1시간30분여 시간이 지나니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탄천휴게소 라는 곳에서 멈춘다
장시간 앉았다가 금방 일어서면 잠시 절뚝거리는 상태.....
바깥으로 나와 보니 에구 여기저기의 관광버스는 온통 oo산악회 xxx산악회 .....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라고 표현하지만 솔직히 내 나이 또래거나 오히려 젊은 사람들 같은데 내 눈에는 모두가 산은 오르지 않고 술만 마시고 버스에서 음주 가무나 하고 오는 사람들로만 보이나 그래!!!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터인데 내 성질이 아직도 수양이 덜되고 못 돼먹은 모양이다
멀리 전주시가지 쪽이 보이고 사진에 보이는 곳은 동전주 정도 될거다
구례에서 나를 도와줄 지리산 귀신(?) 노으리의 문자가 날아왔다
"장시간 버스타기 괜찮으우꽈? 치사하게 점심은 혼자 먹지말고 같이 먹읍시다 "
무슨 소리냐 하면 구례 도착하자말자 귀찮게 노으리를 부르지 않고 금방 연계되는 화엄사 가는 버스로 화엄사 둘러보고 나오면 점심시간 정도 될거고 부담스러운 것을 되도록 싫어하는 나를 아는지라 혹시라도 하는 그런 문자 내용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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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산꾼의 습관은 어쩔 수 없나보다 휙 휙 지나가며 본 고속도로의 이정표를 보면 논산의 연무읍 인근의 벌판인가보다
" 흠! 그렇다면 지난 가을 지나갔던 금강기맥 자락이 보일거야!!! 잘 함보자 눈을 부라려보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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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맞어 금강기맥 자락이 흘러가는 곳이 맞다구 나 정말 마루금 타는 산꾼 맞긴 맞다구 저기 멀리 보이는 산이 익산의 미륵산이여 금강기맥이 지나가고 익산시민들의 휴식처 거기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도 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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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가 넘으면서 남원시로 접어들며 다시 눈길을 부지런히 돌려보니 또 발견했다
당연히 보일거라 생각하며 찾았던거지만 바로 좌측 고리봉에서 우측 문덕봉으로 이어지는 천황지맥의 바위능선들이다
저 능선들은 내가 지맥이라는 마루금을 타기 훨씬 전인 1990년대 즐겨 찾았던 아기자기한 바위능선 들이다
우측 고리봉 좌측은 섬진강 건너 곡성의 동악산이다
이 카페 어디에 몇 년 전 홍마님이 올려놓은 동악산 산행기 사진들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구례터미널은 새로 지어졌고 아직 정식 개소식(?)도 하지 않았다나!
시내 외곽에 자리한 것은 당연하고 바람에 황토먼지가 풀풀 날리지만 새건물이라 깨끗하고 상큼함이다
고속버스 시외버스 군내 완행버스까지 이곳에서 이용할 수 있다
정시대로 09시40분 3시간10분 소요되며 도착했고 사전에 숙지한대로 10시 화엄사 가는 농촌버스가 있다
▽ 새로 지어진 구례 터미널
남녁이라 따뜻할 줄 알았지만 강풍에 상당한 추위를 느끼지만 역시 구례는 산수유의 고장이다
시 외곽에 개나리 매화 산수유 꽃들이 흐드러졌다 그냥 요상하게 찍은 산수유 하나 더 올려본다
군내버스를 기다리며 바깥에 나와서 나중에도 얼마든지 볼테지만 건물과 전신주의 전선들 사이로 노고단을 바라본다
노으리의 차를 탔거나 택시를 이용했다면 위락시설 식당들이 있는 버스 주차장 이곳에서 한 참을 걸어아야할 화엄사까지 힘든 걷기는 없었을거다
사실 멀쩡할 때는 일부러 걸어가던 곳이지만 지금의 나는 30분 정도 걷는 것도 상당히 피로를 느끼는 상태다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화엄사골로 올라만 보았지 하산한적은 없기에 이곳을 지날 땐 항상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지나갔던 기억뿐이다
그러기에 이 일대에서 골자기를 본다거나 노고단과 종석대를 바라본 적이 없다 -노고단-
종석대 .......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치겠다
국립공원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은지 몇 년 지났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사찰에서는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한다
지리산에 위치한 사찰들 다 그런 모양이다
그 유명도나 찾는 인원에 따라 다른 모양인데 오늘은 산을 오르기 위해 스쳐지나는 것이 아니라 사찰 탐방이니 아깝지않게 내자
화엄사는 유명도가 있어 그런지 3.500냥을 징수한다 4월초파일 생인 나도 이런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0시20분이 좀 지난 시간일거다
노으리는 내가 첫 버스를 타고 이미 도착해서 화엄사를 가고 있다고 짐작하는 모양이다
화엄사 천천히 둘러보고 오슈 11시40분~12시 사이에 모시러갈게요"
산에 못간지 따져봐야 두 달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계곡을 쳐다만봐도 좋고 그저 산속에 있다는 것이 좋다
화엄사를 향해서 언제 이렇게 밝을 때 여유롭게 걸었던 적이 있었나
드디어 화엄사 입구 부도들이 자리한 곳이다 이제 곧 화엄사다
大華嚴聖地 표석도 언제 본적이 없는 것 같고 곧 이어지는 3.500냥의 입장료를 내면서 들어갔었나!
하기야 예전이라면 문화재 관람료가 아니라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가 보태진 것들이었지!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지며 웬만한 곳은 사찰입장료도 없어졌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곳마다 다르지만 액수를 징수한다
솔직히 산행을 위해서 새벽에 휙 지나갈 때야 언제 문화재를 관람이나 하며 가나
그래서 4월 초파일 생인 나도 그게 불만이지만 오늘은 산도 못 오르고 오로지 사찰탐방이니 문화재 관람료 내는 것이 당연하다
智異山 大華嚴寺 현판의 일주문을 지나고도 계곡을 끼고 지나노라니 게곡 옆의 무성한 대숲에서는 강풍에 대나무들이 울어댄다
지리산 장죽전 녹차 시배지 안내판도 지나고 국내 최대 문수보살 기도성지 라는 연기암 입구도 지나니 부도들이 나타나고 저 앞으로 절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10시30분 정도의 시간이었을거다
절집의 건물들을 똑딱이라도 사람들이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로 기록하고 싶지만 그건 내 마음이다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화엄사 경내를 채우고 있으니 되도록이면 어느 건물에 누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담으려면 허~ 그 순간 또 누군가 지나간다
하기야 그렇게 올랐던 설악산 대청봉 정상석이나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을 사람 머리 없이 찍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산을 오르는 날은 거의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지리산의 노고단(1.507m)에서 남쪽 구례군 마산면으로 흘러내린 형제봉(912m)-월령봉(749m)능선과, 역시 노고단에서 이어지는 대간의 종석대(1.356m)에서 역시 남쪽 구례군 마산면으로 흘러내린 차일봉(1.008m)-원사봉(578.8m) 능선 사이로 발달해서 흘러내린 화엄사골 아래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 19교구 본사 화엄사는 많은 말사를 거느린 대가람이다
창건연대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사를 창건 후,
백제법왕(599)때 3천여 명의 스님들이 계시면서 화엄사상을 백제 땅에 꽃피웠다하고,
신라시대는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고 원효성사는 해회당에서 화랑도들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쳐 삼국통일을 이루었다한다
또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조사는 2층 4면 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 법당 (지금의 각황전)과 석등을 조성하였다
경덕왕(742~764)때 이르러 8원 81암자로 화엄불국 연화장세계의 면모를 갖추고,
신라말기 헌강왕(875)때 도선국사는 동오층석탑과 서오층석탑 조성과 더불어 화엄사 중흥조가 되시면서 화엄사가 대총림으로 승격되었고,
솔직히 화엄사 경내를 둘러보며 상당히 다리가 아팠다
아직 정상적일 수가 없는 걸음걸이 상태인데 욕심은 있어 멀리까지 내려오고 여기저기 걸어가는데 문제는 저 아래 입구서부터 계속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멀쩡한 상태에서야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에구!!! 나로서는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
고려시대는 고려 태조 26년(943)에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하였고,
홍경선사가 퇴락한 당우와 암자를 중수하였고 문종(1047~1083)때 대각국사 의천에 의하여 중수,
인종(1126~1146)때 정인왕사가 중수, 명종 2년(1172)에 도선국사비 건립, 충렬왕(1236~1308)때 원소암 중건,
충숙왕(1313~1330)때 조형왕사에 의한 전면적인 보수를 하였다한다
조선시대에 세종 6년(1426)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된 화엄사는 배불의 와중에도 설응, 숭인, 부휴, 중관, 무렴 등의 고승대덕들에 의해 법석의 요람을 이루었으며 임진왜란(1592~1598)때는 호남의 관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키기에 이른다
인조(1630~1636)때 벽암선사와 문도들이 대웅전 등 몇몇 건물을 중건하고,
숙종(1699~1703)때 계파선사와 문도에 의하여 장육전 자리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규모로 웅장한 각황전 건립과 더불어 선교 양종대가람이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중수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로 중흥할 수 있었다
요 아래 저거 다 돈이다(^_^)
다리가 부실하니 물론 천천히 천천히 둘러보지만 1시간 이상 소요된다
노으리가 11시40분~12시 사이에 오겠다고 했는데 3.500냥 들이고 절집까지는 못 올거니 다시 버스 주차장까지 나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다리도 아프게 생겼다
다시 절집을 나서고 부도군을 지나가는데 저 앞에서 오는 어떤 차가 빵빵 거리니 나를 비켜달라고 하나! 옆으로 비키려니 그 놈이 내려서서 반겨준다
야 이눔아 여기 돈 들이며 뭣하러 올라왔냐? 곧 내려갈건데 '
걱정마슈 구례 사람이라고 그러고 그냥 올라 옵니다 점심은 뭐 드실려우 "
몇 년전 노으리는 (본래는 닉네임이 노을 인데 내가 그냥 부르기 좋다고 노으리로 불렀더니 그게 좋다고)
이런 문자를 보내온다
나 운전 면허증 땄수다 얼마있으면 자동차 몰고 다닐터이니 지리산 내리오믄 연락하쇼 제가 모셔다 드리리다"
그리고 또 한 2년 전부터 나 자동차 몰고 다니니 지리산 내려오면 이용하슈
그리고는 이번 병원생활을 끝내고 퇴원한 바로 다음 다음 주 구례로 내려가서 노으리의 차를 이용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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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이 정갈한 화엄사 쪽에서 내려오다가 구례시가지 들어서기 전 이곳에서 밥 두 공기를 먹고, 노으리를 만나 노으리가 장만했다는 애마를 타고 다음 코스로 달려간다
아무래도 화개가 복잡해질 것 같으니 화개를 거쳐서 의신골로 들어갔다가 한번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벚꽃이 피기도 전인 시기였는데 화개면 인근의 도로가 정체되기 시작한다
여차하면 돌아가리라 하다가 금방 화개골로 들어서고 그냥 구비구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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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계절에 비해 참 을씨년스러운 대성골 입구에서 차를 세우니 아직 강풍이 몰아치며 두꺼운 옷을 꺼내입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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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그 광활하고 긴 백두의 능선들이 천왕봉에서 성삼재로 향하는 어느 지점 세석평전 위에 솟은 낙남정맥을 분기시키는 영신봉(1.651.9m)에서 낙남의 거대한 남부능선을 분기시키며 삼신봉(1.288m)을 일으키며 계속 제법 욱중한 능선을 섬진강 변으로 밀어내고,
영신봉을 지난 대간의 줄기는 여느 능선에서는 다 한 가닥 대접을 받을 칠선봉(1.558m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리며 그 사이로 큰 세계골을 발원시키고 다시 덕평봉(.21.9m)에서 역시 남쪽으로 능선(일명 오트바이 능선)작은 세계골도 흘러보내다가 대성골에서 합류해서 엄청난 계곡을 만든다
벽소령과 형제봉(1.452m0 명선봉(1.586.3m) 토끼봉(1.534m)에 이르는 거대능선은 곳곳에 남쪽으로 짧은 능선을 분기시키며 그 사이마다 골골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예를 들어 빗점골이 흘러내리며 의신계곡이 이루어지고 하류부로 흘러가며 더 넓은 화개천을 이룬다
토끼봉을 지난 화개재에서 남쪽으로 목통골을 흘려보내더니 드디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전라북도가 만나는 삼도봉(1.499m)에 이르러 다시 불무장등(1.446m) 황장산 통꼭봉 등 거대능선을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그 거대한 골자기가 의신골 화개골로 불리며 지리산 남부의 멋진 지형을 이루고 많은 사찰과 암자를 품고 있고 저마다의 사람들이 골골이 마을을 이루거나 홀로 살고 있다
▽ 대성골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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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좋아 제주도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온지 10년도 넘는 노으리 처음에는 남원 쪽 운봉에서 살다가 산동으로 옮기더니 지금은 구례읍에서 사느데 사는 곳이 높아서 반야봉이 잘 보인단다
50세가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리산 자락에서 살곳은 화개골이라고 하면서 다른 곳은 너무 추워서 그래도 화개가 제일 따뜻한 것 같아요
▽ 몇 년전 찾았다는 도사 같은 양반의 집이라는데 출타중이고 없다 그냥 집만 돌아보고 화개 인근 길 막히기 전에 내려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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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천을 끼고 빠져나가며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나도 제대로 바라본다 뉘 알겠는가! 나도 지리산 골자기로 스며들지 사람 일은 모르는거다
시간도 그러니 그냥 내려가다가 쌍계사나 한번 둘러보고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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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화개면 깊고 드넓은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수하기 전 화개면 인근 삼신봉(1.288m) 능선 자락이 흘러내린 곳에 자리한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로 43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는 큰 사찰이다
723년(성덕왕 22)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에서 귀국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신 뒤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당에서 차(茶) 씨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중창하면서 대가람이 되었다
886년(정강왕 1) 쌍계사로 절 이름을 바꾸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2년(인조 10)에 벽암(碧巖)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전형적인 산지가람배치로 남북축선상에 금강문·천왕문·팔영루(八泳樓)·대웅전(보물 제500호) 등이 일직선으로 있고, 대웅전의 좌우에 설선당(說禪堂)과 요사가 있고 이밖에 명부전·나한전·팔상전(八湘殿)·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금강문 등이 남아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국보 제47호)·부도(보물 제380호) 및 여러 점의 탱화(幀畵)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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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를 둘러보고 가려다가 돗대기 시장(?) 같은 분위기에 입장료 2.500원도 아깝다는 생각에 매표소 입구에서 돌아서고 만다
고즈녁하고조용한 사찰탐방이 아니라 관광객들 틈에 밀려서 가는 것도 그렇고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그래야 내 나이보다 더 먹은 사람들 보다 비슷한 연배나 오히려 적은 연배들이다)
주로 관광버스로 온 그 많은 그들이 어쩜 내 생각과 행동들과 너무도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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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은 것인지! 그들이 옳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하여튼 많이 시끄럽고 몇 몇분들은 비틀거리며 고함도 지르고 거기에 동조하는 아줌마들 하며......
갑자기 쌍계사가 들어가기 싫어서 내려오는데 노으리가 그럴줄 알았다면서 키득대며 커피 한잔을 건넨다
아! 차의 고장에서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셔도 그거 맛 괜찮다
그러나 쌍계사는 이즈음 관광지로 유명해서 일 년 내내 전국에서 많이 찾는 관광객들로 인해서 그 입구부터 성시를 이루는 시장터 같이 북적대고 그로인해 사찰로 통하는 길목 곳곳에 많은 상혼들이 깃들여져있어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고 그리는 그런 고즈녁한 절집의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 보이는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지리산 남부 골자기 여느 사찰들과 같이 문화재 관람료라는 것을 징수하는데 유독 이곳은 더 돈맛에 물들여진 곳이 아닌가! 하는 사월초파일생인 내 개인적인 생각에 엄청난 인파에 떠밀려 사찰로 들어가려다가 그런 여러 가지 생각에 발길을 돌려버린 곳이다
▽ 쌍계사 입구에서 딱 한 그루 핀 벚꽃도 바라보고 화개를 빠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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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불무장등의 육중한 덩치를 바라보며 피아골로 들어선다 물론 화개면 소재지를 빠져 나오는데 잠시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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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이야 가을 단풍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이 시기 쌍계사 입구의 그 북새통에 비하니 워낙 시골(?)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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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비 그 때 그 언니 누구우꽈? 아1 그래 설중녀 그 언니 잘 지내우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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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문화재 관람료 3천냥 쌍계사 2천5백냥 연곡사 2천냥이다 연곡사는 정말 사찰답게 고요했다
절집도 고요하고 탐방하는 나도 그냥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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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는
역시 지리산의 경남 전남 전북 삼도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1.499m)에서 남쪽으로 경남과 전남의 도계를 가르며 흘러내린 불무장등(1.466m)-통꼭봉(904.7m)능선과, 돼지령 인근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문바우등(1.198m) 능선 사이로 흘러내린 피아골은 가을 단풍으로도 유명한 골자기인데 이 골자기 초입부인 구례군 토지면 소재에 자리한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며 545년(신라 진평왕 6) 연기조사가 창건했고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었으나,
1910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하며 그뒤 곧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폐사되었으며,
오랫동안 사찰 내의 분규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5년 대웅전만 건립했다
1981년 정부와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서 구법당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규모 대웅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제53호)를 비롯하여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제153호)가 남아 있고, 이 절과 좀 떨어진 곳에 구례 연곡사 3층석탑(보물 제151호)과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보물 제152호) 등이 있다
1967년 3층석탑을 해체·수리할 때 하층기단에서 동(銅)으로 만든 불입상 1구(동국대학교 박물관)가 발견되었다
▽ 연곡사와 피아아골을 빠져 나오니 남원에서 예약된 버스 탈 시간과 이래저래 여유롭지못하고 섬진강 변의 다슬기 칼국수집에서 칼국수와 파전 하나에 퇴원하고 처음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마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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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레읍을 빙 돌아 가면서 처음에는 왕시루봉이라고 ...... 떠들며 없는 시간 쪼개서 호들갑을 떨었더니 젠장!
아침에 화엄사를 들리며 보았던 노고단 좌측의 종석대와 차일봉 원사봉 능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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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니 왕시루봉은 저 놈의 전신부 줄에 걸려서 버리려다가 살려둿던 것이 이렇게 필요하네
오미리 월령봉 능선 가장 끝자락 저 뒤로 보이는걸요 좌측 저 멀리 노고단-종석대가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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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구례에서 출발하는 버스표가 이미 전 날 예매가 꽉 차서 남원의 고속버스를 예매해 뒀기에 남원으로 달려간다
남원도 몇 년 전 부터 시외버스 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 떨어져 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출발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나나 노으리 둘다 그리 다정다감한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간단한 작별인사 나누고 나는 이내 버스 안에서 잠에 빠진다
내 평생 처음 병원입원 수술 후 절둑거리며 움직인 산행이라고는 할 수없는 첫 여행이다
사실 병원입장에서는 이렇게 움직이는게 무리지만 산을 향한 내 마음이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선이라고 스스로 타협한다 -狂-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혹시나해선데 나도 다리를 다쳤을때 병원에서는 무리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산엘 다니니 거짓말 처럼 좋아지더라구요 .....그렇게 되시기를 ~~
거짓말 같은 진짜 주말 기세요
지도를 보면서 산행기를 봅니다.화엄사는 한 번도 지나친 적이 없엇는데,긴 세월이 한 눈에 보이네요.많이 힘드시겠네요.근육이면 단련이 필요하지만,관절과 주변의 인대 문제들이라~~아직은 빠른 듯합니다.수술한 의사들과 잘 상의하심이 좋을 듯합니다.인대와 관절은 단련이 아니라 손상이 되는 부분들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