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 신부님의 사랑과 스님의 자비 ☸
☺ 교차로 신문, 2014년 8월 26일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교황의 방문은 많은 사람들을 힐링되게 해주었고, 그 분의 존재감만으로도 감사하다.
대학에서 교양과목 수업 중 스님들의 무소유 정신이나 자비 사상을 언급할 때, 함께 예를 드는 신부님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1182~1226) 신부님이다. 현 교황이 이 분의 존함을 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
13세기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이탈리아 카톨릭 교회 성인으로서 수도회를 창립하였고, 청빈 주의로 수도생활의 이상을 실현한 분이다. 신부님은 새들이나 물고기, 야생동물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신부님이 설교할 때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면 사람들은 신부에게 그들을 침묵시켜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만큼 신부님이 동물들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에 미천한 존재들도 신부님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들이 사람의 언어를 알아들었다기보다는 알아주는 사람과 교감을 나누었다고 볼 수 있다.
식물도 돌봐준 만큼 자라는 법이고,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도 주인과 얼마나 교감을 나누었느냐에 따라 그 동물이 영특하다고 한다.
스님들인 경우, 수행의 높은 경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자비가 사람을 비롯해 동식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13세기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동물이나 조류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이번에 한국에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필자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교황님이 음성 꽃동네에 방문했을 때이다. 교황께서 3살쯤 되는 중증 장애인 아기에게 미소를 지어도 아기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교황은 아기의 입에 검지손가락을 넣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처럼 교황의 손가락을 빨며 미소 지었다. 교황님은 그 아이에게 어머니와 같은 따스함을 배려해준 것이다.
20세기 초, 수월 스님은 만년에 중국 간도지방에 머물렀다. 당시 이곳은 비적들의 출몰이 잦아 집집마다 사나운 개를 키웠다. 그런데 스님이 이 지역을 지나가거나 탁발을 나가면, 개들이 조용히 엎드렸다고 한다. 수월 스님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혜월 스님의 이야기도 있다. 스님은 평소에 동물들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소(牛)를 제일 좋아하셨다. 길을 지나다 소만 만나면 우순于順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라’며 쓰다듬고 주인 몰래 소를 풀어주었다.
또 조선 중기, 영관(1485~1571)스님은 출가하기 전, 아버지와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아버지가 고기를 잡아 바구니에 담으면 아이는 몰래 물에 놓아주었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종아리를 때리자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사람이나 미물이나 목숨을 아끼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물고기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것 같아 그런 것이니, 용서해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지녔던 아이는 13세에 출가했고, 조선 시대 큰 스님이 되었다. 필자는 스님이지만 신부님의 성스런 행을 보면, 스님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숙연해지고 경건해진다. 색깔만 다를 뿐이지 신부님과 스님의 공통분모가 자비와 사랑이 아니겠는가?!
단식에 동참한, 한 비구니 스님과 한 수녀님 그리고 시민분들이 노란리본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