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nt Wrong with Capitalism-최종
반혁명은 어떻게 시작할까.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대다수 정치인과 사상가는 개별 관료가 아니라, 시장 참가자가 가격을 설정해야 한다는 대 동의한다. 그러나 거대 정부가 시장 가격 설정 메커니즘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1세기 동안 걸어온 경로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변화는 정부에 돈이 떨어졌을 때, 즉 비용이 높아서 더 이상 차입이 불가능할 때만 일어난다. 미국은 평범한 나라가 아니다, 느슨한 규제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과거에 여러 제국을 무너뜨렸다. 포르투갈은 상업 중심이란 지위로 다른 나라들이 보유하고 싶어하는 통화를 발행했다. 내적 수요 덕분에 ‘기축통화’는 발행국으로 해외에서 저렴하게 차입하고, 돈을 찍어내서 부채를 갚을 특권이 있다. 뒤이어 네델란드, 스페인, 스랑스, 영국이 후계국으로 기축통화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그래서 앞으로 부채를 더 이상 갚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신뢰는 다음 제국, 그리고 새로운 통화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기축통화의 규모를 갖춘 통화는 ‘유로’다. 20년 동안 30개 회원국의 심의을 거치는 일이 쉽지 않다. 공공 지출을 통제할 중앙 행정기구도 없다. 다음 통화는 인민폐다. 유로보다 신뢰성은 떨어지나, 마음대로 자본을 통제할 일당제 국가가 관리한다. 그래서 달러는 앞으로 도전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달러 말고 어느 통화를 보유할 것인가? 하지만 달러의 하락세는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전 세계 중앙은행 지급 준비금에서 달러의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달러를 기준 통화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나라 비중도 62%에서 45%로 줄었다.
순대외금융자산(Net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 NIT일 것이다. 미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의 적자폭은 GDP의 20%에서 66%로 늘어났다.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대체할 단일 대안이 아니라 중앙은행들도 다른 통화를 보유하고 있다. 특정 통화가 단독으로 큰 비중은 아니나 유로, 인민폐, 캐나다 달러, 호주 달러 등을 늘렸다. 전 세계는 비슷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남미 공동 통화를 만들자거나, 교역에 자국 통화를 쓰자거나, 석유 거래에서 달러 외 다른 통화를 쓰자는 논의가 오가고 있다. 과거 금과 달러가 안전자산으로 간주하였다. 위기 시 같이 오르는 경향이 보였다. 금 매수자들은 인플레이션을 대비하려는 민간인이 아니고, 바로 달러의 대안을 찾는 중앙은행들이었다. 금을 가장 많이 사들인 10개국 중 9개가 러시아, 중국, 인도를 포함한 신흥국이다. 이들은 모두 달러 지폐에 맞선 반발에 깊이 참여한 나라들이다. 자체 디지털 화폐 발행을 검토하는 나라 수가 130국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일부 경제학자는 달러의 세계적 위상이 지니는 중요성을 부정한다. 스위스 프랑과 일본의 엔을 예로 든다. 반면 미국은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에 의존한다. 강한 달러가 차입 측면에서 제공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미국이 지급해야 할 이자를 낮춰준다. 제국의 통화가 더 안전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신뢰를 잃는다. 그러면 제국의 자금이 바닥난다. 국채를 팔려고 경매를 열어도 구매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경우 제국은 예산을 줄여서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쓰는 일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는 선진국은 스웨덴과 그리스 같은 소국이다. 위기에 처했음에도 다른 해결책을 선택한 나라는 부채를 갚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찍어냈다. 아르헨티나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결국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 강국 포함한 어떤 나라도 자신의 지위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21세기 자본주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는 국민의 역량을 믿던 미국 정부의 신뢰는 이제 약간만 어려워도 공적 자금을 동원하려는 충동으로 바뀌었다. 이 문화적 반사 작용은 의료 분야에도 나타난다. “삶에서 어느 정도의 고통은 불가피하며, 유일한 출구는 끝까지 견디는 것”이라 ‘로버트 프로스트’가 말한다. 정부 지출이 자기 파괴적 수준을 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상식은 약간의 기준을 제공한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나라가 어느 수준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 보다 많은 재정 적자와 부채 부담을 안고 있다면 경쟁력이 약화할 위험이 있다. 19세기식 자유방임 자본주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불경기가 닥치면 정부는 빈곤층과 실업자에 구제책을 제공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공포로 얼어붙을 때는 자본과 신용이 흐르도록 조처해야 한다. 자본주의 핵심 전제 중 하나는 개인 자유와 기회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 정부의 개입이 제한되어야 한다. 재정 적자보다는 장기적으로 공공부채가 늘어나는 방식이 문제다. 그만큼 사회의 부채 중독이 심화하고, 생산성이 저해된다. 사실 ‘현대’ 경제에서도 불황기에만 상당한 재정 적자를 내고, 회복기에는 다음 위기에 대비해 재정 흑자를 내는 일은 가능하다.
대규모 금융 위기를 알려주는 조짐은 부채 규모가 아니라 부채의 증가 속도다. 부채 광풍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필자는 196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150개국의 데이터를 살폈다. 그 결과 민간 부채가 5년 이상 빠르게 늘어나면 대개 5년 동안 둔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채가 많이 쌓일수록 경기 둔화 폭이 커진다. 가령 부채가 GDP에서 비중이 5% 늘어나면, 뒤이은 기간 동안 경제 성장률은 3분의 1만큼 낮아졌다. 이 사실은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일어난 변화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그에 따라 대출 조건이 완화되면서 공공부채가 급증한다. 버블이 터지면 ‘억제책’이라는 일반적인 범주로 묶이는 여러 대응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이를 실제로 실행했다면 대개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봤던 것보다, 더 높은 금리로 이어졌을 것이다. 중앙은행은 앞으로 이러한 기조를 최대한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의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 1930년대의 위험은 과거에 남겨둬야 한다. 당시 금융시장은 DG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다. 반면 지금의 금융시장은 실물 경제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
여러 나라 정부는 과도하게 쌓은 토대를 키워나갔다. 그 이유는 모두를 만족시키려 들었기 때문이다.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인기와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 무덤을 점점 깊이 파고 있다. 확고하게 시장에 개입한 나라일수록 생산성 증가율이 심하게 둔화하였다. 생산성 증가율 하락 폭을 보면 일본은 9%에서 0% 수준으로, 유럽 주요국은 6%에서 0.5%로 하락했다. 미국은 2.5%에서 1% 수준으로 하락했다.
경제에 대한 과거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자본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은 시장 경제를 하나의 기계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이 기계를 조작하는 엔지니어들을 ‘성장 엔진’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계보다는 숲이나 바다 같은 자연 생태계, 엔진보다는 복잡한 유기체에 가깝다. 모든 개인의 건강과 번영을 셀 수 없이 많은 자유로운 상호작용에 의존한다. 인간이 이런 환경에 개입하는 것은 시스템과 자신들에게 커다란 위험을 초래한다. 동시에 지도자들은 대중적 인기에 편승해 시장 경제에 개입하겠다는 제안한다. 시장 경제는 80억 명이 참가하는 전 세계적 생태계다. 정치지도자들은 사업 환경을 되살리고 재구성하기 위해, 이런저런 목적으로 갈수록 극단적인 실험을 단행했다. 그러면 대개 기득권층은 손뼉을 친다. 그에 따라 경제학의 자만심은 계속 커져만 간다. 하지만 경제학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확고한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정부와 중앙은행은 별로 반발에 직면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론 주도층은 그들에게 별로 반발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여론 주도층은 그들에게 시장에 개입하라고 부추긴다. 경제 체제에 돈을 쏟아부어서 성장을 촉진하라고, 확고한 규제망을 통해 자본 흐름을 유도하라고, 구제 금융으로 좀비와 다른 침입종까지 육성하라고 부추긴다.
자연과학은 삶이란 재에서 재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하나의 주기라고 가르친다. 정치지도자들은 이 교훈을 간과한다. 그들은 죽지도 않고, 재로 돌아가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비결을 안다고 주장하는 경제 자문의 말을 듣는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삶의 주기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큰 손해를 입히기 전에 그들의 오만함을 인식하고 억눌려야 한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경제적-사회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 인류가 품을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2025.11.25.
What Went Wrong with Capitalism-최종
Ruchir Sharma 지음
김태훈 옮김
한국경제신문 간행
첫댓글 회장님,
정부의 시장경제 관여는
참 잘못된 시작인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고 지양해야 한다고들목소리를 높였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경제에 대한 상식은 무지하지만 염려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