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경(正經)의 결정(決定) 시기(時期)
성경말씀은 모두가 1세기 이전에 기록되어졌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300여년 동안 성문서들을 정경으로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람용으로만 널리 유포되고 되고 있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교회의 규범이 될 수 있는성경을 편집해야될 필요성을 느끼고 흩어져 있는 성문서들을 수집하여 성경을 편집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편집된 성경은 교회 회의의 결정에 의하여 정경화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 동안 정경으로 인정하고 받아 내려오던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정경으로 인정한 것 뿐이다. 즉 정경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수집하여 성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교회의 정경으로 쓰자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경으로 쓰고 있던 성문서들을 함께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정경으로 결정하게 된것이다라고 한다.
AD 303년 디오클레시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을 없애 버리려고 칙령을 내리고 수 많은 밖해를 가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막지 못하였다.
AD 367년 알렉 산드리아의 아다나시우스는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최초의 신약성경 목록을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신약의 27권의 성경과 같았다. 아다나시우스 이후 제롬과 어거스틴도 신약의 정경을 27권으로 정의 하였으며 교회 회의에서는 27권의 성경을 처음으로 인정하게된 것은 A.D393년 횝포대회에서이다. 그러나 횝포 대회에서도 성경의 정경성에 대한 어떤 권위를 부여했던 것이 아니고 다만 이전에 결정되어 사용해 오던것을 정경으로 다시한번 확인하여 기록을 남기게된 것이다.
그후 4년이 지난 A.D 397년 어거스틴이 주도한 카르타고 회의에서 현재의 27권에 정경목록과 목차를 완전히 결정하여 공포하다. 신약 27권의 성경은 로마 카톨릭교회이건 개신교이건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정경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게 되었다. 1세기 때부터 성문서들이 분리되어 정경으로 받아 드리지 못하던 성경은 결국 4세기에 이르러서야 정경으로 확정이 되었고 그 뒤부터는 어느 누구도 이를 반밖하지 못하게 되었다.
동방교회는 AD367년 아다나시우스가 처음으로 부활주일날 자기 교구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현재 우리가 소유한 성경을 정경으로 밝힌바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382년 로마 회의에서 정경목록이 작성되어 채택을 하였다. 그리고 393년에는 히포대회에서 395년에는 어거스틴의 주도아래 카르타고 대회에서 현재 27권의 정경목록과 그 목차가 결정이 되게 되었다.7)
5). 영감론과 계시
(1) 영감론(靈感論)
영감이란 단어는 라틴어(inspiro) 또는 불가타의 inspiratio에서 유래되었는데 헬라어로는 데오프뉴 스토스 (theopneustos) 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입김으로된” “하나님의 감동으로된”(딤후3:16)것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역시도 성경을 구약의 성경을 유대인들과 같이 무오한 책으로 인정하셨다. 이런 점에서 초대 교회의 교부들도 예수님과 같이 성경의 영감성을 인정하였다.
폴리갑은 성경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지는자는 누구든지 사단의 맏아들이라고 하였는가 하면 오리겐은 영감받는 성경의 저자들과 이교도의 황홀경적인 신탁을 서로 비교하는 온갖 시도를 물리치고 성경의 기능은 성경 저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유의지를 정지 시키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여 신적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도록 해 주는데 있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역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에 아무런 착오가 없다고 하면서 사실을 의심하는자는 악을 행하는자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환상을 세가지로 구분하여 설명을 하였다. 성령께서 어떤때는 선지자들에게 직접적인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기도하고 그들의 지성을 통하여 알게도 하시며 또 다른 경우는 알지도 못하는 그 어떠한 신비속에 신적 진리를 발견할수 있도록 알려 주신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영감성에 대한 비평의 견해도 있다. 알렉산드라이의 유대교에서는 영감이 일종의 접신(접신)이라는 부정적인 이론이 대중적으로 받아 들여졌는가 하면, 필로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 때 그들이 의식을 잃는다고 하였다.
A. 축자적 영감론
축자적 영감설이란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에게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을 때 한자 한자 불러 주는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기록된 성경의 말씀은 한자도 오류가 없다는 설이다. 벌코프는 영감론에 있어서 단지 사상만의 영감이 아니라 언어까지도 영감되었으며 성경의 어느 부분만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 다 해당된다고 말하므로 결국 그런 의미에서 축자적 또는 완전한 영감이라고 한다.
칼빈도 축자적 영감설을 말했는데 이장식교수는 그의[기독교 사상사] 제 2권에서 칼빈의 영감론이 축자적 영감설이 아니라고 한다. 칼빈은 성경을 영감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저자의 인간적인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무오하다는 것을 말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인간의 불완전에서 피할수 없이 생기는 문자적 오류가 생길수 있다는것을 인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칼빈의 성서적 영감설은 후대 칼빈주의 신학자들이 말했듯이 문자 주의적 축자 영감이 이라기 보다는 인격적 영감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후대 칼빈이 문자적 축자 영감설을 믿었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는 계속적인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의 권위를, 한편으로는 그들의 신적인 기록위에, 한편으로는 성령의 증거위에 세운다.
그런가 하면 개혁자 루터에게 있어서도 그의 성서영감론에 대한 평가는 칼빈과 같이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태도를 가졌다는 입장과 축자 영감을 믿었다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B. 기계적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은 소위 받아 쓰기식으로써 성경의 저자들은 단순한 필자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저자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성령께서 인도 하심따라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C. 유기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설은 성령께서 저자들의 손을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들 자신의 내적 존재의 법칙과 잘 조화하여 그들의 성품과 기질과 재능과 교양과 용어와 어법과 문제등을 다 사용하여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마 칼빈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후대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영감론이 유기적 영감론과 축자적 영감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카이퍼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사진이다”라고 하였다.
(2). 계시론(啓示論)
계시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뜻을 인간들에게 열어 보이시는 것인데 때로는 사건으로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자연을 통하여 나타내신다. 계시란 단어는(unveiling) “벗겨낸다”는 뜻으로 감추어진 것을 벗겨내어 알게 하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계시는 자연계시와 초자연계시가 있는데 자연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하며 초자연계시는 특별계시로 구분이 된다.
자연계시는 인간의 구조와 자연의 현상속에 감추어진 무궁한 계시의 사실들을 알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벌코프는 자연이란 하나님께서 대소문자를 가지고 쓰신 한권의 방대한 책이다.라고 말한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택한자들에게 자연을 통하여 날마다 자신의 뜻을 말하고 계신다. 영안이 열린자는 보기도하고 듣기도하고 깨닫기도 한다.
자연계시는 자연속에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을 통하여 인간에게 알게 하시는 계시인것이다. 따라서 자연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한다면 일반계시는 창조와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은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것과 관련이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초자연적인 계시 즉 특별계시는 구원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특별계시는 성경이다.그러나 성경이 특별계시의 모든 것이 아니다. 성경속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특별계시의 주체요 전부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다 계시하셨다.
특별계시인 성경은 모두 종결이 되었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역사는 지금도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믿는자들을 통하여 생활 가운데 은사로 나타나고 있다.
6). 외경
개신교회 성경은 66권이다 그러나 로마 카돌릭교회는 73권이고 이디오피아 교회의 신약 정경은 일반적인 27권보다 훨씬 많은 38권이다. 왜 이렇게 성문서들이 차이가 나고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었일까 우리는 오늘 시야를 넓혀 세계속의 다양한 계시 종교들의 맥락속에서 잘 살펴 보아야 할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왜 오직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거룩한 책들은 인정하지 않을까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할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동방교회는 66권의 정경을 소유했던 반면에 서방교회는 73권을 정경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서방교회는 제롬의 반대 저항에도 불구하고 외경들을 구약성서의 일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향후 천년이 지난후에도 계속되어 왔다.
외경이란 용어는 통상적으로 회당에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사본중에 “숨겨진 것”을 지칭하거나 회당에서 “사용이 금지된 책”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8)
단어의 기원은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자들이 “외경”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숨겨진, 혹은 신비로운전서들을 가리켜 사용한데서 유래가 되었다.
외경이란 단어는 이레니우스가 자신들의 집단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이다. 오리겐 역시 외경이란 용어를 다소 긍적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였으나 4세기후 부터는 순수하게 부정하며 신구약 정경으로로부터 단호하게 배제된 책들과 관련하여 사용하 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천주교에서는 신약과 구약의 중간에 외경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목록은 다음과 같다.
7. 사본의 문서설
왜 이렇게 단편 문서들이 많이 난무하게 되었을까?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문서들을 부분적으로 필사하여 사용 하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이 쓴 사본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문서들만해도 부분적이든 완전한 상태의 문서든간에 헬라어 사본은 약 5000개 가량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훈륭한 것은 약350년경의 것으로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티칸사본(codex Vaticanus)과 영국 정부가 1933년 10만 파운드를 주고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시내사본(codex Sinatitcus)으로서 시내산 사본은 대영 박물관의 대표적인 보물이다.
또하나 특별한 가치를 지닌 사본 가운데 5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대영 박물에 소장 되어 있으며 5세기 혹은 6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베자 사본이 캠브리지 대학의 도서관에 보관이 되어 있는데 이 사본들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각각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구약의 사본은 약 AD9 세기 경의 것으로 파피루스에 기록된 단편으로 초대 교회시대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수천개의 신약의 사본들 가운데 4세기에 기록된 2개의 사본뿐아니라 그보다 약 100년이나 200년 앞선 파피루스의 단편들이 얼마든지 있다.
약 10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3건의 저작물 가운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바나바 서신 Brief desBarnabas]과 약 AD 90년경에 수리아 혹은 팔레스타인에서 기록된으로 보이는 [12사도의 교훈집 Zwo lfapostellehre] 이라고도 불리우는 [디다케] 가 있으며 AD 96년경의 것으로 고린도 교회에 보낸 로마의 [클레멘스트 편지 Brief- des Clemens]등 있다. 그들의 저작속에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디도서, 베드로전후서 히브리서등 신약성서들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