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길 이제 늙었다
박 영 춘
몽당치마초리 애옥살림 보듬는 채마밭 이슬 맛
상추 쑥갓향기 더북더북 입맛 돋는 세상인데도
굶기를 곰비임비 해야만 하는 고난의 피난살이
조반 굶은 흰옷겨레 까막까치고개 넘어섰다
갈마드는 어금지금한 생각 가무래 가무래했다
갈팡질팡하는 가리사니 종잡기 어지러웠다
송아지 날뛰듯 떠다니는 영혼 안정시키지 못했다
눈알을 드부럭드부럭 지딱지딱 제가 다 해치운 양
서로가 앞장서 설레발치는 피난 길
허정허정 걷고 걸어 또 걷고 걸어 송기껍질 벗겨먹고
풀뿌리 캐먹고 풀잎이슬 입술 적시고서야 살아남았다
지상낙원 뇌까리는 빨간 완장 흰옷겨레 직신직신 조겨
따라오라 조지는 호루라기 보챔 따발총이었다
바람 잔잔한 푸른 골짜기 안창까지 톺아들어 간 피난길
물소리 고요한 기슭에 들엎드리고서야
나뭇가지 수수깡으로 의지간 만들고서야
몇 해를 겨우 초근목피로 삶을 살려나갔다
뱃구레 채워 구들장에 눕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땅만 믿고 흙을 파먹었다
그해 아홉 살 철부지 팔순고개 넘어섰다
뇌파 속에 분열하는 고향생각 아직 생생하다
삼팔선허리띠 하릴없이 녹이 슬대로 슬었다
피난길 이제 늙을 만큼 늙었다
대문은 잠그지 않았으니 고향집 영혼
아직도 우리를 꼼짝없이 기다리고 있겠지
첫댓글 주신글 감사 드립니다
피난살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무순 말인지 이해도 못하겠지요
사는게 아니라 죽음을 면하기위한 삶
감사합니다.
당연하지요.
동병상련이지요.
남이 죽을 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