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5. 통일교회를 찾아가다
1 고등학교 졸업 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에 진학했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가서 사회학이나 서양사 쪽을 공부하여 교수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도 합격만 하면 어디든지 보내주겠다며 적극 후원해 주셨다. 2 영어과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영어 연극제를 열었다. 영문과 모든 학생들이 스텝과 배우를 맡아 공연하는 연극제였다.
3 나는 조연배우를 맡게 됐고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프롬프터(배우의 실수를 대비해 대사를 읽어주는 사람)는 성혜진이라는 친구가 맡았다. 이 친구는 경북여고 동창이자 대학 동기이기도 했다. 4 그런데 이 친구가 연습 때만 되면 자꾸 도망을 가는 것이다. 연극제 결과를 통해 학점이 결정되는데 빠지는 사람이 생기자 담당 교수는 모두 F학점이라며 겁을 주었다. 5 다음날, 연습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도 도망가면 반드시 붙잡으려고 성혜진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가 도망가려고 준비하는 찰나에 내가 꽉 붙잡았다.
6 그리고 코스모스 밭으로 데리고 가서 “너 땜에 다 F학점 받게 생겼어, 도대체 왜 그러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자야, 너 통일교회라는 말 들어봤어?” 라고 했다. 혜진이는 종교를 믿지 않았을뿐더러 종교적 배경이나 지식이 없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 입에서 교회라는 말을 듣게 되자 신기하게 느껴졌다. 7 “통일교회에서 일주일 동안 부흥회를 하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근데 통일교회 원리 강의라는 게 보통 심각한 게 아니야. 심각해!”라고 했다. 8 도대체 뭐가 심각하다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통일교회 통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독교 신앙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통일교회에 대해 알지를 못했다.
9 혜진이가 심각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자 어떤 강의인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봉산동에서 7시에 한다는 소리를 듣고 통일교회를 혼자서 찾아갔다. 그날이 1959년 11월 7일이었다. 10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안창성 선생이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재림론을 강의하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하며 주님 올 날만 절실히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재림론 강의는 충격이었다. 11 다음날, 부흥회를 마치고 떠날 계획이었던 안창성 선생은 대학생이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서 떠나지 않고 나를 위해 다시 한번 창조원리부터 타락론까지 원리 강의를 해주었다. 강의를 듣고 나자 그동안 인생을 놓고 고민하던 모든 근본 문제가 감쪽같이 해결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