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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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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달은 ‘열매’, 특히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요한계시록 2장에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오는 ‘열매’에 대해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에베소는 B.C 130년 경에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으며 소아시이의 수도였습니다. 에베소는 상업의 요충지였으며 중요한 고대 유물인 대극장과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 등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2차 전도 여행 중에 아데미 신상을 만드는 사람들과 대립하며 일대 소동이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3년간 에베소 지역에 머물며 눈물로(행 20:31,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교회를 세웠으며,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가 목회한 장소 였으며, 사도 요한이 마지막 생애를 보낸 곳(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은 후 사면되어 밧모섬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에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 기록한 것으로 추정)이기도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칭찬과 책망, 그리고 권면이 다 포함 되어 있는데. 먼저 칭찬이 말씀이 나오는 오늘 본문 1절을 읽어 드립니다.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아멘.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라고 했는데, 편지하라고 명령은 누가 한 것이고, 명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기본적으로 요한 계시록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라고 시작하기 때문에 편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명령을 받는 사람은 사도 요한일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좀 더 정확한 내용이 1장 9~20절에서 나오는데,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유배되어서 섬에 갇혀 지냄) 주의 날(부활하신 날, 안식일)에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네(요한)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음성의 주인공을 보았고, 그 분은 ‘인자 같은 이’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면 편지를 보내라고 하신 분이 누구인지 명확해졌습니다. 본문 1절 첫 부분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이 말씀에서 ‘사자’라는 단어는 원문에서는 ‘천사(앙겔로스, angel)’이고, ‘편지하라’는 단어는 ‘기록하라(그라폰, write)’로 되어 있습니다.
원문 그대로 번역한 것이 훨씬 더 좋았을 겁니다. 신천지는 이만희가 ‘사자’라고 주장합니다. 이만희가 천사가 되었다는 것일까요? 원문을 보여주며 사자가 천사라고 말해주면 신천지는 자기들은 원문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믿지 않고 오직 “개역한글”성경만 진짜라고 믿는다고 우깁니다. 요한계시록 읽다보면 신천지가 장난쳐 놓은 일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화가 납니다.
1절에서 원문대로라면 교회마다 고정 배치된 천사가 있는 것인가? 천사가 왜 교회에 머물고 있나?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히브리서 1장 4절에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사는 우리를 돕기 위해 보냄을 받고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교회에 천사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인 요한이 어떻게 천사에게 편지를 써서 전달 할 수 있나? 천사가 인간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수행하는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 라는 의문도 생깁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천사가 교회의 지도자나 목회자 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천사에게 보내기 위해 기록하라”는 것이 원문의 내용이기 때문에 말씀 그대로 생각해야지 성경 내용을 임의대로 변형시키면 안 됩니다.
요한은 자기가 본 그대로의 사실만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기 때문에 “편지하라”가 아닌 “기록하라”는 말씀에 충실하면 됩니다. 일곱 교회에서 그 기록된 내용이 전달되는 방법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겠지만, 그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실체인지 아닌지는 영적인 전달이 되어야 말씀의 권위가 온전해집니다.
요한이 기록한 내용을 에베소 교회에서 지도자이든, 성도든, 누군가가 읽을 때에 그 말씀이 진리임이 깨달아지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활이시고, 천사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편지를 읽는 에베소 교회의 사람들에게 그 내용의 진위를 올바르게, 그리고 온전하게 깨달아지는 영적 분별이 되도록 충실한 메신저 역활을 할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생각하면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보내도록 기록하라”는 말씀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서신학인 신약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면밀하게 잘 살펴보고 전달하려는 편입니다. 여러분은 ‘사자, 편지하라’는 번역이 본문과 다르다는 사실정도만 상식적으로 알고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1절 후반부에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앞서 1장 29절에서 일곱별은 일곱 천사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말씀 하셨는데, 인자 같은이, 곧 예수님은 자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오른손으로 일곱 천사들을 붙잡고 계시고,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니시고(항상 함께하심) 계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천사들을 통해 교회를 굳게 붙잡아 주시고 계시며, 교회와 동행하여 주시기를 멈추지 않는 분이심을 명확히 밝혀 주시는 이유는, 이 편지를 읽는 교회들이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임마누엘’의 약속을 지켜가고 계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고 소망을 잃지 말라는 강력한 응원과 격려를 주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런 응원과 격려를 담은 칭찬이 말씀이 2~3절에 있습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아멘.
“너희들 에베소 교인들아, 정말 잘 수고 많았다, 잘 참아내 주었다, 잘 견디고 게으름 피우지 않은 것을 내가 잘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 하신 이런 칭찬의 글을 읽은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한량 없는 보살핌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바다가 되었을 겁니다. 사람은 자신의 진심과 노력이 인정 받을 때 가장 큰 보람과 감격을 느낍니다. 에베소 교회가 바로 그런 기분이었을 겁니다.
에베소 교회가 참고, 수고하고, 게으름 피우지 아니한 것만 잘한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자칭 사도라고 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을 밝히 드러낸 것도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믿음, 헌신, 열심 등에서 뛰어난 본보기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우상의 도시이며 향락이 넘쳐나는 도시에서 이런 교회가 세워진 것은 교회 설립자인 바울의 남다른 수고와 교인들의 눈물어린 기도가 어우러진 아름 다운 열매였습니다.
아무리 오랜 고난의 시간이 오랫동안 흐른다고 하여도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며, 아무리 거짓이 사람들을 괴롭게 하여도 진심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으며, 아무리 핍박과 환란이 몰려와도 믿음의 수고는 반드시 성령의 열매로 수확하는 기쁨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런 사실을 증명해 보여 주었습니다.
3절 후반부에 “네(에베소 교회)가 내 이름을 위하여 견녀낸 것을 내가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는 동안 성도들은 함께 부여잡고 감격하여서 울다가 웃다가 찬앙하며 기도하며 큰 영광을 돌렸을 겁니다.
이렇듯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이루어질 계시의 책이지만 “오직 예수” 이름 하나를 굳게 붙잡고 묵묵히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참된 위로를 가져다 주는 강력한 소망의 책입니다.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의 책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시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말씀 하신 수고와 인내와 열심의 칭찬이 우리 교회의 미래에도 반드시 내려지기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교회의 주인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 끝날 까지 결코 교회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교회와 성도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항상 주권과 권능을 행사하셔서 거룩과 영광으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일곱 별을 오른손에 붙잡고 계시며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 어린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교회와 항상 함께 하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지금 당장은 힘들고 답답하지만 묵묵히 맡은 자리에서, 수고하고, 인내하고, 열심을 내고, 악을 물리치고, 거짓을 멀리하는 일관된 신앙을 유지하셔서 하늘로부터 칭찬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최고의 상급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전하는 편지에는 칭찬에 이어서 책망의 말씀도 있습니다. 4~6절을 읽어 드립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아멘.
에베소 교회에 첫 번째 책망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이 무엇일까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 속에 답이 있습니다.
처음 에베소 교회가 세워졌을 때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 온 마음으로 함께 예배하던 그 감격,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던 그 열기, 교회의 구석 구석을 자발적으로 닦고 가꾸어 가던 그 헌신, 고통스러운 핍박과 환란속에서도 과감히 죽기까지 순종하던 그 충성, 부활 영생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소망으로 언제나 기쁨이 넘치던 그 행복, 이 모든 것들이 처음 행위들이었습니다.
이 처음 행위들을 가능하게 했던 토대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증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수고와 인내로 칭찬 받았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처음 행위가 열정적이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어느시점부터)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이런 처음 행위들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처음 행위를 되찾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권면 하면서,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처음 행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며, 옮긴다는 것은 더 이상 예수님이 거기에 함께 있지 아니할 것이며, 천사들도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떠나버리면 더 이상 교회는 교회가 아니게 됩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교회는 더 이상 살아있는 교회가 아닌 것이 됩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씀은 마치 이스라엘 성전이 멸망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가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함께하지 않겠다, 떠나겠다, 내버려 두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이런 의미를 지니가 촛대를 옮긴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징계와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버려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두렵고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예전처럼 주인되시며 친구 되시는 예수님과 항상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면 오직 “회개”하는 것 뿐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에 다른 것은 다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사랑, 처음 행위의 회복은 오직 회개뿐이라는 사실만 기억하면 됩니다. 어디서(언제)부터 처음사랑과 처음 행위가 떨어졌는지 점검하면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 합니다.
6절에 또 다른 책망이 나오는데, 에베소 교인들이 니골라 당의 행위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의 행위가 무엇인지는 여러 해석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우상숭배를 하거나 이교도의 풍습을 따라 음란을 저지르는 행위, 이단사상에 빠져서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려 하는 행위, 거짓에 속아 넘어가서 배교하는 행위 등을 말합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는 나쁜 생각, 다른 복음,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들이 혼합된 것을 말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를 따르는 것은 오직 예수 구원의 진리를 저버리고 믿음에서 이탈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당연히 책망 받을 만한 잘못된 행동입니다. 기회 조차 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책망할 것도 없기 때문에 이 책망은 이미 은혜를 받았던 자들에게 용서와 돌이킴의 기회를 주기 위한 책망입니다.
칭찬을 받고 눈물바다를 이뤘던 에베소 교인들은 책망을 받고서는 심히 부끄럽고 가슴이 뜨끔했을 겁니다. 이러다가 교회가 사라지고, 버려진 고아처럼 진노의 대상이 될까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회개하라는 말씀 앞에 엎드려 통회하고 자복하며 참된 회개의 시간을 가졌을 겁니다.
신앙생활은 처음과 지금과 나중이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사는 길 뿐입니다. 성령을 무시하거나 소멸(거부, 불순종)되어 버리면 자꾸 딴 생각, 딴 길, 딴 마음이 가득하여 좋아보이고 즐길거리가 많은 세상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립니다.
에베소 교회의 칭찬과 책망이 우리 교회, 내 믿음, 우리 가정의 화목일 이루는데 잘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칭찬 받을 만한 것도 분명 있지만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잃어버려서 책망 받을 만한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 처음 행위로 돌이키는 방법은 오직 회개 뿐이라는 성경 말씀을 모른체 해서는 안 됩니다. 전심으로 기도하고 진심으로 참회하며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소망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에서야 5월의 주제인 ‘열매’가 나옵니다. 우리 함께 7절을 읽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아멘.
7절에는 권면과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권면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권면은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한 후 맨 마지막에 마치 후렴구처럼 동일하게 반복되어 나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말씀의 권위가 가득 담긴 말씀입니다. 이 편지가 사람의 생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겸손한 자세로 읽고, 받아 들이고, 잊지말고 지켜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 없는 자들이 되어서 칭찬과 책망과 권면 약속의 말씀 듣기를 거부 하거나, 가볍게 여기거나, 읽고도 아무 생각없이 이전과 동일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이중적인 암시가 담긴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나 성령의 음성을 들을자는 들을 것이고 듣지 않으려는 자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인자같은 이 어린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으로 약속하셨고, 기록으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이기는 그가 되어야만 낙원에도 갈 수 있고, 거기서 생명나무 열매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기는 그”가 바로 내가 되고, 우리 가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이겨내야만 낙원에 갈 수 있다는 말일까요? 누가 이기는 그가 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이겨야 되는 것을 말하기 전에 누가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아무나 이기는 그가 되지 못합니다. 누가 이기는 그가 될 가능성이 있는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겁니다.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으면, 듣고도 무반응 이면 이기는 그가 되기는커녕, 어떠한 이기려는 시도 조차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기는 것에 대해 끊임 없이 말씀하고 계시지만, 내 스스로 듣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이기는 길로 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거부를 하는 것이며, 이기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불순종의 행동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를 열고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자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내용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이겨야 하나요? 무엇을 이겨내야 하는지는 각자개인의 사정상 다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더러운 죄와 악, 거짓, 불순종, 교만, 시기, 질투, 모함, 게으름, 불순종, 나쁜 생각과 품이 없는 말과 행동, 모든 것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에게 편지를 보냈으니 이 편지의 내용을 기초로 이겨내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일곱 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① 우리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끝까지 유지되도록 이겨 내야 합니다.
② 악한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③ 예수 이름으로 참고 견디고 게으름을 이겨내야 합니다.
④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버리지 말도록 오직 회개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⑤ 촛대를 옮기시는 분을 두려워 하며 죽도록 충성하며 이겨내야 합니다.
⑥ 니골라당의 행위(우상숭배, 음란, 가증한 행위, 배교...)와 싸워 이겨내야 합니다.
⑦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를 열고 들으며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2천년 전에 에베소 교인이었다면 이렇게 이겨내면 됐을 겁니다. 이렇게 이겨내야만 낙원에 들어가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믿음과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성령으로 사는 자들이기게 당연히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지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귀에 끊임 없이 열매 맺는 방법, 이기는 방법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를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무엇이든지 말씀 하시는데로 고치고 바꾸고 돌이키겠다는 결단으로 나아가면 그 길이 곧 이기는 길이 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낙원에 들어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원한 영광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인자 같은이가 말씀하시고 성령이 귀 있는 자들에게 말씀 하시는 칭찬과 책망과 권면과 약속의 말씀을 머리로 듣고, 가슴에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으로 여러분을 축복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일평생 성령 충만을 구하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자 갈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민감하게 듣고 반응하는 귀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 안에서 전심으로 기도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돌이키고 변화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악과 죽기까지 싸워 끝내 이겨내시는 승리자가 되어 생명나무의 열매를 드시는 면류관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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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우리 모두를 믿음 안에서, 사랑 안에서, 소망 안에서, 굳게 붙들어 주옵소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 있는 자로, 끝까지 싸워 이기는 자로 살아가도록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