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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영남알프스 태극종주(1) – 운문산,가지산,능동산,천황산,재약산
1. 천황산에서 조망, 오른쪽 멀리는 구천산(630m)과 금오산(761m), 멀리 가운데 흐릿한 산은 비슬산(1,058m)
皓首猶存赤子心 백발에도 어린아이 마음 그대로이니
此時方會一源深 이제야 한 근원이 깊음을 알겠네
眼中天地都眞境 눈앞의 천지가 모두 진경이니
外誘何從得我侵 외물의 유혹이 어찌 나의 마음을 침범하리오
――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 1554~1637), 「호수음(皓首吟)」
▶ 산행일시 : 2023년 10월 7일(토), 1무 1박 3일, 첫째 날 산행
▶ 산행코스 : 석골 마을,석골사,상운암,운문산,아랫재,가지산,중봉,입석봉,격산,능동산,능동2봉,얼음골 케이블카,
천황산,천황재,재약산,사자평 고산습지,834m봉,죽전 마을
▶ 산행거리 : 도상 28.3km
▶ 산행시간 : 12시간 23분(03 : 57 ~ 16 : 20)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26명) 버스로 가고 옴
▶ 소요경비 : 회비 95,000원(숙박비 포함), 3식(저녁, 아침, 점심) 매식 25,000원
▶ 구간별 시간
23 : 40 – 양재역 2번 출구 전방 200m 스타벅스 앞
03 : 57 – 석골 마을, 산행시작
04 : 12 – 석골사(石骨寺)
05 : 45 – 상운암
06 : 02 – 주릉
06 : 11 – 운문산(雲門山, 1,195m), 휴식( ~ 06 : 20)
06 : 50 – 아랫재, ╋자 갈림길 안부, 운문산 1.5km, 가지산 3.9km
07 : 31 - ┣자 백운산(1.7km) 갈림길
08 : 25 – 가지산(迦智山, △1,241m), 휴식( ~ 08 : 40)
08 : 55 – 중봉(1,168m)
09 : 38 - ┫자 석남터널(0.4km) 갈림길
09 : 55 – 입석봉(814m)
10 : 03 – 격산(813m)
10 : 25 - △814.1m봉
10 : 48 - ┫자 배내고개(0.1.5km) 갈림길, 능동산 0.2km
10 : 51 – 능동산(陵洞山, △983m)
11 : 12 – 능동2봉(968m)
11 : 52 –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종점, 점심( ~ 12 : 20)
12 : 30 – 하늘정원 전망대(1,041m)
13 : 15 – 천황산(天皇山, 1,189m), 휴식( ~ 13 : 30)
14 : 16 – 재약산(載藥山, 1,119m)
14 : 55 – 사자평 고산습지
15 : 30 - ┫자 죽전 마을 갈림길
16 : 20 – 죽전 마을, 언덕산장, 산행종료
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 운문산(雲門山, 1,195m)
오늘 밤에도 설악산은 엄청 붐빌 것 같다. 다음매일산악회 대형버스 만해도 여섯 대나 간다. 석골사를 들머리로 한
영남알프스는 우리 우등버스 한 대다. 26명. 자다 차내 불이 켜지자 깬다. 석골 마을이다. 새벽 4시가 가까워지지만
캄캄한 밤중이다. 버스기사님은 농로 왼쪽에 있는 석골사 일반주차장을 모르고 지나쳤다. 미산 대장님은 산행안내
방송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도로가 좁아 도중에 버스를 되돌리기가 어렵다. 더 간다. 우리로서는 동네 길을 덜 걷
게 되니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약간 널찍한 마주 오는 차량이 서로 비켜갈 공터가 나오자 버스는 더 가기를 멈춘다. 신속히 내린다. 오늘 서울의
아침은 제법 쌀쌀했기에 두터운 겉옷과 보온대도 준비하고,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하여 비옷과 우산도 준비했다. 하늘
우러르니 얼굴이 반쪽에서 또 반쪽으로 빠진 스무이틀 달은 물을 잔뜩 먹었다. 살갗에 닿는 대기가 차지 않고 부드
럽다. 오늘 산행을 종주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10명이다. 나머지 16명은 배내고개에서 능동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
한다.
누구라도 선뜻 먼저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내가 나선다. 뒤이어 젊은이 한 사람이 나를 추월하여 앞
장선다. 그 사람 헤드램프 불빛에 얼마동안 나에게는 등대다. 대로는 15분 정도 진행한 석골사 아래 소형 주차장까
지 이어진다. 대로 바로 옆에 있는 석골사가 적막하다. 그 적막을 흐트러뜨리기 싫어 절집은 들르지 않는다. 계류만
이 어둠속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법문한다. 길옆 석골사 안내문을 헤드램프 불빛 비춰 읽어본다.
석골사가 통도사 말사라는 것, 신라 진흥왕 12년(560년) 비허(備虛) 법사가 짓고 보양(寶壤) 법사가 중창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 임진왜란 때 인근의 백성들이 피난한 곳이었다는 것, 한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
도 불렀다는 것, 특히 석골사는 극락전에 있는 석조 아미타삼존불의 원력으로 중생의 깨달음과 소원성취의 기도처
이며, 극락왕생 발원의 귀의처라는 내용이다.
계류와 동무하며 오른다. 석골사 이름대로 울퉁불퉁한 돌길의 연속이다. 가파르지만 짧은 슬랩을 오르기도 한다.
데자뷰일까? 문득문득 어디선가 걸었음직한 느낌이 드는 길이다. 지난 산행기록을 찾아보았다. 9년 전 가을과 6년
전 겨울에 이 길을 걸었다. 그때는 여러 일행들과 무리지어 지났기에 길을 더듬지 않았는데, 오늘 지금은 혼자라서
각별히 조심한다지만 계곡의 잔 너덜지대에서는 길을 찾는 한 방법으로 길을 잃곤 한다.
암벽에 노란색의 화살표, 바위 위의 크고 작은 돌탑들, 나뭇가지에 매단 뭇 산행표지기 등이 상운암 가는 길을 안내
한다. 어느덧 계류 물소리가 잦아들고 등로는 사면으로 방향을 틀기에 이제 상운암으로 직행하나 보다 했는데, 등로
는 산허리를 길게 돌아 다시 계류와 만나고 함께 간다. 데크계단이 나온다. 길다. 돌길이 이어진다. 또 가파르고 긴
데크계단을 오른다. 산죽 숲을 지난다. 목탁소리가 들린다. 곧 상운암이다.
그 입구 옹달샘은 파이프 타고 흘러내리는 샘물로 넘친다. 아까 미산 대장님이 버스 안에서 배낭을 조금이라도 가볍
게 하려면 식수 한 병은 빈병으로 가져가서 여기서 보충하시라고 한 말이 맞았다. 그러나 나는 산행수칙 제1조 ‘산중
에서 약수터를 믿지 말라’를 신봉한다. 장마철이라도 그렇다. 큰물이나 산사태로 약수터가 메워질 수 있다. 가을이
라고 그 약수터가 온전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물 한 바가지 떠서 목 축이고 암자에 오른다.
상운암을 삼암사(三岩寺)라고도 하나 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三岩寺’라고 한다. 상운암은 슬레이트 지붕
의 낡은 오두막집이다. 너른 마당 한쪽은 채소밭이다. 암자 방문은 활짝 열어 놓았다. 방 안 정면 벽에는 여러 탱화
가 붙여 있고, 그 앞에는 나란한 대촉 촛불이 너울거린다. 방바닥에는 두툼한 방석이 여러 개 놓여 있다. 스님은
마당을 돌면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한다. 멀리 가물거리는 석골 마을 불빛이 어찌 보면 조금 열린 하늘의 별빛으로
도 여길만하다.
이 어둔 새벽에 스님은 대체 무엇을 기도하는 것일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닐 것. 자신의 지난날 쌓인 악업을(?) 씻고자
함일까, 아니면 속세에 두고 온 인연을 그만 끊고자 함일까, 아니면 국태민안을 소원하시는 것일까. 상운암을 나와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산죽 숲길이다. 사면 길게 돌아올라 ┳자 갈림길 주릉이다.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억산
3.8km, 운문산은 오른쪽 0.3km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헤드램프는 소등한다.
운문산. 정상 표지석은 예전 그대로다. 정상 표지석 ‘雲門山’은 당대 우리나라 최고 명필인 여초 김응현(如初 金應
顯, 1927~2007)의 글씨다. 그 옆에 병기한 ‘虎踞山’은 명성 스님의 글씨라고 표지석 뒷면에서 밝혔다. 명성 스님
(1930 ~ )은 운문사 회주인 비구니이시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강백이라고 한다.
경점이다. 어스름한 새벽이지만 주변의 뭇 산들을 알아볼만하다. 무엇보다 남쪽 정면으로 마주한 천황산과 정각산
자락 초원에 자리 잡은 띄엄띄엄한 집들이 스위스 알프스의 풍경과 매우 흡사하다.
운문산을 읊은 한시가 있어 실경과 대조해본다. 겨우 서너 번 오른 운문산을 내가 어찌 다 알까.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 1585~1664)의 칠언절구 「운문산의 산수를 회상하다(懷想雲門泉石)」이다.
千疊雲門水石奇 천 첩 운문산엔 물도 바위도 기이하니
逍遙三足此棲遲 소요하던 삼족당 그곳에서 노닐었지
何當結屋中間臥 어찌하면 집을 짓고 그 속에 누워
山色泉聲樂我飢 산색과 샘물 소리로 내 배고픔을 즐길까
주) 삼족당(三足堂)은 김대유(金大有, 1479~1551)로, 자는 천우(天佑), 호는 삼족당이다. 정여창의 문인이다. 1519
년 현량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으나 기묘사화로 인해 관작과 과거합격이 몰수되자 청도(淸道)에서 은거하였다.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 김익재 양기석 구경아 정현섭 (공역) | 2015
3. 앞은 억산 연릉
4. 천황산
5. 앞은 백운산, 멀리는 신불산
6. 구절초
7. 앞 왼쪽은 정각산(859.5m)
8. 멀리는 신불산과 영축산, 앞은 능동산에서 천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9. 멀리는 가운데는 문수산(580m), 그 오른쪽은 남암산(543.5m)
10. 멀리 가운데는 신불산, 중간 가운데는 능동산
11. 오른쪽은 천황산, 그 뒤 왼쪽은 재약산
12. 왼쪽 멀리는 비슬산
▶ 가지산(迦智山, △1,241m)
아침밥은 행동식이다. 동네 떡집에서 산 송편 두 곽이다. 운문산 데크계단을 내리면서 우적거린다. 데크계단 끝나면
돌길이다. 돌길 주변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구절초가 떼로 나와 반긴다. 내 갈 길이 멀어 일일이 눈 맞춤해주기 못하
는 것이 아쉽다. 예전의 가파른 내리막 돌길은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주릉은 덤비기 어려운 암릉이라 그 왼쪽 사면
으로 길이 났다. 아랫재 1.5km. 잠시도 주춤하지 않는, 하늘 트이는 데 없는 울창한 숲속 내리막이다.
아랫재. 바닥 친 ╋자 갈림길 안부다. 가지산 3.9km. 이 또한 줄곧 오르막이다. 여태 내린 반동으로 오른다. 백운산
갈림길 약간 못 미친 능선까지 된 오르막 1km가 힘들다. 비지땀 쏟는다. 더구나 하늘 가린 숲속이라 볼 게 없어
더욱 팍팍한 오르막이다. 고개 꺾어 올려다 본 공제선 능선은 신기루처럼 다 올랐다 싶으면 어느새 저 멀리 물러나
있다. 내내 혼자 가는 오붓한 산행이다. 능선을 갈아탄다. 오른 고도 가늠하느라 고개 돌려 수렴 사이로 바라보는
운문산이 높디높다.
시간이 산을 간다. 40분이 무척이나 길다. ┣자 백운산 갈림길을 지난다. 이제는 백운산 가는 길도 뚫려 이정표가
안내한다. 비지정 등로였던 시절에 백운산을 갔다. 아기자기하던 숨은벽 암릉과 거기서 내려다보는 깊은 가지산
주계곡의 장엄함이 생생하다. 거기 호박소를 암서 조긍섭(巖棲 曺兢燮, 1873~1933)의 눈을 빌려 다시 본다. 다음은
암서의 「구연유람기(遊臼淵記)」 첫 부분이다. 구연(臼淵)은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물에 씻겨 절구〔臼〕의 파인
부분이 호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이곳에서는 ‘호박소’라고 부른다.
“구연(臼淵)은 밀양의 동쪽 가지산(伽智山) 성남동(星南洞)에 있는데, 그 상하로 수 십리에 높직이 솟은 봉우리와
휑하게 열린 골짜기와 포개어진 돌과 옥소리가 나는 물이 수 없이 많다. 그 산에는 수목이 무성하여 빽빽하고 어둑
하니 원숭이가 아니면 다닐 수 없다. 그 위로는 마치 구름이 일어나고 안개가 자욱한 듯하여, 비록 역산(曆算)에 정
통한 사람이라도 그 형세를 살필 수 없고, 음지쪽으로 향한 깊은 골짜기에는 비록 한여름이라도 얼음이 녹지 않으
니, 바라보고 있으면 아득히 천태(天台)와 삼협(三峽)에 대한 생각이 일어난다. 맑은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 너럭바
위를 밟고 구불구불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윽한 샘과 괴이한 바위가 은은하게 보이고 가만히 드러난 것을 점차
보게 된다. 그리고 만약 소나무 사이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되면, 또 정신이 송연(悚然)하고 기운이 맑아서
발걸음이 가볍고 빨라져 발이 절룩거리는 노고를 잊는다.(……)”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역) | 2015
이제야 가지산 오르는 길이 완만하다. 군데군데 바위절벽은 전망대다. 꼬박 들른다. 능동산에서 천황산에 이르는
장릉이 거기를 간다는 기대에 뿌듯하다. 가지산 0.7km를 남겨둔, 등로를 왼쪽으로 살짝 벗어난 암반도 빼어난 경점
이다. 가지산 북쪽의 산 첩첩을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다. 멀리 흐릿한 산릉은 비슬산이리라. 가까운 운문산은 김장
호가 『韓國名山記』에서 말한 그대로다.
“산에는 얇은 산이 있고 두터운 산이 있다. 얇은 산은 산줄기가 급하게 뻗히면서 솟구쳐놓았으니, 비탈이 가파르고
척박한 대신 보기에 시원스럽고, 두터운 산은 뭉글뭉글 등줄기를 치키면서 앉음새가 육중하여, 겉으로는 우선 듬직
해 보인다. 사람으로 치면 전자는 청수하고 후자는 후덕스럽다 할까.
어쨌거나 이 두텁고 후덕스런 산의 대표적인 것이 운문산이다. 영남알프스라 일컬어지는 가지산맥 북서 끝머리에
1,188m의 높이로 털썩하고 소리가 나도록 내려앉은 이 산은 보기에도 솟았다기보다는 역시 앉았다는 표현이 걸맞
을성싶도록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헬기장 지나고 매점(사장님은 출근하였다) 지나 바윗길 오르면 가지산 정상이다. 영남알프스의 맹주답게 정상 표지
석은 우람한 자연석 화강암이고, 삼각점은 1등이다. 언양 11, 1998 복구. 울주군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 뒷면에 가지
산을 자세히 소개했다.
“해발 1,241m 높이의 가지산은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이다. 원래 석남산(石南山)이었으나, 1674년 석남사(石南寺)
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신라 흥덕왕 때 전라도 보림사의 ‘가지선사’가 와서 석남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고도 있다. 까치의 이두식 표기인 ‘가지’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내륙 산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으며 쌀이 꿀방울 흐르듯 또닥또닥 나온다는 전설을 가진 쌀바위도 유명하다. 산림청
선정 한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이며 유서 깊은 비구니 수도처인 석남사가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가지산의
사계가 ‘울산 12경’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사시사철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가지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빼어나다. 사방이 훤히 트인다. 나는 이 맹주를 향하여 읍하는 울근불근한 뭇 산들
보다 멀리 평원 한 가운데 오연히 솟은 두 개 봉우리가 눈길을 끈다. 위치로는 신불산에서 동쪽이다. 초면이다. 문수
산(560m)와 남암산(543.5m)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이틀간의 산행 내내 내 눈을 사로잡았다.
13. 운문산
14. 운문산
15. 멀리 가운데는 비슬산
16. 문수산과 남암산
17. 멀리 오른쪽이 문수산
19. 중간 오른쪽이 쌀바위
20. 운문산, 그 오른쪽 뒤는 억산
21. 천황산, 그 앞은 백운산
22. 문수산과 남암산
▶ 능동산(陵洞山, △983m), 천황산(天皇山, 1,189m)
가지산 정상을 약간 내린 조망 좋은 공터에서 휴식한다. 눈길 가는 데마다 가경이 펼쳐진다. 맨 눈으로 보기에는
아까워 안주 삼아 탁주 독작하며 바라본다. 사진도 그렇다. 휴대폰이 아무리 성능이 좋다 해도 그걸 들이대기에는
무례가 아닐까. 굳이 DSLR 풀바디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이다. 셔터소리도 묵직하다.
가지산 내리는 길이 여간 사납지 않다.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예리한 바위가 숭숭 솟았다. 여기는 데크계단이 없다.
살금살금 내린다.
뚝 떨어진 안부는 밀양재다. 여기서 바윗길 한 피치 오르면 역시 암봉인 중봉이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반대편에서
줄지어 오른다. 그들은 중봉을 가지산 정상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더 가야 한다니 낙담하는 표정이다. 중봉 내리는
길도 사납다. 바윗길은 아니지만 자갈이 깔린 길이다. 걸핏하면 미끄러져 자빠진다. 15분 정도를 그렇게 애쓰고 나
서 능선 왼쪽의 가파른 사면을 데크계단으로 내린다. 무척 길다. 중봉을 데크계단으로 오르내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데크계단이 끝나면 가파름도 끝난다. 숲속 길 줄달음하기 좋다. 왼쪽으로는 석남터널(0.4km)로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 나지막한 봉봉을 오르내린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노브랜드인 산도 있다. 800.1m봉, 입석봉, 격산에
이어 △814.1m봉. 그 정상들은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다. 등로 주변에 드물게 보는 거목인
소나무가 눈길을 끄는 기수(奇樹)다. △814.1m봉 삼각점은 낡아 ╋자 방위표시만 남았다. 완만하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20분 남짓 오르면 ┫자 갈림길 왼쪽 배내고개(1.5km)에서 오는 등로와 만나고 0.2km를 더 오르면 능동산 정상이
다. 삼각점은 ‘언양 312, 1982 재설’이다. 정상 표지석 옆에 커다란 돌탑이 있다. 능동산은 봉우리의 모양이 완만한
구릉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정표에 천황산까지 5.8km다. 큰 숨 한 번 내쉬고 길 재촉한다. 능동산
을 내리면 임도와 만난다. 임도는 샘물상회까지 4km를 가지만 곧바로 산속 길로 든다. 한적한 산책길이기도 하다.
능동2봉. 너른 공터인 정상 북쪽에 다가가면 가지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키 큰 억새 숲이다. 그 일렁이는
은빛 물결이 눈부시다. 능동2봉을 내리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임도는 능선으로 났다. 외길이다. 1.5km를 임도로
갈 수밖에 없다. 임도가 그리 팍팍하지만은 않다. 꽃길이다. 길섶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줄이어 응원한다. 임도
는 능선 벗어나 산허리 돌아 샘물상회로 가고, 능선 길이 소로로 잘났다. 당연히 능선 길로 간다.
잰걸음 5분 정도 오르면 얼음골 케이블카 종점이다. 널찍한 테라스가 명당이다. 탁자가 여러 개 놓였다. 유람객이
많다. 스위스 클라이네 샤이덱의 한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는 지척인 아이거 북벽의
전망대다. 여기는 운문산이 그러하다. 미국 스릴러 영화인 『아이거 빙벽(The Eiger Sanction』(1975)에서 헴록
박사(클린트 이스트우드 분)가 클라이네 샤이덱의 한 호텔 테라스에서 아이거 북벽을 실눈 뜨고 바라보던 모습을
나는 여기서 운문산을 그렇게 흉내한다.
한 탁자 차지하여 점심밥 먹는다. 주변 가경 또한 건 반찬이고 안주이니 밥과 탁주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데크로
드를 간다. 데크로드는 1,041m봉 하늘정원 전망대 가는 길이다. 방금 전 테라스에서 보던 경치를 다시 본다. 평탄하
고 너른 등로를 잠시 가면 임도 종점이고 갈림길인 광장이다. 샘물상회 근처다. 곧장 천황산을 향한다. 오가는 사람
들이 많다. 대부분 간편한 차림이다. 억새시즌이라 억새 보러 온 사람들이다.
등로 옆 풀숲에서 진객을 만난다. 물매화다. 세 개체 중 둘은 시들었고, 하나만 남아 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산행
의 미션은 조망과 억새, 그리고 물매화를 보는 것이었다. 조망은 산행의 디폴트이고 억새는 그 시즌이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물매화 만큼은 기대가 컸다. 그래서 걸음걸음마다 물매화를 만날 수 있을까 설렜다. 그러나 이 한 송이
밖에 더는 볼 수 없었다. 물매화(Parnassia palustris L.)는 사자평 고산습지가 소개하는 동식물 중 첫째로 드는
야생화이기도 하다.
이윽고 천황산 억새평원 원로를 지난다. 가다말고 뒤돌아보고 저 앞은 또 어떤 장관이 펼쳐질까 서둘러 가고, 갈팡
질팡한다. 너른 공터인 천황산 정상도 빼어난 경점이다. 여태 보지 못한 산들이 첩첩 펼쳐진다. 조망안내도와 일일
이 대조한다. 향로산, 금오산, 천태산, 만어산, 구천산, 수연산, 필봉. 그러노라니 이들에게 퍽 미안한 생각이 든다.
틈만 나면 이 산 저 산을 갔다고 자랑하면서도 이들을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어서다.
23. 가지산 정상
25. 가지산 남서릉
26. 중간이 고헌산
27. 가지산 쌀바위
28. 맨 왼쪽 중간이 정각산, 멀리 가운데는 청도 오례산성
29. 얼음골 케이블카 종점 테라스에서 조망
30. 운문산
31. 오른쪽 멀리는 가지산, 앞 왼쪽은 백운산
32. 물매화
▶ 재약산(載藥山, 1,119m)
주변 경치 둘러보느라 천황산을 내리는 발걸음이 더디다. 걸음걸음이 경점이기도 하다. 용담이 시기하는 물매화를
찾으랴, 원경의 산 첩첩을 눈에 넣으랴 사뭇 바쁘다. 안부는 천황재다. 바윗길 오른다. 사족보행. 긴다. 그 많던 사람
들이 뜸해졌다. 재약산. 암봉이다. 천황산에서 보던 조망에서 각도를 약간 달리한다. 재약산의 옛 이름은 재악산(載
岳山)으로 최고봉은 수미봉(須彌峰)이다. 신라 흥덕왕 셋째 아들이 이 산의 영정약수를 마시고 고질병이 나은 뒤
‘약수를 가지고 있는 산’이라 하여 재약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재약산이 산세가 수려하여 흔히 삼남금강(三南金剛)으로도 불리는데, 이 삼남은 재약산이 울주군 삼남읍에 위치하
여 그러한 게 아닐까 한다. 재약산 정상 바로 아래에 사자평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데크 전망대가 있다. 박배
낭을 세워 둔 등산객에게 죽전 마을 가는 길을 물었다. 온 길을 0.2km 뒤돌아가서 주암계곡 쪽으로 가야하는지.
그러면 너무 멀고, 데크계단을 내려서 사자평 고산습지로 가면 죽전 마을 갈림길이 나올 거라고 한다.
재약산 남쪽 데크계단은 표충사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데크계단이 설치되기 전에 아내와 함께 표충사에서
재약산을 오른 적이 있다. 상당히 길다. 0.9km라고 한다. 지루하게 내린다. 데크계단을 다 내리면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내리다 왼쪽 산자락 돌고, 계곡 무지개다리 건너면 사자평 고산습지 억새평원이다. 억새 숲길을 간다.
망망대해 은빛 파도가 출렁인다. 나는 자맥질한다. 원로 한참 걸어 임도와 만난다. 이정표가 안내한다. 죽전 마을
입구 0.3km.
0.3km를 가서 죽전 마을로 가는 길은 고산습지에서는 데크로드로 간다. 여기도 한참을 간다. 산속에 든다. 나지막
한 봉봉을 넘는다. 그래도 해발 800m가 넘는 봉우리들이다. 코끼리봉(898m) 가기 전 야트막한 안부에 죽전마을로
가는 ┫자 갈림길이 있다. 오늘 산행 아니 금년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좀처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대단한
고역이 시작되는 것이다. 안부에서 산허리 길게 돌아 지능선을 잡고는 내리쏟는다.
지그재그로 내린다. 지그재그가 하도 잦다 보니 어지럽다. 죽전 마을 대로까지 불과 1.3km이지만 그 배가 넘는 거
리로 간다. 얼마간 내리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잠시 진정하여 내리기를 반복한다. 자갈길도 나온다. 이때는 미끄러지
기 일쑤다. 스퍼트 낸다. 저절로 가속하여 떨어지는 발걸음을 제동하느라 진땀 뺀다. 종종 파적하고자 노루궁뎅이라
도 있을까 도리도리 훑어본다. 가파름이 수그러들어도 이미 길들었던 발걸음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다.
죽전 마을 대로에 다다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숙소까지 좀 더 가야 하는 대로가 도리어 힘들다. 산골 마
을에는 벌써 해거름이다. 어둑하다. 언덕바지 조금 올라 우리가 묵을 언덕산장이다. 배낭 벗으니 살 것 같다.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의 산행이 꿈만 같다.
33. 천황산 억새평원
34. 멀리는 운문산
35. 멀리 가운데는 금오산(?)
36. 멀리는 비슬산
37. 앞은 향로산(976.9m), 그 왼쪽 멀리 뒤는 금오산(761m)
38. 용담
39. 멀리 가운데는 금오산
40. 사자평과 재약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