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과 시인
날마다 새벽 거리를 청소하듯 하루하루 시를 적는 환경미화원이 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은 뭇사람들에게 볼거리지만 떨어진 꽃잎을 치우는 일은 그의 몫인 것처럼.
“남들은 더럽다고 싫어하는 일일지 몰라도 저에겐 너무나 귀한 일이예요.”
25년 차 환경미화원인 그는 도로의 쓰레기를 쓸고 행복을 일구며 쓴 시로 6권의 시집을 펴냈다. 〇〇시 환경업체 청소부로 일하면서 꾸준히 시를 쓰기 시작해 이미 오래전 시인으로 정식 데뷔한 터다. 청소 일을 하며 맞닥뜨린 풍경들과 떠오른 생각들은 모두 그의 메모장에 기록된다. 그렇게 모인 글감들을 늦은 밤 습작 노트로 옮겨지고, 짬짬이 디지털 형태로 컴퓨터 속에 저장된다. 회사에 들어가면 3평 남짓한 휴식 공간에서 시를 가르치기도 하는 그는 열정적인 일상으로 행복을 엮어 낸다.
“세상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많고 행복을 찾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일이 마냥 호락호락하던가. 초등학교 때 경북 안동에서 형을 따라 부산으로 오면서 시작된 그의 객지 생활은 시련의 길이었다. 여름철 신었던 흰 운동화에 먹물을 들여 겨울에도 신고 다녔을 정도로 춥고 어려웠다. 영양실조에 몸이 쇠약해지고 결핵으로 7년간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친구들과 뛰놀며 즐겁게 어울려야 할 어린 시절이 훌쩍 지나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농사, 택시 운전 등 업으로 했던 일에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쓰디쓴 좌절의 순간에도 그가 놓지 않았던 건 일기 형식의 글쓰기와 시를 쓰는 일이였다. 시를 쓰면서 마음을 달랬고 다시 일자리를 잡았으며 끝내 위기를 극복해 냈다.
환경미화원과 시인이라는 인간 세트가 조금 색다르게 비쳤을까 그는 KNN〈굿모닝 투데이〉 외에도 KBSITV〈행복해 지는 법〉과 KBS 〇〇방송총국〈시사@경남, 시인이 된 청소부〉등에 출연한 경력을 갖고 있다. 지금은 어느 소도시 문인협회 부회장으로, 음식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으로, 끊임없이 하루의 창을 열고 닫는다.
사람은 영혼이 고플 적에 예술을 접하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인생에게 그 나름의 휴식을 선사하므로, 글쓰기는 영혼을 살찌게 하는 예술 활동일진데 스스로 하는 위로이고 치유이며 정체성이고 해답이며 때로는 구원이기도 할 테다. 시를 쓰면서부터 행복하고 시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자칭 낭만 시인, 그는 시를 읽고 쓰면서 마음안에 혼탁한 공기를 몰아내고 맑은 기를 불어넣는다. ‘할 수 있어’가 아니라 ‘하고 있어’ 행복한 그의 땀 맺힌 얼굴이 유난히 빛난다.
우산 속 두 사람
한 우산 아래 어깨를 맞댄 두 사람이 걸어간다. 오전 내내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거센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꽂히는 여름날 오후다. 포착된 두 사람은? 다정한 연인끼리가 아니다.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가는 할머니와 커다란 쇼핑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우산을 받쳐 주는 젊은 여자의 뒷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사정없는 비에 두 사람의 한쪽 어깨는 이미 다 젖었다.
지난한 생을 말해 주듯 구부정한 자세로 리어카를 잡고 걷는 할머니 곁에서 우산을 펼쳐 든 여자. 그녀의 긴 파마머리와 쇼핑 가방은 물론 얇은 옷도 빗물에 젖어 몸에 감긴다. 저 걸음엔 분명,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은 건지, 쯤은 안중에 없을 게다. 비가 세차든 말든 묵묵히 할머니와 보조를 맞추는 그녀는 들녘의 함초롬한 풀꽃을 닮았다 할까. 비 사이로 자동차가 내달리고 인파가 몰려가고 오는 거리에서 마치 한 컷의 슬로우 모션(slow motlon) 같은 장면이 뭉클, 닿는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당신도 있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이 대체로 듣기에 불편한 사건이거나 삭막한 이야기들인 이즈음, 한 여자의 진심이 잔잔하게 묻어나는 풍경이 찡하다. 아마 쇼핑을 나왔던 여자가 빗속에서 리어카를, 아니 버거운 삶을 끌고 가는 등 굽은 할머니를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나 보다. 그렇게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심경에 꽂혔던 또 다른 누군가는 인터넷에 영상을 올렸을 테고, 마침내 TY 화면으로 비춰졌던 것.
바야흐로 촉촉한 도시를 읽는다. 비가 와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이들 덕분에 사람과 사람이 배려하며 함께 걷는 도시를, 상념에 젖어 읽는다. 마음 안에 선방 하나 지어 놓아야겠다. 누구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살아 내야만 하는 길, 몰아치던 빗줄기가 어느새 자늑자늑해지고 있다.
첫댓글 아름다운 얘기를 잘 읽었습니다. 이런 분 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