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5일(월) 오후 6시부터 대학로 샘터파랑새극장에서 있었던
'노래와 어깨동무' 제21회 동요작곡가 박용진편 음악회때 장예림 어린이
(당시 파주 청암초등학교 2학년)와 함께 부른 '독도는 우리의 친구' 동영상입니다.
저는 목감기로 인해 음정이 고르지 못했습니다.
독도는 우리의 친구
박용진 작사,작곡
1.
아주오랜 옛날부터 독도는 우리의 친구
나의조상 시절부터 독도는 우리의 친구
하얀갈매기 쉬어가는 곳 파도가 손짓하는 곳
뭉개구름이 노래하는 곳 사랑이 꿈꾸는 곳
(후렴) 외로워마 우리가 있어 소중한 우리친구여
언제까지 함께할테야 겨례의 친구여 !
2.
아주작은 섬이지만 독도는 우리의 친구
동해바다 끝이지만 독도는 우리의 친구
바닷바람이 쉬어가는 곳 뱃고동 일렁이는 곳
파란하늘이 미소짓는 곳 사랑이 꿈꾸는 곳
(후렴) 외로워마 우리가 있어 소중한 우리친구여
언제까지 함께할테야 겨례의 친구여 !
우리의 사랑이 필요해요.
예림이와 함께 노래를 마치고 찍은 사진입니다.
무대 뒤 풍경
(아래 글은 2004년 10월 26일에 쓴 글입니다.)
무대위에서는 기쁜소리중창단 어린이들이 '공부가 과자라면' 을 신나게 불러제끼고 있다. 이제 한곡만 더 하면 우리 차례다. 예림이는 아까부터 중얼중얼 가사를 읊조리고 있다. 나도 입속으로 노랫말을 한 번 되뇌어본다.
♬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독도는 우리의 친구...나의 조상 시절부터 독도는 우리의 친구...
그 다음은 예림이가 받아서 하는 부분이니까 되었고...
♬외로워 마 우리가 있어 ~ 소중한 ... 소중한...
가만 ... 소중한 다음이 '나의 친구여' 야 '우리 친구여' 야 ?
불안해서 악보를 꺼내본다. 이런 이런 큰 일날뻔 했네. '우리 친구'잖아 !
수십번도 더 연습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나의 친구여'냐 '우리 친구여'냐로 헷갈린다.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다니까...
목이 탁 마르다. 준비해간 생수를 마신다. 그래도 갈증이 나서 포카리스도 마신다. 예림이가 저도 달라고 입을 짝 벌린다. 입 안에 포카리스를 한 모금 부어 넣어준다.
자 ! 이제 가자 ! 파이팅 !
기쁜소리 중창단이 '아름다운 우리의 꿈들' 을 부르는 동안 무대 옆 휘장뒤에 나가 대기한다. 이 노래가 끝나면 예림이와 나는 조명이 환한 무대 위로 나가는 것이다.
예림이는 오른쪽에 나는 왼쪽에 섰다.
키 차이가 어찌나 나던지 나는 한참 아래로 내려다 보아야 예림이가 보였다. 본래 연습할때는 내가 의자에 앉고 예림이는 바로 내 옆에 서서 부르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리허설할때 서서 하는 것으로 바꿨다.
무대에도 자주 서 봐야 한다.
나야 뭐 매주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사람이니까 늘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교하는 것과 노래 하는것은 다르다. 설교는 문자에 얽매이지 않지만 노래는 가사대로 해야 한다. 설교는 음성의 톤이 설교자 마음대로지만, 노래는 악보대로 불러야 한다.
그래서 노래가 더 어려운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 아니면 최초의 어린이와의 듀엣무대여서였을까 ? 설렘과 흥분, 그리고 긴장의 분위기가 그만 나로 하여금 박자를 하나 놓치게 하고 말았다. 2절 앞부분 '♬동해바다 끝이지만 ~' 다음에 엇박자로 '♬독도는 우리의 친구~' 를 들어가야 하는데 마음이 좀 조급했는지 그냥 반박자를 빨리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예림이는 어리지만 무대 경험이 많아서인지 침착하게 박자를 따라 곧바로 '♬바닷바람이 쉬어가는 곳 ~' 하면서 노래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예림이가 '뱃고동 일렁이는 곳~' 해야 하는데 그만 1절가사를 하고 말았다. 즉, '파도가 손짓하는 곳 ~' 해버린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파란하늘이 미소 짓는 곳~' 이렇게 나와야 하는 다음 가사가 순간 막혔었나보다. 천하의 장예림이가 멈칫했다. 다행히 나는 그 순간에 예림이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예림이가 좀 이상하다 하는 그 극히 짧은 순간에 '♬파란 하늘이~ ' 라고 거들어 줄 수가 있었다. 동영상을 보면 예림이가 그 순간에 흠칫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노래가 끝나고, 무대 뒤 분장대기실로 들어왔을때 예림이는 계속해서 자책하고 있었다.
" 아 ~ 내가 왜 그랬지 ?... 내가 왜 가사를 까 먹었지 ?"
"괜찮아~ 잘 했어 ! 그만 하면 잘 한거야 !"
"아~ 왜 가사를 까먹어요 ? 아이..."
"목 마르지 ? 자 ~ 이거..."
나는 포카리스 병을 꺼내서 예림이 입에 부어넣었다.
예림이 이마에는 땀이 송송 나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동요드림의 '맞습니다 맞고요 !" 가 연주되고 있었고, 객석에서는 간간히 웃음도 터져 나왔다.
오십의 나이를 잊은 어른이와 어른같은 아홉살 어린이는 그렇게 무대 뒤에서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2006.1.15. 조성재 목사 원천군인교회 취임예배후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2008.7.10.일산 오앤박뮤직에서 만난 예림이(오른쪽)와
예림이 동생 예주(가운데)랑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예림이는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귀국했었습니다.(13세때).
2010.12.29. 일산 호수공원에서 예림이 15세때입니다.
첫댓글 저 어린 예림이가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을까요?
목소리가 너무 초롱초롱하네요.
예림이는 2006년도 가을에 말레이시아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외국인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목적으로 가서인지 2010년 12월달에 귀국했을때 만났는데 영어를 썩 잘했습니다.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말레이시아에 있는데 아마도 대학생이 되었을거라 생각됩니다. 2010년 12월 이후에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예림이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4학년때까지 동요대회에서 매 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예림이가 무대에 서는 곳에는 거의 항상 제가 있을정도로 제가 사랑했던 아이입니다. 유튜브에 가셔서 '장예림'을 검색하시면 여러편의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예쁜 예림이 작은 예림이와 키다리 조성재목사님의 듀엣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목사님보다 의젖한 에림이 브라바 !! 브라비입니다.
저 예림이가 2006년 5월달에 남이섬 나미나라 야외 특설무대에서 있었던 김영선 선생님의 제자음악회 '노블가곡제'때 특별 출연을 해서 '섬'을 불렀었습니다. 2006년 12월달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잠시 귀국해서 KBS 1TV '누가누가 잘하나?' 연말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똑똑하고 당차고 예쁜 아이였습니다. 외할머니가 이화여대를 나왔고, 엄마가 이화여대를 나와서 만약 예림이가 이화여대를 다닌다면 3대 이화여대인이 될텐데...
모계로 3대가 같은 동문이 될기회를
영어때문에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입니다.아 아까와라~~
그러게나 말입니다. 더구나 지금까지 7년동안이나 아빠랑 떨어져야 하는 기러기가족이 되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한창 성장기에...
좋은 연주입니다. 목사님 키가 많이 큰 편입니다. 이른바 장한입니다. 소년시절 병치례한 분 답지 않게 아주 건강한 성인의 모습입니다. 연주 잘 감상했습니다. 예림이가 지금은 20대 처녀가 되었겠군요. 좋은 처자입니다.
제 키가 179cm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 키가 크셨습니다.
지금이니까 보통이지만 청소년기, 청년때만 해도 눈에 띄게 키가 컸습니다.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 불편했던 한 때가 있었습니다.
체중이 60kg이 될까말까 해서 가냘프기까지 해서 참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예림이가 지금은 열 아홉살이 되었습니다.
열 다섯살때 한 번 만난 후로는 3년째 못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