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6일), 지난 24일 모두 퇴촌에서 찍었습니다.
어제는 해뜨기 전에 나가서 일출을 찍었구요. 24일은 오후 4시경에 나가서 찍었죠.
편집하면서 보니까 비색이 나타나느냐 아니냐에서 24일 낮에 찍은 사진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겠더라구요.
사진의 색만 다른 게 아니라 떠오르는 태양과 그 빛을 이용해서 사진을 다양한 배경으로 찍을 수 있게 되니 찍을 꺼리도 많아지게 되죠.
사진찍기가 而化의 말대로 운동이 되겠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실 수 있는데요. 한 번 나가면 150장을 찍는다고 볼 때 카메라를 150번 들어 올려서 찍어야 하쟎아요. 카메라 없이 팔만 올렸다 내렸다 150번 해도 운동이 되지 않을까요? 방안에서도 그렇게 운동을 할 수 있겠지만 지루하죠.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으면 자신도 모르게 운동이 되는 것이죠. 나중에 몇 장 찍었나 그것만 보게 되지 150번 운동을 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은 아마도 없으실 것입니다. 사진 찍으며 걷는다는 것은 누구나 운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외에 또 있죠. 일어났다 앉았다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그러면서 찍거든요. 이러한 과정이 모두 운동이 되는 것인데 그런 것은 기억에 남지도 않고 그냥 걷는 것만 운동으로 생각하게 되죠.
위 영상의 제목을 [생각과 마음의 여유]라고 붙여 보았는데요. 어디 보니까 여유로움에는 물질적, 시간적, 공간적 여유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자기는 생각과 마음의 여유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디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늘상 들어온 얘기라 새삼스러운 건 아니죠. 그런데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물질적, 시간적, 공간적 여유에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돈도 필요하고 시간도 있어야 하고 생활을 할 집(공간)도 있어야 그러한 여유가 생기게 되겠죠. 그런데 그러한 것들은 [현실적]여유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그러한 현실적 여유가 모두 있어야 한다면 그럼 마음에 여유가 생길 날이 있을까요? 따라서 그러한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 노력을 예술 즉 [허구적]여유에서 찾아 보자 이 말씀이죠. [현실적]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허구적]여유를 찾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냥 될 것 같으면 而化가 힘들여 얘기할 필요가 없겠죠. 道를 닦는 것 같은 정신적인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죠. 정신적인 운동을 하는데 그냥 되는게 아니죠. 도구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사진찍기를 해 보자는 것이죠.
어떻게 현실적 여유를 벗어나 허구적 여유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쉽게 TV 연속극에 빠지면 그렇게 되쟎아요? 마치 그 연속극의 주인공이 된 듯 살아가게 되거든요. TV 연속극은 당연 예술이죠. 근데 TV 연속극은 운동이 안되쟣아요? 그것만 보고 있으면 치매 1순위라는 것 같더라구요. 그것을 운동을 겸한 사진찍기로 해 보자는 말씀이죠. 그럼 사진찍기에서는 어떻게 [허구적]여유를 찾게 될까요. 그것은 시각적 아름다움의 늪에 빠지게 되어 그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어떤 대상을 보면서 무의식 중에 아름다움을 찾고 또 그렇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일반인의 눈에는 안보이고 운동을 통해 훈련된 사람의 눈에 보이게 되죠. 무슨 고상한 철학적 얘기 안해도 아무 상관 없어요. 그것도 다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거든요. 사진이 예술이고 아니고 하는 논쟁도 다 쓸데 없는 얘기가 되죠. 사진이 예술이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예술이 되는 것이죠.^^
而化가 단언컨데 [사진은 사실(현실) 속에 존재하는 허구]라고 할 수 있겠습디다. 而化가 바라보는 것은 현실이고 사실인데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허구를 而化가 보며 살아가는 것이죠. 헛것이 q보이는 게 아니구 허구(虛構, Fiction)가 보인다니깐요!^^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