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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만조 & 기사계첩 ]
1. 풍산홍씨 홍만조
답사를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상황에 부닥치는 일이 있다. 좋은 경우든, 나쁜 경우든.
2024년 5월 24일 오전 8시 집을 나선다. 오늘 목적지는 충남 아산이다. 대충 동선은 이렇다. 형조판서 홍만조 묘→ 읍내동 당간지주, 온양향교, 온주아문 및 동헌→ 온양민속박물관→ 영인산성→ 공세리성당→ 아산장씨 시조 및 장영실 묘→ 해암리 게바위.
첫 답사지인 홍만조 묘는 사실 동선에 맞아서 그냥 들르는 곳이었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인산성과 영인산 정상. 성은 납작한 돌을 맞추어 거의 수직에 가깝도록 쌓아올렸다. 북쪽으로 아산만, 삽교천, 평택이 조망되는 곳이지만 이날은 미세먼지 때문에...
공세리성당 내외부. 이곳은 원래 충청도에서 거둔 세곡을 한양으로 보내기 위해 보관하던 공세곶고지(貢稅串庫址)였다.
세종 때의 걸출한 과학자 장영실과 아산장씨 시조 묘.
백의종군 중이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 초계변씨의 시신을 맞았던 아산 해암리 게바위.
◇뜻밖의 행운에 감동
집을 떠난지 약 한시간여만인 오전 9시10분. 배방읍 세교리 묘역에 도착한다. 아들 홍중징에 이어 아버지 홍만조 묘를 살펴보고 있는데 홀연 누군가 나타나 기웃거린다. 오히려 내가 주인인 듯 객처럼 보이는 이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풍산홍씨 후손이라고 소개하며 저 밑에 가면 자료가 있으니 홍만조에 대해 좀 설명을 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널따란 묘 아래의 임시 가건물에 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건네주는 명함을 보니 성함은 홍만식, 직책은 풍산홍씨 정익공파종회 회장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홍 회장의 얘기를 듣던 중 뜻밖에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2020년 국보 334호로 승격된 ‘기사계첩 및 함’이 자신 문중의 소유라 하지 않는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몇 년 전 열었던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전을 보았기에 기사계첩에 대해 알고 있던 터였다. 당시 전시됐던 기사계첩은 2019년 국보 제325호로 지정된 중박 소장품이었다.
그런데 홍만조는 기사계첩에 등장하는 11명의 기로신(耆老臣) 중 한 명이며, 그가 하사받은 기사계첩이 중박에 이어 2020년 국보 제334호로 지정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홍만식 회장이 사비 60만원을 들여 영인본으로 제작한 기사계첩을 보여줬다. 진품은 아니지만 똑같이 잘 만든 것이어서 살짝 흥분이 일었다. 2020년 이 첩의 국보 승격을 기념해 온양민속박물관에서 2022년 ‘전가보장(傳家寶藏, 집안 대대로 보배롭게 간직하다) 집안의 보물, 후세에 전하다’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어쨌든 동일한 사안에 대해 제작한 거의 동일한 첩을 별도로 국보 지정한 사례는 흔치 않은 일 아닐까?
홍 회장은 내게 이 때 만든 도록을 선물로 건넸고, 집안에 내려오는 교지를 비롯한 여러 전적류를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홍만식 회장이 문중에 내려오는 여러 문서들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2022년 온양민속박물관 특별전 도록에 서명해서 내게 건네주고 있다. 내용이 충실하고 인쇄 질도 높은 굉장히 잘 만든 도록이었다.
◇홍만조는 누구?
정익공 홍만조(洪萬朝, 1645~1725)는 충청 전라 평안 강원 함경 경상 경기 등 전국 8도 중 황해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관찰사를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어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지냈다. 호는 만퇴(晩退), 관향은 풍산(豊山)이다. ‘풍산’은 서애 유성룡의 풍산유씨처럼 안동에 있는 지명이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홍국영(洪國榮) 등이 풍산홍씨이다. 홍만조는 풍산홍씨 정익공파의 파조이기도 하다.
그의 넷째 아들 홍중징(洪重徵, 1682~1761)이 이인좌의난 진압에 공을 세워 분무원종공신에 책록됐는데 그 때 아산 세교리 일대를 사패지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홍만조 또는 아들 홍중징이 아산에서 처음 살게 된 입향조라고 한다. 아버지는 80세, 아들은 79세까지 살아 부자가 기로소에 들어갔다.
아산시 배방면 홍만조 묘. 특이하게도 묘에 만퇴당 홍만조 흉상을 돌로 만들어 세워뒀다.
홍만조 묘표. 세제(世弟)좌빈객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경종 때임을 알 수 있다.
평양 생사당(生祠堂, 살아있는 사람을 사당에 모셔 제사를 지내는 것)에 걸려 있던 1700년경의 홍만조 초상. 영조 때 생사당 훼철령에 따라 후손이 초상을 철거해 보관해온 것이다.
오른쪽은 1936년 다시 제작한 이모본. 똑같이 옮겨 그렸으나 양 손만 옷소매 속으로 넣었다.
묘역 내 영당에 봉안한 이모본 초상.
상석 전면. 간좌(艮坐), 축좌(丑坐)가 써있다. 대략 방향을 나타낸다는 것은 알겠으나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정익공 만퇴당 홍만조 신도비. 글씨를 얇게 파서 알아보기 매우 어려웠다.
홍만조의 넷째 아들 홍중징 묘 후경. 앞의 건물이 홍만조 사당 겸 영당이다.
첫댓글 위 글은 네이버 밴드 "혼자 떠나는 문화유산 답사 여행"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원문에 게제 된 사진은 네이버와 다음 사이트 호환 문제로 가져올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