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이렇게 좋은 현장스케치를 쉰다고 생각하니...흑!!! 눈물이 앞을 가려오네요 ㅠ.ㅠ)
오늘은 스케치 종강날... 앞으로 두달간 화구메고 현장나갈 일이 없는 아쉬움 많은 날,
때만되면 튀어나가고 싶어 근질거리는 몸이건만, 억지로라도 그만 좀 나다니라는..반학기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ㅡ,,ㅡ
기대했던 춘천 신동 솔밭이 아니라 서운했지만 요란한 종강식 치르려면 가까운데라야 무리
없을 것 같아 계획이 변경된 것이다.
오늘의 사생지는 송추...해마다 몇 번씩 가는 익숙한 장소지만 삼각산과 오봉이라는 흔치
않은 명산이 있어 질리지 않고 두고 두고 사생할 수 있는 명지중 명지이다.
종강때면 어김없이 버스가 가득차고 넘치는데..역시나 오늘도 40명이 넘는 화우들로
버스가 입석도 불사하며 북적거린다.
매년 개강, 종강때면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평소 오지않다가도 그날만 되면 오는 이유는
+알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짐짓 아닌척, 안그런척해도 그 알파에 무심할 수 없는게 가벼운
인간의 속내아니던가...^^;;

(꽃이 아닌 뻘건 접시들만 잔쯕 매달려 있다 ㅡ,,ㅡ)
첫 번째 그릴 대상은 식당앞 붉은 접시꽃이다.
지난주부터 아크릴을 현장에서 처음 사용하고 있는데, 유화와 전혀 다른 물성에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다.
금칠한 것보다 더 비싼 세넬리에 유화물감을 나이프위에 듬뿍 얹어 회칠하듯 쳐 발랐던...
뭐 무서운줄 모르는 내 하룻 강아지의 파죽지세가 대책없이 가벼워지는 주머니의 속사정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착착 감겼던 유화물감과는 달리 아크릴은 뭉글뭉글 그냥 번지기만 하다가 삽시간에 말라버리는
성질 급한 고약스런 물감이다.
나이프의 강한 터치감과 끈적거리는 질감에 익숙해온 내 손이 이 생경한 물질에 놀라 허둥대고
있다.

(그날 저녁 다시 집에 와서 울컥! 화가 치밀어 유화로 그려 본 접시꽃)
그리고 보니 접시꽃이 아닌 뻘건 접시만이 초록 대롱에 여기저리 무겁게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아무리 80%의 경비절감 차원이라지만... 꽃을 그릴 수 없는 물감이라니...
“에이..이거 저 꽃아닌데유...안 비슷해유..” 내 등뒤에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기사 아저씨의
기습적인 솔직한 말이 어떻하든 수정해서라도 마무리를 해볼까...라며 버벅거리던 내손의
기세마저 꺽어버렸다. 흑...빈말도 못하는 아저씨의 솔직함이 가슴을 후려친다. ㅠ.ㅠ

(현장에서 실패한 후 맺힌게 많아.. 집에서 내리 두점을 그린 접시꽃!! 이제야~ 접시꽃 봐도 울컥거리지 않을거라는..^^;;)
그렇다해도 한동안 현장스케치를 못하는 아쉬운 종강날이라 기어코 뭔가 건져야 한다는 강박증
이 엄습해오면서 그 옆 나리꽃으로 다시 시선이 꽃힌다.
두 번재 그림은...접시꽃 옆에서 지지않고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작은 나리꽃.
접시꽃과는 달리 검은 꽃술들과 점박이 무늬 오렌지 빛깔의 꽃잎들이 여름 햇빛에 한껏 뒤집혀
말려올라가며 자태를 뽐내는 중이다.
그럼에도 역시나... 꽃잎마다 뒤집혀 말려있는...섬세하고 세밀한 터치라야 가능한 저 꽃을
이 뭉글거리며 번지는 물감으로 표현하기는 아직 부족한 실력탓이리라...
저 꽃이 캔버스안에서 안주하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는 동안 내 얼굴과 손은..태양열에 뜨겁게
익어가고 있다.

(물감 범벅이 된 나리꽃...영롱한 오렌지빛깔만 나리꽃이라고 우기는 중!)
세 번째...두번의 실패에 분기탱천해지면서, 파라솔을 뒤로하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아까참에 입맛다시며 몰래 카메라에 담아놓았던...아름드리 밤나무가 생각난 것은 기어코
뭔가를 건져 가야한다는 울끈불끈한 오기탓이다.
집에서...선풍기 틀어놓고 시원하고 편하게 작업하려고 찍어놨던 그 아리삼삼한 풍경...
내가 젤 만만해하는 구도....비록 뙤약볕 아래 온몸을 드러낸다해도 뭐가 두려울까...
점심먹고 세 번째 풍경으로 한점 그늘막도 없는 어느촌가 앞 작은 둘레길에다 다시 화구를
펼쳤다. 마을은 하얀밤꽃들로 무성했고 그 특유의 이상한 향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남자들이 여자를 유혹할 때 밤꽃나무 아래서 한다구...이게..남성 호르몬 냄새라나
뭐래나...ㅋㅋㅋ”....그럴듯한 아줌마파들 입담에 맞서...“에이...유한락스 냄샌데...”..
“어휴...소독약 냄새같애!”...초를 치는 아가씨파들....순정한 하얀밤꽃나무를 향해 저마다
야유를 하고 있을때....암것도 모르고 저만치 뒤따라오던 누군가...“어머나...이 냄새...”
??? 다들 귀를 쫑끗한다. 과연 무슨말을 할까?...“...농약냄새같애...” ㅋㅋㅋ, ㅎㅎㅎ ...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은밀한 농담과 야유를 받아야만 하는 억울한 밤꽃나무...
오늘 내 캔버스에서 그 맺힌 한(?)을 예술로 멋지게 풀어 주리라.

(억울한 밤꽃나무의 함성...내 냄새가....뭐라 고라~ ㅡ,,ㅡ)
뜨겁다못해 살이 타들어가면서도, 굳세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농가와 나무를 그렸다.
푸른 숲을 배경으로 파란지붕과 주홍빛 농가지붕을 바닥에 낮게 배치하고 오른쪽에 넘실거리는
하얀 밤꽃나무 한그루를 묵직하게 그렸다. 그럼에도 허전한...아무리 봐도 무언가 결핍된 아주
작은 오류...그렇다!!...마당위 하얀 빨래줄에 걸려있는 빨래들..
저 아련한 그리움의 코드...답답한 도심의 협심증을 앓고 있는 내 눈의 향수...마당을 시원하게
가로 질러 두줄로 길게 늘어져 있는...가는 세월에도 무심한 빨래줄.
드디어 이 풍경을 완성해주는 정점을 찾아 막 그리려는 찰라...저런...빨래가 걷히고 있다.
하필, 그순간에...절묘하게 어긋나버린 타이밍...내 망막속에 잠시 맺혀있는 빨래들이 하나하나
다시 널려지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세 번째 그림...비로소 안도감이 인다.

(삼각산과 소나무가 천생연분인 송추의 풍경)
그리고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내면 그릴 수 있을것 같다.
오봉이 있는 삼각산을 안그리고 간다면 오늘 송추에 왔다는 것이 무의미해지리라...마지막 그림은
오늘의 포인트...서울의 수호신, 삼각산이다. 블루와 바이올렛을 혼합한 색으로 삼각산를 묵직
하게 정면으로 그려넣었다.
오봉을 구성하고 있는 봉우리가 겹치면서 살짝 드러나는 것으로도 미학적 구성으로 충분할 만큼
삼각산은 어느측면에서 그려도 웅장함과 다채로운 맛이 살아있다.
삼각산과 소나무는 천상의 궁합, 그 어울림이 절묘해서 이땅의 화가들이 탐내는 구성이지만
시선이 멀어 마을에 있는 근경의 소나무를 잠시 차용했다.
자리에 일어설 즈음, 어질어질....뜬끈뜨끈....온몸은 불닭으로 튀겨진 느낌이다. 그래도 뒤늦게
건진 두점...한점 부는 바람없어도....아!!!...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첫댓글 그 열정에 탄복합니다.
ㅋㅋㅋ 유난스러울만큼 저 혼자 뙤약볕에 여기저기 휘젓고 다녀서 쬐끔 눈치가 보였는데...열정으로 봐주시다니...캄싸^^
빨래걸린 농가 풍경과 삼각산과 소나무 참 멋져요. 홧팅!
어우...님도 그런 낡은 풍경을 좋아하시는군요. 요런 공감 한마디에 신이나서 칼춤을 춘다는...^^;;
ㅋ~~~ 뭐라 할말이없네요 대단하신 열정 !!...이십니다. 요말밖에요 ㅎ ㅎ
멋지심다~언니~~
하계스케치 행사때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