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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토대로 ‘유한 아파트 입구 → 왕산사 → 팔각정 → 왕방산 → 오지재 능선 → 전망대 → 대진대 입구’의 9.83km 구간을 5시간 동안 돌아볼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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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산[王方山]
[정의]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선단동·신북면과 동두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
[명칭 유래] 포천시의 진산으로 불려온 왕방산은 많은 전설과 유래가 전하는 명산이다. 신라 시대인 872년(헌강왕 3)에 도선(道詵) 국사가 정업을 닦을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 하여 왕방산이라 불렀고, 그 절을 왕방사라 했다고 전해진다. 왕방사지에는 30여 년 전에 청매화상(靑梅和尙)이 보덕사[지금의 왕산사]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조선 태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에 있다가 환궁하는 도중 형제의 난을 접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산에 있는 사찰을 방문해 체류하였다 하여 왕방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왕방사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조선 태종이 어머니인 신의 왕후 한씨를 모시고 재벽동에서 살 때 이곳에서 늘 무술을 연마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왕방산은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속세를 떠나 산중에 들어와 삼신암이란 암자를 짓고 은신했다 하여 국사봉이라고도 했는데 왕이 항상 이색을 생각하며 이 산을 바라봤다 하여 왕망산이라 부른 것이 왕방산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지승(地乘)』「영평현(永平縣)」에서는 ‘포천 왕망산(抱川王望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왕방산의 한자 지명은 그동안 왕방산(王方山), 왕방산(旺方山), 왕방산(王訪山)으로 혼용되었는데, 2009년 8월 포천시 지명 위원회에서 왕방산의 한자 지명을 통일하고자 심의 회의를 거쳐 ‘王方山’으로 결정하였다.
[자연 환경] 왕방산[732.7m]은 포천동 서쪽에 솟은 산으로 광주산맥 서쪽의 지맥인 천보산맥의 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왕방산의 계곡[호병골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흘러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현황] 왕방산은 산세가 험하지만 높은 편은 아니고 포천 시내에 인접해 있어 등산객이 많은 편이다. 포천시에서 왕방산 정상에 팔각정을 설치해 놓아 포천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왕방산의 주요 등산로로는 호병골~왕산사~정상에 이르는 코스[2시간]와 심곡 저수지~계곡길~왕방산 좌측 능선~정상에 이르는 코스[2시간]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디지털포천문화대전
포천의 진산이라는 왕방산! 천고지가 몇 산을 남겨두고 고착 상태에 빠지고, 백두대간 연결과 한국의 산하, 산림청, 까만 소 등이 선정한 100 산에 오르겠다는 목표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다음 목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의 산하를 뒤지다 알게 된 산이다. 정확히는 한국의 산하에서 등산객, 산꾼의 인기순으로 나열한 200 산에 속한다. 따로 목표를 만드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 이미 오른 100 다음 100, 즉 101부터 200까지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산림청 홈페이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산림청 숨겨진 우리 산 244'와 까만 소의 100 명산, 다음 100인 100+도 참고했다. 그중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수 있는 산을 추리는 과정에서 발견한 산 중 하나가 왕방산으로 한국의 산하 서열 189위, 산림청 숨은 명산 244중 하나다.
왕방산행 계획을 세우기는 했으나,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 않아 보여, 안내산악회 산행이 비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근교 산에 올라야 하는 상황에서도 왕방산은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11월 7일 포천의 종자산에 오른[산행기] 후 시외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를 이용해 귀가하던 중 창밖으로 의외의 정류장을 보고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일이 있었다. '선단 1통. 대진대학교' 정류장이다. 이 정류장이 왕방산행 계획의 날머리다. 물론 귀가의 편리를 위한 선택이다. 그게 뇌리에 박혀 있다가, 그 정류장을 보는 순간, 놀라 일어난 거다. 해서 귀가하는 시내버스 안에서 핸드폰의 교통 앱으로 노선을 확인했다. 그 결과, 포천 시내에서 종자산행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차를 기다리는 동안 감상했던 산이 왕방산이라는 걸 알았다. 굳이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지 않고, 시내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들머리로 갈 수 있는 산이다!
그럼 굳이 뒤로 미룰 이유가 없어, 안내산악회 산행이 없는 11월 마지막 주 토 또는 일에 왕방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현재 생각은 토가 유력하다. 산행 준비야 지난 종자산행과 같이하면 된다. 다만, 가까운 곳이라, 등산방에 공지해 동행할 의사가 있는 친구와 같이할지 고민 중이다. 현재 기상청 중기 예보에 의하면 당일 영하 8~7도의 날씨라 산행을 권하기에는 너무 춥다. 해서 중기 예보가 아니라, 사흘간의 산악날씨가 예보되는 시점에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공지 여부는 결정한다. 산행 이틀 전 목요일 발표된 토요일 소요산 산악날씨에 의하면, 산행 시간으로 생각되는 10시부터 15시까지, 영하 8도에서 5도 사이의 기온, 바람은 2m/s,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는 예보다. 비록 추운 날씨에, 조망이 어떤 산인지는 모르지만, 시야는 좋을 거로 예상된다.
해서 기상은 좋지 않으나, 같이할 친구가 있으면 참고하라고 등산방에 산행 계획을 올렸다. 분위기로 봐서는 혼산이 될 확률이 높아, 산행 준비는 지난 종자산과같이 뜨거운 물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복장은 토요일 도봉산에 올랐던 거와 같이 겨울 복장을 하기로 했다. 다만, 추위에 대비해 두꺼운 넥워머를 비상용으로 가져갈 예정이다. 사실 그나마 일요일이 기온이 높아,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갈 것도 생각해 봤으나, 그날은 종일 날이 흐린 게 비 예보는 없으나, 비나 눈이 내릴 분위기라 어차피 겨울 산이 추운 거야 당연해 토요일 강행하기로 했다.
산행 준비를 끝내고, 다음날 예정대로 기상해 출발하기만 하면 되는데, 금요일 오후부터 갑자기 오한이 나기 시작하더니, 기침도 나온다. 그리고 기침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고 근육 통증도 심해지기 시작한다. 몸살감기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아니, 코로나? 그런데, 열은 전혀 없다. 해서 뜨거운 추어탕으로 저녁을 먹고, 의사 친구가 코로나 걸리면 먹으라고 준 갈근탕을 데워 마신 후 침대의 온도를 높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땀을 쫙 빼고 기상한 시각이 6시가 좀 넘어서다. 기상하니, 어쩌다 기침이 나오기는 하나, 통증이 전날처럼 심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다른 증상은 거의 없어졌다. 산행 출발에는 문제가 없고, 기상 시간도 적당하다. 하지만, 이 상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우려도 있어, 산행을 하루 연기했다.
하지만, 하루 연기한 월요일은 전국적인 비라 이 상태로 비를 맞았다가 불치병으로 변할 거 같아, 산행을 다음 주 일요일로 다시 연기했다. 해서 푹 쉬면서 매 끼니 남은 갈근탕을 데워 마시며 몸조리에 집중했다. 다만, 너무 오래 쉬어 다음 산행 때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다. 어쨌든 왕방산행을 다시 시도하기로 한 12월 3일 일요일 기상청 중기예보를 보면, 날씨는 맑으나, 기온은 영하 5도에서 영상 5도 사이다. 아직 풍속과 기타 상황을 알 수 없어, 체감 기온도 알 수 없으나, 추울 거로 예상된다. 겨울이 추운 거야 당연하니 놀랄 일이 아니고, 처음 잡았던 산행 일 날씨와 비슷해 더 추가하거나 뺄 거 없이, 준비한 그대로 들고 가면 된다. 물론 사흘 전인 금요일 정확한 예보인 산악날씨를 보고 결정한다.
2 – 1
목요일 거창 오두봉과 기백산을 연계해 달린 후라, 일요일 산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월이나 일요일 왕방산에 오를 생각이었으나, 막상 토요일 오후가 되니, 몸이 찌뿌둥한 게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어 예정대로 일요일 오르기로 하고, 기상 알람을 6시로 맞췄다. 그리고 6시가 조금 넘어 기상해 노닥거리다, 8시경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과거에는 대조동 서부 터미널에서 차를 탔지만, 현재는 터미널이 없어져, 대조시장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의정부행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문제는 버스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거. 아무리 검색해도 실시간 운행 정보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해서 운에 맡기고 정류장으로 향하다가 지갑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지갑을 가져오느라, 8시 28분경 도착했다.
이 정류장에서 의정부로 가는 버스는 시외 34, 360번 두 번호가 있으나,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탈 수 있는 정류장에 정차하는 건 360번이고, 34번은 그 정류장 직전에서 좌회전해 정차한다. 따라서 34번을 타면, 400m가량 걸어 포천행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고로 이상적인 건 360번이나, 언제 올지 모를 360번을 버리고 8시 34분 도착한 34번 버스를 탔다. 이후 9시 48분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에 내려, 400m를 걸어 포천행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실시간 운행 정보를 확인하니, 유한아파트로 직행하는 3200번은 28분 후 도착이라, 10시 2분 도착한 포천시청 앞으로 가는 138번 버스를 탔다. 포천에 들어선 이후 생각보다 긴, 왼쪽 차창으로 보이는 왕방산 능선을 주시했다. 하긴, 대진대 정류장에서 포천시청 앞까지 사이에 버스정류장이 9개 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이 날머리인 '대진대'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 순간 먹을 만한 게 있나, 주변 식당을 살폈다. 없다!
생각보다 긴 능선에 놀라며,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다음 정류장이 ‘포천시청 앞’이라는 안내 방송에 등산화 끈을 조이는 등 등산 준비를 했다. 그리고 10시 47분 포천시청 앞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후 먼저, 등산 앱을 기동했다. 그리고 지도 앱으로 들머리나 다름없는 유한아파트까지 경로를 확인했다.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탈 예정이었던 3200번이 다니는 큰길을 따라 가면 된다. 물론, 이면 도로로 가면 거리가 더 짧아, 그만큼 더 일찍 도착한다. 유한아파트를 향해 출발하기 전 기동한 등산 앱의 고도를 확인했다. 95.6m! 최소 150m는 넘을 거로 생각했는데, 낮아도 너무 낮다. 왕방산 높이가 737m니, 630m 이상의 표고 차다. 근교 산으로는 꽤 높이 올라간다.
2 – 2
10시 47분 포천시청 건너편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유한아파트로 가다가, 꼭 큰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이면 도로로 들어가 골목길로 갔다. 그리고 11시 3분 유한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왕방산 들머리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들머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서 왕산사 이정표를 발견했다. 경사가 급해 들머리는 다른 곳? 어쨌든 처음 계획이 왕산사를 거쳐 올라가는 거라, 이정표가 지시하는 도로로 절로 향했다. 왕산사 이정표 몇 개를 지나며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이 능선 아래까지 이어져 있다. 그리고 왼쪽 높은 봉우리가 왕방산, 오른쪽 능선은 빙 돌아, 왕방산으로 향하고 있다. 절은 정상 아래 어딘가에 있을 거다.
그럼, 절을 거쳐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오른쪽 능선을 따라가는 게 종주다. 해서 등산 앱 지도를 교차 확인했다. 대중적인 등산 앱은 등산로가 아예 없고, 비법정 전문 등산 앱에는 예상대로 능선 위로 등산로가 있다. 그럼,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다행히 완만한 능선이라 지금 오른다면 쉽게 오를 수 있어, 부근에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확인하며, 능선 아래 계곡으로 난 도로로 계속 갔다. 그리고 철책으로 무언가를 보호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다행히 문은 활짝 열려 있어, 그리로 들어가서 보니, 최근에 차량이 능선으로 올라간 흔적이 있다. 그리고 정규 등산로는 아니나, 동네 뒷산이 다 그렇듯이 여기저기 길이다. 해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중 인적이 많은 걸 따라가다가 숲으로 들어가, 아랫배가 아픈 걸 해결했다. 시내를 통과하며 화장실을 찾았으나, 개방된 건 못 찾아서 어쩔 수 없었다.
한참 볼일을 보고 있는데, 위 능선에서 여성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응? 다행히 숲에 가려 보이는 위치는 아니다, 그런데, 나 말고도 등산객이 있다는 사실을 반가워하며, 서둘러 볼일을 보고 흔적도 없이 파묻은 후, 비정규 등산로로 돌아왔다. 이후 그걸 따라가며 보니, 능선으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치고 올라갔다. 그래봐야 채 10m도 안 되는, 거리지만. 그리고 11시 16분 능선 위로 난 등산로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마을 주민을 위한 산책로라 불러야 한다. 그 등산로를 보는 순간, 반딧불이화장실에서 광청종주를 시작해 급경사를 올라, 능선 등산로(역시 산책로)에 도착했을 때[산행기]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능선에 올라서 들머리가 있는 오른쪽 아래를 바라봤다. 이 정도 산책로의 들머리를 찾지 못한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럼, 어딘가 꼭꼭 감춰져 있을 거다.
대형 건물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며, 좌우를 살피며 산책로로 위로 가다 보니, 오른쪽 아래 아파트에 산책로와 작은 규모의 체육공원이 있고, 거기에 몇 사람의 등산객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산책을 끝낸 노년의 마을 주민이 능선에서 내려가고 있어 자세히 보니, 땅에 나무를 박은 계단이다. 나무 계단이 정규 등산로는 아니나 아파트 주민이 애용하는 등산로임은 틀림없다. 해서 산행이 끝난 후 산행 중 기록한 트랙으로 등산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어쨌든 산책로로 계속 가자, 삼거리 이정표다. 좌회전은 왕방산 정상으로 5.6km, 오른쪽은 천주교로 0.5km다. 고로 천주교 성당 부근에 들머리가 있다. 그 천주교를 지도로 검색해 본 결과, 포천성당이다! 그리고 반대 방향은 한국아파트로 역시 0.5km! 고로 산행 들머리를 유한아파트가 아니라 그 뒤인 한국아파트로 잡아야 왕방산 종주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왕방산 들머리 확인을 마치고, 계속 정상으로 향해 100여 미터를 가니, 예상대로 체육공원이다.
체육공원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며, 등산 앱에는 등산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해 두 개 앱의 지도를 교차 확인했다. 아래와 같이 대중적인 앱은 등산로가 아예 없고, 비정규 전문 앱은 지금 가고 있는 등산로를 정확히 표기한다. 고도 대중적인 등산 앱을 가지고는 왕방산을 종주할 수 없다. 앱을 무시하고 등산로만 따라가면 되기는 하지만. 그리고 등산로는 돌탑 사이로 지나고 있어, 동영상을 찍으며 돌탑 사이로 통과하자, 평행봉이 설치된 작은 쉼터다. 현재 시각 11시 38분 점심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파 적당한 식당을 찾고 있어, 서너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준비한 뜨거운 물과 컵라면, 김치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끝으로 남은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에 마른 우엉 3조각을 넣어 만든 따뜻한 우엉차로 입가심하고, 모든 인적을 말끔히 인멸하고 쉼터를 떠나 정상으로 향했다.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길을 재촉해 12시 2분 무럭고개 약수터 갈림길에 도착했다. 약수터까지 0.2km, 고로 왕복 400m! 땀을 흘릴 정도의 날씨라면, 400m에 불과한 거리라 약수 맛을 봤겠지만, 굳이 그 거리를 왕복해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정상까지 4.6km로 생각보다 멀어, 바로 정상으로 향했다. 왼쪽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정상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를 기록으로 남기며 가자, 이번 산행에서 세 번째 보는 등산객이다. 남녀 한 쌍은 반대편에서 오고 있고, 여성 등산객 한 명은 정상 방향으로 가고 있다. 쉼터에서 라면을 먹는 동안 동네 주민으로 생각되는 산책객이 한 명 반대편에서 와서 지나갔을 뿐이다. 고로 반대편에서 오는 두 명은 모르겠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객은 무럭고개 방향에서 출발했을 거다. 그리고 이후 교행한 등산객이나 산책객이 아닌 추월한 사람은 다 무럭고개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이로 봤을 때 포천시민은 왕방산행을 무럭고개에서 시작하는 게 대세로 생각된다. 그리고 대중적인 등산 앱도 무럭고개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표기하고 있다.
앞서가는 여성 등산객을 따라가다가 실제는 어떤지 모르나, 비록 낙엽 지기는 했으나, 등산객이든 산책객이든 사람이 드문 울창한 숲에서 잘생긴 남자가 뒤를 따라오고 있으니, 앞선 여성은 굉장히 무서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 조용히 따라가는데, 깔딱을 조금 오르더니, 여성이 호흡을 고르며 쉬는 척한다. 추월하라는 얘기다. 해서 급한 게 없음에도 페이스를 초과하는 무리수를 두며, 그를 추월해 깔딱을 올라갔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산행도 눈치를 봐야 해, 쉽지 않다! 어쨌든 깔딱을 오르니, 앞에 갑판 계단이다. 그리고 계단 정상에 도착하자, 의외의 임도가 반긴다. 무럭고개에서 출발한 거다. 조만간 포장도 할 기세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임도로 가는 등산객도 보인다. 임도를 가로지른 갑판 계단이 끝나고 다시 깔딱을 올라, 12시 40분 무럭고개 갈림길에 도착했다. 정상까지 3.2km, 무럭고개 1.6km. 어쨌든 컵라면을 먹고 쉼터에서 출발해 무럭고개로 향하는 세 개의 갈림길을 통과했다.
포천의 진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등산로, 아니 산책로가 많다. 특히 깔딱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봉우리를 우회하는 산책로가 꼭 있다. 고로 봉우리에 오르지 않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다. 당연한 건가? 하지만, 반대편은 사유지라. 북한산 둘레길처럼, 왕방산을 끼고 한 바퀴 돌지 못하는 게 포천시민에게는 아쉬울 거 같다. 어쨌든 오른쪽의 무럭고개 방향의 봉우리가 원수봉이다. 한자가 없으니, 무슨 뜻의 '원수'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원수봉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향하는 능선에 올라섰다. 이제는 이 능선만 따라가면 된다. 갈림길을 지나, 300m가량 가니, 다시 갈림길이다. 이번에는 '깊이울', 정상은 좌회전으로 남은 거리는 2.9km! 갈림길을 떠나, 7분 정도 가자, 나무 기둥에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에 바래, 읽기 힘든 명패가 매달려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온 시신경을 집중해 읽었다. '거북바위'다! 어디에? 역광이라 처음엔 깨닫지 못했으나, 명패 왼쪽으로 '구지가(龜旨歌)'가 떠오르는 거북이다.
왜 구지가가 떠올랐을까? 머리가 그걸 닮아? 그렇게 배웠나? 산행 후 '구지가'를 검색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구지가 설명에 '② <구지가>가 애초에는 원시인들의 성욕에 대한 강렬하고도 소박한, 즉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불렸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구지가>가 차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일종의 주문적인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건국신화에까지 끼어든 것으로 본다[기사].'라는 내용이 있다. 학창 시절 이게 머리에 박힌 결과다! 한자는 모르나, 시구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그리고 보니, 2020년 흥수와 둘이 메이데이 연휴에 자전거로 동해안을 따라 북진하다가[산행기], 울진에서 본 수로부인에 대한 설화가 떠오른다. 구지가보다는 '해가'로 불리는 수로부인 설화를 기억하는 건가?! '해가(海歌)'도 찾아봤다.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掠悖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남의 부녀를 빼앗아간 죄가 얼마나 큰가/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그물로 잡아구워 먹으리라)[기사]." 응? 구지가의 해석으로 배운 건데, 다른 노래였다. 물론 구지가에서 파생된 거로 해석하지만.
'구지가'든 '해가'든, 거북의 머리 모양은 북한산 응응바위 못지않아, 수로부인을 떠오르게 했다. 그 거북이를 뒤로 하고 정상으로 향하는데, 오른쪽 앙상한 가지 사이로 봉우리가 보인다. 정상이 평평한 게, 오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많이 본 지장산 정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정상에 뾰족하게 솟은 정상석인지. 탑인지 구별이 잘 안 가는 것도. 그런데, 지장산이라기에는 너무 가깝다. 그럼? 등산 앱의 지도로 검색해 보니, '국사봉'이다. 국사봉은 한북정맥에 있으나. 그건 반대쪽이다. 고로 초면의 국사봉이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급경사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자, 의자가 설치된 쉼터다. 그리고, 의자 뒤로 'KOREA 50K OFFICIAL RACE ROUTE'라는 이정표가 있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산악 마라톤 코스 이정표로 보인다. 이 정도 능선이면 산악 마라톤 코스로는 괜찮아 보인다. 50km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 걸까?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 1시 27분 정상에서 0.9km 거리의 이정표를 통과하고, 1시 37분 0.65km 이정표를 통과했다. 그리고, 1시 40분 정상에서 0.4.km 거리의 왕산사 갈림길인 호병골에 도착했다. 왕산사까지 1.7km에 불과하다. 왕산사가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거리가 맞다. 호병골을 떠나, 완만한 능선 위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며 보니, 정상으로 생각되는 봉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사진에서 많이 본 정자다! 그리고 그 정자에는 앞서가던, 일가족으로 생각되는 등산객이 먼저 도착해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그런데, 정자가 정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정상은 정자를 끼고 돌아 더 올라가야 했다. 해서 정자는 하산 길에 오르기로 하고 정상으로 향해 조금 올라가자, 등산 앱이 반응했으나, 핸드폰 조작 실수로 캡처하는 건 실패했다.
정상이라는 메시지 캡처는 실패했으나, 늘 그랬듯이 동영상을 찍으며 위로 가는데, 정상에서 비박 장비를 짊어진 남녀 한 쌍이 내려온다. 이 동네에 비박할 만한 곳이 있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들과 교차해, 13시 53분 왕방산 정상에 도착했다. 당연히 정상석을 먼저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는 와중에 정상석 뒤로 '동두천 6산 종주, 왕방산, 아조타아조아 6산 737m'라는 팻말을 발견했다. 그걸 보는 순간 좀 전에 엇갈린 남녀의 비박 배낭이 이해됐다. 무박이 아니라, 비박하며 6산 종주하는 산꾼이다! 궁금증 하나는 해결했고, 그 팻말을 보는 순간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아조타아조아'가 6 산의 이름에 따온 건데, '아'와 '조', '타'가 들어가는 산 이름을 떠올려봤으나,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거야, 이 동네 산을 잘 모르니, 그럴 수 있는데, 왕방산의 '왕'이나 '방'은 왜 없을까? 혹시 왕방산의 다른 이름에 '아'나 '조', '타'가 들어가나? 그건 산행 후 확인하기로 했다.
궁금증은 산행 후 해소하기로 하고, 인증을 남기기 위해, 정상석 앞의 침엽수에 다리가 망가져 세울 수 없는 삼각대를 꽂고, 왕이 방문해 왕방산이라는 불리는 산의 정상을 다시 왕이 방문해 인증을 남겼다. 이후 정상 주변을 둘러봤다. 정자, 공식 명칭은 팔각정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그리고, 정상석 뒤로 국사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나뭇가지에 산악회 리본이 매달려 있다. 국사봉을 가리키는 이정표도 있고, 정상석 왼쪽으로도 길은 있으나, 어떠한 이정표나 리본도 안 보인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 발견한 동두천 6 산 종주는 오늘, 달린 코스를 지나 국사봉으로 향하는 거로 생각했다. 고로, 왼쪽으로 보이는 등산로는 동네 산꾼이 다니는 길 정도로 여기고, 하산을 위해 팔각정으로 돌아갔다. 물론 팔각정을 구경하고, 조망도 감상하기 위한 것도 있다
동영상을 촬영하며 팔각정으로 향해, 2시 1분경 그 위에 올라, 먼저 포천시 전경과 그 뒤의 한북정맥을 감상했다. 물론 정맥은 미세먼지로 어렴풋이 보일 뿐, 특정 봉우리를 지목할 정도는 아니다. 아쉽지만, 보이는 거라도 기록으로 남긴 후, 하산을 위해 팔각정 아래를 관찰했다. 대진대로 내려가야 하는데, 대학으로 보이는 건 두 소나무 사이의 봉우리 아래가 아니라, 소나무 왼쪽 능선 아래에 있는 건물군이다. 고로, 여기서 하산하면 안 되고, 정상으로 돌아가, 동네 산꾼의 길이라 생각한 왼쪽 능선 위로 난 등산로로 내려가야 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 2시 11분 정상에서 0.3km 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만나는 순간, 안개 낀 거처럼 흐릿하게 보이던 6 산의 위치가, 머릿속으로 명확하게 그려졌다. 오지재에서 소요산으로 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소요산은 국사봉 능선에서 이어진다. 오지재는 6산 중 어느 산인지 모르나, 그 산에서 오는 길목이다. 고로 50km에 이르는 6 산 종주에서 왕방산이 차지하는 부분은 오지재에서 국사봉에 이르는 5.8km 정도에 불과하다.
높이 737m의 정상에서 해발 90여 미터의 도로 내려가는 거라, 급경사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능선이 길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완만한 능선이다. 아니, 본격적인 하산은 아직 시작도 안 해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2시 19분 오지재 2.6km 이정표를 통과하며 보니, 이정표 중 '진입금지(사격장)'이라는 지시가 떨어져 뒹구는 게 보인다. 포천에 사격장이 있는 건 이상할 게 없는데, 6 산 종주하는 게 아니라, 오지재는 관심 밖이고 대진대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 없다. 해서 수시로 앱의 지도로 대진대의 위치를 확인했으나, 대진대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된 앱은 없다. 와중에 갈증이 심하게 나, 보온병에서 뜨거운 차를 따라 마시며 길을 재촉해, 2시 25분경 갑판 등산로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등산로가 아니라 전망대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그 위로 올라 갔다.
예상대로 전망대에 도착해, 먼저 서쪽의 감악지맥 방향을 조망했다. 오른쪽에 바로 붙어 있는 게 국사봉, 그 뒤 봉우리 아래 계단으로 보이는 게, 공동묘지인 예래원이다. 아이러니는 예래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립노인전문병원이 있다는 거다. 어쨌든 예래원이 있는 봉우리 뒤가 소요산이고, 소요산 왼쪽 뒤가 마차산, 그 외쪽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게 감악산이다. 여담으로 마찬산은 조만간 오를 예정이다. 국사봉 방향 감상과 기록을 끝내고, 다시 등산로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이번에는 한북정맥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한북정맥은 멀기도 하지만, 봉우리가 많고, 미세먼지가 방행해 어느 봉우리가 어느 산인지 특정할 수가 없다. 전망대에서 조망을 마치고, 다시 등산로로 돌아와서 보니, 길이 갑판 계단의 왼쪽과 그냥 흙길의 오른쪽 두 개다. 두 길이 만나지 않는다면 대진대는 왼쪽, 오른쪽은 오지재라, 당연히 왼쪽 갑판 계단으로 내려갔다.
갑판 계단으로 내려가서 보니, 등산로는 암봉 전망대를 우회한 후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 오른쪽에서 우회한 등산로와 만난다. 예상대로다. 그 전망대를 우회하면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갑판 계단을 전망대 끝에다 만들었으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고, 다시 등산로로 되돌아가는 일도 없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인간에게 혀를 찼는데, 막상 전망대가 있는 암봉 아래에 도착해 보니, 갑판 계단을 만들기에는 좀 높아 보인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목책을 넘어 암벽을 기어 내려가, 능선으로 갈지 잠깐 고민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걸 자신을 자찬했다. 바위 전망대를 떠나, 2분가량 가자 등산로 아래도 또 전망대다. 그런데, 전망대 앞에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당연히 나무가 조망을 방해할 거라는 걸 알지만, 세금을 들여 저기에 전망대를 만든 인간의 밝은 이재를 확인하기 위해 내려가, 보이는 걸 기록으로 남겼다.
세금을 내 돈처럼 쓰는 사람에게 감탄하며, 전망대에서 등산로로 다시 올라와, 3분가량 가자, 이제는 쓰지 않는 억새가 우거진 헬기장이다. 그럼 더는 올라갈 봉우리가 없다는 뜻인데, 대진대에 관한 정보는 아직도 다. 그리고 헬기장에서 6분을 더 가니, 삼거리로 직진은 오지재, 오른쪽은 예지원에서 내려와 오지재를 넘는 임도다. 고로 임도로 가면 편하게 갈 수 있으나, 목표가 오지재가 아니라, 계속 능선으로 오지재로 향했다. 그렇게 임도 삼거리에서 100m 정도 가자, 다시 이정표다. 그리고 그 아래에 사격장 경고문이다. 물론 그 뒤로 철조망도 있다. 그런데, 이정표 위치에서 내려가야 대진대다! 아주 당연히 철조망 뒤로 인적이 있다. 해서 경고를 무시하고 내려갈지 잠깐 고민하다가, 요즘은 당나라보다 더한 군대지만, 그 지시에 따르기로 하고 등산로로 계속 가자, 왜 있는지 모를 쉼터다! 역시 세금은 좋다!
쉼터에서 150m가량 가니, 사거리다. 왼쪽은 대진대, 오른쪽은 임도, 직진은 당연히 오지재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보는 대진대 이정표나, 다른 지시와는 달리 거리에 관한 정보가 없다. 해서 등산 앱으로 고로를 확인했다. 600m 정도, 날머리와 표고 차가 500m가 넘는다. 비록 등산로 표기는 없으나, 지도상으로 대진대가 멀지 않으니, 급경사라는 얘기다. 역시 본격적인 하산이라 시작부터 낙엽 쌓인 너덜 급경사다. 그 급경사를 10분가량 내려오자, 조금은 완만한 흙길로 바뀌고 곳곳에 벌목한 흔적이 있다. 그런데, 엄청나게 배가 고프다. 원래 두 끼 정도 굶어도 허기진 걸 크게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었는데, 최근에는 점심으로 김밥이나 컵라면 먹고 조금 지나면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밥도 많이 먹어야 해, 수시로 배가 고픈가? 과거라면 무시하고 내려갔으나, 먹을 게 있는데, 피할 이유가 없어, 배낭 벨트 주머니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먹으며 하산했다.
뜨거운 차로 입가심하고 내려가다가, 삼거리로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다. 누가 봐도 등산로는 직진이다. 그런데 왼쪽으로 리본이 보인다. 그리고 판자로 주변을 둘러 담을 만든 흔적이 있어, 좌회전했으나, 10여 미터를 가자, 길이 사라졌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길을 만들며 가겠지만, 등산로로 돌아가는 게 체력 낭비를 막을 수 있어, 가던 길을 되돌렸다. 길목 나무 앞에 제단이다. 서낭? 제단 뒤의 나무를 올려다봤다. 서낭이다. 그리고 제단에 무언가 음각된 게 보여 읽어봤다. '山神祭壇'으로 ‘(陰曆 2010年 9月 9日)’에 설치했단다. 설치 주체에 관한 정보는 없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등산로로 돌아가 대학으로 가다가, 작은 계곡을 건널 때는 관악산 계곡에서 삼겹살 굽던 게 떠올랐다. 여기 청춘들도 그렇게 하겠지?
마치 포장도로처럼 보이는 너럭바위를 지나자, 아래로 캠퍼스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길목에 세 청춘이 서성이다가 나를 보자, 정상까지 시간을 묻는다. 해서, 세 시간 정도 걸린다고 답해줬다. 그러자 놀라며, 어두워서 하산하겠다는 둥, 자기들끼리 떠든다. 분위기로 봐서,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과 헤어져 캠퍼스에 도착해 사실상 산행을 종료하며 시계를 보고,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현재 시각 3시 24분으로 목표 3시 30분보다 6분 빠르지만, 2시경 정상에 있었으니, 여기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고로 저 건장한 청춘이라면, 늦어도 2시간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3
등산로 날머리가 대진대 총장 공관 갈림길이라, 기념으로 공관 대문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학교 내부 도로로 교문을 향해 갔다. 그러다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3100번 좌석버스를 보고 놀랐는데, 뒤에서도 버스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62번 버스다. 응? 산에서 보기에 버스가 다닐 정도의 캠퍼스가 아니던데? 그리고 총장 공관 갈림길에 있는 학교 안내도를 봐도 그 정도 규모는 아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려가는 이번에는 교내 순환버스다! 엄청나게 헷갈린다. 뭐, 내가 상관할 건 아니고, 캠퍼스를 구경하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내려가, 3시 38분 어디선가 많이 본, 거대 사찰의 일주문 형식의 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분명 대진대는 첫 방문인데, 정문이 눈에 익다. 어디서 봤을까? 버스 타고 지나가며 봤나? 그런데, 학교로 들어갈 수는 있어도, 버스든 뭐든 차량이 학교 앞을 가로지를 수 있는 도로가 아니다.
갑자기 미궁에 빠진 기분이다. 어쨌든 지금은 주변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든가, 아니면 일찍 귀가해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다. 해서 4차선 도로로 내려가며, 보니, 교차로다. 그런데, 오전에 통과한 교차로와는 주변 환경과 오가는 교통량도 다르다. 그럼, 오전에 본 교차로는 어디? 그걸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교통 앱을 기동했다. 여기서 1km를 더 가야 한다. 정문에서는 1.7km! 이런 식으로 속은 게 서울대입구역이 처음이라, 그럼,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정문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 확인했다. 대진대 정문과 같은 1.7km다! 학교 내로 버스가 다닐 만하다. 물론 무료 셔틀도! 그럼 두 번째 교차로에서 정문까지 4차로는 대진대 진입로라는 얘기? 엄청난 학교다! 어쨌든 두 번째 교차로로 향하는 도로 좌우에 가끔 식당도 보이나, 혼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영업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배를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도로로 내려가는데, 종아리가 저려온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이다. 당이 떨어진 건가? 아픈 다리는 끌고 먹을 걸 향해 가는데, 저 아래로 위에서 본 것과 동일한 일주문이 보인다. 사찰의 구조로 보면, 저게 일주문이고 위에 건 천왕문?! 어쨌든 그걸 보는 순간 어디서 혼란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동일한 문이 두 개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아래의 문을 봤다. 하지만, 정확히 하기 위해 문을 통과하자마자, 고개들 들어 문의 현판을 봤다. 역시! 위와 같은 '대진대학교'다! 정문이 두 개나 있는 대단한 학교다. 여기까지 오며 분위기로 보아하니, 종교재단 학교법인인데, 신자를 대상으로 한 장사가 괜찮나? 그러니, 강남 환승 센터에서 하루 15편의 좌석버스도 운행하는 거고! 어쨌든 무료 셔틀을 타고 여기까지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지난 종자산행 때와 오전에 버스를 타고 지날 때 주변 식당을 자세히 관찰한 후라 당기는 메뉴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혹시나 도로변이 아닌, 골목에 맛집이 있을지 몰라, 주변을 뒤졌다. 없다! 여기서 배를 채우는 건 포기하고, 추위를 피해 간이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가 자리 잡고 앉자마자 138번 버스가 도착해, 서둘러 짐을 들고 차에 탔다. 그리고 오전에 역시 138번 버스를 탔던 의정부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정류장에 4시 44분경 내렸다. 정류장 실시간 운행 정보에 의하면 360이나, 34나 '차고지'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여전히 차고지라, 버스 번호별 운행 안내에서 배차 간격을 확인했다. 360번은 25분, 34번은 12분이다. 360번은 정확한 시간은 아니나 배차간격이 크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나, 34번은 12분에 불과하다는 것에 놀라며, 차를 기다렸는데, 여전히 차고지다.
차라리 지난 종자산처럼 여기서 저녁을 먹을까, 주변을 둘러봤으나, 식당 자체가 없다. 지난번 저녁을 먹은 유일한 식당인 숯불구이 집은 다시 갈 생각이 없고. 해서 이왕 기다린 거 계속 기다리자, 5시 11분 34번 버스가 ‘차고지’에서 ‘3분’으로 변했다. 그리고 5시 13분경 34번이 도착해 차에 타고 집으로 향하며, 갈아타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앱으로 확인했다. 29분 47초가 걸렸다. 13초만 더 지났으면 환승 혜택을 받지 못할 뻔했다. 아니, 34번은 배차 간격이 12분이라며, 그럼, 최소 두 대는 왔어야 할 시간이다. 이런 사태에 발광하지 않고 지나칠 인간이 아니라, 어디다 발광해야 하나 찾았다.
그러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운행 안내에 명기하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휴일은 배차 간격이 다르다. 그래서? 그럼, 앞으로는 평일에 근교 산을 다니기로 했다. 어쨌든 6시 21분 동명여고 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간 후, 깨끗이 씻은 후 마누라가 준비한 돼지와 시금칫국으로 배를 채웠다. 역시 집밥이 최고다! 당연히, 30도 빨갱이 온더록스, 하산주로 왕방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왕산사를 버린, 능선 종주인 '(포천시청 앞 버스정류장 →) 제일교회 옆 → 포천성당 갈림길 → 체력단련장 → 쉼터(점심) → 무럭고개 약수터 갈림길 → 임도 사거리 → 무럭고개 갈림길 → 깊이울 갈림길 → 호병골(왕산사 갈림길) → 팔각정 → 왕방산 → 팔각정 → 오지재 능선 → 1 전망대 → 2 전망대 → 임도 갈림길 → 대진대 사거리 → 산신제단 → 대진대 종창공관 (→ 대진대 입구)’의 15.7km(램블러) 코스를 5시간 17분 동안 달렸다. 이동 5시간 3분, 휴식 14분! 전체 거리 중 포천시청부터 유한아파트까지 0.8km와 대진대 날머리부터 버스 정류장까지의 2.4km 구간 등 총 3.2km는 접속구간이라, 종주 거리에서는 빼야 해, 실제 왕방산 종주는 램블러 기준 12.5km 정도다!
왕복 차비 5,600원으로 즐긴 근교 산행으로 잘 찾아보면 주변에 이런 산이 생각보다 많다!
하늘아파트 뒤 능선에서 시작해 오지재로 향하는 왕방산 종주 산행 코스 왼쪽으로 임진강을 향해 뻗어가는 한북정맥이 미세먼지에 가려 뿌옇게 보여 아쉬운 산행이다. 물론 오른쪽의 감악지맥 또한 다를 게 없다.
포천시민이 아니라면 두 번씩 찾을 산은 아니나, 한 번 달려볼 만한 종주 코스다. 혹시 미친 척하고 이번 산행에서 알게 된 '동두천 6산 종주' 코스인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 국사봉, 소요산, 마차산 종주에 나선다면, 다시 올라야 하지만[기사]! 그리고 문제의 '아조타아조아'는 산 이름에서 따온 게 아니라, '아, 좋다! 아, 좋아!'를 발음대로 쓴 거라는 게 내 결론이다.
왕방산은 아니나, 포천은 종자산 노송능선, 지장산 환 종주, 지장산~고대산 연계 산행 계획에 따라 앞으로도 최소 3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