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Away, I'd rather sail away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
its saddest sound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SIMON & GARFUNKEL이 부른 'el condor pasa' 다.
느려터진 달팽이보다는
빠르고 자유로운 작은 새가 되고 싶다.
못 박히는 신세보다는
차라리 못을 박는 망치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운명을 저당잡힌 채 사는 처지가 아니라
운명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이 노래는,
숱한 억압과 압제를 끊고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웅대한 '안데스'를 넘나드는 'CONDOR'를 바라보았다.
한없이 부럽고 위대해 보이는 존재였다.
잉카인들에게 'CONDOR'는 '자유'였고 '힘'이었다.
동시에 '평화'였고 '꿈'이었다.
모두가 떠나버린 '마추픽추'의 황량한 거리가 아니라
삼라만상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장대한 숲이자 거대한 산맥이고 싶었다.
이처럼 이 곡엔 '잉카후예들'의 간절한 비원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마음속에
'CONDOR'를 품고 있었다.
광활한 창공으로 마음껏 비상하는 힘찬 날갯짓을 모두가 희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50여 년간,
스페인의 핍박과 압제에 폭발한 페루의 민심은
1780년에 대규모 항쟁으로 분출되었다.
그 중심에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Jose Gabriel Condorcanqui, 1738-1781)가 있었다.
'농민혁명'을 주도한 '콘도르칸키'는 1년 후인 1781년 체포되어 처형당했지만
그는 안데스의 해방과 평화를 상징하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영웅이 죽으면 'CONDOR'가 된다고 했던가.
이 전설은 '잉카의 후예들'에겐 그야말로 싱앙같은 믿음이었다.
우리네 인생길이 제 아무리 팍팍하고 힘겨울지라도
종국엔 신의 축복이 정금같이 임할 것을 기도하고 소망하며 산다.
그런 소망은 '한국'이나 '안데스'나 동일한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자유와 소망이 깃든 힘찬 비상을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겠지.
저 안데스의 장쾌한 'CONDOR'처럼 말이다.
이 곡의 가사는 한 대목 한 대목이 절절한 기도문이었다.
특히 이 문장이 그랬다.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이 중에서도 'surely'가 자꾸만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스페인 정복자들' 앞에서 통한의 삶과 굴종의 인생을 살아왔던
저들의 비원이 이 한 단어에 오롯이 담겨 있음을
나는 가슴으로 느낀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큐티시간에 더 다양한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복자 '피사로'가 180명의 대원과 서른일곱 필의 말을 이끌고
'잉카제국'을 침략했고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했다.
대포와 총 앞에 잉카의 청동기 무기들은 그야말로 눈물 나는 수준이었다.
이것이 16세기의 준엄한 현실이었다.
힘없고 순수했던 잉카제국.
그 제국의 황제까지 교수형에 처했졌다.
1531년의 일이었다.
무혈입성으로 '쿠스코'도 단숨에 함락되었다.
그 이후로 480여 년이 지났지만
저들의 애환과 서글픈 역사는 지금도 묵직한 슬픔을 머금은 채
말없이 흐르고 있다.
3천 미터가 넘는 대협곡.
그 백척간두의 꼭대기에 서서
'안데스'의 장엄과 숭고를 담아내고 싶었던
잉카인들의 순박한 영혼을 'CONDOR'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마지막 기도문도 이렇게 끝이 난다.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오늘 새벽 큐티시간엔
이 음악 한 곡을 들으며 한참 동안 묵상했다.
이제 큐티노트를 덮는다.
뜨거운 열정과 감사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 보자.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빈다.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2017년 2월 23일,
목요일 아침에
음악과 큐티.
(덧붙임)
잉카와 안데스.
수만 년 간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
대항해시대 이후 500여 년의 역사와 문화는
환희보다는 서글픔과 질곡,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들의 비애와 애처로움은
소설책보다 더 가슴 먹먹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래서 였을까?
'안데스 뮤직'을 듣다보면
악기들의 선율과 서정도 가슴을 애잔하게 적신다.
'께나', '차랑고', '삼뽀냐', '또요', '착차스', '봄보' 등등.
현업에서 물러나면
'중남미'를 집중적으로 여행하면서
그들의 삶과 문화와 전통을
나의 손끝과 발끝으로 세세하게 체험해 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만의 버전으로
문화와 역사의 칼럼을 잔잔하게 엮어보고 싶다.
그런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https://youtu.be/rbTEUCcmvk4?si=Wgow_exwQzDBCSdx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