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셰리 케이건 지음 『죽음이란 무엇인가』
웰다잉-pro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아오며 천성적으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욕구가 많다 보니, 여러 분야의 정보를 접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웰다잉이라는 분야를 공부한지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웰다잉을 접한지는 7~8년 전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 죽음은 직면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단어여서 회피했었다. 그 후 내 인생의 전부를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을 하면서 받았던 상처와 상실로 번아웃이 왔을 때, 죽음은 어느덧 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웰다잉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웰다잉을 공부하며 죽음 관련 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 정작 이 책은 조금 늦게 만났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철학적 질문으로 마주하는 지적 용기와,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케이건의 통찰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번 기회를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철학으로서 죽음학
이 책은 저자가 예일대에서 수년간 진행해온 인기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것이다. 죽음의 본질, 영혼의 존재 여부, 죽음의 두려움, 자살과 안락사 등 민감한 주제를 정면에서 다루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이 강의는 오픈 코스웨어로도 공개되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이목을 끌었으며, 철학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대표적인 강의로 손꼽힌다. 저자는 윤리학과 도덕 철학 분야에서 오랜 시간 깊이 있는 연구와 강의를 이어온 학자이다. 그는 ‘죽음(Death)’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 존재와 삶의 가치를 탐구해왔다. 그는 전통적 종교나 신앙적 위안에 기대지 않고, 이성과 논리로 죽음을 사유하는 철학적 태도를 고수한다.
죽음의 정의와 본질: 존재의 종말로서의 죽음
저자는 ‘죽음’을 단순히 심장이 멈추거나 숨이 끊어지는 생물학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의식과 자아의 소멸, 즉 ‘나’라는 존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며, 이성적 사고와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 곧 죽음의 핵심이라 설명한다.
‘죽은 후에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경험도 할 수 없고, 따라서 ‘나쁜 일’을 겪을 수도 없다’는 일부 주장에 반박하며, 죽음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나쁘다고 주장한다.
영혼의 존재 여부: 유물론적 관점에서의 반박
저자는 ‘우리는 신체를 떠난 비물질적 실체인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과학적, 논리적 근거는 없다‘고 한다. 그는 뇌 손상 환자들의 기억 변화, 성격 변화 등을 근거로 들며, 자아와 의식이 뇌의 물리적 활동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만약 의식이 뇌의 기능이라면, 뇌가 멈추는 순간 모든 자아와 감각도 끝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후 세계, 윤회, 천국과 같은 개념도 근거 없다고 판단한다. 케이건은 종교적 위안보다 지적으로 정직한 태도, 즉 ‘우리는 죽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는 입장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죽음의 나쁨과 삶의 가치: 무엇이 박탈되는가
그는 죽음은 어떤 고통이 있어서 나쁜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기회와 가능성이 박탈되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20세에 죽는 것과 90세에 죽는 것은 삶의 길이가 다른 만큼, 경험할 수 있는 행복, 사랑, 의미 있는 활동의 기회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앞선 죽음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죽음이 나쁘지 않다면,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는가’라는 반론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죽음을 나쁘다고 인정해야 삶이 소중해진다는 점을 역설한다.
삶과 죽음의 윤리적 고려: 자살, 안락사, 생명 연장의 문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선택’의 권리가 있을 수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자살이나 안락사를 무조건 비난하지 않으며, 개인의 고통, 삶의 질, 자율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말기 암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그가 자신의 생을 마감할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그는 자살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국가나 사회가 생명을 보호할 의무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충돌을 정밀하게 논의한다. 생명 연장 역시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해친다면 오히려 존엄을 훼손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 회피보다 수용, 두려움보다 성찰
저자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에 반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을 마주하는 용기와 철학적 사고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고 본다. 죽음은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장치이며, 죽음을 인식할 때 우리는 더 주체적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그는 삶의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더 치열하게, 더 깊이 있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죽음을 직시하는 태도가 곧 좋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철학적 귀결이다.
웰다잉-epi
책의 마지막에서 케이건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움을 없애지는 않지만,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웰다잉 강의 시 내가 자주 인용하는 문장 중 하나다. 죽음을 준비한다고 해서 죽음이 덜 두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죽음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는 현재의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마무리를 하며 나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 정리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일 세상을 떠난다면, 오늘 누구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이 질문들은 모두 케이건의 철학과 닿아 있다. 죽음을 사유하는 것은 곧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책 익는 마을 안 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