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자연은
스무날 넘게 지속되는 장마가 정점을 지나 끝물에 이른 칠월 중순이다. 엊그제는 충청도와 경북 일대에 극한 강수대가 형성되어 여태 경험하지 못한 폭우가 쏟아져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뉴스를 접했다. 고령층이 사는 농촌 농경지 침수는 물론 산사태가 일어나고 도심 지하도가 침수되어 운행 차량의 탑승객 여럿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에 자연재해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도 연일 비가 내리고 있지만 주변에 알려진 피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농사짓는 분들이나 소규모로 텃밭에서 일용할 채소를 가꾸는 이들은 장맛비로 작물의 생육이 받는 지장은 상당하지 싶다. 이번의 폭우로 인해 시설원예 단지가 물에 잠기고 떠내려가 장마가 그치고 나면 신선 채소를 비롯해 농축산물의 가격은 가파르게 올라갈 테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근교 산행이나 강둑으로 산책을 나설 텐데 그러지 못해 갑갑하다. 지형지물이 익숙한 산기슭으로 들어 활엽수림을 누비며 삼림욕을 하고 영지버섯을 찾아볼 텐데 마음으로만 그려본다. 4대강 사업으로 자전거길이 뚫린 낙동강 강변으로 나가 거닐 만도 하다. 강둑에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자라 녹음을 드리워 땀을 식혀주었다.
역시 강수가 예보되어 바깥나들이 제약을 받는 칠월 중순 화요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 밖을 연신 내다보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날씨를 검색해 봤다. 우리 지역에 아침나절부터 내린다는 강수 표시와 함께 점심나절 이후도 우산이 그려져 있고 심야에 집중 호우 그래프가 뚜렷했다. 어제는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웃비가 내리지 않아 도심 공원을 거쳐 봉암갯벌까지 둘러오긴 했다.
주중 화요일은 음력을 유월 초하루라 아내는 도심 도량 법회로 나가 나는 집에서도 혼자만의 침잠의 세계로 들 수 있어 좋았다. 내가 머무는 집을 절로 생각하고 내 마음이 부처라 여기련다. 굳이 우산을 받쳐 쓰고 나다닐 행선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용지호수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 머물러도 전투 비상식량과 같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도 있어 무료하게 보낼 시간은 아니다.
장맛비 틈새 근교로 나가 봤던 자연 풍광을 마음속으로 다시 그려본다. 일전 비가 참아준 점심나절 관공서 거리에서 도청 정원을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었다. 인적이 뜸한 계곡에는 불어난 냇물이 바윗돌을 비집고 폭포수와 같이 흘렀다. 우곡사 갈림길을 앞두고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고 물봉선을 자생지를 둘러보고 이제 막 피는 꽃을 두어 송이 완상하고 냇물에 발을 담그고 나왔다.
그제는 새벽부터 비가 온다기에 온천장으로 나가 온천수에 몸을 담그려고 길을 나섰더니 웃비가 내리지 않아 마음이 바뀌어 외감리 달천계곡으로 들었다. 바위에서 솟는 지자기를 받고 계류가 뿜는 음이온과 마주하다 천주산 꼭뒤 함안 경계 고개로 올랐다. 응달 길섶에서 물봉선이 피우는 꽃을 봤고 고갯마루에서는 벌개미취가 봉오리를 맺어 핀 연보라 꽃송이는 물방울 젖는 채였다.
어제는 이른 아침 비가 참아주어 나선 산책에서 두대동 교육단지 올림픽공원을 거닐다 지렁이를 잡아먹는 두꺼비를 봤다. 소공원으로 꾸민 국화공원에서 벌개미취가 제철을 맞아 꽃을 피우긴 해도 빗줄기를 감당 못해 드러누운 채 꽃잎을 펼쳐 있었다. 인접한 창원수목원으로 올랐더니 음지식물원에는 비비추가 피운 꽃은 저무는 즈음이고 옥잠화는 아직 때가 일러 꽃을 보질 못했다.
창밖은 여전히 빗방울이 흩날린다. 오늘내일 비에 이어 날이 개었다가 주말에 막바지 비를 뿌리면 올해 장마는 막을 내릴 성싶다. 이번 장맛비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수해 현장으로 달려가 물심으로 지원과 봉사할 여건이 못 되어 심히 유감이다. 상처 입은 자연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복원력이 있더이다. 우리 인간사도 … 2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