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384장 (구 434장) / 창세기 43 : 8 - 15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8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43장 8절 – 15절 말씀입니다.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아멘!
70명의 대가족 야곱의 가정에 기근이 계속되자,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이 모두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야곱의 장남 르우벤과 넷째 아들 유다가 말합니다. "우리가 가도 양식을 사기는커녕 시므온도 무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믿어준다고 그랬는데 안 데리고 가면 우리 모두가 간첩으로 몰려 죽게 될 것입니다." - 이에 대해 야곱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 첫째로, 야곱은 부정합니다.(창 42:38) 식량을 사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장남 르우벤이 베냐민을 데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야곱은 절대로 안 된다고 못 박습니다. “베냐민은 절대 못 보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돼! 만약 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지옥으로 내려가게 함과 같다.” 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지조는 덕이지만 고집은 악이다.” - 후회하지 않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먹을 양식이 떨어진 줄을 뻔히 알면서 굳이 베냐민을 안 보냅니다. 한 가정의 일로 보면 지나친 편애요. 편애로 일그러진 가장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지독한 고집입니다.
* 둘째로, 야곱은 원망합니다.(창 43:6) 어제 본 말씀 6절에서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그러자 유다가 답변을 합니다.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이렇게 무슨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가정이나 일터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을 모으기보다는 서로 네 탓이라고 책임 떠넘기고, 정죄하기에 바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렇습니다.
이미 끝난 일인데 이제 말해봐야 어쩌자는 겁니까? 형들이 동생 얘기를 안했다고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된 동생 요셉을 모르겠어요?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므로 야곱의 책망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원망과 책임전가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이나 직장이나, 특히 교회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늘 다른 사람을 원망하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하와가 뱀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책임져야할 난처한 문제를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다고 해결 안 됩니다.
이에 유다가 나섭니다. 우리가 지금 서로에게 책임이나 떠넘기고, 원망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러면서 멋진 말을 합니다. “베냐민을 안보내시면 우리가 다 굶어 죽습니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손주들도, 그리고 그렇게 아끼시는 베냐민도 굶어 죽습니다. 그런데 어찌 한사람 때문에 우리 모두를 굶겨 죽이시려하십니까?” 그러면서 유다가 결단합니다.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 온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야곱이 고민하다가 베냐민을 보내게 됩니다.
* 이 이야기는 예언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시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예언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죽기 전에 12아들에게 축복하면서 유다에게는 이런 축복을 합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아멘! - 이 말씀에서 홀은 다윗 왕권을 의미하고, 실로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요셉이나 베냐민에게 주지 않고 유다에게 준 것은 바로 누구에게 탓을 돌리고, 원망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유다의 책임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 셋째로, 야곱은 타협합니다. 야곱은 전에 얍복강 가에서 형 에서에게 선물을 보낸 것처럼 이번에도 애굽 총독에게 선물을 보냅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배로 돈을 가지고 가서 전에 돌아온 돈을 다시 갖다 주고, 새로 곡식을 사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게 보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타협입니다.
* 넷째로, 야곱은 수용합니다. 야곱의 신앙의 절정은 바로 이 14절에서 말한 대로 절대 수용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원래 야곱은 집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손해보고는 못사는 성격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쌍둥이 형의 발 뒷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장자가 되고 싶은 집착이 평생을 갑니다. 그래서 장자에게 축복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얍복강 가에서도 밤새 씨름을 하다가 날이 새어갈 때도 내게 축복하기 전에는 갈수 없다고 붙잡고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내 라헬에 대해서도 집착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라헬에게 반해서 7년간을 머슴살이하며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되었어요? 첫날밤에 라헬인줄 알았더니 그 언니 레아였어요. 그러자 포기하지 않고 7년 더 일할 것을 약속하며 라헬마저 아내로 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내가 요셉을 낳고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그러자 라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그가 낳은 아들 요셉에게 라헬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옮겨 붇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없어지자 라헬의 아들 중 단 하나 남은 베냐민에게 모든 애정을 쏟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없으면 나도 죽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편협한 집착입니까? 그러던 그가 움켜쥔 손을 처음으로 놓습니다. 그의 평생 처음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14절에서 말한 대로 절대 수용하는 신앙을 보입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다 비우고 버립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편협한 집착이 있지 않습니까? 아들딸에게 대한 집착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는 너 없인 못산다!” 남편과 아내에게 “당신 없으면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 이런 집착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노름하는 사람이 빚을 많이 지고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본전에 집착하다가 더 깊이 빠져 듭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전전긍긍하며 하나라도 더 움켜쥐려고 애쓰며 살던 우리가 오늘 우리 손을 놓아야 합니다. 아직도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빼앗길까봐 계속 전전긍긍하며 사는 겁니다. 평생 포기하지 못하고 있던 것, 즉 우리의 베냐민을 포기하면서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야 말로 진정한 평안을 우리가 소유하게 됩니다.
평생 포기하지 못하고 있던 야곱이 베냐민을 포기하면서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는 고백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맡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께 온전히 맡깁니다. 내 욕심대로 한평생 살아왔던 야곱, 집착을 끊지 못했던 야곱, 손에 쥔 것을 놓을 줄 몰랐던 야곱이 드디어 자기 욕심을 꺾고, 자기 의지를 꺾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에 인생을 맡기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삶!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내가 다 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 나 자신의 머리나 능력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면 나는 이깁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잘 됩니다.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맡김으로, 능력 있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