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호 교수와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 문화 여행-아시아편
최기호 교수와 어원을 찾아 떠나는 세계 문화여행 – 아시아편 최기호, 박문사, 2009 [#국어학입문, #방언론]
p.2 성 아우구티누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p.14 여기에 공통으로 ‘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어원적 뿌리는 몽골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참’은 원래 몽골어 ‘잠(jam)’에서 유래한 말로서 우리말로는 ‘길(道)’이라는 뜻이다. 원나라에서는 이것을 한문으로 ‘참(站)’이라고 표기했으며, 지금도 중국에서 기차역을 ‘참站’이라고 쓰고 있다.
p.16 이 역을 관장하는 사람을 ‘잠치’라고 불렀는데 ‘잠치’는 ‘길을 관장하는 사람 즉, 길안내자’라는 의미의 몽골어이다...이 때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 약 40km를 ‘한참’이라고 하였다.
p.21 몽골 요리 ‘슐렁’은 ‘고기를 끓이고 밀가루를 넣어 만든 음식’인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몽학삼서 중의 하나인 몽골어 사진 <몽어유해>에는 ‘고기를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골어로 ‘슈루’라고 기록하였다...또 <방언집석>에는 이 ‘공탕’을 중국어로는 ‘콩탕’이라고 하고, 만주어로는 ‘실러’, 몽골어로는 ‘슐루’라고 되어 있다. 현대 몽골어 ‘슐렁(ШθЛθΗ)’ 은 문헌에는 ‘슈루’ ‘슐루’ 등으로 표기되었고, 만주어로는 ‘실러’ ‘실레’로 표기되어 이들이 똑같은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25 소변이나 대변이 보고 싶으면 몽골에서는 ‘말보고 싶다 [모리하라레]’라고 말한다. 몽골에서 대변을 ‘큰말’이라고 하고, 소변을 ‘작은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큰말’과 ‘작은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그대로 썼고 국어사전에도 올라간 것이다.[아직 미확인]...그런데 우리 국어에 ‘오줌 마렵다’라는 말이 있다. 이 때 ‘마렵다’라는 말도 몽골어의 ‘말보고 싶다’라는 어휘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마렵다’의 옛말을 찾아보면 ‘ᄆᆞᄅᆞᆸ다’이다. 이때 이 어휘의 어근은 ‘ᄆᆞᆯ-’인데 이것이 오늘날 표준말로는 ‘마렵다’로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남부 지방 사투리에서는 아직도 ‘마랍다’로 쓰고 있다.
한 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른에게 “목 마려우실 텐데 시원한 물 좀 드시죠?”라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목이 마려우시지요?’나 ‘목 마렵지?’라는 말도 흔히 듣는다. 이것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틀린 말이다. ‘오줌은 마려운 것’이라고 말해야 하고 ‘목은 마르다.’라고 말해야 한다. ‘목이 타다’라든지 ‘목이 마르다’라는 말을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p.31 이 같은 기록에 나타난 ‘오랑캐’란 말은 본래 여진의 한 종족이름으로 우디허 족을 말한다.그들이 살던 곳은 흑룡강 일대의 깊은 삼림지대였고 그들은 수렵생활을 하였다.
p.35 중요한 것은 시름을 지칭하는 말로서 몽골어 ‘씨룸(Ccирɵм)’이라는 말은 한국어의 ‘씨름’과 어원이 같으며 일본어 ‘스모(相撲)’라는 단어와 발음도 같고 뜻도 같아서 이 말들이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두를 지칭하는 몽골어 ‘고탈(Гутал)’도 한국어로는 ‘구두’가 되고 일본어로는 ‘구스’가 되어서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p.42 옛날에 고시(高失)씨가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방법과 함께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들에서 농사짓고 산에서 나물을 캐던 사람들이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 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음식 등을 먹을 때 ‘고시네’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고시네’라는 말에서 ‘고시레’로 변하고 지금의 ‘고수레’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p.46 윤관이 “서로가 가져온 술을 상대가 가져온 술이라 생각하고 마시자”고 말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등걸나무(査)에 걸터앉아 서로 머리를 숙이며(頓) ‘한잔 하시오’하면서 자작하여 술을 마셨다. 여기서 유래하여 서로 자녀를 결혼시키는 것을 사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서로 등걸나무에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는 한자어 ‘사돈(査頓)’을 윤관과 연관시켜서 지여낸 얘기로 언어유희라고 생각한다.
사돈의 어원은 몽골어와 만주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말에서 사돈은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그러나 몽골어 ‘사돈(хаДаm)’은 일가친척을 일컫는 말이다. 몽골에서는 우리나라를 ‘사돈의 나라’라고 부른다. 이것은 칭기즈칸 시대에 몽골이 고려와 형제의 나라로 맺어진 것에서 유래한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돈의 어원은 한자어가 아니고 몽골어를 한자로 사돈(査頓)이라고 전사한 것이다. 몽골어에서 사돈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p.54 지금도 몽골에서는 조랑말을 몽골어로는 조로ᄆᆞᆯ(жороо морь)이라고 하고 얼룩말을 알락ᄆᆞᆯ(алаг мор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몽골어가 들어와서 조랑말이 되었고 얼룩말이 된 셈이다.
p.56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를 끌고 다닌다.’고 한다. ‘그 친구 돈 좀 벌었는지 그랜저를 끌고 왔더라.’고 말한다. 왜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drive)’ 다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를 끌고(pull) 다닐까?
p.59 한편 이런 일화가 있다. 미국타임지 기자가 몽골 고비사막에 갔다가 그만 자동차가 길가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멀리 있는 몽골의 게르를 찾아가서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몽골인은 30분 후에 자동차를 꺼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드라마 대장금이 30 분 이후에나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 기자도 한류의 열풍이 어떠한지를 실감하였다고 글을 쓰고 있다.
이 대장금에는 수라, 수라상과 수라간, 수라상궁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라’라는 말은 몽골어로서 음식을 뜻하는 ‘슐라’에서 온 말이다.
p.64 ‘아리랑’의 어원에 관한 여러 가설이 있다. 이병도의 낙랑(樂浪)설, 양주동의 아리령설과 이병주의 알라고개(慈悲嶺)설, 장사훈의 구음설, 이규태의 아린설, 정익섭의 얄리얄리설, 김지연의 알영설(閼英說) 외에 아랑설(阿娘說), 아이농(我耳聾)설, 아난리(我難離)설, 아리랑(我離娘)설, 아랑위(兒郞偉)설, 알설, 메아리설, 아라리설 등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신용하 교수가 다음과 같은 어원설을 내놓아 주목을 받고 있다. 아리랑에서 ‘아리랑’의 ‘아리’의 첫째 뜻은 ‘고운’의 뜻이고, ‘랑’의 뜻은 ‘님’이다.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 ‘고운’ ‘곱다’ ‘아름다운’ ‘아름답다’의 뜻으로 쓰인 흔적은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몽골어에서 ‘아리’는 아직도 ‘고운’ ‘곱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리랑’의 첫째 뜻은 ‘고운님’이다. ‘아리’의 둘째 뜻은 ‘그리운’의 뜻을 담고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다’의 동사는 사랑에 빠져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이것이 형용사가 되면 ‘아리’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이 된다. 이때의 ‘아리랑’은 ‘(사무치게)그리운 님’의 뜻이다.
‘쓰리랑’은 ‘아리랑’의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이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인 것이다. ‘랑’은 한자로서 삼국시대에는 ‘낭(郞)’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했다.
아리랑은 몽골의 알랑고아 여신과 ‘곱다/고와’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여 아리랑의 민요로 불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쓰리랑’은 민요에서 흔히 쓰이는 기법으로 ‘아리랑’의 대응구로서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p.78 토박이말 ‘술’의 본래 우리 옛말은 ‘수블’이었다 <조선관역어(朝鮮館驛語)>에는 ‘수본(數本)으로 되어 있다. <석보상절>에는 ‘수을’로 기록되어 있고 <두시언해>에는 ‘루 위에서 수울 먹고’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토박이말 ‘술’은 ‘수블-수울-술’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p.89 몽골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기황후를 비롯한 수십만 명의 많은 고려 여인이 몽골 수도 베이징에서 들어가 살았기에 자연히 ‘인두’라는 고려 언어가 몽골어와 중국어에 차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92 더욱이 몽골어 옛말에서는 바른쪽을 ‘오른죽’이라고 말하였고, 왼쪽이라는 말도 내몽골자치주 언어에서는 ‘운죽’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한국어 전라도 방언의 ‘운쭉’과도 일치하고 있다. 이때 몽골어와 한국어가 잘 차용되지 않는 ‘으로’라는 토씨까지 일치하는 것은 두 언어가 계통적으로 같았다는 가설을 증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p.93 몽골어에서 гэрхун(게르훈)은 집(гэр)+ 사람(хун)의 구조를 가진 말이다. 우리말의 ‘집+사람’의 낱말짜임새와 일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법구조는 몽골어와 한국어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낱말의 구조뿐만 아니라 의식구조가 같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몽골에서나 한국에서 ‘집사람’이나 ‘게르훈’이라고 하는 것은 집의 일이나 생활이 여성을 중심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p.105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는 ‘보얀테무르’라는 몽골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성계의 선조는 몽골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독립된 군벌로 남게 되었다가 다시 고려로 귀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태조 이성계의 선조는 몽골의 다루가치로 100여 년을 살았던 셈이 된다. 따라서 고려의 풍속이나 말보다는 몽골의 풍속과 언어로 오랜 세월동안 살았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p.130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본뜻은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가 된다.
p.161 ‘파고다’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로서 ‘신에 귀의한다’는 뜻을 가진 ‘파가바티(bhagavati)’ 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이 포르투갈어로 차용되어 파고드(pagode)가 되었고, 다시 영어로 차용되어 파고다(pagoda)가 되었다가 한국어로 차용되어 쓰인 것이다. 그래서 파고다는 ‘사찰의 탑’을 뜻하는 말이다.
p.170 불교 이상인 깨달음의 지혜 또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한 수도 과정을 뜻하는 ‘보리(菩提)’의 본래 발음은 산스크리트어의 ‘보디(Bodhi)’이다. 이것을 중국인들이 한자로 음역한 것이 ‘보제(菩提)’이다. 그러나 이 한자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보제’라고 읽을 때에 문제가 생겼다. ‘보제’라고 하면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우리말과 발음이 비슷하다. 중들이 수도하는 데 쓸데없는 연상 작용을 일으켜 방해가 되므로 ‘보리’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p.186 ‘단말마(斷末魔)’한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단말마’는 산스크리트어 ‘마르만(marman)’의 발음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말마는 관절이나 육체의 치명적 부분, 즉 급소를 의미한다...이 말마를 자르면 죽음에 이른다고 하며, 말마를 얻어맞으면 발광한다고도 한다.
p.190 ‘제(祭)’는 ‘죽은 이를 위해 혼백이나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서 정성을 들이는 의식’이고 ‘재(齋)는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삼가며 맑게 하기 위한 의식’이다. 보통사람들이 ‘재(齋)’와 ‘제(祭)’의 발음도 비슷하고, 의식형태도 비슷해서 제사지내는 것으로 착각하여 사십구제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재(齋)’는 불교에서 유래한 특수의식이다. ‘재(齋)’의 어원은 산스크리트 어 ‘우파바사타(upavasatha)’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본래의 의미는 ‘승려의 식사’이다. 이것이 승려에게 식사를 공양하는 의식, 또는 그와 같은 의식을 중심으로 한 법회를 뜻하는 것으로 뜻이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재(齋)’는 ‘재계(齋戒)’의 준말로 ‘부정을 멀리하고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재(齋)’에는 ‘사십구재’, ‘우란분재(盂蘭盆齋)’, ‘영산재(靈山齋)’, ‘예수재(豫修齋)’ 등이 있다.
p.242 그런데 지금 울릉도의 나이 드신 어른들은 독도를 ‘독섬’이라고 부른다. 즉 ‘돌섬’이라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돌의 경상도, 전라도 방언은 ‘독(石)’으로 되어 있고, 중세국어에는 ‘돍’이었다. ‘도(島)’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셤’으로 표기하였다, 그래서 ‘독도’는 돍셤 > 돍섬 >독섬으로 음운 변화를 하였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엉뚱하게 ‘독도(獨島)’가 되었다.
p.256 깍쟁이는 깍정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깍정이는 원래 서울 청계천과 마포 등지의 조산(造山)에서 기거하며 구걸을 하거나, 무덤을 옮겨 장사지낼 때 방상시(方相氏: 장례 행사에서 무덤 속에 있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사람)같은 행동을 하던 무뢰배(無賴輩)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그 뜻이 축소되어 이기적이고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p.260 ‘올케’의 어원은 ‘오라비의 겨집’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성 비칭으로 ‘오라비의 계집’이라고 설명하였다. 원래 올케의 어원은 <두시언해>등에서 나타나는 오라비(오빠)에 겨집(아내)이 합쳐져서 ‘오랍겨집’이 되었고, 그것이 축약되어 ‘올케(올겨집)’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올케는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보통의 말이지 여성 비칭이 전혀 아니다.
p.262 서양은 수렵사회이고 수평사회이며 부부중심사회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서양은 직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며 수직사회이고 부모자녀 중심사회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한국은 간접호칭이 발달하였다.
p.278 (미니스커트는 1960년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퀸트가 고안했다. 그녀는 의상 연구에서 여러 차례 실패하였다. 그래서 여성미의 본질을 찾아서 연구한 결과 여성미는 얼굴, 가슴, 엉덩이, 다리라고 결론짓고 이를 부각시키는 아찔한 짧은 미니스커트를 만들었다.)
p.280 <훈몽자회>에는 ‘고마 첩(妾)’이라는 글자 해석이 있다. 고마 즉 첩은 작은 부인이다. 여기에서 ‘작다’라는 의미가 도출되어 ‘키 작은 사람’ 즉 난쟁이가 되었다. 여기에서 다시 ‘키가 작은 어린아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고마’가 경음화 되어 ‘꼬마’가 된 것이다. ‘꼬마’는 그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라는 뜻으로 지금도 쓰이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꼬마’라고 지칭한 역사는 그리 길지가 않다. 꼬마라는 낱말은 문세영의 <조선어사전>과 1947년에 나온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에도 ‘어린이’라는 의미의 낱말이 없다. 그러니까 꼬마라는 말은 해방 이후에 많이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경제학지인 마브리는 1971년 뉴욕의 경제 상황과 치마의 길이와 상관관계를 연구하면서 스커트의 길이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는 ‘치마길이 이론’을 주장했다. 경기가 호황이던 60년대에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입었고, 오일 쇼크 등으로 불황이었던 70년대에는 긴 치마를 입었다.)
p.282 ‘보름’은 매월 15일을 이르는 말인데 그 어원은 ‘밝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려가요 <동동>에서는 “이월 보롬에 아으 높이 현 등불 다호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보름은 ‘밝다’는 뜻의 이형태 ‘보로다’의 어간에 명사형 ‘보롬’이 되었고 여기에서 유래하여 지금의 ‘보름’이 된 것이다.
p.284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쓴 ‘돌돈’은 그 어느 민족들보다도 먼저 만들어 쓴 것으로 보인다.[금시초문]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유적들 가운데 여러 가지 형태의 ‘돌돈’ 유물들도 있는데 그것은 일찍부터 돈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 발굴된 북한의 삼석구역의 표대유적에서도 많은 ‘돌돈’ 유물들이 나왔다.
p.288 옛날에 ‘쪽’이라는 말은 얼굴을 세는 단위로 쓰였다. 책 페이지를 세는 말에서 일면(一面), 이면(二面)이라고 썼는데 요즘은 ‘한 쪽’, ‘두 쪽’으로 세고 있는 데서 면과 쪽을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때의 ‘쪽’이라는 말은 얼굴과 상통하는 말이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단한 거물들이 다 모인 것이다’라는 말에서 ‘면’은 사람의 얼굴을 세는 단위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얼굴을 세는 단위인 ‘쪽’을 물건을 세는 단위로 바꾸고 비하하여 ‘쪽팔리다’라는 형태의 속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