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퇴임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안 대법관이고 왼쪽에서 둘째 뒷모습이 민 대법관이다. 2017년 9월 김명수 취임 후 처음으로 문재인에게 임명을 제청한 두 대법관은 내년 1월 1일 자로 퇴임한다.
요즘 법조계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했지만 법원이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조 대법원장이 김명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법원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8일 임명된 뒤 지금까지 3주가 지나도록 법원행정처장과 비서실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과거 대법원장들은 취임 직후 법원 내 핵심 보직인 두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게 보통이었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을 총괄하는 자리로 ‘대법원장의 오른팔’로 불린다.
그런데 김명수가 임명한 김상환 대법관이 31개월째 행정처장을 맡고 있다. 또 대법원장 명을 받아 기밀 업무를 처리하는 비서실장인 김상우 판사도 김명수에게 임명장을 받았다.
이와 함께 법원행정처 차장, 기획조정실장, 심의관 등에도 김명수가 임명한 사람들이 그대로 앉아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이 넓은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고립돼 있는 느낌”이라며 “‘김명수 법원’ 출신 행정처 간부들이 ‘조희대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1~2월로 예정된 전국 법원장·법관 정기 인사에 김상환 행정처장이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처장은 지난 21일 법원 내 공지를 통해 “남은 일정이 촉박해 내년 초 인사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시행하지 않겠다”면서도 “지방법원은 지방법원 부장 중에서 보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실력과 경험이 풍부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은 내년에도 지방법원장에 임명될 수 없게 됐다.
이후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이 김영수가 남긴 문제 있는 인사 시스템을 그대로 두려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판사들 사이에서 ‘이상하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법원장 인사뿐 아니라 일선 판사들 인사 초안까지 김상환 처장이 짜게 될 텐데 이렇게 되면 법원 내 ‘김명수 세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며 김명수 밑에서 ‘코드 인사’를 실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기 공수처장 추천위 활동도 ‘뒷말’
김상환 행정처장의 차기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활동에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 위원회는 법원행정처장, 법무장관, 대한변협회장 등 3명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여기에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을 보태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위원회가 위원 5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2명을 후보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가운데 1명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한다. 그런데 위원회가 지난 28일까지 5차례 회의를 했지만 후보자 2명을 선정하지 못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여당 성향의 특정 후보의 경우, 김 처장이 계속 반대하면서 ‘위원 5명’ 동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면서 “그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후보군에 추가됐다”고 말했다.
후보군 중 김 처장이 계속 반대했던 인사는 같은 판사 출신인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위원장은 판사 시절 ‘김명수 법원’의 정치 편향 등을 강하게 비판하다가 지난 2021년 2월 퇴직했다. 다른 법조인은 “김 처장이 김명수를 의식해 공수처장 후보로 김 부위원장을 반대한다면 판사로서 균형 감각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언론사에 “추천위 규정상 내부 논의 상황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김상환 행정처장이 유임된다면 내년 1월 차기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민변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도 최선임 대법관으로 추천위 당연직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