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라케시 갠그월 US에어웨이스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사임을 며칠 앞두고 "항공사는
9ㆍ11테러로 인해 구조조정과 대규모 감원 정책 등 다운사이징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US에어웨이스는 갠그월 CEO를 포함한
최고경영진 3명에게 퇴직금으로 총 3500만달러를 지불했다. 직원 1만2000명을 해고하고 은퇴하는 파일럿들에게 총 5억65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US에어웨이스는 다운사이징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3년 결국 파산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과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비행기 4대 중 1대를 처분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결국 남은 3대로 4대와 동일한 비행 여정을 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비행 여정을 소화하려다 보니 기내식이나 신문, 물수건 등 서비스를 줄여 20분 내에 회항 준비를 마치고 비행 횟수를 늘려야만 했다. 이는
`저가항공`이란 사우스웨스트항공 경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위기를 겪었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9ㆍ11테러 이후에도 감원을 하지
않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창립자 허브 켈러허는 `주주보다 직원이 더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외쳤다. 이런 회사에 대해 직원들은 9ㆍ11테러가
발생한 해인 2001년 4분기 32시간 무급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US에어웨이스와 달리 1년 만에 안정을 되찾았다.
일반적으로 상장기업 CEO들은 사우스웨스트항공과 달리 "(고객이나 직원보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란 말을 자주
외친다. US에어웨이스처럼 기업들은 위기에 빠지면 감원이나 구조조정 등 다운사이징을 당연시한다. 과연 위대한 기업들은 연말마다 다음해 경영전략을
수려하게 잘 짜서 성공한 걸까. 아니면 사우스웨스트항공처럼 경영전략이 우연하게 자리 잡은 것일까. 식스시그마처럼 매번 유행하는 최신 경영기법들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저명한 경영학자 책을 사서 읽으면 회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을까.
프레이크 베르묄런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처럼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고정관념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이후 자기 생각과 유사한 연구를 진행한 동료 교수들 자료를
샅샅이 찾아냈다. 그 결과 경영의 세계에서 온갖 비이성적인 관행들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아냈다. 베르묄런 교수가 자기 생각과 다른 교수들
연구자료를 묶어 펴낸 책 `비즈니스의 거짓말(Business Exposed)`은 기존 기업경영 관행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베르묄런 교수는 "다운사이징은 기업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회사에 악영향을 준다", "스톡옵션은 CEO가 회사 자산을 갖고
도박판에 뛰어들라고 부추기는 것과 같다"며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존 경영의 고정관념을 깨는 책을 펴낸
계기는.
▶좌절감 때문이었다. 많은 경영학 도서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을 봤다. 그러나 이 책들이 주는 조언들에 확실한
근거나 입증이 없는 것이 많았다. 사람들이 이 책들에서 하는 조언처럼 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경영학 도서는 팔기 위한 상업물일 뿐
최고의 조언을 주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봤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경영서적으론 거의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란 책이 있다. 1982년 출간됐지만 여전히 잘 팔린다. 그러나 이 책은 학술적인 연구를 거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책의 추천사 때문에 이 책이 매우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들도 인정한다. 책에서 저자들은 매우 성공적인
기업들은 매우 강한 사내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내문화 강화를 위해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원인과 결과만을 두고 해석한 것이다.
사내문화를 강화하면 당연히 성공도 따라올 거란 식이다.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하고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평상시에 세계 각국 경영대학원들이 펴내는 논문들을 많이 읽는다. 이 중 현장 관리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사이트를 담고 있지만 그들에게 전달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이 때문에 책을 썼다.
-당신 책에서 다룬 고정관념
중 가장 관심이 뜨거웠던 것은.
▶기업 경영전략 계획 수립에 대한 것이다. 이미 기업에서 추진 중인 것을 요약한 걸 `전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는 전략이 아닌 단순한 정리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전략과 그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전략에는 수많은 우연과 기회가 개입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적 결정을 하는 게 실제로 힘들다. 그리고 ISO 9000이나
식스시그마처럼 유행처럼 등장하는 최신 경영기법이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등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도 사람들이 놀라움을 드러냈다. 기업 인력을
줄이는 다운사이징도 장기적으론 역효과를 낸다. 관리자들이 장기적인 결과를 내다보기란 힘들다.
-대부분 기업에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소린가.
▶ 정말이다. 대부분 기업에는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다. 확언컨대 기업 10곳 중 7곳은 전략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 전략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 것이야말로 `전략 부재`라는 증거다. 그러나 대부분 성공적인 기업엔 전략이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기업이 정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성공한 기업들이 사전에 훌륭한 전략을 짜는 것은 아니다. 운이란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 그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우연한 기회에 찾았고 이를 전략으로 실행하고 더 키울줄을 알았다. 인텔, 사우스웨스트항공, 월마트가
대표적이다.
-CEO에게 스톡옵션을 주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인가.
▶ 스톡옵션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디자인돼 있다. 현재 당신 회사 주식이 주당 100달러고 CEO가 1년 후
주당 110달러에 살 수 있는 스톡옵션 조건이 있다고 치자. 현재는 아무 효과가 없지만 1년 뒤 CEO가 주식 가치를 주당 150달러로 올리면
스톡옵션은 가치가 생긴다. 1년 뒤 110달러인 스톡옵션 권리를 내세워 150달러인 주식을 사면 주당 40달러를 남긴다. 반면 주식가치가 1년
후 주당 10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스톡옵션은 쓸모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CEO는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CEO가
카지노에 가서 회사 자산을 모두 건 뒤 룰렛을 돌리는 셈이다(게리 샌더스 라이스대 교수와 돈 햄브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미국 CEO
950명을 대상으로 스톡옵션과 그에 따른 위험 감수행동을 연구했다. 스톡옵션이 있는 CEO는 없는 CEO보다 2배 많은 R&D 투자금을
변동성이 더 높은 상품에 투자하는 성향을 보였다. 샤오밍 장 아메리카대 교수는 불법행위인 이익조작 365건을 조사한 결과 CEO가 스톡옵션으로
이득을 얻지 못했을 때 이익조작 등 회사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밝혀냈다).
나는 CEO들에게 스톡옵션이나
성과별 인센티브 지급에 반대한다. CEO야말로 그 어떤 직원보다도 더 고정급을 받아야 한다. 그들에 대한 성과 측정이 어려운 데다 인센티브
스톡옵션 등 성과급을 위해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하고 회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정급을 받는 CEO라도 평판 효과란 것이
존재한다. 본질적 동기부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정급이 `낮은 급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직원에겐 합당한 월급을 줘야 한다. 그러나
꼭 인센티브 형식일 필요는 없다.
-인력 감축, 구조조정 등 다운사이징 전략이 기업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 나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연구가 보여준다. 물론 일부 기업은 효과를 본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기업들은 다운사이징으로 그 어떤 효과도 얻지 못한다. 이는 팩트다. 조사에 따르면 다운사이징을 실시한 기업은 이직률이 예상치를 훨씬
웃돈다. 결국 잘린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10% 노동력을 감축하면 3년 뒤 15% 이직률로 돌아온다. 이
15%에는 회사에서 떠나보내선 안 되는 핵심 인력들도 포함된다. 동료가 잘리는 것은 직원들에게 그 어떤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다. 부작용이
생긴다. 물론 인력 감축으로도 자발적인 이직률을 낮춘 곳들도 있다. 이들은 인사 과정에서 형평성을 중시하거나 직원 고충을 잘 들어주는 제도가
있었다. 인력 감축이 무리한 처사가 아니었음을 직원들에게 잘 이해시킨 곳은 이직률이 치솟지 않았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가 기업 몰락 이유로 자주 꼽힌다. 그러나 당신은 비즈니스 환경이 절대 급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 나는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비즈니스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현
비즈니스 환경이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한다고 믿는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게리 맥나마라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20년에 걸쳐 5700여 기업
수익실적을 분석하고 1970년대 후반 이후 산업 문야에 대한 11만4191개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결과 급격한 변화를 찾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10~20년 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사람들은 잊는다. 지금이 더 급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이 자신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한다고 믿는다. 코닥을 보자. 코닥을 망하게 했다는 디지털카메라 기술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었다. 20년도 더 된
기술이었다. 해운업을 보자. 증기기관이 개발될 당시 증기선이 기존 범선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당시 그 어떤 해운업체도 증기선을 도입하지
않았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천천히 소개된다는 점을 뜻한다. 또한 기업이 아주 느린 변화에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ISO 9000, TQM(전사적 품질관리), 식스시스마 등 유행하는 경영기법에 회의적인 이유는.
▶ 품질경영
기업은 일본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 방법들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불완전한 모방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유행할 뿐 기업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원조를 따라 했다가 나쁜 모방본만 만드는 셈이다(메리 베너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마이크
투시먼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1980~1999년 ISO 9000을 도입한 사진ㆍ페인트 기업 115곳을 대상으로 혁신 패턴을 분석했다. ISO
9000을 채택한 기업은 탐험가 정신보다는 기존 사업을 약간만 바꾸는 변화를 꾀했다. 그결과 신기술과 신상품은 줄어들었다).
-R&D 부서는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당신은 동질성 높은 팀이 더 혁신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 결국은 균형 문제다. R&D 부서 내 다양한 구성원은 더 많은 혁신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모든 조직에 권하지는 않지만 서브그룹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R&D 팀에 6명이 있다면 이 중 비슷한 부류 2명씩 3쌍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질성을 띠면서도 의견 공유가 더
쉬워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기업이란.
▶ 조직이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훌륭한 기업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일하는 것과 조직의 일원이란 점에 매우 행복해한다. 회사 상황이 안 좋더라도 사람들이 일하는 걸 좋아하고
회사에 기여를 하려 한다. 훌륭한 기업에선 행복한 직원들을 볼 수 있다. 행복한 직원은 행복한 고객과 주주를 만들고 더 나아가 조직이 혁신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도록 기여한다.
두 번째로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려면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야 한다. 훌륭한 기업은
부하 직원부터 중간급 관리자, 고위 임원들 모두에게 회사 전략에 대해 물었을 때 일관된 대답이 나왔다. 공통 전략과 목표를 향해 뛰는 것이다.
행복한 직원들과 명확한 전략, 이것이 훌륭한 기업이 갖춘 요건이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
애널리스트는
바른말만 하나 아니다, 투자은행 눈치보고, 고객 기업에는 후하게 평가
= 투자은행(IB)은 애널리스트를 고용해 특정
기업 주식 분석을 맡긴다. 그러나 IB는 특정 기업 주식을 소유하기도 하고 기업을 고객으로 두며 부채나 M&A에 대해 조언한다.
애널리스트들은 과연 자신을 고용한 투자은행의 고객 명단을 무시한 채 공정한 결론을 낼 수 있을까.
프레이크 베르묄런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인터뷰와 저서 `비즈니스의 거짓말`에서 "당연히 투자은행과 애널리스트 간 이해관계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투자자와 기업을
결국 위험에 빠뜨리는 매우 이상한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매슈 헤이워드ㆍ워런 보커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다양한 분야의 70여
기업을 선정한 뒤 애널리스트가 이들에 대해 내놓은 8169개 투자 등급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 70여 개 기업의 자산과 부채, M&A에
IB가 개입했는지 조사했다. 이후 애널리스트들이 자신이 속한 IB와 거래하는 기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지 분석했다. "조건이 비슷하면 자신이
몸담은 IB와 거래하는 기업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비율이 80%에 달했다.
베르묄른 교수는 경영 컨설턴트에 대해서도
`정장을 입은 비둘기` `기업에 전염병(잘못된 경영기법)을 퍼뜨리는 숙주` 등에 빗대며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해야 인수
후 문제가 없다`며 한 가지 방법만 주장하거나 `만병통치약`식 방법이 있다는 컨설턴트는 주저없이 해고하라"고 조언했다. 경영컨설턴트들이 다른
업태나 외국에서 성공한 선진기법을 한번 적용해보라고 추천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도움이 되는 좋은 컨설턴트들도 있다"면서도
"내가 접했던 많은 기업들은 컨설턴트를 고용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컨설팅펌은 자사 컨설턴트들이 펌을 떠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 인맥을 통해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형식으로 살아남는다"며 "맥킨지에서 엔론으로 떠났던 제프리 스킬링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 He is…
프레이크 베르묄런(Freek Vermeulen) 교수는 런던경영대학원(London
Business School)에서 전략과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런던경영대학원에서 `올해의 교수`로 선정된 데 이어 2008년 학교
최초로 `최고의 강의상(Excellence in Teaching Award)`을 받기도 했다.
BP,
피아트그룹, IBM, PwC, KPMG, 로이즈, 노바티스, 로슈, 티센크루프, 도시바, 보다폰 등 글로벌 기업에서 경영 자문역이나 임원 교육을
맡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1년 그를 떠오르는 경영 구루(guru)로 꼽기도 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틸부르호(Tilburg) 대학에서
경영학, 위트레흐트(Utrecht) 대학에서 조직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