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폭염이 부른 이변… 경보 시즌 1위가 32위 주저앉아
[도쿄올림픽]출발 오전 5시30분으로 당겼지만 10시 무렵 31도 넘고 습도 86%
마실 물 몸에 뿌리며 극한 레이스… 토말라, 시즌 20위 밖 기록 우승
폴란드의 다비트 토말라(앞)가 6일 삿포로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경보 남자 50km 경기 도중 몸에 물을 들이붓고 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전 5시 30분부터 시작됐지만 25도에서 출발한 이날 기온은 레이스 후반부에 다다른 오전 10시경에는 31도까지 올라 선수들을 괴롭게 했다. 삿포로=AP 뉴시스
올림픽 육상 종목 중 최장 거리, 최장 시간을 자랑하는 남자 50km 경보는 ‘가장 잔인한 종목’이라고 불린다.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가장 긴 거리를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잔인함의 차원이 한 단계 올라갔다. 도쿄의 더위를 피해 경보, 마라톤 종목이 도쿄에서 800km 북쪽의 삿포로에서 열렸지만 이곳마저 폭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더위를 최대한 피해보려 경기 시작 시간을 오전 5시 30분으로 앞당겼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경보 경기 시간을 소개하며 “오전 5시 30분 경기를 하려고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생각해 보라”며 선수들의 끔찍한 고통에 공감했다.
우려 속 6일 새벽에 시작된 경기에서는 전혀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다비트 토말라(32·폴란드)가 3시간50분08초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토말라는 원래 20km 경보 선수였는데 올해 50km로 종목을 바꿨다. 심지어 50km를 완주해본 게 올해 3월 대회가 처음이었다. 두 번째 50km 완주 경기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그는 “미친 것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이날 삿포로의 기온은 경기가 시작될 때 25도였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올랐고 경기 후반부인 오전 10시경에는 31도가 넘었다. 습도 역시 79∼86%로 측정돼 선수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선수들은 마실 물을 몸에 뿌려 샤워를 하다시피하며 레이스를 이어갔다. 동메달을 딴 에번 던피(30·캐나다)는 “우리가 걷고 있는데 앞에 대형 스크린에 뜨는 온도가 점점 더 올라갔다. 정말 잔인했다”고 말했다.
무더위는 기록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날 토말라의 1위 기록은 올해 이 종목 최고기록 톱 20에도 끼지 못하는 성적이다. 올해 이 종목 최고기록인 3시간38분42초 기록을 세웠던 마루오 사토시(30·일본)는 4시간6분44초에 그치며 32위에 머물렀다.
더욱이 이날 열린 50km 경보 경기는 역사상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잔인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50km 경보가 여성 경기에는 없다며 정식 종목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삿포로에서 높은 기온이 이어지자 조직위는 7일 열리는 여자 마라톤 출발 시간을 예정보다 한 시간 당긴 오전 6시로 옮긴다고 6일 발표했다. 8일 남자 마라톤 출발 시간(오전 7시)은 아직 변함이 없다.
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