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사회 비교"의 증가를 야기합니다.
사회 비교는 다시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로 나뉘는데,
전자는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며 자괴감을 느끼는 한편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기 부여를 불러 일으키며,
후자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며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지금 이대로도 괜찮을 거라는 현실에 대한 안주를 낳아요.
당연하게도, SNS에는 사람들의 잔뜩 치장된 모습만 올라오기 마련이므로,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넘쳐나는 "상향" 비교거리들에 둘러쌓인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는 뒤틀려진 측면이 존재합니다.
원래 상향 비교에는 앞서 언급했듯 동기 부여라는 기능성이 있어야 해요.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위치까지 자신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마음가짐 말이죠.
헌데,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져만 가고,
스스로에 대한 불만과 불행감 역시 병렬적으로 높아지는 한편,
나도 저렇게 되고야 말겠다라는 동기 부여적 측면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왜?
그것은 바로,
"부의 양극화 현상" 때문입니다.
빈부간 괴리가 점점 극단적으로 벌어지면서 그 차이를 따라잡아야겠단 의지조차 아예 소멸되기 시작한 겁니다.
당연한 귀결
눈높이는 잔뜩 높아져 있는데,
이렇게 높아진 눈높이를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잔혹한 현실과 맞딱뜨리게 될수록
우리는 점점 현실과 타협하게 됩니다.
포기할 건 빠르게 포기하고,
내가 챙겨야 하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 자신의 안위와 웰빙에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우리가 아닌 나를 택하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인 의사결정입니다.
그 기저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최대한 줄이면서
비록 좁고 외로울지라도,
"통제 가능한 안전지대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누리며 살겠다는 인간의 소박한 소망이 자리잡고 있어요.
돈은 제한적이고, 내가 부자가 될 길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난 누리고 싶은 게 많아
이런 상황에서 혼자를 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입니다.
"상황이 안 좋으면, 고등 동물들은 스스로 새끼 낳는 것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진화생물학적으로도 이치에 맞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대 사회의 1인 가구 급증이 단순히 이러한 생물학적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물리적으로는 먹고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빡쎘지만,
너도나도 결혼하고 애 낳고, 애들은 알아서 자라나던 시대였었죠.
예전엔 다들 고만고만 평균적으로 못 살았기 때문에,
누구나 이렇게 살아란 생각에 별다른 고민없이 다들 결혼하고 애 낳고 살 수 있었다라면,
지금은 어떤가요?
빈부 격차가 워낙 극명하기도 하지만,
SNS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랑하는 부를 감상하며 내 눈높이까지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에
내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심각하게 비춰지는 겁니다.
'내 코가 석자야.'
'하지만,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잘 살 수 있겠지.'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1900년대의 자연재해와 인재(1,2차 세계대전 등)들을 분석하며
매우 흥미로운 역 상관관계를 하나 발견해 냅니다.
바로, 생존의 위협이 클수록, 자살율이 떨어졌다는 거죠.
그리고 이의 이유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합니다.
평균적으로 모두 다 고통스럽기에,
오히려, 내 처지가 괜찮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즉, 상황이 우호적인가 비우호적인가를 해석함에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보다는 상대적인 조건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떠한가?'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 상대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간극은 절대로 메꿔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2세를 낳아 기르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결혼을 함으로써 2인 가구를 지향하는 것조차 꺼려지게 됩니다.
왜?
돈 문제도 돈 문제거니와,
각자가 생각하는 웰빙의 정의, 눈높이가 다를 때 부부는 굉장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둘이 합쳐 월 4-500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최소 1000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래서 더 많이 일해야 하는데, 씀씀이도 나보다 2배라면,
이런 식으로 서로간에 웰빙의 정의가 달라져버리면, 이 둘은 절대로 함께 갈 수가 없는 겁니다.
결혼한 배우자라도 타인은 타인인 것이고, 타인은 내 통제 범위 밖이니,
차라리 싱글로 살면서 내 관계의 폭을 확 좁혀버리고
그 안전지대 안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의 절대적인 행복감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요즘 같이 상대성이 극도로 부각되는 시대에서는, 훨씬 더 현명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인구의 쇠락은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암묵적으로 사회적 계급이 나뉘어지는 것을 확인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접고,
자신의 영역을 가족이란 이름으로 확장하는 것을 포기할 겁니다.
어차피 희망이 없는데, 뭣하러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늘려?
내 대에서 끝내자. 어찌됐건 나 하나만 바라보면서 살자.
절망을 넘어 무망감이 그득한 시대입니다.
동도들 모두 각자도생하시고,
다음의 5년에는 조금 더 희망 찬 사회를 다같이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통찰이 있는 글입니다.. 무명자님을 정부로! ^^ 농담입니다!
좋은 통찰이십니다!! 마지막 문구가 인상깊네요 ㅎ
스마트폰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물건인 거 같아요.
절망을 넘어 무망..
저를 말하는것 같네요..
저도 20대초만해도 엄청 욕망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냥 전원생활하며 텃밭만 꾸리며 살아도 만족하는 사람이되었죠
생존의 위협이 클수록 자살율이 떨어졌다는 현상과 비슷한 아이러니가 뭐냐면... 서로가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일수록 오히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있다는거죠.
혼기 꽉찬 노총각 입장에서 작금의 결혼(연애) 시장을 보자면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같이 도우면서 힘을 모아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이라도 더 득이 되겠다싶은 이성을 상대로 찾는게 심해지고 있죠.
언제부턴가 애기나오는 '퐁퐁남'...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며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쉽이 아닌 스폰서쉽의 관계에서 나오는거죠. 자원을 바치고 힘을 쓰며 지원하는 스폰서가 곧 퐁퐁남. 자원을 많이 줄 수 있는 남자는 남자대로 결혼해도 애로사항이 생기는 실태. 이렇게 퐁퐁남이 상징하듯이, 결혼한 사람들끼리의 관계에서 다른 유형의 불균형이 생기죠. 물론 저같이 결혼 못하는 것보다야 나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개인적으론 예전엔 내가 배려하고 양보하면 그게 돌아온다는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은 배려,양보했다가는 나만 호구된다가 이미 전국민 머릿속을 지배하는거 같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