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례산성 동문 터에서
일전 무서운 기세로 극한 강수대를 형성 중부권에 비를 퍼붓던 장마가 일시 주춤해 날이 개었다. 충청과 경북 일대에는 수마가 할퀸 상처가 대단해 수습이 되고 복구를 하려면 시일이 걸릴 듯하다. 지긋지긋한 올해 장마가 끝물로 향해 가고 있는 즈음이다. 잠시 남녘 해상으로 물러난 강우 전선은 오는 주말 다시 북상하면서 비를 뿌리고 나면 장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가 싶다.
칠월 셋째 목요일이다. 장맛비로 자제하던 산행을 나서려고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섰다. 산행이긴 해도 계곡으로 들어선 산책 정도로 여기고 이즈음 피어날 야생화 탐방에 뜻을 두었다. 집에서부터 걸어도 되겠으나 무릎 관절에 무리가 없도록 창원중앙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어가니 평일 아침이라선지 드나드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엊그제까지 우리 지역에 내린 비의 양도 상당한지라 계곡에 흐르는 물이 넉넉했다. 계곡물은 바윗돌을 비집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시원스레 흘러 물소리를 들려주었다. 일주일 전에도 장맛비 틈새 마땅히 어디로 나갈 산책 행선지가 없어 용추계곡으로 들어왔던 적 있었다. 그날은 반바지 차림으로 길을 나서 우곡사 갈림길에 이르러 되돌아 나왔는데 이번은 동선을 길게 잡았다.
계곡 들머리 용추고개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용추정에서 등산로 따라 걸었다. 날이 밝아 와 바깥세상이 궁금한 녀석인지 다람쥐 한 마리가 바윗돌에 앉아 앞발을 모아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꼭 고양이가 세수하는 동작 그대로 판박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지 않고 태연히 그 동작을 그대로 취하고 있어 피사체로 삼으면서 나를 영접하러 나온 줄로 착각이 들었다.
계곡물은 여전히 바윗돌 틈새 물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고 길섶에는 일찍 핀 맥문동 꽃이 몇 송이 눈에 띄었다. 용추1교부터 출렁다리를 지나 용추5교까지 건너 우곡사 갈림길에서 포곡정 방향으로 오르면서 물봉선 자생지를 살피니 아직 본격적 개화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등산로와 나란한 너럭바위로 계곡물이 철철 소리를 내며 흘러 그간 누적된 강수량이 많았음을 실감 나게 했다.
이른 시간대라 계곡에 든 산행객이 무척 드물었는데 내가 노루오줌이 피운 꽃을 폰 카메라에 담는 사이 한 아낙을 먼저 앞세워 보냈다. 용추10교 근처에서 선홍색 물봉선이 피운 꽃은 한 송이 봤으나 내가 살피려는 상사화는 아직 때가 일러 꽃대를 밀어 올리지 않아 볼 수 없었다. 우리 지역 산중 자생하는 상사화는 팔월 초순 입추 무렵에 꽃을 피워 다음에 한 번 더 찾아야겠다.
포곡정에서 진례산성 동문 터로 향해 오르다 노송 그루 아래에서 커피와 생수로 목을 축였다. 쉼터에서 일어나 비탈을 오르니 안개가 낀 아침 날씨에서 햇볕이 드러날 기미를 보였다. 진례산성 동문 터에 닿아 등산로를 벗어나 고개 너머 활엽수림을 뒤져 살폈다. 삼림욕을 겸해 삭은 참나무 그루 붙은 영지버섯 채집을 개시해 발품을 판 보람이 있어 몇 개 찾아낸 성과를 거두었다.
진례선성 동문 너머 비탈진 숲을 빠져나가니 송정과 신월로 향하는 길고 긴 임도에 이르렀다. 영지버섯에 대한 미련이 남아 길섶 숲을 한 번 더 살폈으나 찾아내지 못하고 백숙촌으로 알려진 평지마을 가는 길로 내려섰다. 마을과 떨어진 산기슭 암자 근처 계곡에서 맑게 흐르는 계곡물과 대면해 앉아 땀을 식히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작은 암자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계곡에서 마을로 내려가니 규모가 제법 된 절이 나왔는데 스님이나 신도는 볼 수 없었다. 온 동네가 닭백숙을 파는 마을로 ‘돌담집’이나 ‘포구나무집’과 같은 토속적 분위기가 나는 식당 간판이 보였다. 평지 저수지 둘레길을 걸어 무송과 신안마을을 비켜 철길을 따라 화전마을까지 나갔다. 일부 구간은 뙤약볕을 걸었더니 더위가 느껴졌는데 중국집에 들어 콩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23.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