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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和睦)
사이좋게 지내며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和 : 화할 화(口/5)
睦 : 화목할 목(目/8)
(유의어)
집목(輯睦)
(상대어)
반목(反目)
인도네시아는 300여 종족이 모인 다민족 국가다. 언어도 400종이 넘는다. 국가 통합이 쉬울 리 없다. 어느 종족의 언어도 아닌, 말레이어 계통의 믈라유어(語)를 국가어로 채택한 이유다. 통합과 화목(和睦)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인도네시아 국장(國章)엔 ‘BHINNEKA TUNGGAL IKA(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선언이 쓰인 팻말을 독수리가 움켜쥐고 있다. 화목은 이처럼 건국 및 통치의 핵심 요결이 된다.
화목은 '사이좋게 지내며,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 고전에 여럿 보인다. 촉(蜀)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진법(陣法)을 조화롭게 운용한다(行陣和睦)"는 대목이 보인다.
좌전(左傳)도 "위아래가 화목하고, 일 처리에 거스름이 없어야 한다(上下和睦 周旋不逆)"고 썼다.
당(唐) 진자앙(陳子昻)은 '좌우명(座右銘)'에서 "형제는 화목하고, 친구는 신의와 성실을 가꿔야 한다(兄弟 敦和睦 朋友篤信誠)"고 권한다.
화목은 성경에도 핵심 가치로 등장한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된 사이였는데 예수의 대속(代贖; 대신 죄를 치름)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케 됐다는 얘기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和平)을 누리자"고 권면한다. 화목은 화평을 낳고, 궁극적으로 조화(調和)로 이어진다.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중국 내 사회 갈등이 심해지자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은 '허셰(和諧; 화해) 사회'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허셰'는 화목하고 협조한다는 뜻 외에 '화목하고 협력하게 만든다'는 실천적 의미를 갖는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나, 규격에 맞지 않는 물건을 '처리한다'는, 섬뜩한 함의(含意)까지 깔고 있다.
공자(孔子) 역시 화목을 강조했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말한다.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는 자가 군자라면, 소인은 그 반대라는 얘기다.
요즘의 우리 뉴스는 불화(不和)로 가득하다. 공자는 "현인을 보면 닮으려 하고, 악함을 보면 내게도 있지 않나 돌아보라(見賢思齊 見不賢而內自省也)"고 충고한다.
세상의 악(惡)과 불의(不義)를 어찌 일일이 대적할 것인가? 내가 바뀌면 화목해지고, 화목하게 되면 세상도 바뀔 것이다.
◼ 화목자(和睦者)
어려워도 화목한 집이 있고 부유해도 싸우며 사는 집이 있다. 화목한 집엔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싸우는 집엔 불러도 가고 싶지 않다. 아마 복(福)도 화목한 집에만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요즘 코로나 19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이다. 3월 1일 주일 아침에는 유례없이 전국 대부분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내가 섬기는 온누리 교회는 CGN이라는 TV방송을 통해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교회의 교인들은 심적 고통이 매우 클 것이다.
최근 스마트바이오팜 대표인 심유란 박사가 페이스 북에 쓴 ‘요물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글이 뇌리에 남는다. “서유기에 나오는 이 거울, 세상에 변장하고 숨어있는 요물들을 다 비추어 원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 거울! 요즘 페북과 위챗을 보면서, 이번 신종코로나는 영락없는 이런 거울이라는 걸 느낀다 (중략).
재난 중에 한 몫 건지려는 사람들부터, 니탓 내탓을 넘어 욕심을 드러내는 사람들, 어떻게든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내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들, 숨겼던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는 사람들,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평소에 그렇게 순하게 보였음에도 갑자기 돌변하여 온갖 화풀이를 다 하는 사람들, 팩트인지 아닌지 가리지도 않고 무작정 욕부터 하는 사람들... 참말로 요지경이다.
그 가운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 드러내지 않고 재난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 확연하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원래 인간과 함께 자연에 존재했던 바이러스인데 어느 날 갑자기 "거울"로 변이하여 인간세상의 천라만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이지만 이처럼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쳐준다. 인간의 오만은 어디까지일까?”
윗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난리 상황에서도 세상이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툭탁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자기는 사심 없이 나라를 위해 이런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십중팔구 나쁜 사람이거나 아니면 생각이 짧은 바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이미 자기 신념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아래 하나님 말씀 외에 불변의 진리가 어디 있으며, 누가 그 진리를 확신하겠는가? 예컨대 한 때 경부 고속도로 건설을 강력 반대했던 정치 지도자들의 신념도 시대착오였음이 들어난 바 있지 않은가?
나는 각종 회의에 참석하였을 때 내 주장을 강력히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내 식견이 부족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지만,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회의에서 논쟁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들어보면 이 주장도 일리가 있고 저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의견을 택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주제를 놓고도 쉽게 흥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때로는 신기해 보인다.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논쟁이 가열되는 낌새가 보이면 나는 얼른 유머와 농담 등을 구사해 양측의 열기를 누그러뜨리려 노력한다. 사실 어떤 일의 성패는 회의에서 어느 쪽 의견을 선택했느냐 보다, 얼마나 화기애애하게 결론을 냈느냐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가끔 ‘회색분자’라고 놀리지만, 나는 회색분자의 역할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이런 역할을 하려 들어서는 아무 결론도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가난해도 화목한 집안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리고 싸우는 사람은 많아도 화목을 도모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 생각에서 화목자(和睦者) 역할을 자임해 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성의 냉철함보다 사랑의 따듯함이 백배천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불평, 불만, 비난, 조소, 조롱 보다는 감사, 위로, 격려, 응원, 후원, 화합이 특히 크리스찬에게 합당한 성품임을 깨닫는다.
지금은 전염병과 싸우고 있는 분들과 다툴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 분들을 기도와 물질로 응원 후원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 아내에게 드리는 말씀
아내는 가정에서 남편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편은 사회생활이 대부분인 반면, 아내는 가정생활(家庭生活)에 많은 비중(比重)을 두고 있습니다. 아내의 역할(役割)에 의해서 가정(家庭)의 화목(和睦)과 불화(不和)가 좌우될 정도로 아내의 비중이 큽니다.
아내의 기분여하에 따른 표정(表情)과 말투, 행동거지에 따라, 가정이 어두워지고, 밝아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아내는 가정을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와 사랑의 보금자리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며,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녀의 조화(調和)롭지 못한 어두운 모습은, 아내의 마음의 반영(反影)입니다. 즉 어머니로서의 부조화(不調和)된 마음이, 자녀들의 어두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아내로서의 어두운 마음은, 남편의 조화롭지 못한 모습으로 반영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불평(不平), 불만(不滿), 원망(怨望) 등,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한 불안감(不安感) 등이, 그 반영(反影)으로서 자녀로부터나 남편으로부터의 부조화(不調和)로 나타납니다. 자녀나 남편의 어두운 부조화에 대하여, 아내는 기고 신중하게 생각 하셔야 감정(感情)의 노예(奴隸)가 되지 않고, 진리(眞理)의 빛으로 그 어두움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남편의 방황(彷徨)이나 이유없는 늦은 귀가(歸家), 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터놓고 아내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과 자유와 평화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추궁(追窮)하고 질책(質責)하고 감시 (監視)하는 자리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녀에게도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다시말해 어머니로서나, 아내로서의 역할(役割)을 하지 못할 때, 그 반영(反影)으로 자녀는 자녀의 자리를 이탈(離脫)하고, 남편은 남편의 위치에서 벗어납니다. 진정한 자유(自由)와 자율(自律)이란 무릇 "있어야 될 것이, 있어야 될 곳에, 제대로 있다"하는 그것입니다. "제각기 제자리에서 충실하다"함이 모든 조화(調和)로움의 근본(根本)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제자리를 벗어날 때, 그때가 바로 조화(調和)와 질서(秩序)가 파괴(破壞)되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하는 일 모두를 이해(理解)하고 포용(包容)할 수 있는 위치(位置)에 있어야만 합니다. 남편들은 바깥에서 아무리 실수를 했어도, 아내에게는 감싸여 지고, 위로(慰勞)와 격려(激勵)를 받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의 단점(短點), 비리(非理), 허물, 등을 외면하지 마시고 오히려 남편의 그런 부조화(不調和)한 모습은, 아내인 자신의 영혼(靈魂)을 더욱 성장시키고 성숙(成熟)시키기 위함이라 생각하십시오. 아내 자신의 영(靈)적인 진전(進展)을 위한 학습(學習)의 좋은 소재(素材)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남편이나 자녀들의 조화롭지 못한 모습은 오히려 자기 성찰(省察)의 기회로, 더불어 가족 상호간에 있어서는 고맙고 감사(感謝)함을 느끼게 하는 다시없는 기회(機會)인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대(時代), 같은 사회(社會)에서 부부(夫婦)로 만난 인연(因緣)의 소중함을 생각하십시오, 학습(學習)을 끝내고 되돌아 가실 동안의 시간(時間)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로 이해(理解)해 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는 생활 속에서도, 실로 짧은 촌음(寸陰)같은 인생(人生)입니다. 남편의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 보이면 보일수록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내 남편은 훌륭합니다."를 마음으로나 또는 소리내어 외우십시오.
진리(眞理)의 힘, 말의 힘으로 어두움의 의식(意識)을 몰아내시고, 화목한 가정, 훌륭한 자녀와 남편으로 이끄는 위대한 아내와 어머니가 되십시오. 직장(職場)이 없다고 책망(責望)하지 마십시오. 성실(誠實)하지 않고 게으르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술, 담배, 화투 등 나쁜 버릇을 고치려 타이르지도 마십시오. 직업(職業)이 좋지 못하고, 수입(收入)이 적다고 불평불만(不平不滿)도 마십시오.
그 전에 먼저 하셔야 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제대로 된 순서(順序)를 찾지 못하면,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남편이 가정(家庭)에 대해서는 오직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와 사랑만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精誠)을 다하십시오. 첫째도, 둘째도, 처음도, 끝도, 오직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와 사랑입니다.
가정에 자유와 평화만 실현(實現)시키면 사랑은 저절로 살아납니다. 남편의 마음 속에서 "저렇게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로도 해야 되겠다"는 사랑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기만 하면, 모든 어두운 요소(要素)들은 저절로 소멸(消滅)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家族)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남자들입니다. 책임(責任)과 의무(義務)가힘겹고 고달픈 현실(現實)이 아니라, 사랑 속에 승화(昇華)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남편 속에 잠재(潛在)해 있는 무한(無限)의 에너지인 사랑의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남편 속의 전지전능(全智全能)한 신성(神性), 본성(本性)을 믿고, 모든 정성(精誠)을 남편이 자유(自由)와 평화(平和)를 느끼도록 하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반드시 사랑으로 가득찬 가정이 이루어 집니다. 확신(確信)을 가지고 노력해 보십시오. 적어도 인간사이에, 더구나 부부지간(夫婦之間)에, 불신(不信)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으며, 그 결과는 참담(慘憺)할 뿐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우선 나를 없애는 것입니다. 나를 없애면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포용(包容)이라 하겠습니다. 무작정 "나를 없앤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 즉 남편에의 인정(認定)과 긍정(肯定)입니다. 사람이란 누구라도 그렇지만 남편도 그의 어떠한 모습이든, 행위든, 말이든간에, 틀림없이 그 원인(原因)과 이유(理由)와 뜻이 있습니다.
육체의 남편이 육체의 아내가 아닌 이상, 모든 인간적 교류(交流)는 인정(認定)하고 긍정(肯定)하는 시점(視點)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이 상대에의 인정(認定)과 긍정(肯定) 할 수 있음이,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을 없애는 것 즉 "나를 없앤다" 하는 것입니다.
아상(我相)이란 그의 학식(學識)과 처세(處世)속의 상식(常識) 등이 총망라(總網羅)된 지식(知識)의 개념(槪念)으로, "내가 알고 있다"함으로 요약될 수 있고, 이것으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심판하는 것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집(我執)이라는 것은 소유욕(所有慾)의 근간(根幹)으로, 우선 자신의 몸부터 실재(實在)하고 있고,이런저런 재물(財物), 물질(物質) 등을 "내가 가지고 있다"하는 마음이며, 이로서는 "내것과 네것" 또는 그것의 "많고 적음"으로 가치(價値)의 기준(基準)을 삼으려 하는 마음입니다.
이 아상(我相)과 아집(我執)은 다 같이 "우열의식(優劣意識)" 내지는 "비교의식(比較意識)"의 발동을 부르고, 그것 또한 나름대로의 순리(純理)라 하겠습니다. 이 위험한 아상(我相)과 아집(我執)도 인정(認定)과 긍정(肯定) 속에서는 너무나 무력(無力)하게 그 힘을 읽고 맙니다.
아내에게는 그러한 능력(能力)이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끄집어내어 쓰시기만 하면 됩니다. 남편의 인격(人格)과 인품(人品)을 존중(尊重)해 주십시오. 틀림없이 아내도 존중(尊重)받을 것입니다.
남편을 믿으십시오. 아내도 신뢰(信賴)받습니다. 남편의 실수를 무한포용력(無限包容力)으로 감싸 안으십시오. 남편의 마음에 "아내는 넓고 포근한 여인"이라는 인식(認識)이 심어 질 것입니다.
부드러움은 강(强)함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여성 특유(特有)의 부드러움을 발휘하여, 자녀와 남편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유도하십시오. 할 수 없다는 말은 결코 하지 마십시오. 인간 참모습의 세계에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란 단 하나도 존재(存在)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구하여 보지않고, 접(接)해본 바 없어서, 스스로도 자신을 가다듬지 못해, 지금껏 스스로의 감정(感情)조차 어찌할 줄을 몰라, 허둥대고 헤매며, 폭발(爆發)시킨 후, 돌아서서 반성(反省)하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자식을 또 남편을, 또 그 상대를 책망하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책(責)하는 것이 적지 않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입니다.
"자식인지 원수(怨讐)인지, 남편인지 남인지"하지 마십시오. 자식도 원수도, 남편도 남도. 실은 자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구 쯧쯧"하는 상대에의 책망이나 푸념이, 상대의 가슴속과 마음속에는 화살로 꼽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구나 어릴 때나 감수성(感受性)이 예민할 때의 이런 "마음아픔" 내지 "가슴아픔"은, 성장을 한 후에도 심각한 정신적(精神的) 장애(障碍)로 남아 고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의 힘을 한순간에도잊지 마십시오. "세 번을 생각하여 한마디를 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이 뜻하는 바를 바로 자신에게서 찾아보십시오.
종교인(宗敎人)들에게 찾아가 감사해 하고, 보시(布施)하지 마시고, 당신의 남편에게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의 가족에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모든 베품의 행위(行爲)가, 그것이 물질적(物質的)이든 정신적(精神的)이든 간에, 나쁜 일은 아니지만, 우선 가족(家族)에의 베품이 바탕되어야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모, 형제, 처자 부부하는 가족간에조차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하고 또 다른 무엇인가에 감사해 한다는 것은 위선(僞善)이요, 가장(假裝)일 뿐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가정의 화목(和睦), 화합(和合), 화평(和平)등, "가정의 편안함은 만사(萬事)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宗敎)와 종교인(宗敎人)들에 재물(財物)까지 헌납(獻納)하며 존경(尊敬)하고 감사(感謝)해 하는데, 실로 당신과 당신의 가정(家庭)을 위해 헌신(獻身)하는 이는, 당신의 남편이요 당신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당신을 포함한 가족구성원(家族構成員) 모두가, 바로 당신의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 나름대로 한몫씩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나타나는 겉모습에 속지 마십시오. 사람의 참 모습은 완전(完全)한 영적생명(靈的生命)인 신(神)이라는 것을 아시고, 화평(和平)한 모습으로 남편과 자녀를 대할 때, 대조화(大調和)의 행복(幸福)한 가정이, 바로 당신의 가정(家庭)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 화목은 인생 최고의 둥지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나쁘고 저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시절이다. 사정이 이럴 때일수록 원망하지 말고 인정을 베풀 줄 알아야 하겠다.
때로는 스스로 몸담고 있는 기업체 사장을 원망하고 정부를 비난하고 정치인을 비웃고 어른을 함부로 손가락질하며 아예 막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수더분한 인정을 지녀야 하겠다.
자연히 인정이 있으면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인정이 넘치는 사람은 하루하루의 생활 자체가 즐겁다.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저녁 퇴근길에 들어가면서 기분은 흥겨워야 한다.
그러자면 사람 만나는 것이 우선 좋아야 한다. 평소에 인정이 많은 사람은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무조건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사람의 도리이다.
우리네 절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보름이 세 가지다. 하나는 7월 백중이고 또 하나는 10월 대보름이고 또 하나는 정월 대보름이다. 그중에서도 정월 대보름은 액을 씻어내는 날이다. 그래서 연을 날려 보내게 된다.
올해 정월 대보름날은 아쉽게도 밝은 달이 너무 두터운 구름에 가려 대보름달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저마다 밝은 달을 가슴속에 품고서 좋지 못한 액을 쫓아버리고 복(福)을 불러오는 풍성한 기원을 했을 터, 이 시간 여러분 가정과 건강에 부처의 자비와 광명, 복덕과 지혜가 일년내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해 마지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 무엇보다도 화목이 제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잘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화합에 목표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목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확실한 목적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출발부터가 막연하게 여기 가서 실수하고 저기 가서 실패하고 기웃기웃거리다 낭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제대로 정해놓은 것 없이 무작정 허송세월만 보낼 뿐이다. 그런 것을 잘 모르면서도 무작정 출발부터가 바쁜 세상에 쓸데없이 시간낭비만 한다. 이것 또한 큰 병폐이다.
요컨대 권투시합을 보면 중요한 원칙을 발견할 수가 있다. 선수가 링 사이드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울 때를 한번 살펴보라. 그런 원수가 없다. 기회만 주어지면 그냥 치고 때리는데, 마치 꼭 죽일 것 같다.
그렇게 때리고 싸우다가도 '땡'하면 서로 끌어안고 끝낸다. 참으로 멋진 경기이다. 그동안 때리고 싸운 것이 전부 끝난다. 그러면 그동안 왜 때렸는가? 미워서 때린 것이 아니다. 원수도 아니다. 죽이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서로 힘을 겨뤄 본 것이다. 분명한 목표는 힘을 비교해 보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시합이 끝나고도 욕하는 선수가 있다. 크게 잘못된 것이다. 끝까지 죽이자고 싸운 게 아니었다. 마지막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올 한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생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목표가 확실치 않은 사람은 모든 일에 정성이 없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화목이다. 목표가 확실치 않다 보니 불화가 생긴다.
어느 혹자는 낮이 끝나고 밤이 시작되는 순간을 구분함에 있어 사람을 보았을 때 내 가족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으면 낮이요, 사람얼굴을 제대로 가려낼 수 없으면 아무리 해가 떠 있어도 어두운 밤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화목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상대방을 원수로 착각하는 순간, 어두운 무명(無明)이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의지해야 할 둥지가 바로 진정한 화목이다. 화합을 위해서는 '불이과(不二過)'라, 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 않고, '불천노(不遷怒)'의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는다고 했다.
▶️ 和(화할 화)는 ❶형성문자로 惒(화)는 통자(通字), 咊(화)는 고자(古字), 訸(화)와 龢(화)는 동자(同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禾(화)와 수확한 벼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는(口) 뜻을 합(合)하여 '화목하다'를 뜻한다. ❷형성문자로 和자는 '화목하다'나 '온화하다'하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和자는 禾(벼 화)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禾자가 '벼'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口자가 더해진 和자는 먹고살 만하니 '화목하다'와 같은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龠(피리 약)자가 들어간 龢(화할 화)자가 쓰였었다. 龢자는 피리를 그린 龠자를 응용한 글자로 피리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에서 '조화롭다'를 뜻했었다. 여기서 禾자는 발음역할만을 했었다. 하지만 금문에서 부터는 소리의 조화를 口자가 대신하게 되면서 지금의 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和(화)는 (1)관악기(管樂器)의 한 가지. 모양의 생(笙)과 같이 생겼는데, 십삼관(十三管)으로 되었음 (2)합(合)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화하다(서로 뜻이 맞아 사이 좋은 상태가 되다) ②화목하다 ③온화하다 ④순하다 ⑤화해하다 ⑥같다 ⑦서로 응하다 ⑧합치다 ⑨허가하다 ⑩모이다 ⑪화답하다 ⑫양념하다 ⑬나라의 이름(일본) ⑭합계 ⑮악기(樂器)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화합할 협(協), 화목할 목(睦),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싸움 전(戰)이다. 용례로는 다툼질을 서로 그치고 풂을 화해(和解),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을 화목(和睦), 화목하여 잘 합하여 짐을 화합(和合), 시나 노래에 서로 응하여 대답함을 화답(和答), 온화하고 순함을 화순(和順), 날씨가 바람이 온화하고 맑음을 화창(和暢),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화평(和平), 급박하거나 긴장된 상태를 느슨하게 함을 완화(緩和), 평온하고 화목함을 평화(平和), 서로 잘 어울림을 조화(調和), 날씨가 맑고 따뜻하며 바람이 부드러움을 온화(溫和), 교전국끼리 싸움을 그만두고 서로 화해함을 강화(講和), 서로 어울려 화목하게 됨을 융화(融和), 성질이 부드럽고 온화함을 유화(柔和), 서로 친해 화합함을 친화(親和), 화창한 바람과 따스한 햇볕이란 뜻으로 따뜻한 봄날씨를 이르는 말을 화풍난양(和風暖陽), 남과 사이 좋게 지내되 義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부드러운 기운이 넘쳐 흐름을 이르는 말을 화기애애(和氣靄靄),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단비가 내린다는 뜻으로 날씨가 고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화풍감우(和風甘雨), 음과 양이 서로 화합하면 그 기운이 서로 어우러져 상서를 냄을 일컫는 말을 화기치상(和氣致祥),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여 일컫는 말을 부화뇌동(附和雷同),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다정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을 금슬상화(琴瑟相和),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충돌 또는 둘 이상의 음이 같이 울릴 때 서로 어울리지 않고 탁하게 들리는 음을 일컫는 말을 불협화음(不協和音), 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 내심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동이불화(同而不和),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을 곡고화과(曲高和寡), 국민의 화합과 나아가 인류의 화합을 지향한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조민유화(兆民有和) 등에 쓰인다.
▶️ 睦(화목할 목)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눈 목(目=罒; 눈,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친하여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坴(륙, 목)으로 이루어졌다. 눈매가 온화하다는 뜻이다. 전(轉)하여 화목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睦자는 '화목하다'나 '온화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睦자는 目(눈 목)자와 坴(언덕 륙)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坴자는 흙과 언덕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륙, 목'으로의 발음 역할만을 하고 있다. 睦자는 본래 '눈빛이 온화하다'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온화한 눈빛에서 연상되는 '친하다'나 '도탑다'는 뜻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가깝다'나 '밀접하다', '온화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睦(목)은 성(姓)의 하나로 ①화목하다(和睦--) ②온화하다(穩話--) ③친하다(親--) ④도탑다(서로의 관계에 사랑이나 인정이 많고 깊다), 친후하다(親厚--) ⑤가깝다, 밀접하다(密接--) ⑥공손하다(恭遜--),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⑦부드러워지다, 화하다(和--: 따뜻하고 부드럽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화합할 협(協), 화할 화(和) 등이다. 용례로는 형제가 화목함을 목우(睦友), 동족끼리 화목하게 지냄을 목족(睦族), 서로 친하게 화목함을 목친(睦親),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을 화목(和睦), 서로 친하여 화목함을 친목(親睦), 일가 사이에 서로 화목하지 아니함 또는 서로 뜻이 맞지 않음을 불목(不睦), 정이 두텁고 화목함을 돈목(敦睦), 정의가 두텁고 화목함을 관목(款睦), 공손하고 화목함을 공목(恭睦), 친목한 느낌을 일컫는 말을 친목감(親睦感), 친목을 꾀하기 위한 모임을 일컫는 말을 친목회(親睦會), 구약 시대에 하나님에게 동물 제물을 바쳐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려고 행한 제사를 일컫는 말을 화목제(和睦祭), 춘향전에 나오는 낭청 지위에 있는 목가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기 주견이 없이 이래도 응하고 저래도 응하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을 목낭청(睦郎廳), 한집안 식구가 서로 뜻이 맞아 정다움을 일컫는 말을 일가화목(一家和睦),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하기 위하여 바친 제물을 일컫는 말을 화목제물(和睦祭物),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하게 지냄을 일컫는 말을 상하화목(上下和睦), 위에서 사랑하고 아래에서 공경함으로써 화목이 됨을 이르는 말을 상화하목(上和下睦)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