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3일 묵상 본문 : 고린도전서 10장 1절 – 13절 – 선줄로 생각하지 않고 구원을 향해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가게 하옵소서
시작 기도
주님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온 몸이 쑤시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파옵니다.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한 어리석은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의 보혈로 모든 죄와 허물을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주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 되게 하시고 거룩한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빗대어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것은 그들이 행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행과 시험과 원망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헛되이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말세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깨우치시기 위해 기록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기지 말고 두렵고 떨리확인는 마음으로(빌 2:12) 구원을 이루어 갈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당하는 시험과 환난, 그리고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주심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야기합니다.
나의 묵상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지 말 것을 권면한다.
아마도 당시 영지주의나 헬라의 이분법적 가치관의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원에 관한 지식만 알면 육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은 선민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보장된 것처럼 여기다가 멸망 받은 사건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하다가 구원받지 못한 자가 되지 않도록 충고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그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동반한다. 참 믿음은 삶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예로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나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동전을 넣는다.
동전을 넣어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넣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인 지식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경험은 믿음을 형성하며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믿음은 행동을 동반한다.
과거에 전도를 하면서 사영리를 전했었다.
복음을 어떻게 전하는지 몰랐던 나에게 사영리의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전도하면서 느끼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동의가 참 믿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영리를 설명하고 영접 기도까지 하지만 그 이후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없다면 참 신앙이 자리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고 설교를 들으며 신앙의 사람들과 교제를 한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믿음에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심지어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부터 23절까지 이렇게 말씀하신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선지자와 같이 말씀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나타내어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 받은 백성의 모습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과 뜻을 아는 인격적인 교제가 없이는 하나님 백성이라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거 한 청년에게 영접기도를 따라하게 하고 구원의 확신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나름대로 구원에 대한 마음을 가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얻게 된 실망감이 그 이유였었다.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신앙에 대한 회의가 몰려온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는 신앙의 되지 않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에 멈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 하다가 시험에 들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사람이 적지 않다.
이 모든 책임이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않는 나의 책임이며 지도자의 책임임을 절감한다.
단순히 지식적으로 동의하는 신앙을 만들고 그런 신앙인을 양산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어도 바른 신앙을 세우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바른 신앙은 사람의 지식을 전달받아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로 세워지는 것이다.
선줄로 생각하지 않고 주님과의 교제로 신앙을 세우도록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사명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시험과 유혹은 바른 신앙이 세워졌을 때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바울은 그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인격적인 교제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고 이길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 주와 교제하는 은혜가 풍성하게 넘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속에 허물과 죄를 발견합니다.
바른 가르침이 아닌 지식만을 전달하려는 모습을 깨닫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다시 바른 길을 걷도록 도와주옵소서.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주님의 길을 따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의 사명을 늘 바르게 인식하게 하시고 주님과의 교제를 증거 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