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을 들여다본 일이 있는가.
구멍마다 허공이 담긴
그 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랑은 모텔에서
프로포즈는 이벤트로
아이는 시험관으로
장례는 땡처리하듯 화장으로
또는 배 밑으로 밀어 넣는 뼈 시린 수장(水葬)!
티브이와 왕따와 듣보잡들과
안방까지 쳐들어오는 흙탕물을 나눠 마시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살처분하고 남은 닭과 돼지와 오리를
퀵 배달로 시켜 먹고
구멍마다 허공이 담긴
그 집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정체 모를 기형의 벌들이
꿀 대신 독을 물어 나르며
붕붕거리고 있는가.
-『서울경제/시로 여는 수요일』2024.09.24. -
글쎄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보리밭과 뽕나무밭 대신 모텔을 지었는데. 오해하기 좋은 눈짓 대신 촛불과 풍선으로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어떻게든 대를 이어보려고 시험관을 빌렸는데. 조문객들 불편할세라 상조회 불렀는데. 앉아서 천 리 보려고 티브이 발명하고, 촘촘한 학교 감시 카메라가 미치지 않는 자유를 주었는데. 녹색혁명과 현대식 축산으로 80억 인구가 너끈히 살게 되었는데. 합리적 근대 이성으로 최고의 문명을 구축하고 있는데.
왜 구멍마다 자꾸 허공이 담기고, 눈 뜨고도 못 본 척하는 검은 코끼리들이 우글대고 있는 걸까?
불꽃놀이가 있던 밤 극장 앞에서
그의 아내를 보았다
그녀의 목에 가느다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어느 생일날 그가 걸어준 것인 듯
아니면 첫아이를 낳은 날이거나
부부싸움 끝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병석에서 그의 어머니가 일어난 날
오랜 간호의 수고를 감사하며 함께 산 것일지도
바닷가 조가비에 밤하늘의 별무늬가 새겨져 있듯이
그의 아내에게서 오묘히 그의 무늬를 보았다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사소한 시간을 으깨어 만든 무늬를
물론 나는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먼 곳에서 온 사람
가령 낭만적인 재미를 위해
그와 나 사이에다 돌연하고도 아름다운
무슨 추측을 가해 본다 해도
그날 밤 그의 아내를 보자마자
우리의 것은 멜로이거나 바람이거나
할 수 없이 불륜이었다
그에게 반듯한 저 양복을 골라 입히고
뒤쪽에 키를 낮추고 서 있는 그의 아내
아무것도 아닌 주춧돌처럼 수수한 여자
그날 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녀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 시집〈나는 문이다〉민음사
Three Pieces from Schindler's List: I. Theme · John Williams · Yo-Yo Ma · New York Philharmo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