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272장 (구 330장) / 창세기 44 : 1 - 17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272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44장 1절 – 17절 말씀입니다.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
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아멘!
요셉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고, 해석할 줄 알았고, 꿈대로 살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미래가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통과 고난과 역경을 만나도 개의치 않고 그 꿈을 향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땅의 꿈이 아니라 하늘의 꿈, 순간적인 꿈이 아니라 영원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요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임과 동시에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이르게 합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요셉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일 때도 신뢰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신뢰했습니다. 환경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신뢰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만 신뢰했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신뢰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용서,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절정입니다. 용서할 수 있다면 인생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완전한 성숙에 이른 사람입니다. 복음의 끝은 사랑입니다. 이것을 요셉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사랑합니다. 형제도, 부모도, 자녀도, 조국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갈등이 많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사랑합니다. 나한테 잘 해주면 나도 잘 해줍니다. 그러나 나한테 잘못하면 나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랑의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 상대적입니다. 잘 해주면 나도 잘 하고, 잘못하면 나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에는 목이 마르고, 갈등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참는 사랑입니다. 화가 나는데,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참고 사니까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사랑하는데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조건이 붙어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사랑은 우리 것과는 다릅니다. 요셉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배다른 형제지만 친형제처럼 사랑합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고,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이런 용서와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는데 애쓰거나 고민하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랑합니다. 여기에 감동을 받습니다. 요셉은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랑한 것입니다.
요셉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요셉의 사랑이 충격적인 이유는 조건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잘 해줘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자라면서 배다른 형들로부터 많은 시기 질투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미움을 받았으면 우물 구덩이에 그를 집어넣었겠습니까? 얼마나 미움을 받았으면 애굽에 노예로 팔았겠습니까? 형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요셉은 형들에게 그런 감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셉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사랑받을 자격도 없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은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동기를 선하게 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저는 가족이든 이웃이든 그 누구라도 오늘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잘못을 해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처음 잘못을 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바로 이런 사랑을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아버지 집에 있을 때부터 사랑했습니다.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형들을 미워하거나 경쟁하기 위해 했다기보다는 요셉의 정직성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아무리 자기를 힘들게 해도 순진하게 사랑했습니다. 형들을 위해 식사를 갖다 주고, 형들이 죽이려 할 때도 ‘형 왜 그래요?’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특징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애굽에 팔려가서, 감옥에 들어가서도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형들에 대해 한을 품고 원망을 한 기록이 한 군데에도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이었지만 요셉은 감정이 없었습니다. 잊은 것입니다. 오히려 20년 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헤어져 있어도 요셉의 마음속에는 형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그 증거는 요셉이 형들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권위로 형들을 제압하기보다 단순히 ‘형’하며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가슴이 너무 벅차서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것은 마음 속 깊이 형들을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화나게 하면 화를 내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나한테 잘해주거나 못해주거나, 화를 나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인생을 파멸로 끌고 갔다 할지라도 그냥 좋아하는 사랑입니다. 저는 늘 이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부러워합니다. 제 안에 이런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든지,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일지라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다 잊고 내가 천진난만하게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과 기름 부으심이 흘러넘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숨어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면서도 형들에게 고통을 주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가 요셉입니다.’ 라고 말하면 될 일을,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요셉은 형들의 곡식 자루에 돈을 넣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의 자루에는 은잔을 숨깁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짐을 수색하게 합니다. 그리고 은잔이 발견되자 도둑놈 취급을 합니다. 이 음모를 꾸민 사람이 요셉입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요. 용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무조건 용서하고, 잘 해주는 것이 사랑입니까? 무조건 용서하고, 잘 해주었는데도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와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변화시켰다면, 그것 또한 용서와 사랑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준 시련과 고통이라는 시험을 통해서, 기가 막히게 성숙한 사람들로 변화됩니다. 보십시오. 아버지에 대한 불평이 많던 아들들이 변화되어 이제는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들의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다른 형제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경쟁을 했었지만,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고 사랑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냐민을 보호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공동책임을 지겠다는 하나 됨의 사랑의 가족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동책임을 지겠다는 하나 됨의 이 용서와 사랑이 우리 모두와 가정과 삶 속에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