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죄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싸워서 물리쳐야 할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절부터 6절의 말씀을 보면, 블레셋 장수들과 그들이 가진 병기 등에 대한 묘사가 여러 가지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본서 저자는 블레셋 장수들에 대하여 4절에서 ‘장대한 자’ 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가 가진 창자루에 대하여 ‘베틀채’ 와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6절에서는 한 키 큰 장수가 매손과 매발에 여섯 개씩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장수들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대하는 자들로 하여금 공포스러움과 혐오스러움을 자아내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이들을 직접 마주 대하고 싸우는 군대야 어떠했겠습니까? 만일 다윗의 용사들이 이들을 상대로 두려워하고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자포자기했다면 이스라엘은 필경 블레셋의 속국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본문에서 다윗과 다윗의 군대가 이들을 두려워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대하여 맞서 싸웠고 그 결과 불레셋의 장수들 모두는 하나같이 그들 앞에 거꾸러졌던 것입니다.
본문의 블레셋 장수들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취하였던 자세는, 우리를 대적하여 밀려드는 죄의 세력들에 대하여, 성도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본문에 나온 이들 블레셋 군대의 장수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을 대표하는 세력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막강한 힘과 끔찍하리만치 잔혹스러운 풍채, 그리고 그들의 풍채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병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군대를 대적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런 막강한 세력들을 보게 되면,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고 겁을 먹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두려워만 한다면, 그는 결국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죄악된 세력들 앞에 굽신대고 마는 비참한 지경에 처해질 것이고, 궁극적으로 죄의 노예 상태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는 바 그토록 무시무시한 대적들을 상대로 이스라엘 군대의 장수들이 거둔 승리는 성경 여러 곳에 비슷한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감히 세상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적들을 상대로 놀라운 승리를 거둔 여러 믿음의 사람들의 실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모세가 애굽왕 바로가 두려워서 그에게 굽신거렸다면, 과연 출애굽이라는 구원과 승리의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었겠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다른 이스라엘의 열 정탐꾼들과 같이 아낙 자손의 장대함과 가나안의 거대한 성곽, 그 성읍의 사람들이 가진 철병거를 두려워했다면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이 만일 골리앗의 장대함과 그의 무시무시한 호령을 듣고 사울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 모든 병사들과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면 과연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가정의 결과는 모두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막강한 세력을 가진 바로 앞에서 모세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다윗 역시도 막강하고 거대한 그들의 대적을 상대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당당히 나아가 맞서 싸웠고 최후에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믿음의 용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세상의 온갖 죄악된 세력, 죄악된 풍조를 상대로 싸워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두려움없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감히 대적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대적들을 우리 앞에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백성의 승리의 기치를 높이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더이상 죄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싸워 물리쳐야할 대상으로 삼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담대히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