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2022. 2. 25. 금요일.
저녁에 어머니 제사를 지냈다.
어머니는 2015. 2. 25. 밤11시 15분에 돌아가셨고, 이틀 뒤인 2월 27일에 고향 서낭댕이 앞산에 아버지 묘에 합장했다.
그날 왜그리 춥던지...
오늘은 2월 26일. 토요일.
점심을 먹고는 외출하려고 하니 아내가 방문을 열고는 '거실로 나와요'라고 말한다.
식탁 위에 생일케이크가 올려져 있다?
큰딸, 막내아들도 있고?
'내 생일 케이크여요.'
'아니... 당신 생일은 3월 4일이 아녀?'
'미리 앞당길려고요.'
이웃 아파트 단지에 사는 큰아들네와 동대문구에 사는 작은딸네는 부르지 않았단다.
코로나-19가 겁이 난다며 다 함께 모이는 것을 꺼린다.
3월 4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세 가지의 경사가 겹쳤다.
아내의 생일, 내 결혼기념일(44주년), 친손자 초등학교 입학식날.
아내, 큰딸, 막내아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케이크 한 덩어리를 먹고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나갔다.
하늘이 뿌옇고, 바람도 불고, 미세먼지가 일렁거리기에 조금만 걷고는 이내 귀가했다.
서호 도로변 사거리 입구에는 소형 트럭 한 대가 서 있고, 고구마, 감자, 참외, 양파, 대파, 당근 등을 판다.
고구마를 씻어서 담은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는 3,000원이라는 쪽지가 붙었다.
머뭇거리는 나한테 장사꾼은 '두 그릇에 5,000원'이라고 말하기에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1,000원 할인받았으니 이게 어디냐?
당뇨병환자가 생고구마를 샀으니 아내한테 지청구를 먹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허름한 먹을거리가 훨씬 뱃속이 편하며 좋다. 값이 헐하면서 단맛이 나기에.
1.
<국보문학카페> '지당 이흥규 작품방'에 '순행'이란 시가 떴다.
아래처럼 조금만 인용한다. 나한테는 글감이 떠오르기에
엊그제 바람끝 살을 에더니
어느새 눈부신 봄 동산
곰밤부리, 민들레, 씀바귀도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네.
나는 아래처럼 댓글 달았다.
'곰밤부리'가 무슨 식물인지를 몰라서 검색하니 '별꽃'이군요.
충남 보령 산골마을 텃밭에서는 '별꽃'이라고 하지요.
자잘한 봄철나물... 야생 들풀인데도 위 시에서는 반갑게 얼굴을 내밀었군요.
곰밤부리(별꽃), 민들레, 씀바귀 등이 있는 서해안 제 시골텃밭으로 내려가고 싶군요.
추운 겨울철인데도 용케도 버텨서 살아남은 키 작은 야생화.
덕분에 식물학 공부를 더 하며...
글맛 고마워서 엄지 척!
나는 '곰발부리'라는 식물명칭을 처음으로 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진을 보니 '별꽃'이다. 이른 봄철에 흔하디 흔한 풀이다.
어린 줄기와 잎사귀를 뜯어서 봄나물로 무쳐서 먹는다고 한다.
서해안 산고라당 아래에 있는 내 시골집 텃밭에는 이런 야생화가 잔뜩 있다.
나는 농약(제초제)을 전혀 치지 않기에 내 텃밭의 식물은 모두 자연상태 그대로의 식재료가 된다.
'보령의 야생화' 사진첩에는 '개별꽃, 쇠별꽃, 큰개별꽃' 등이 있다.
인터넷으로 더 검색한다. 벼룩나물, 점나도나물, 털점나도나물, 각시통점나도나물, 벼룩이자리 등..
별꽃
아쉽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2014년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로는 나는 텃밭농사를 포기했고, 더우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참 서울로 되올라왔기에 지금은 텃밭농사를 짓지 않는다.
농사를 짓지 않은 지도 만8년이 더 지났기에 식물 이름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만 떠오를 뿐. 대부분은 잊어버리고 있다.
1.
<국보문학카페> '일반 자작시방'에 김육주 님의 '하루의 여정 끝에서'라는 시가 올랐다.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이 듬뚝 들어 있기에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았고,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린다.
나한테는 많은 글감이 떠오르기에.
은비늘 : 은빛이 나는 비늘
온밤 : 하룻밤 모두
자리끼 : 밤에 자다가 깨었을 때 마시기 위해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
아름답고 구수한 우리말이 많이 있기에 빙그레 웃으면서 엄지 척!
예전에 시골집에서 살았는데... 한겨울에는 엄청나게 추웠지요.
흙벽으로 만든 집이라서 위풍이 센 방이었고, 방바닥은 어느새 식어버렸고, 새벽녘에는 이마가 서늘했지요.
자다가 일어나 대접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곧 잠자리에 들어갔지요.
글 또 기다립니다.
충남 보령 웅천읍 화망마을에 있는 내 시골집.
정말로 낡은 옛집이다. 1957년 아버지가 대전에서 트럭으로 목재를 사오고, 대전의 목수를 데리고 와서 여러 달 옛집을 얼추 헐어내고는 개보수한 함석집. 당시에는 근동에서 알아주는 함석집이었다.
사람 머리카락을 끓여서 만든 석회로 벽을 바르고, 황토로 벽을 만든 탓인지 위품은 늘 서늘했다.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잔뜩 넣고는 불 때서 구둘장 방바닥이 따끈따끈하게 덮혔으나 새벽녘에는 방바닥이 식어서 때로는 추웠다.
한겨울, 추운 날에는 머리맡에 있는 '자리끼'의 물이 차갑게 식기 마련이다. 그래도 목이 마르면 물을 두어 모금 마신 뒤에는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둘러쓰고는 잠을 다시 잤다.
안방, 건너방, 뒤켠방, 안사랑방, 바깥사랑방 등에서... 지금은 바깥사랑방만 아궁이만 남았다. 모두 기름보일러를 설치했기에 밤새토록 방이 뜻뜻하게 달아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흔일곱 살 나던 해에 어머니는 먼 세상으로 떠났고, 나는 그참 서울로 되올라왔기에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나 되었다.
.... ....
텃밭 세 자리에 가득 찼던 과일나무, 정원수, 화초들은 어찌 되었을까?
올 3월 중순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많은 글감이 떠오른다.
이쯤에서 접는다.
2022. 2. 26. 토요일. 밤중에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