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같은 아파트단지에 초등학교 친구가 산다. 어려서 이웃 마을에서 자라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고 고등학교는 다르다. 이 친구가 먼저 공직에 입문하고 나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출발했다. 친구는 도청 고위직 은퇴 후 아파트 뜰에 꽃을 가꾸며 꽃의 특성과 재배 방법을 유튜브로 소개해 시청자를 늘려가고 있다. 현직 시절 화초를 전혀 몰랐던 친구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내가 우연히 알고 지내는 한 블로거는 야생화에 대한 식견이 대단하다. 어떤 경로로 화훼식물에 해박해졌는지 만나 얘기를 나눠보지 못해 알 길 없었다. 생활권이 다소 떨어진 부산 기장 바닷가 사는 분인데 여가에 텃밭 가꾸기와 절집을 순례하면서 소일하는 듯했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는 매일 야생화로 온통 포스팅해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방문객까지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사진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기교나 기능에서 그쪽 전문가를 부러워한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글감으로 삼는 자연 풍광을 사진으로 담는데 들꽃도 포함된다. 중앙 일간지 사진기자로 명성이 난 분을 기사를 통해 알게 되어 더 살폈더니 야생화 사진을 예술 수준으로 승화시킨 대가였다. 그 기자가 남겨가는 사진을 통해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분의 중앙 일간지 문화부 기자는 지금은 연륜이 쌓여 논설위원으로 물러나 제 직분을 다한다. 역시 나하고는 개인적인 연은 없기에 뵌 적도 없다만 기사를 통해 그의 사고와 활동 영역을 아는 정도다. 그는 박완서나 최명희의 소설에 나오는 꽃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친근감 있게 소개를 잘했다. 이분의 야생화 탐닉 경지는 독보적이라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지 싶다.
지면에서 알고 지내는 그 논설위원이 엊그제 상사화를 보고 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상으로 보도된 기사가 아니고 사적 SNS 글에서 그는 상사화를 보려고 광릉 수목원을 다녀왔다고 했다. 국립 광릉 수목원은 경기도 포천으로 우리 지역보다 위도가 제법 위쪽인데 거기서 상사화가 피어난 모양이었다. 내가 사는 남녘에서 상사화가 어디에 자생하는지 훤하고 개화 시기도 잘 안다.
우리 지역 산중 숲에서 자생하는 상사화는 서북산 감재와 여항산 미산령 일대에서 봤다. 도심에서 비교적 가까운 용추계곡으로 들어간 진례산성 성내 포곡정 근처 바위 더미 아래도 군락지가 있다. 그제는 상사화 개화 상황이 궁금해 진례산성 성내를 찾았더니 아직 꽃대가 올라오지 않아 때가 일러 꽃을 보질 못했다. 그곳 상사화는 말복과 입추 절기 팔월 초중순 꽃을 피웠더랬다.
앞서 언급한 논설위원이 광릉 수목원에서 봤다는 상사화는 순수 자생지가 아닌 사람 손길로 가꾸어진 화초인 듯했다. 상사화의 개화 상황이 궁금해 그제 찾았던 진례산성 포곡정 근처 군락지는 아직 꽃대가 솟지 않았는데, 어제 삼정자동 마애여래좌상 앞 꽃밭 상사화는 꽃을 피워 있어 반가웠다. 상사화는 숲속에 절로 자람과 손길로 가꿈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삼월 어느 날부터 글쓰기에서 새로운 영역을 하나 더 넓혔다. 기존 생활 속에서 일기 써 듯 남기는 글 말고 자작 시조를 아침마다 초등 동기의 단톡방과 몇몇 지기들에게 관련 사진과 함께 날려 보낸다. 지난봄부터 지금까지 아침마다 남기는 시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니 100여 수 넘게 이어가고 있다. 오늘 아침 글감은 어제 삼정자동 마애여래좌상 앞 꽃밭에서 본 상사화였다.
“장맛비 물러가고 무더위 기승인데 / 한여름 수풀 속에 외가닥 꽃대 솟아 / 연분홍 꽃잎 펼치는 상사화를 보게나 // 잎맥은 사그라져 꽃잎은 잎맥 못 봐 / 사무친 그리움은 안으로 곰삭혀서 / 한 뿌리 같은 몸인데 마주 못할 운명아” 오늘 아침 초등 친구들과 지기들에게 보낸 ‘상사화’ 전문이다. 같은 생활권에 사는 남녀 친구들과 격월로 얼굴을 보는데 오늘이 그날로 저녁 자리다. 23.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