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고객을 잡아라’-.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주택업계에 내려진 특명이다. 소비 위축, 분양시장 침체 등으로 중산층 이하는 부동산 투자 의욕을 거의 상실한 반면 여유층은 여전히 구매력이 살아 있다고 판단해서다.
1999년 외환위기때도 주택업체들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영등포구 여의도동 트럼프월드 등과 같은 고가의 주택을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이런 경험에 따라 분양을 앞둔 회사들은 홍보 대상을 고소득자로 집중하는 ‘부자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이달 26일 부천 중동 이안더클래식 주거용 오피스텔을 분양하는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은 부천시내 중소기업 사장과 배기량 3000CC 이상 고급 승용차 소유자 등을 대상으로 일대일 홍보를 하고 있다.
인근 백화점과 연계해 VIP고객에게만 안내장을 발송하고, 이들을 상대로 승용차 경품행사도 했다. 회사측 관계자는 “소비자 마케팅 조사 결과 큰 평수일수록 구매의욕이 높아 평형대도 대형(51∼81평형)으로만 구성했다”며 “75ㆍ81평형 펜트하우스 8실에는 실당 서너명의 예약자가 줄을 섰다”고 말했다.
지난달 분양한 부산 사직동 LG자이는 의도적으로 ‘부산의 타워팰리스’를 표방했다. 20∼30평형대는 빼고 49, 57, 88평형 대형으로만 설계하고 의사ㆍ변호사ㆍ자영업자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만 타킷으로 삼았다. 모델하우스 내부도 이런 사람에게만 초청장을 발송해 선별적으로 보여줬다.
이 회사 한상욱 분양소장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광고는 일절 배제하고 철저히 부자 마케팅을 펼친 결과 미분양 사태인 부산에서 85%를 팔았다”며 “중산층 수요는 죽었지만 부자 수요는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계약자를 모델하우스로 초청, 호텔 출장 와인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급 외제 승용차 1대와 PDP TV 20대 등을 주는 경품행사도 열었다. 입소문을 내 남아 있는 미분양도 팔아치우기 위해서다.
지난 달 말 인천 논현지구에서 분양한 신영 지웰도 시화공단과 남동공단의 사장들, 알부자로 소문난 소래포구 횟집 상인 등을 파고든 결과 36, 48평형은 일부 남아 있지만 56, 72, 78평형 등 대형은 모두 팔았다.
신영 강재주 팀장은 “지역에서 부를 일군 사람들은 살던 곳을 잘 떠나지 않는다. 논현지구에 신흥 부자동네가 생긴다는 것을 집중 홍보했다”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성남시 시흥동에 평당 2천만원 짜리 린든그로브 빌라를 분양 중인 코오롱건설은 강남의 시가 10억원 이상 아파트 거주자, 강남 스포츠센터ㆍ고급 헤어샵 등을 돌며 친구나 친지 등에게 입소문을 내주길 바라고 있다. 부자들에게 민감한 종합부동산세ㆍ재산세 등 세금 계산 서비스도 해주고 있다.
상가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 25일 계약을 받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아데나타워 복합쇼핑몰의 경우 강남 사람이 모이는 스포츠센터와 골프 클럽하우스ㆍ유명 식당가 등을 돌며 안내장과 사은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고액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을 모아 투자강연회도 열었다.
부자를 겨냥하면서 상품도 그에 걸맞게 고급화하는 추세다. 이달 말 분양할 부산 용호동 자이는 주상복합아파트에나 주로 볼 수 있었던 대규모 휘트니스센터와 코인세탁실ㆍ게스트룸ㆍ도서관ㆍ원기회복실 등이 들어오고, 19일 같은 지역에 분양할 오륙도 SK뷰에도 일반아파트지만 휘트니스센터ㆍ에어로빅시설ㆍ골프연습장ㆍ수영장ㆍ유아놀이방 등이 제공된다.
미르하우징 임종근 사장은 “시장이 침체될수록 결국 지갑을 여는 것은 부자들”이라며 “정부가 시장을 조일수록 업체들은 고가 상품으로 불황을 탈출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