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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달이면 어때, 그대 땀과 눈물이 金
우상혁, 거듭된 실패에도 “가보자”
신유빈, 부상에도 포기 않고 도전
국민도 감동의 투혼에 박수 보내
도쿄올림픽 17일간 열전 끝 폐막
근대5종 동메달 후배 꼭 안아준 ‘아름다운 4위’ 선배 7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전웅태(26·왼쪽)와 정진화(32)가 3.2km 육상과 사격을 결합한 레이저런을 마친 뒤 땀범벅에 경기장 잔디가 몸에 달라붙은 상태로 깊은 포옹을 나누고 있다. 정진화는 전웅태와 4초 차이로 4위를 했다. 전웅태가 따낸 한국 근대5종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은 8일 폐막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마지막 메달이 됐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메달 하나도 못 따왔는데 카메라가 너무 많아요.”
한국 탁구 대표 신유빈(17·대한항공)은 2020 도쿄 올림픽 출전을 마치고 돌아오던 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취재진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빈손’으로 돌아온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쏠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 탁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노메달에 그쳤다. 그래도 국민들은 팔꿈치가 탁구대에 쓸려 피를 흘리면서도 반창고 하나만 붙인 채 아무렇지 않게 다시 경기를 이어간 신유빈에게 열광했다.
올림픽은 무조건 금메달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은·동메달을 딴 선수는 죄인처럼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 때 우리는 메달과 무관하게 선수들의 도전 그 자체를 응원하는 법을 배웠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우상혁(25·상무)은 1일 열린 남자 높이뛰기에서 4위를 차지했다.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며 24년 만에 한국기록(2m35)을 새로 쓴 뒤에도 우상혁은 계속 웃으면서 다음 높이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가보자”고 외치다 거수경례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그의 얼굴 표정 어디에도 아쉬움은 남아 있지 않았다. 우상혁은 “2m38을 평생의 목표로 잡았는데 올림픽에서 한국기록을 넘은 기념으로 2m39에 도전해 봤다. 내게 선물과도 같은 상황이 올림픽에서 벌어져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8일 폐막한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는 총 12개 세부 종목에서 4위를 기록했다. 여름올림픽 출전 역사상 한국이 4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대회가 도쿄 올림픽이다. 더 낮은 순위를 기록했더라도 괜찮았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그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년 연기돼 5년의 기다림 끝에 올랐다는 사실은 다음 대회 메달을 꿈꾸게 만드는 ‘희망’이며 한국 스포츠의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안되면 또 도전하면 돼”… ‘과정’을 즐기는 그들
그대 땀과 눈물이 金
한국 수영의 희망으로 떠오른 황선우(18·서울체고)는 메달 없이 귀국하고도 “후련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도 그를 행복하게 만든 요소다.
2020 도쿄 올림픽을 투혼으로 빛낸 우상혁(육상 남자 높이뛰기), 신유빈(여자 탁구), 황선우(남자 수영), 김세희(여자 근대5종·왼쪽 사진부터). 이들은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메달을 딴 어떤 선수 못지않은 감동을 국민에게 안겨줬다. 도쿄=뉴스1·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황선우는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100m 지점까지 세계 최고 기록 페이스로 앞서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유형 100m 준결선 때는 아시아 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 선수 최초이자 아시아인으로 65년 만에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황선우 덕분에 국민들도 ‘목적지’와 ‘결과’가 아닌 ‘경로’와 ‘과정’에 주목했다.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여자부 8위에 오른 서채현(18·서울신정고) 역시 3년 후인 2024 파리 올림픽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이번 대회는 스피드, 볼더링, 리드를 합쳐 순위를 정했지만 파리에서는 서채현이 가장 약한 스피드가 세부 종목으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서채현을 응원하려고 국민들은 기꺼이 스포츠클라이밍 세부 종목별 특성까지 공부했다.
남자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에 오르며 한국 다이빙 역사상 최고 올림픽 순위를 남긴 우하람(23·국민체육진흥공단)이나 한국 올림픽 근대5종 여자 개인전 최고 순위(11위) 기록을 갈아 치운 김세희(26·BNK저축은행)도 파리를 꿈꾼다. 우하람은 “연이어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고 있다. 하지만 메달이 없으면 이런 수식어를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것 같다. 다음 올림픽에서는 꼭 메달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여자 유도 48kg급 간판 강유정(25·순천시청)은 경기 내용보다 준비 과정으로 화제를 모았다. 강유정은 지난달 24일 대회 첫 경기 시작 2분 만에 탈락했지만 계체 과정에서 150g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하얗게 밀고 나와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줬다. 게다가 강유정은 자신이 탈락한 다음 날 52kg급 대표 박다솔(25·순천시청)의 연습 도우미로 나서 동료의 올림픽 꿈을 응원하기도 했다. 장인화 선수단장은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경기를 즐기고, 져도 최선을 다한 것에 크게 만족하는 어린 선수들의 당당한 모습에 국민들이 매료됐다”고 말했다.
물론 3년 뒤 결과가 달콤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안 되면 또 도전하면 된다. 올림픽 데뷔전이던 2008년 베이징 대회 때 요트 레이저급에서 28위에 자리한 하지민(32·해운대구청)은 이번 대회에서는 7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 요트 역사상 올림픽 최고 순위를 남겼다.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부딪치고 또 부딪쳐 얻어낸 결과였다.
황규인 기자, 도쿄=김배중 기자
전웅태, 근대5종 첫 銅… 4위 정진화 “그의 등을 보며 뛰어 다행”
[도쿄올림픽]사상 첫 올림픽 메달 일군 브로맨스
한국 근대5종 간판스타 전웅태(오른쪽)가 7일 일본 도쿄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확정한 뒤 양손을 하늘로 벌린 채 기뻐하고 있다. 오른팔에 나침반, 왕관, 고래, 닻을 새긴 문신은 “최고의 자리에서 오래 있겠다”는 전웅태의 각오다. 전웅태의 등에 달린 4번을 보고 뛴 정진화(왼쪽)는 전웅태보다 4초 늦게 결승선을 통과해 4위를 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메달 색이 결정되는 마지막 레이저런(육상과 사격이 결합된 종목) 경기를 앞두고 전웅태(26·광주광역시청)와 정진화(32·LH)는 코스 점검을 위해 나란히 도쿄 스타디움을 둘러봤다. 한껏 호흡을 가다듬고는 한 차례 손바닥을 마주치고 포옹을 했다. 국제대회 때마다 전 세계를 누비면서 “올림픽에선 꼭 함께 시상대에 서자”고 했던 약속을 되새겼다.
약 11분에 걸쳐 사격을 하며 3.2km를 도는 혼신의 힘을 다한 레이스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먼저 찾았다. 그들은 땀범벅이 된 채로 다시 한번 부둥켜안았다. 한 명은 메달을 따냈고, 한 명은 메달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그들에겐 메달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정진화는 경기 뒤 “동생이 3등을 해서 메달을 따고 근대5종을 알릴 수 있어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 근대5종 첫 올림픽 메달 만든 브로맨스
도쿄에서 한국 근대5종 역사상 첫 메달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건 바로 전웅태와 정진화의 ‘브로맨스’(남성 간의 친밀하고 깊은 우정)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7일 일본 도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에서 전웅태는 영국의 조지프 충, 이집트의 아흐메드 엘젠디에 이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해 총점 1470점으로 동메달을 땄다. 정진화(총점 1466점)는 등번호 4번을 달고 뛴 전웅태보다 4초 늦게 들어와 4위에 올랐다.
1912년 근대5종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의 첫 근대5종 메달이다. 한국은 1964년 도쿄 대회부터 근대5종에 선수를 출전시켜왔다. 시상대에서 내려온 전웅태는 “56년(정확히는 57년) 이루지 못한 한을 풀었다. 일본 하늘로 태극기가 올라가 기쁘다”고 했다.
2012년 전웅태가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한솥밥을 먹은 두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도 충실히 서로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냈다. 레이저런 전까지 종합 4위를 달리던 전웅태는 2위를 하고 있던 정진화와 한동안 2, 3위 경합을 벌였다. 이내 레이저런에 강점이 있는 전웅태가 치고 나왔다. 육상에 강한 엘젠디가 사격에서 예상 밖 선전을 하면서 결국 전웅태가 3위, 정진화가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정진화는 “4등만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4등을 해서 안타깝다”면서도 “다른 사람이 아닌 동생 웅태의 등을 보면서 뛰어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진화의 이야기를 들은 전웅태도 “진화 형은 정말 ‘맘따남(마음이 따뜻한 남자)’”이라며 “진화 형이랑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 만큼 너무 힘들게 운동했다.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 올림픽을 마친 정진화는 11월 2년간 교제한 일반인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
○ 승마, 펜싱 전문 코치의 체계적 훈련
근대5종 새 역사에는 숨은 조력자도 많다. 최은종 감독이 이끈 근대5종 대표팀은 김성진 코치 외에도 펜싱 전문 코치(3명), 승마 전문 코치(2명), 트레이너(2명) 등을 선임해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오전 5시 42분 기상 알람을 맞춰놓는다는 전웅태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레이저런, 수영, 승마, 펜싱 순으로 약 2시간씩 훈련해 왔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KISS)도 선수별로 기초, 전문, 정밀체력을 측정해 맞춤형 체력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가족의 든든한 후원이 큰 힘이 됐다.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다는 아버지 전원휘 씨(54)는 “웅태가 주변의 높은 관심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부담을 느꼈다. 집에서만큼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경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 방윤정 씨(53)는 “웅태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에 불고기를 해놓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반려견 웅자, 단풍이도 전웅태를 기다리고 있다.
8일 올림픽 폐회식에서 한국선수단 기수를 맡은 전웅태는 9일 금의환향한다.
근대5종
펜싱(에페), 수영(영법 관계없이 200m), 승마(장애물 비월)를 소화한 뒤 사격과 육상이 결합된 레이저런으로 마무리해 순위를 매긴다. 레이저런은 4개의 서킷으로 구성된다. 1개의 서킷은 육상 800m와 레이저건 사격 5발로 구성된다. 총 3200m를 달리는 동안 사격에서 5발의 명중 시간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도쿄=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