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향신문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면서 전화가 왔었는데,
몇가지 질문 후에 연령대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이십대 중반이라고 했다가 아차 하고 이십대 후반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ㅋㅋ 그렇게 세월은 느끼지도 못하게 흘러가나 봅니다..
선배언니에게서 지난주말에 홍천에 갔었다는 문자 메시지에 저도 오래간만에 시골집에 가서 홍시도 따먹고 생신선물로 사 간 티셔츠를 멋쩍게 입어보시면서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 삼남매 할아버지 할머니 모처럼 일곱식구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잤었던 그 포근하고 사랑스런 기억을 짤막하게 줄여 잘 살고 있다는 인사와 함께 문자메시지로 답을 해주었고,,
윗분이 다른데로 강연 가신 틈을 타서 낮잠도 달게 잤습니다..ㅋㅋ
어제 방송된 pd수첩 재방송을 좀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보기로 보았고, 빅마마의 체념이란 노랠 찾아서 들어보았습니다.. 아침엔 출근하자마자,,요즘 일찍 퇴근하는 관계로 일찍 집에 가서 보았던 논스톱4 라는 드라마에 잠깐 나왔던 노래를 찾아서 들었습니다. 크랜베리스의 'Linger'란 노래였습니다...그리고 그 노래 가사의 뜻을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가사를 보고 알게 되었구요..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오나오다'라는 책을 몇십쪽 읽은 듯하구요..사실은 재밌어서 아껴 읽고 있는 중이거든여..ㅎㅎ
오늘도 이렇게 일하러 온건지 집에서 노는건지 구분이 되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저보다 좀 뻥튀겨서 10살쯤 어린 동생들은 10시간이 넘는 시험과 싸우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드네요..
고등학교 내내 자취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때론 도시애들 도시락 같은 도시락과 할머니가 싸주시는 시골스런 제 도시락이 참 비교가 많이 되어서 우울했던 적도 많았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금방 다시 사줄테니 신고다니라면서 엄마가 사준 단화를 3년내내 신다가 졸업무렵에 새 신발을 사고 좋아했던 기억, 입학 하던날, 조금은 큰 교복에 시골스런 복장을 한 엄마를 빼면 입학식장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느꼈던 그 막막함..가정집과 이어진 방 하나였던 화장실을 주인집과 같이 써야했던 그 집에서 겨울이면 유달리 위풍이 센 그 겨울을 나면서 보일러도 따로 있지 않아 같이 살던 친할머니는 늘 겨울이면 추위와 화장실에 고생하셨고(그 경험 때문에 그 다음부터의 자취 생활에서는 화장실의 비중이 커지기도 했지요..ㅋㅋ), 밤에 공부하려면 무릎이 시려서 작은 이불을 덮고 공부해야 했었죠...지금까지 제 책상이라고는 가져본 적도 없었으니, 그때도 집에서 가져간 넓다란 상에 보자기를 깔아서 그걸 책상으로 쓰면서 앉아서 공부를 했었지요..
이 카페 회원인 제 친구 초로기는 좀 알려는지도 모르겠군요..
향수병에 시달리면서 1년을 보내고, 조금은 적응한 2학년을 보내고, 완전히 적응해 3학년을 보내고...
수능시험일.. 시험 때문에 며칠 전부터 와 계시던 엄마가 해주시는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점심을 먹고 시험이 끝나고 시험장을 나오니 밖은 완전히 아수라장입니다... 부모님들이 시험이 끝난 자식들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그 틈에 제가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저는 역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와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채점을 하는데 너무 어이없게 점수가 낮게 나와서 전 표정이 어두워졌었고 옆에 계시던 엄마는 어쩔줄을 모르셨지요..
성적은 정말 안 좋았지만, 무슨 배짱이었는지 제가 다녔던 학교 학과 단 한곳에만 지원서를 냈었고 본고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본고사 보던날 아침...
집과 학교가 멀어서 아침 일찍 나와서 버스를 타고 충남대로 가고 있었죠...날이 밝을 무렵 둔산신시가지 쪽을 지나게 되었는데, 아파트 사이사이로 동이 터오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불안해서 놀러나가던 길에 시골 동네 하늘 위로 생겼던 무지개도 잊을 수가 없구요..
첫댓글 가녀린 추억이 가슴을 가득 담고 있겠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