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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투한(半日偸閑)
반나절의 한가로움을 훔쳤다는 뜻으로, 바쁜 일상생활에서 얻은 한가로움을 일컫는 말이다.
半 : 반 반(十/3)
日 : 날 일(日/0)
偸 : 훔칠 투(亻/9)
閑 : 한가할 한(門/4)
출전 : 이승소(李承召)의 시 강정(江亭) 외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이승소(李承召)가 삼탄집(三灘集) 제6권 시(詩) 강정(江亭)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湖上新亭接大荒
호숫가의 새 정자가 하늘 접해 서 있으매
乾坤淸氣入詩腸
하늘과 땅 맑은 기운 시 창자 속 들어오네
百年失脚紅塵路
한 백년간 홍진 길로 잘못 발을 내디뎠다
半日偸閑綠野堂
반나절 간 녹야당서 한가로움 훔치었네
翠疊山屛明霽景
푸름 겹친 산 병풍은 맑은 경치 산뜻하고
白鋪江練瀉秋光
희게 펴진 강 비단은 가을빛을 쏟아내네
登高能賦非吾事
높이 올라 시 읊는 건 나의 일이 아니지만
爭奈風煙引興長
바람 안개 흥을 길게 끄는 데야 어이하리
東華倦客此登臨
동화문서 싫증 난 객 이곳 와서 올라보니
世上閑忙不到心
이 세상의 한가함과 바쁨 모두 잊겠구나
遠樹微茫來暝色
먼 숲 모습 희미하여 저녁 어둠 내려오고
平蕪迢遰接秋陰
넓은 들판 아득 멀어 가을 그늘 접하였네
輞川山水王維畫
망천 시내 산수 모습 왕유 있어 그리었고
韋曲風煙杜子吟
위곡 굽이 바람 안개 두자 있어 읊조렸네
萬事年來思爛熟
모든 일들 근년 들어 이리저리 따져보니
不如歸去老江潯
돌아가서 강가에서 늙어감만 못하리라
[註]
○ 녹야당(綠野堂) : 본디는 당나라 때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배도(裴度)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지내던 당의 이름인데, 전하여 고관으로 있다가 물러난 사람이 거처하는 당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배도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낙양(洛陽) 남쪽의 오교(午橋)에 꽃나무 만 그루를 심고서 그 중앙에 여름에 더위를 식힐 누대와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집을 지어 녹야당이라 이름을 붙이고는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 문인들과 모여 시주(詩酒)로 소일하였다. (新唐書 卷173 裴度列傳)
○ 동화문(東華門) : 궁성의 동쪽 문 이름인데, 이곳에 중앙 관서들이 모여 있다.
○ 망천(輞川) …… 그리었고 : 망천은 당나라의 시인 왕유(王維)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왕유가 이곳에다 별장을 짓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 20곳을 골라 각기 이름을 붙인 다음 시를 읊었는데, 세상에서는 이를 망천이십경(輞川二十景)이라고 한다. (王右丞集 卷14)
○ 위곡(韋曲) …… 읊조렸네 : 위곡은 장안 남쪽에 있는 명승지이고, 두자(杜子)는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위곡 부근에 있는 제오교(第五橋)와 황자파(皇子陂) 등의 명승지에서 시를 읊었다.
반일투한(半日偸閑)
당나라 때 이섭(李涉)은 '학림사 승방에 쓰다(題鶴林寺僧舍)'의 3-4구에서 "죽원에 들렀다가 스님 만나 얘기하니, 뜬 인생이 반나절의 한가로움 얻었구려(因過竹院逢僧話, 偸得浮生半日閑)"라고 노래했다.
시구 중 투한(偸閑)은 한가로움을 훔친다는 말이다. 한가로움은 일이 없다고 거저 오는 법이 없으니, 애를 써서 훔쳐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노력해야 한가로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다 늙어 할 일이 없는 것은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 무료한 것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찌 보내나 하고 한숨 쉬는 것은 한가로운 상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題鶴林寺僧舍(제학림사승사) 李涉(이섭)
(학림사 승방 벽에 쓰다)
終日昏昏醉夢間(종일혼혼취몽간)
忽聞春盡强登山(홀문춘진강등산)
종일토록 취한 듯 꿈꾸는 듯 정신없는 가운데, 갑자기 봄 지나간다는 소식에 억지로 산에 올랐네
因過竹院逢僧話(인과죽원봉승화)
又得浮生半日閑(우득부생반일한)
대나무 정원을 지나다 스님을 만나 이야기 나누게 되니, 덧없는 인생에서 반나절의 여유를 얻게 되었구나
다음은 이승소(李承召)가 남긴 시 '강정(江亭)'의 한 대목이다.
百年失脚紅塵路, 半日偸閑綠野堂.
백년 인생 홍진 길에 발을 잘못 내딛다가, 반나절 녹야당(綠野堂)서 한가로움 훔쳤다오.
翠疊山屛明霽景, 白鋪江練瀉秋光.
짙푸르게 둘러친 산 갠 풍경 환하고, 희게 편 비단 강물 가을빛이 쏟아진다.
평생을 정치 현장에서 동분서주했던 그가 노년의 어느 날 강가 정자에 올랐다가 가을 햇살 부서지는 강물과 그 빛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숲을 보며 마음이 개운해져서 그 반나절의 투한을 기뻐한 대목이다.
서거정(徐居正)은 '만성(漫成)'에서 또 이렇게 읊는다.
紅塵騎馬十年忙, 一日偸閑趣亦長.
티끌 세상 말 올라타 십 년간을 분주타가, 하루의 한가함 훔쳐 흥취가 거나하다.
却勝前時衙罷去, 靑衫濕盡汗翻漿.
지난날 관청 일을 마치고 나올 적에, 관복 젖고 땀이 줄줄 흐르던 것보다 낫네.
관복이 땀에 다 젖도록 분주했던 10년 벼슬살이 중에 하루 얻은 한가로움이라서 더 달고 고마웠던 게다.
이규보도 벗 이수(李需)의 시에서 차운한 작품에서 "하염없이 빠르게 세월은 흘러가도, 다행히 한가함 훔쳐 물러나 한가롭다(漫漫遣景迅徂征, 幸得偸閑退縱情)"라 했다.
바쁘다고 발만 동동 구르면 한가로움은 없다. 내가 없는 한가함은 무료일 뿐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싸우고 아웅다웅 짓밟고 그랬을까 싶다. 숲에 어둠이 스미고, 인생에도 황혼이 내린다. 헛발질뿐인 백년 인생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 半(반 반)은 ❶회의문자로 소(牛)를 해부하듯이 물건을 나누는 일, 또는 나눈 반쪽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半자는 ‘반’이나 ‘절반’,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半자는 牛(소 우)자에 八(여덟 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八자는 숫자 ‘여덟’이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무언가를 반으로 가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니 半자는 소를 반으로 가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半자가 ‘가르다’라는 뜻을 가진 다른 글자와 구별되는 것은 정확히 반으로 가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半(반)은 (1)둘로 똑같이 나눈 것의 한 부분(部分) (2)일이나 물건의 중간(中間) 등의 뜻으로 ①반, 절반(折半) ②가운데 ③한창, 절정, 가장 ④반신불수(半身不隨) ⑤조각, 떨어진 한 부분(部分) ⑥가장 ⑦똑같이 둘로 나누다 ⑧반쪽을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쪽만 대륙에 연결되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를 반도(半島), 한밤중을 반야(半夜), 한짝으로만 끼게 된 가락지를 반지(半指), 반지름을 반경(半徑), 한 기간의 절반을 반기(半期), 반쪽 면을 반면(半面), 절반으로 자름을 반절(半切), 한 해의 반인 여섯달을 반년(半年), 절반으로 줌을 반감(半減), 본래 값의 절반을 반가(半價), 반 걸음을 반보(半步), 하나를 둘로 똑같이 나눔을 절반(折半),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앞부분을 전반(前半),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반이 더 됨을 과반(過半), 절반이 지남을 태반(太半), 두 분량이 같음을 등반(等半), 절반으로 나눈 것의 위쪽을 상반(上半), 절반으로 나눈 것의 아래 쪽을 하반(下半),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라는 반면지식(半面之識), 잠깐 만난 일이 있었을 뿐인데도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음을 반면식(半面識), 반은 승려이고 반은 속인이라는 반승반속(半僧半俗),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함을 반신반의(半信半疑), 얼굴만 겨우 알 뿐이고 교제는 얕은 사이라는 반면지교(半面之交), 일을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둠을 반도이폐(半途而廢), 아들과 다름없이 여긴다는 반자지명(半子之名), 몸의 좌우 어느 한쪽을 마음대로 잘 쓰지 못함을 반신불수(半身不遂) 등에 쓰인다.
▶️ 日(날 일)은 ❶상형문자로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日자는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日(일)은 (1)일요일(日曜日) (2)하루를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 앞에서만 쓰임 (3)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날의 뜻을 나타내는 말 (4)날짜나 날수를 셀 때 쓰는 말 (5)일본(日本)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날 ②해, 태양(太陽) ③낮 ④날수 ⑤기한(期限) ⑥낮의 길이 ⑦달력 ⑧햇볕, 햇살, 햇빛, 일광(日光: 햇빛) ⑨십이장(十二章)의 하나 ⑩나날이, 매일(每日) ⑪접때(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 앞서, 이왕에 ⑫뒷날에, 다른 날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월(月)이다. 용례로는 그 날에 할 일을 일정(日程), 날마다를 일상(日常), 날과 때를 일시(日時), 하루 동안을 일간(日間), 해가 짐을 일몰(日沒), 해가 돋음을 일출(日出),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직무 상의 기록을 적은 책을 일지(日誌), 하루하루의 모든 날을 매일(每日), 날마다 또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를 연일(連日),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일을 쉬고 노는 날을 휴일(休日),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을 가일(佳日), 일본과 친근함을 친일(親日), 일본에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항일(抗日),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날마다 내는 신문을 일간지(日間紙), 일상으로 하는 일을 일상사(日常事), 날마다 늘 있는 일이 되게 함을 일상화(日常化),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뜻으로 학업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함을 이르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힌다는 뜻으로 늙고 병약하여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모도궁(日暮途窮),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짐을 이르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한낮에 그림자를 피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중도영(日中逃影), 해가 서산에 가깝다는 뜻으로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옴을 이르는 말을 일박서산(日薄西山), 같은 날의 두 번의 만조 또는 간조의 높이가 서로 같지 않은 현상을 일컫는 말을 일조부등(日照不等), 날로 달로 끊임없이 진보 발전함을 일컫는 말을 일진월보(日進月步),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짐을 일컫는 말을 일월영측(日月盈昃), 날마다의 생활을 이르는 말을 일상생활(日常生活), 해와 달과 별을 일컫는 말을 일월성신(日月星辰), 아침 해가 높이 떴음을 일컫는 말을 일고삼장(日高三丈), 항상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등에 쓰인다.
▶️ 偸(훔칠 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兪(유, 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偸(투)는 ①훔치다, 도둑질하다 ②사통(私通)하다(남녀가 몰래 서로 정을 통하다) ③탐(貪)내다 ④구차(苟且)하다 ⑤교활(狡猾)하다 ⑥깔보다 ⑦야박(野薄)하다, 인정(人情)이 박(薄)하다 ⑧엷다 ⑨남몰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눈 앞의 안일만을 도모함을 투안(偸安),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침을 투도(偸盜), 도둑을 투아(偸兒), 남의 영역에 몰래 들어가 삶을 투거(偸居), 경박하고 소신이 없음을 투미(偸靡), 남의 산의 나무를 몰래 벰을 투벌(偸伐), 빛이 바램을 투색(偸色), 경박한 풍속을 투속(偸俗), 도둑을 맞음을 투실(偸失), 국경을 몰래 넘음을 투월(偸越), 남 몰래 차지함을 투점(偸占), 남 몰래 쓴 무덤을 투총(偸塚), 남의 물건을 몰래 훔쳐 냄을 투출(偸出), 남 몰래 훔쳐 빼냄을 투탈(偸脫), 죽어야 옳을 때에 죽지 않고 욕되게 살기를 탐함을 투생(偸生), 도둑질하여 먹음을 투식(偸食), 몰래 봄을 투안(偸眼), 바쁜 가운데 틈을 얻어 냄을 투한(偸閑), 용렬하고 미련함을 투용(偸庸), 닭을 훔치고 개를 더듬어 찾는다는 뜻으로 살금살금 나쁜 짓만 함을 투계모구(偸鷄摸狗), 쥐나 개처럼 가만히 물건을 훔친다는 뜻으로 좀도둑을 이르는 말을 서절구투(鼠竊狗偸), 제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하나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엄이투령(掩耳偸鈴),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교묘하게 훔치고 무리하게 빼앗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교투호탈(巧偸豪奪) 등에 쓰인다.
▶️ 閑(한가할 한)은 ❶회의문자로 閒(한)은 본자(本字), 闲(한)은 간자(簡字), 嫺(한)과 통자(通字)이다. 門(문)과 木(목)의 합자(合字)이다. 마소가 멋대로 도망치지 못하게 우리의 입구(入口)에 가로지른 나무로, 전(轉)하여 '간을 막다', '막다'의 뜻으로 음(音)을 빌어 '한가하다', '틈'이란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閑자는 '막다'나 '한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閑자는 門(문 문)자와 木(나무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閑자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뜻하는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막다'였다. 울타리는 산짐승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가축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든 나무 우리를 말한다. 閑자에 木자가 쓰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閑자는 '마구간'이나 '목책'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집 주위로 울타리를 친 모습은 외부와의 단절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閑자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는 의미에서 '등한시하다' 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외부와의 단절로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한가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참 많은 것을 연상케 하는 글자이다. 그래서 閑(한)은 ①한가하다 ②등한하다(무엇에 관심이 없거나 소홀하다) ③막다 ④보위하다(보호하고 방위하다) ⑤닫다 ⑥아름답다 ⑦품위가 있다 ⑧조용하다 ⑨틈, 틈새 ⑩법(法), 법도(法度) ⑪마구간(馬廏間) ⑫목책(木柵)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틈 극(隙), 사이 간(間),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쁠 망(忙)이다. 용례로는 할 일이 없어 몸과 틈이 있음을 한가(閑暇), 일이 없어 한가함을 한산(閑散), 현직이 없어서 놀던 벼슬아치를 한량(閑良), 한가하고 고요함을 한적(閑寂),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를 한담(閑談), 한가하고 조용하게 살음을 한거(閑居), 한가하고 일 없는 사람을 한인(閑人), 한가하여 자적함을 한적(閑適), 심심풀이로 놀러 오는 한가한 손님을 한객(閑客), 쓸모없는 일을 한사(閑事), 한가로이 누워 있음을 한와(閑臥), 조용하고 한가한 지방을 한지(閑地),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를 한화(閑話), 무심하게 버리어 둠을 한각(閑却), 윤이 흐르고 아름다움을 한려(閑麗), 한가롭고 여유가 있음을 한유(閑裕), 배워서 그 일에 익숙해짐을 한달(閑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내버려 둠을 등한(等閑),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한가함을 유한(有閑), 한가하고 조용함을 장한(長閑), 심심함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함을 파한(破閑), 농사일이 그다지 바쁘지 아니하여 겨를이 있음을 농한(農閑), 말려서 못 하게 하는 범위를 방한(防閑), 매우 조용함을 심한(深閑), 조용하고 한가로움을 정한(靜閑), 청아하고 한가함을 청한(淸閑), 한가한 말과 자질구레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심심풀이로 하는 실없는 말을 이르는 말을 한담설화(閑談屑話),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하고라는 뜻으로 글을 쓸 때 한동안 본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 때 쓰는 말을 한화휴제(閑話休題), 심심풀이로 하는 군말을 일컫는 말을 한담객설(閑談客說), 심심풀이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을 일컫는 말을 한담만문(閑談滿文), 쓸데없는 일에는 손을 대지 말 것을 이르는 말을 한사막관(閑事莫管), 중요하지 않고 일이 많지 않아 한가로운 벼슬 자리를 일컫는 말을 한사만직(閑司漫職), 평화롭고 한가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한자적(安閑自適),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물외한인(物外閑人), 놀기만 하는 한가한 공자라는 뜻으로 의식의 걱정 없이 한가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유한공자(遊閑公子), 바쁘지 아니한 모양이나 한가로이 느릿느릿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유유한한(悠悠閑閑), 어부와 나무꾼의 한가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명리를 떠난 이야기를 이르는 말을 어초한화(漁焦閑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