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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지나
날 버리고 가시는 님 가고 싶어 가나
✽ ✽ ✽
시월에도 꽃을 피울 수 있고 천지에 둘도 없는 옥향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침공과 기마술의 지존이라 불리우는 희대에 전설적인 무녀가 있었다. 비단 같은 색모에 화술도 뛰어나 그를 따르는 자가 만의 만 배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저가 기분이 내키면 풍이고 아니면 흉을 들고 오는 아주 제멋대로 안하무인의 성정을 지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성은 기요, 명은 여류라… 본명보다는 ‘아리 귀’라는 별명으로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는 여인이었다.
“무열. 분명 똑똑히 전하라 하였다.”
“분명 똑똑히 전하였습니다.”
매서운 시선이 무열의 등에 꽂혔다. 낯빛은 덤덤하였으나 순간의 살기를 느낀 무열이었다. 귀는 무열 주위를 천천히 돌며 계화를 씹어 삼켰다. (계화=계수나무의 꽃)
“그렇다면 그 인간노비가 공멸하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로구나.”
유국(留國). 차왕. 제 오년.
이 땅에는 다섯 나라가 있었다. 꼴등부터 말하자면 소국, 경국, 어리국, 그리고 이 세 나라를 합친 것보다 쎈 강국과 유국이었다. 유국은 강국보다 약하지도 그렇다고 소국보다 강하지도 않았는데 국력 랭킹을 매기기엔 좀 어딘가 이상한(?) 나라로 치부되어 네 개의 나라 중 그 어느 나라도 유국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유국을 이리 지칭하곤 하였다.
아리 국
혹은
아리 귀의 저주의 걸린 나라.
“어찌할 요량이십니까.”
“너는 내가 어찌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당연히 공멸하시겠지요.”
귀는 계화를 하나 더 꺾어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니다. 하루의 말미를 더 줄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리 귀의 불같고 지랄 맞은 성품이야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무열은 가끔, 이렇듯 뜬금없는 호의를 베푸는 귀의 심중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여인이었다.
“귀녀님. 감진어사께서 당도하셨다는 소식이옵니다.”
세 명의 시녀가 달라붙어 마사지를 받고 있던 귀의 눈이 스르르 열렸다. 흡사 파도와 같은 빛깔로 일렁이는 청색(靑色)의 눈동자. 이국인에게도 흔히 볼 수 없는 색목(色目)이었다. 귀에게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들이 손으로 꼽아 셀 수 없을 만큼 아주아주 많았으나 그것을 이상히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업의 류가 무녀이기도 했으나 가진 능력이 수백 개, 그 능력 하나하나 또한 천지에서 가장 신통하고 기묘하여 외향적인 모습의 특이사항 따위야 아무래도 좋단 다수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맞이를 해야지.”
자리에서 나신으로 일어선 귀는 거침이 없었다. 여러 시선들이 꽂히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휘장을 걷고 장신구와 옷들로만 가득 찬 별방에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시녀들 앞에 나타났다.
“따라나서거라.”
✽ ✽ ✽
본래, 유국은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 모두 이웃나라와 맞닿아있어 무역과 교류가 활발한 나라였다.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물에서 건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양식이 되었고 북편을 제외한 모든 땅이 고루 비옥해 어디에 터를 잡고 살든 굶어 죽을래야 굶어 죽을 수 없는 가히 축복의 땅을 가진 나라였다. 그래서 감히 ‘신의 나라’ 라고 불리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딱 다섯 해 전 이야기였다.
이 나라에 ‘아리 귀’가 나타나기 딱, 다섯 해 전.
“해묘님. 저기 ‘아리 귀’와 그 무리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하의 말마따나 저 멀리 던진 시선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이색적인 무리가 있었다. 북평에 새로 부임한 감진어사 ‘해 묘’. 그의 입 꼬리가 매끄럽게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 아직 가까이 관찰은 못했지만 그 먼 곳에서도 ‘아리 귀’만의 독특한 오라와 신기가 느껴지는 것이, 과연 전설의 무녀라는 호칭에 걸맞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상상 그 이상이군.”
입술을 비집고 의도치 않은 탄성이 자연스레 터졌다.
“설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설래: 북평의 소속되는 북서 지방
몇 걸음이 채 안되는 간격을 두고 마주하게 된 두 사람. 그 둘 사이로 때 아닌 냉기가 스쳐 지나갔다.
“반갑소.”
너무 짧고 굵은 첫인사였나. 시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묘에게로 와 꽂혔다. 그러나 당사자인 귀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곧은 눈으로 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먼 여정에 심신이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상냥한 말투와 몸짓은 더없이 공손했으나 뱉어낸 말에는 알듯 모를 듯 가시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시는 분별력 있는 예리한 사람이나되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어사는 둔한건지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건지 으레 인사치레하듯 가볍게 고개만 까딱거렸다.
“허니 아월루로 곧장 가지요. 식사는 준비되어 있겠지요?”
뭐라? 순간 귀는 혹 잘못 들었나 싶어 본인의 귀를 의심했으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려 없이 저 홀로 앞서 걷는 어사의 뒤태를 보고 그만 너무 기가 막혀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짧은 첫인사야 워낙 출중하고 화려한 미모에 긴장과 주눅을 동반한 허세이겠거늘 넘어가니. 저이가 이번에 새로 부임한 북평의 감진어사라더니. 대체 나에 대해 어떤 풍문을 들었기에 이리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인가…
귀의 미간에 선명한 내천(川)자가 새겨졌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각 고장의 특산물로 정성스레 만든 요리들입니다.”
“천하의 진미가 여기 다 모여 있군요.”
실제로 아월루의 가장 큰 화실 안에는 황궁에서도 보지 못한 각양각색의 먹음직스런 요리들이 상 끝부터 상 끝까지 나열되어 있었다. 탕이 세 개, 죽이 두개, 전골이 두개, 고기별로 나눈 산적이 네 개, 김치도 두개, 쌈과 전, 골동반과 난면, 채와 떡, 여섯 종류의 차와, 강정, 그리고 계절에 구하기 쉽지 않은 화채까지 모두 마련돼 있었다. 사계절 음식을 모두 상에 꺼내놓은 듯, 절로 입이 떡 벌어지는 장관이었다. 입속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애꿎은 시녀들만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럼 잘 먹겠소.”
이쯤이면 감탄을 넘어 감동(感動)을 하겠지. 귀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떠올랐으나 수하 교원의 찬사를 끝으로 묘는 이렇다 저렇다 으레 있는 칭찬과 감사의 인사도 없이 수저를 들어 취식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덕분에 또 다시 귀의 눈썹이 꿈틀댔으나 보는 눈들이 많기에 그녀는 얼른 표정을 감추었다.
✽ ✽ ✽
“알아보았느냐?”
아월루의 뒤뜰에는 계절의 존속과 상관없이 봄 나무, 여름 꽃들이 사방지천에 깔려있었다. 바람이 차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인 상강(霜降)이 지난 지 꽤 되었음에도 마치 신당은 계절마저 비껴가기라도 하듯, 특히 귀의 안식소이기도 한 이곳만 더욱 그러하였다.
“실은… 소신의 재주로도 힘들어 한양으로 첩정을 위탁하였습니다.”
“뭐라?”
“…송구합니다.”
“되었다. 그래서 기별이 어찌 왔느냐.”
“그것이…”
무열이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막힘없이 전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그것이…”
“무열. 지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이냐.”
귀의 음성은 더없이 차분하고 어조 또한 한없이 나긋하였으나 그것이 무열에게는 등줄기를 훑는 서늘한 한기며 살기였다.
“별 수확이 없었나보구나.”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귀의 체념 담긴 한마디가 허공에 울렸다. 생각보다 훨씬 괴상한 사내임이 분명했다. 진무(塵霧) 이무열의 재주로도 어쩌지를 못하였다니… 순간 귀의 눈앞에 비호감(非好感) 감진어사 해묘의 정갈한 낯짝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빠르게 사라졌다.
생긴 것은 비리비리하여 뱀같이 째진 눈으로 무어라?
허니 아월루로 곧장 가지요. 식사는 준비되어 있겠지요?
그럼 잘 먹겠소.
“이런 공멸할.”
*공멸: 쳐서 없앰
무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가 단단히 노했음이 분명했다. 여태껏 본적 없는 살벌한 음성과 무시무시한 표정이었다.
아 이제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바닥으로 조아린 무열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의 잡념이 떠올랐다. 고약한 성정을 받아주는 것이 힘들긴 하였으나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끔 내키면 은화도 던져주던 나름 고마운 은사가 아니던가. 피도 눈물도 없지만 그래도 이면에는 티끌만큼의 따듯함도 있으리라. 차라리 벌은 주어도 내치지는 말아달라는 간청이 막 무열의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아리 귀님!”
“듣거라. 감진어사가 당분간 아월루에 묵을 것이다.”
“예?”
“그자와 그 수하들에게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될 것이야.”
이렇게 지나가는 것인가. 무열은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귀의 이어지는 음성에 바짝 더 귀를 기울였다.
“무엇을 보든, 듣든, 마시든. 면밀히 주시하여…”
“… …”
“…내게 고하거라.”
✽ ✽ ✽
해시를 알리는 파루가 쳤다.
“해묘님. 계속 예서 머물 계획이십니까?”
교원의 걱정어린 물음에 묘는 노곤한 하품으로 대신 답을 했다.
“해묘 선관님.”
교원의 눈썹이 꿈틀하며 질책하듯 묘의 별호를 불렀다.
“내 그러지 아니해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변통하지 마십시오.”
“참말이다! 네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 …”
“어허. 왜이리 나를 노려보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쪽은 반대로 수하가 주인을 나무라고 주인이 수하의 눈치를 보았다.
“생각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거라.”
북평의 새로 부임한 감진어사 해 묘. 사실 그는 새로 부임한 감진어사가 아니었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말해보거라.”
선관(仙官)이라는 별호. 그도 실은 무자(巫子)였다.
허나 귀와는 큰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리 귀. 그 여인이…”
그가 천신이 이 땅으로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선관님을 사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리 귀’라 불리는 무녀를 잡아 가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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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치즈입니다.
매일 주저주저하다 이렇게 장르방에 새 글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성실 연재할테니 지켜봐주세요.
전편에서 댓글 달아주신 신의 아이서지후님이랑 흰 슬님 감사해요! ♥
첫댓글 우와,첫댓글이네요!WOW아무튼제가진짜프롤로그와는완전다른분위기에순간클릭하고놀랐습니다!흘러나오는BGM덕분에퓨전사극의멋이한껏더가미되어다가오네요!깜찍하고그렇게사랑스럽던여류가안하무인의피도눈물도없는완벽한무녀의모습으로변했네요!프롤로그에서이해못했던것들이이제서야확다이해가됩니다!아리귀라는뜻도확실히알았고,왠지이제부터해묘와여류의기싸움이시작되겠는걸요?왠지엄청나게흥미진진합니다!이거이거~완전신나는데요?앞으로해묘와여류의모습이기대됩니다!!잘보고가구요,건강한일주일보내세요!^.^
잘보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