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시무식사를 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정책 등을 관장하는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을 최대 2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명수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진앙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 폐지를 기치로 내걸고, 실제 재임 기간 행정처를 기존 3분의 1 규모로 축소했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은 취임 한 달 만에 행정처 재건에 나선 것이다.
8일 대법원 관계자는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조 대법원장의 지시로 행정처를 확대 개편하는 복수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오는 15일 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이 부임하는 대로, 조직 개편 작업을 본격화해 2월 법관 정기인사 전에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편의 골자는 법원행정처 소속 상근 법관(심의관) 규모를 최소 15명~최대 23명으로 증원하는 것이다. 이날 기준 법원행정처에 근무 중인 상근 법관은 10명이다.
▶기획조정실에 1명 ▶사법지원실에 6명 ▶인사총괄심의관실에 3명이 근무하고 있다. 최윗선인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차장 및 기획조정·사법지원실장을 포함해도 14명에 불과하다.
그외 행정처를 구성하는 100여명가량 인력은 법관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들이다.
‘행정처의 탈법관화’는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때 추진한 사법개혁의 핵심이었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비등했던 시절 취임한 김명수는 2018년 9월 대국민담화에서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며 “최근 문제된 일들은 상근 법관직을 두지 않았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 만큼 (행정처 대체 기관인) 법원사무처에는 상근 법관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명수는 법원조직법 개정 등의 문제로 행정처를 완전히 폐지하진 못했지만 전임 양승태 대법원에서 40명에 육박하던 상근 법관 수를 2018년 33명 →2019년 23명 →2023년 10명으로 대폭 줄였다.
▶상고법원 도입 등 ‘양승태표 정책’을 추진했던 사법정책총괄심의관실을 폐지하고 ▶법원행정처를 4실 3국 체제에서 3실 3국 체제로 축소했으며 ▶이른바 ‘판사 동향 문건’을 작성한 기획조정실에서 기획총괄심의관직을 제외한 나머지 심의관 자리를 모두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등 ‘행정처 힘 빼기’ 작업도 병행됐다.
그러나 그동안 법원 내부에선 행정처 축소가 재판지원 기능과 대국회 예산 확보 업무 약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김명수가 임기 내에 행정처에서 법관을 끝내 다 빼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탈법관화’ 목표를 스스로 철회했다는 방증”이라며 “일반직 공무원이 아닌 당사자인 법관이 상당수 투입돼야만 사법행정이 현실에 맞게 굴러갈 수가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고작 14명의 법관이 법원행정을 다 책임져 왔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업무를 주관하지 못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천대엽 대법관이 2021년 4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신의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검토하는 복안은 현재 일반직 공무원이 맡고 있는 공보관·사법등기국장·전산정보관리국장직 등 총 세 자리를 부장판사급이 투입되는 직책으로 원상 복구시키고, 사법지원심의관직을 증설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유명무실해진 사법정책 업무를 되살리기 위해 4실 3국 체제로 복귀하거나 사법정책심의관직을 보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 예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사법등기국장을 일반직 공무원이 맡게 되면서 대국회 예산 확보 업무가 약화되고 법원 예산이 6년째 동결돼왔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대언론 기능도 약화한 데다, 전산정보관리국에선 최근 해킹 이슈까지 불거져 이 세 자리를 우선적으로 고위법관(국장급) 자리로 재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지금까지 논의된 것은 전임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체제에서 나온 방안들이므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체제에선 추가 확대 방편들이 강구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 일각에선 “행정권 남용으로 법원 조직에 상처를 입힌 양승태 코트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법원 판사는 “법원행정처가 다시 비대해져 인사권을 통해 일선 판사들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