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1-11절 방월석 목사
복음서와 서신서의 교량역할을 하는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탄생과 복음전파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도행전이 처음 시작되는 부분으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는 모습과 예수님이 제자들의 곁을 떠나시면서 주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사건, 12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사건 또 출애굽기에 기록된 모세를 부르시는 사건, 모세의 시대를 끝내고 가나안 정복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여호수아를 부르시는 사건, 또 사울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여는 순간 그리고 이 왕정시대가 예루살렘 멸망으로 끝나는 순간 등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승천,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이 바로 그러한 시간들입니다. 이를 흔히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헬라어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둘이 있는데, 그 하나는 카이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입니다. 크로노스는 1시간 2시간과 같이 물량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에 반해 카이로스는 주요한 결단과 변화가 찾아오는 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 성경적인 용어로는 ‘하나님의 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3년 간의 공생애를 마치고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면 몇 날이 못 되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보낼터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 하십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음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2,000년 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 은혜의 시대 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한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2,000년 전 주의 제자들이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도 주어진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다시 오리라”(11)하신 재림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예수님이 요구하신 믿음은 무엇인지, 오늘은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4) 당부하셨습니다.
먼저 약속하신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하십니다.
예루살렘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이 있는 곳입니다. 훗날 다윗 왕은 이곳을 여부스 족속에게서 빼앗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고, 솔로몬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에다 성전을 지어 봉헌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속의 십자가를 지신 곳도 바로 예루살렘이요,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도 예루살렘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7년 대환난의 중심무대가 바로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 했고, 장차 예수님이 지상재림하실 곳도 예루살렘이라 했습니다(슥 14:4,5).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함으로 초대 교회가 시작된 곳도 바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에 있어서 중심 무대가 되어왔던 곳이고 앞으로도 중심 무대가 될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의 언약과 사명이 주어진 곳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십니다. 은혜의 자리, 사명의 자리, 약속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주신 언약이 실현될 때까지 머물러 있으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자리, 은혜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했습니다(눅 10:30). 룻기에서도 나오미의 가정이 가나안 땅을 떠나 모압 땅으로 내려갔다가 재앙을 만났다 했습니다(룻 1:3). 성도들은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사명)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믿음과 언약과 사명이 주어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자가 약속하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하십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던 예수님은 “내가 잠시 후면 너희 곁을 떠날 것이지만 염려하지 마라 내가 가면 아버지께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 14:16)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또 다른 보혜사’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영어성경에 Helper(NASB)라고 되어 있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곁에서 돕는 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저들이 믿음의 길, 사명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왔지만, 이제부터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 돕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던 제자들이 결국 성령 충만을 받아 교회의 시대를 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첫 번째 약속,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주의 천사들을 통해 주신 또 다른 약속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다시 오리라”는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11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말씀을 전해줍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절)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에 대한 약속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리라”하신 예수님의 약속(4,5)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의 천사들을 통해 주신 또 다른 약속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에 대한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보내시리라”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다시 오시리라”하신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님이 주신 이 재림에 대한 약속을 붙들고 사는 ‘종말론적 공동체’인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6절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500 명이 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 모두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는 당부의 말씀을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 15절을 보면 예수님이 주신 이 약속을 붙들고 정말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120명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00명이 말씀을 들었지만, 그 가운데 120명 만 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약속을 주셨으면 그 약속을 붙들고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하셨습니다. 약속하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오시리라”는 재림에 대한 약속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도 그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3.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라”(6-8)하십니다.
승천하시기 직전 예수님의 곁에 모여든 제자들은 예수님께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이방인의 때’(눅 21:24)를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적으로 회복되어 예루살렘을 되찾고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구체적으로는 7년 대 환난(한 이레)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언제인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7,8)하십니다.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날짜와 시간은 예수님 자신도 모르신다(마 24:36) 하셨습니다. 시대의 징조들을 통해 그 날이 가까웠음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알 수 없다” 하신 날짜와 시간을 내가 안다고 말하면 100% 이단인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체적인 재림의 날짜를 알려주시지 않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항상 긴장하고 살라는 겁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루하루를 경건하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구체적인 종말의 시기를 아는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너희는 성령 받고 내 증인이 되라”(7,8)하십니다. 교회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할 일은 재림의 구체적인 날짜를 아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 받고 복음을 전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다가오는 환난과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간혹 교회의 환난 통과설을 믿는 분들 가운데, 7년 대 환난을 대비한다면서 피난처가 될 땅을 사두고 벙커를 만들고 식량을 비축하는데 분주한 분들이 계십니다. 환난의 때를 준비한다면서 정작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 복음 전파의 사명에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 해야 할 최우선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하셨고,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니 너희는 성령 받고 내 증인이 되라”(7,8)하십니다.
4. 결론
교회의 시대가 끝나고 환난의 시대를 앞두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하십니다. 믿음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얻기까지 기다리라 하십니다. 휴거의 사건으로 시작될 재림에 대한 약속이 실현될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으로 기다리라 하십니다.
구체적인 재림의 때와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기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다 하십니다. 현재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재림의 구체적인 날짜보다 성령충만 받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해서 다가오는 환난과 심판으로부터 구원하는 것, 그것이 마지막 교회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적인 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