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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에게 띄우는 편지
[2012년 3월 4일]
<벗에게 띄우는 편지>를 한동안 뜸했던 친구들에게 공개 편지로 띄웁니다. 몇몇 곳간 친구들은 받아보시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아름아름 몇몇 벗들에게만 보내던 신변잡기와 이런저런 인문학단상들이라 여럿이 보는 자리에 올리기는 소소한 것들이었는데, 요즘 곳간 분위기도 모르고, 늦둥이를 키우느라, 뱃속에 7개월짜리 품은 와이프 수바라지 하느라 친구들 근황도 잘 몰라 너무 소원해지기 전에, 아니 죽기 전에 신고식겸 올립니다. 편지를 메일로 받아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문자나 메일을 남기시면, 서로 남은 세월 정담이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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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나 초봄의 초입에 들어선 이즈음, 아침 일찍 산책을 시작해 이제는 분명한 봄바람을 느끼며 걸었습니다. 작은 동산이지만 제법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산길인데, 그냥 그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축복처럼 즐거웠습니다. 그것은 매우 주관적이게도 지난 한 달 넘게 질곡을 겪었다는 자조감 때문 인 것 같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입원을 하고, 경찰서 들락거리고, 또 매년 2월쯤의 환절기면 찾아오는 감기나 이런저런 건강의 적신호들로 생체사이클이 저기압골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흑룡띠 새해부터 약간의 사고후유증으로 어딘가 몸과 맘이 편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보험회사와 중간 브로커들끼리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진흙탕세상에서 쓸데없는 마음의 증오만 키웠습니다.
황필호 교수께서 내가 옳던 그르던 절대로 송사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법이나 경찰서를 끼고서는 승자도 패자도 결국은 마음의 깊은 생채기만 남기기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몸의 이상은 여전하지만, 어찌되었든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청매실농원 정유인 부사장과 통화를 해보니 이 달 10일경이면 매화가 제법 꽃망울을 터트린다고 합니다. 남쪽에서 꽃소식도 올라오고, 선거출마나 다양한 애경사로 사람들의 왕래도 잦아졌으니 말입니다.
일본에서 <원코리아>를 내걸고 통일운동에 평생 헌신해온 김희정 선생은 그동안 오사카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통한 한일간의 문화교두보를 자임하며 한글학교 운영같은 많은 일을 하셨는데, 그동안 <시로 배우는 한국어>라는 교재를 완성하여 3월중에 출간기념회를 연다고 합니다. 도종환시인의 시를 중심으로 집필한 것으로 들었는데, 김희정 선생 본인도 지난 해에는 시집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출판하여 북콘서트를 성황리에 치루기도 했습니다. 몇 해 전 나는 그가 탤런트 권해효 선생과 함께 조선인학교, 조총련계와 오사카인근의 한국학교를 방문하여 분단국사이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이념적 갈등의 현장에서 어떻게든 하나의 조국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활동을 펴고 있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27년째 매년 10월이면 오사카성에서 원코리아페스티벌을 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교포만이 아니라 일본인들도 참여하여 연인원 수 천 명이 한국의 문화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고,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박은정(텐진된메) 선생은 금년 가을학기부터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3~4학년 전공과목 중 티벳불교의 교학에 대하여 비교불교학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날란다대학의 정통교학 전통이 살아있는 티벳불교를 10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와 이제는 한국불교와의 습합에 다리를 놓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교수가 되심을 축하하고, 한국의 불교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되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채 아버지의 병간호와 어머니의 행상을 돕다가 늦깎이로 중입검정고시, 고입검정고시,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하여 36살에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6번의 낙방 끝에 사법고시를 합격해 지금은 법의학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안귀옥님, 그 낙망하지 않는 의지로 도전하는 인생의 감동을 주셨던 그 모습으로 이번에는 총선에 출사표를 내셨군요. 세 번째인가 사시 낙방했을 때 고시원에서 담담히 재도전을 이야기하던 그 모습이 삼삼합니다. 줄기찬 도전정신이 있으니, 정계입성도 유장하게 가시면 꼭 성취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성취에 대한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통영고성의 홍순우 님, 인천서구의 김교흥 님, 삼선에 도전하시는 김제완주의 최규성 님, 모두 파이팅입니다.
캄보디아 투자금 회수에 실패하고 한동안 소식도 뜸했던 쥐띠갑장 김성동 청마건설 대표이사님이 부산을 떠나 서울에 입성한지도 2년이 지난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건설사업의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다소 고전하고 있는데, 그동안 시민사회활동과 민주정치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소신있는 인품으로 정계인맥도 다양해 서울에서도 발군의 성장이 곧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섬진강변에서 매화축제가 17일부터 말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청매실농원의 정유인 부사장은 오히려 그전인 10일경이 더 싱그러운 꽃망울을 볼 수 있다고 들르라고 하는데, 매화향기 그윽한 섬진강, 남도의 봄이 그립습니다.
분당 정자동모임에 동참한 이문범, 염춘필, 김경진, 김만열, 이성훈, 강애숙, 송미경, 김옥연님, 오랜만에 즐겁고 격의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끼리 3월24일(토요일)오전 10시에 모여 봄맞이 탄천걷기와 함께 남한산성에 가서 죽란시사 작당으로 백두산에서 넘어온 꽃술(백두산 자생 블루베리 들쭉술)을 나누겠습니다. 시간되시는 분들은 분당 정자역 1번 출구로 가볍게 오시면 됩니다. 김경진 님의 스포츠댄스 시범(?)도 볼 수 있을지 모르고, 적당한데서 숨겨진 프로그램도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탄천길을 따라서 정자~수내~서현까지 약 5킬로미터쯤 봄바람 맞으며 지구걷기를 하겠습니다.
김학재 교수의 저서출판 때문에 한혜경 이채출판사 대표, 바이북스의 윤옥초 사장과 오랜만에 출판계 이야기와 필자들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두 돈 안되는 인문학서적을 고집스럽게 내는 진정한 출판인들입니다. 바이북스 윤 사장은 기세춘 선생의 묵자, 장자, 동양고전산책, 성리학개론, 노자, 논어 등등 고전을 발간하여 스테디셀러로 만들었는데, 조만간 기세춘 선생님을 모시고 고전강독을 열어 보겠지만, 진보적 한학자인 선생의 저서를 읽지 않고는 기존에 발행된 왜곡된 고전 인식을 바로잡기 어려운 만큼, 애독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책값이 워낙 비싸지만, 교보문고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부탁드렸으니, 필요하실 때 연결하십시오.
아일린 님은 지난 몇주간 다람살라에 가서 구르지예프무브먼트클래스에서 강습을 진행하고 오셨군요. 특히 티벳불교에 깊은 인상을 받고 구루를 찾으려고 노력중이시고, 아유르베다의 치유와 요가에 대한 전문적인 과정을 마스터하셨다고 합니다. 독일인 달마님과 풀라님의 <가족세우기>프로그램도 4월에 서울에서 2일간의 일정으로 열 예정인데, 아일린 님과 네티 님의 깨달음을 향한 끝없는 구도의 길에 넘치는 열정이 부럽습니다. 조만간 <변형의 춤>을 배우는 특강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미국에서 들어온 양영희와 보조개소녀 염복순, 월곡동마님 최인숙, 세월따라 다들 흩어지고, 몇 안남은 중학교 동창들, 사라진 남자들이랑 류인자, 김영숙도 모아서 세월의 흔적도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안고 양영희 미국 가기 전 살아 있을때 뭉쳐봅시다.
후마니타스빌리지 (Humanitas Village)
함께 하면서 무언가 생산적인 전망을 갖는 모임을 희망하는 이들이 더러 있어서, 그저 친목만 나누기에는 남은 삶이 그리 길지 않을 듯 싶고, 너무 목적의식을 강조하면 또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려워 질것 같아서 그저 쉼터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문학 사랑방을 개설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개개인의 끊임없는 자존적 가치추구와 함께 사람들과의 폭넓은 소통을 하면서 인류의 위대한 지적유산과 정신문화의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다면,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규정짓지 않고 걸림 없는 자유와 변화의 열린 인문정신을 향한 즐거운 여행에서 좋은 길벗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인문학 분야는 학계에 훌륭한 학자도 많고, <희망의 인문학 운동>같은 사회적기업 활동도 나름대로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도 합니다. 고전공부에서부터 다양한 인문학읽기 붐이 일어난 것도 최근의 바람직한 사회현상이 되었는데, 아직은 매우 한정된 일부의 분위기에 그치고 있습니다.
후마니타스빌리지는 인문·종교·철학·정신·문화 분야의 강좌, 답사기행 등을 통해 마이너리티를 위한 소통과 상처받고 외로운 이들의 자존적 고양의식을 돕는 인문저널리즘운동을 표방하여 폭넓게 만나서 돕고 도움받는 인생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고, 자유롭게 오고 가는 길에, 샘물 길어 목 축이는 우물가가 있는 작은 마을을 어쩌다 한번쯤 들러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처음 시작 모임을 3월21일(수요일) 저녁7시에 대학로 <호질>에서 하겠습니다.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리면 됩니다. 샘터사 건너편 골목길을 40미터쯤 들어가면 있습니다. 뜻있는 강의도 듣고, 새봄을 맞아 얼굴도 한 번 볼겸 편하게 오십시오. 자리에 제한이나 정해진 형식은 없습니다.
다음은 봄부터 시작되는 후마니타스 모임과 강좌에 동참하시거나 아직 확답은 안주셨지만, 함께 지도위원, 혹은 강의로 재능기부하실 분들과 마을살이의 주인으로 함께 하실 분들입니다. 그저 연락이 편해서 나열한 처음 명단일 뿐, 정해진 기준이나 조직적 구성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해외에 있거나 다른 일정상 여건이 안되어 사전 연락을 하지 못하신 분도 있습니다. 명단에 들어 누가 되었다면 사과드리며, 조속히 연결하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박은정(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안귀옥(변호사)/ 박석(명상가, 상명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박이문(연세대 특별초빙교수)/ 아일린(구르지예프무브먼트·변형의춤 강사)/ 이주행(다산학술문화재단 선임연구원)/ 심상정(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달마&풀라(가족세우기 강사)/ 기세춘(한학자)/ 김조년(한남대 윤리학과 교수)/ 김상일(교수, 북한학, 미국)/ 홍진기(한남대 논리학 강사)/ 노익상(사진작가)/ 신순봉(시인)/ 조기호(출판인)/ 오정화(그래픽디자이너)/ 함영실(편집디자이너)/ 소수영(생협운동가)/ 이거룡(교수,요가수행자)/ 판꽁호아(주부)/ 이혜경(작가)/ 이연주(프리랜서)/ 안주일(서울시시설관리공단)/ 홍정표(글로벌콘텐츠대표)/ 천인숙(목사, 노숙인쉼터운영자)/ 한혜경(출판인)/ 정표채(나의문화유산답사 대표)/ 김학재(교수, 여의도중앙경제연구소)/ 정유인(청매실농원 부사장)/ 정선훈(화가)/ 현담(일본정토종 화승)/ 김성동(청마건설 대표이사)/ 고현준(제주환경신문 대표)/ 엄홍길(산악인, 희망재단)/ 송영상(초기불전연구원 교학부장)/ 백경임(동국대 가정대학장)/ 황필호(철학자)/ 권평순(사업가)/ 김효경(직장인)/ 장성주(아름다운길연구가)/ 윤봉수(미8군관리공단)
평범한 사람들의 인문학이야기와 다양한 인간자존에 대한 생각들, 시와 수필, 소설과 비평을 모아 <후마니타스빌리지>라는 비정기 무크지를 내려고 합니다.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들, 생각들, 비평과 창작을 통해 지식의 자유와 왜곡된 사상을 바로 보는 통섭의 통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주제가 있는 <소울아카데미>강좌와 <후마니타스스쿨>에서 고전강독반도 장소여건과 상황에 따라 함께 진행해 나갈까 합니다. 입촌모임에 오셔서 하고 싶으신 대로 편집위원과 편집장도 맡아 주시고 촌장과 이장도 맡아주시면, 일꾼이나 벼슬아치나 선비를 불문하고 차별하지 않던 정자의 그늘에서 돗자리를 잘 펴 놓겠습니다.
천장지구(天長地久)
톨스토이가 시골역에서 80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두고 매우 불행한 종말로 인용하곤 합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매우 분방한 삶을 살았던 그가 뛰어난 문필력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것은 그의 천재성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죽음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한 장치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기획죽음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그의 죽음을 극적으로 만들려는 주변의 의지는 초라한 시골역에서의 역장딸 침실이라는 무대장치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그전에는 부인 소피아와의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모든 저작물을 아무런 조건없이 누구나 출판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환원 의사를 밝힙니다. 이를 소피아는 극렬히 반대하게 되는데, 톨스토이를 신으로 만들려는 일부의 기획자 혹은 추종자들은 톨스토이가 부인과의 거리를 두고자 집을 떠나자, 결국은 여행길에서 얻은 병으로 톨스토이를 시골역에서 그냥 죽음을 맞이하게 몰아가는 기획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불행한 죽음이라는 신화는 창조되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인류역사상 극적인 죽음에 듭니다. 요즘으로 치면 반정부주의자이며 종교성이 강한 뛰어난 인생론 강사인데, 오히려 자신의 동족이 여론을 몰아 로마정부도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 십자가처형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부활과 인류구원의 대속자라는 메시지가 퍼져나가는데, 이처럼 매우 뛰어난 이론가 바울과 제자들의 뛰어난 기획력이 작용하는 시나리오는 별로 없습니다.
붓다의 열반에는 돼지고기 공양이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음식임에도, 심지어 붓다께서는 죽음에 이를 것을 사전에 알 수도 있었는데, 공양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순순히 그 음식을 먹고 결국 길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맨발의 수행자에게 걸맞은 드라마틱한 죽음으로 주변인들에 의해 붓다는 쿠시나가라 열반스투파주위에서 수많은 신화를 창조하였습니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 후세에는 붓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이없는 죽음이 아니라 자비의 진정한 열반의 화신으로 숭앙받게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자살을 나는 외국에서 알게 되었는데, 호텔직원이 말하기를 너희나라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비리사건이 가족에게까지 미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데, 물론 이명박정권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잔혹한 졸렬함이 작동하고 있다는 심증이 있긴 합니다. 권력의 주변에는 항상 자가발전하는 크고 작은 비리들이 떡을 만지면 필연적으로 부스러지는 부스러기들처럼 있기 마련인데, 노대통령은 현세적인 담담함으로 지나가지 못하고, 단선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의 성품이 그리 뻔뻔스럽지 못한 탓이었겠지요. 어찌되었든 세월은 흘러 노무현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정권은 자신들이 교사시키는데 일조한 죽은 노무현의 유령과 이번 선거에서 한판 맞붙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한 시나리오작가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웃집 문에 밥과 김치를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며칠동안 이를 발견하지 못한 이웃은 결국 그녀의 죽음을 알고는 분루했습니다. 자신도 며칠간 집을 비워서 어쩔수 없었다지만, 그의 자책감과 슬픔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알게 모르게 교사자일지도 모릅니다. 굶어죽은 그 시나리오작가는 죽어서 원혼이 될지, 주변을 돌아보고 음식과 마음을 나누라는 메신저가 될지, 그의 혼은 그의 시나리오처럼 어떻게 영사기를 돌려갈지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웬지 그녀의 무덤이 있다면, 찾아가서 꽃 한송이 바치고 싶습니다.
<녹슬은 해방구>의 작가 권운상 선배는 40대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분은 나를 꺼내 주신 분입니다. 내가 시국사건으로 수배를 받아 6개월 동안 전남 목포와 광주, 경기도 여주 등지에 숨어 지내다가 더 이상 도피할 돈도 거처도 없어서 서울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로의 한 술집 지하에 숨어서 친구들과 후배들을 만나면서 근근히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3개월여만에 우연히 들른 권운상 선배가 나를 발견하고는, 이미 수배가 풀렸는데, 왜 여기 있냐고 하면서 바로 데리고 가서 당시 조직중이던 단체에 실무자로 안쳤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수시로 나를 챙겼습니다. 본래가 센치멘탈했던 나는 종종 낭만주의적인 인생행보를 걷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멘토로서의 조언과 새로운 광장을 만들어주면서 암울했던 시대속에서 이런저런 조언과 길을 터주곤 했습니다. 같은 국민대 출신이면서 능숙한 말과 과포장된 이태복 전 장관과는 대비되는 우직한 인간미가 그립습니다. 그 분의 무덤에 찾아간지도 정말 오래되었습니다. 어쩐지 그 분이 살아있다면, “어? 안종국씨, 지금 뭐해? 애만 보지 말고 나와서 일해야지?” 하면서 또 나를 어딘가로 끄집어 낼 것 같습니다. 권운상, 진정한 멘토였던 선배가 그립습니다.
암으로 투병중이던 후배 윤일식은 언젠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선배님, 반가워요? 얼굴 한 번 봐요.” 그런데, 결국은 상가에서 웃고 있는 그녀의 영정사진 밖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투명한 눈망울을 굴리며 늘 밝게 웃던 그를 생각하면 가슴아림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동국대 학생운동으로 군대에 강제징집되어 의문의 총살을 당하고, 지금은 대전국립묘지에 한줌의 흙으로 남은 최온순 군, 후배들을 끔찍이 아끼며 늘 마음의 벗이 되어주던 김선묵, 등등.... 많은 죽음의 흙위에서 새로 돋아난 지금의 후배들은 향유의 본질이 그들의 눈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가슴깊이 알고 있을까? 어디에 작은 기념비라도 함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내 아버지는 갑자생으로 소위 대동아전쟁말기에 일제징용 대상이었습니다.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하려고 다른 이들은 초등학교 졸업을 일부러 하지 않거나, 조기결혼도 하였다는데, 내 아버지는 호적을 정정해서 나이를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같은 마을의 어떤 이가 신고를 해서 결국은 징용에 가거나 징역을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결국은 그 사람을 찾아서 복수를 하였는데, 그 일로 일경에 잡혀가 고문을 받고, 우마차 뒤에 두 손이 묶인 채 질질 끌려 다니며 마을을 몇 바퀴 도는 형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평생 그 사람을 원수로 대하였고, 결국 그 원한 때문에 나중에 북한군이 내려왔을때 인민재판에 앞장을 서기도 하여 다시 원한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일제에 항거했다는 사실로 여운형 주도의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남조선노동당과의 일정한 관계도 있었다는데, 나중에 여순반란사건에 인근의 박정희도 연루된 일로 아버지는 징역을 살았고, 국방군이 조직되면서 징집되었다가 탈영한 이력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가 월북후 6·25때 내려와 도당위원장이 되어서 아버지를 인민위원으로 또 차출하였고, 남과 북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결국 북측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1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였고, 친구들이 빨치산에 합류하여 경찰서 습격 등을 감행하다가 대부분 사살되거나 월북하기도 하여 다시 아버지는 감시대상으로 전후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1968년까지 아버지는 일제 단파라디오를 통해 늘 북한방송을 청취했습니다. 남북의 경계가 없던 사고를 지닌 회색인으로 살던 아버지는 결국 70년대부터 미련을 버렸습니다. 4·19이후의 통일기운도 식고 공산주의자였던 박정희가 미국과 한통속이 되어 결국 분단은 고착되어가고 있으므로 그 후로 아버지는 창(唱)을 배우거나 전통국악기를 손에 들었고, 소리를 위해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면서 아버지의 비극적 일생이 떠올라 나는 극장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 흥미를 잃고 내가 네 살바기쯤 되었을 때 천자문과 소학을 가르쳤고,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역사공부를 시켰으며, 사상과 이념의 변두리에서 희생된 상처를 전통 유학(儒學)에서 대안을 찾고자 했습니다. 첫돌이 되기도 전에 생모가 돌아가시고, 모정없이 자란 피팍함이 근원이 되었는지 평생 고독한 성격으로 살다가 67세를 일기로 아버지는 스스로 할아버지의 묘소 뒤에 드리운 아름드리 소나무에 흰 광목을 묶어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나의 트라우마는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는데, 그냥 시대의 비극으로만 남은 채, 20년이 넘은 지금도 부활의 승화를 찾지 못해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일제말 정신대에 끌려갔습니다. 동남아 전선 어디쯤으로 보내려고 부산항에 대기 중이던 어머니를 그 때 외할아버지가 돈을 써서 구해내 영등포의 한 방직공장에서 군복을 만드는 근로정신대로 빼냈다고 합니다. 3년간 그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곧바로 아버지와 결혼을 했지만, 어머니는 좌우익을 넘나든 도망다니는 남편 때문에 총에도 맞아보고 종전이 된후 10년이 지난 1962년도까지 집 마당 토굴에 숨어 있던 빨치산(무장공비?)들 때문에 가족과 친척들은 연좌제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머니는 한많은 인생을 위암으로 고생하다가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들썩일때 천주교의 데레사로 임종을 하셨습니다.
10여전쯤 전에 매화산자락에서 차를 따던 노인이 <천장지구(天長地久)>를 생각의 중심으로 삼으라고 하고는 홀연히 가버렸습니다. 아마도 주역에 근거한 점괘였겠는데, 이를 다룬 <노자>를 찾아보니,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그것이 영원한 것은 하늘과 땅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영원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인도 자기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영원해 진다. 그는 영원해짐으로써 비할데 없이 강력해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성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줄로 줄이면, “천지자연은 장구하다. 그것은 자생하지 않기 때문이다(天長地久.以其不自生)”는 것입니다.
자유란 외부로부터 간섭, 지배받지 않고 소유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살다보면 상처가 있고, 태어남 자체도 이미 슬픔의 카르마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처럼 보여집니다.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언제 시작된 것인지 아득한 인류의 기원, 자연 속에는 그 어떤 존재자도 절대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게 자연의 철칙인 것일까요? 인류의 등장이 어쩌면 트라우마의 내재적 진화의 동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인류 종은 천형의 유전자라고나 할까요....
완전한 자유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 충족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기 목적 하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독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태어난 자도 없을 뿐더러 죽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 독단적으로 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연만물은 결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작용하면서 때론 서로 제약,간섭, 대립하면서 공생합니다. 천지자연은 자생자화하면서 동시에 만물도 그렇게 하도록 돕지만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없고, 남을 지배하거나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도 위하면서 남도 위하는 자생적 공생이랄까.... 생도 사도 초월해 있는 자연, 그래서 과도한 집착을 버리는 곳에 만물을 생성하고 이롭게 할뿐 지배하지도 간섭하지도 않는 천장지구의 영원한 자유는 오롯이 이어져간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진실유무를 넘어 신화는 필요합니다. 나도 이윽고 죽겠지만, 아이들은 또 자라서 삶을 이어 가겠지요. 내 아이들에게, 이제 역사와 조상들과 세상은 스스로를 버려서 영원을 꿈꾸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람의 숨결이 그렇게 이어져 갈 것입니다.
죽은 가지에서 라일락이 피어나는 것을 잔인하다고 한 보들레르의 심미관처럼, 자연은 그렇게 봄이 오고 또 갈 것이니까요.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집무실 책상 뒤에 편액을 해서 걸어 두었다는, 덧없는 인생살이를 와우각쟁(蝸牛角爭)으로 묘사한 백거이의 시 한편을 말미에 부칩니다.
대주(對酒)-술잔을 앞에 놓고
白居易(772-846)
昨日低眉問疾來 어제 고개 숙여 병문안하고 왔는데
今朝收淚弔人回 오늘 아침 눈물을 거두며 조상하고 돌아왔다.
眼前流例君看取 눈앞에 흐르던 눈물 사이로 그대 보았더니
且遣琵琶送一杯 마지막으로 비파 곡조에 실어 한 잔술 보내왔어라.
丹砂見火去無迹 붉은 모래에 불빛 보듯 가서는 자취 없고
白髮泥人來不休 백발이 사람을 썩히려 와서는 쉬지 않네.
賴有酒仙相暖熱 술의 신선 힘을 입어 서로들 따뜻해져
松喬醉卽到前頭 큰 솔에 취하여 누우니 앞머리만 닿았네.
巧拙賢愚相是非 재주가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 서로 따지지만
何如一醉盡忘機 한번 취해 모든 간계를 다 잊어봄이 어떠한가.
君知天地中寬搾 하늘과 땅 사이의 넓고 좁음을 그대는 아는가?
鵰鶚鸞皇各自飛 독수리와 물수리, 난새와 봉황새 저마다 날 수 있는 것을.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을 다투는가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속 불빛처럼 빠른 세월에 맡긴 몸
隨富隨貧且歡樂 부귀는 부귀대로 빈천은 빈천대로 즐기리
不開口笑是癡人 입을 열고 웃지 못하면 그가 곧 어리석은 사람일세.
百歲無多時壯健 백세를 살아도 건강한 때는 짧고
一春能幾日晴明 봄철인들 몇 날이나 맑고 밝을까.
相逢且莫推辭醉 서로 만났으니 사양 말고 취하여
聽唱陽關第四聲 양관의 이별가를 듣고 들어보자꾸나.
2012년 3월 4일
초봄의 길마중에 나서며, 안종국 올림
첫댓글 어렵다 자서전인지 일기인지 하여튼 복잡하면서
심오하면서 뒤죽박죽 많은걸 뒤돌아 보게 하네요
'역장딸 침실'에서 잠시 머물렀네.
그젠가...몇몇 지인들이랑 고기구워먹고 나오면서
으례걸친 이쑤시게를 잡아보다가 아차 싶두만...
과연... 이 쑤신 쑤싯꺼리를 밷어얄른지 다시 삼켜얄른지..... 햇갈리두만.
물론 돼지고기였네.
아니...둘째를 가졌다고...ㅎㅎㅎ...축하 해요...대단한 벽하...존경스럽다.
벽하선생! 오랜만이우...
흠, 이거 너무 욕심이 많으신거 아니우? 수빈이 동생 소식- "좀 걱정스럽네~"
난 감정표현이 너무 솔직한 여자라.....ㅋ
오랜 만이라구
몰아서 숙제하는겨~
머리 지진나겄다